대영빌딩 1층부터 9층 운명의 한 배를 타다

노동사회

대영빌딩 1층부터 9층 운명의 한 배를 타다

admin 0 4,228 2013.05.12 06:20

영등포2가에 있는 대영빌딩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사무실에 입주한 연맹들의 명단이 쫘르르 걸려 있다. 1·2층 민주노총, 3·4층 전교조, 5층 금속연맹·금속노조·금속연맹 법률원, 6층 금속연맹 법률원, 7층 민주버스, 8층 사무금융·민중연대·민중의 소리, 9층 공무원노조·화물연대·민주노총 법률원 등. 이 많은 연맹과 단체들이 대영빌딩에 모두 모여 있다.

“이곳을 민주노총 공원이라 부르게 해주오”

jmpark_01.jpg이렇게 모두 모여있긴 하지만 각 층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는 따로 정해져 있다. 요즘같이 바람이 선선해지면, 건물 뒤편 작은 공원에서는 매일 스포츠 경기가 벌어진다. 대영빌딩 뒤편 중마루공원 족구장 매트 자리에는 ‘최저임금 실질화 77만원 쟁취’ 플랜카드가 묶여 있다. 그리고 최저임금 플랜카드를 사이에 두고 금속연맹·금속노조 사무처 동지들에다가 연맹 법률원 변호사들까지 합류해 점심시간 짬을 내 족구공을 뻥뻥 차 댄다. 한 편에서는 몇몇 여성동지들이 구석진 그늘을 기어코 찾아, 배드민턴에 땀 흐르는 줄 모르고 열심이다. 이도 저도 아니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다른 동지들은 물끄러미 족구공 따라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멋진 플레이에 간혹 탄성을 내뱉기도 한다.

대영빌딩으로 이사 오고 나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이처럼 건물 뒤편에 자리잡은 작은 공원을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 건물에서 몇 년을 지낸 민주노총 신승철 부위원장 말로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공원의 나무와 전경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민주노총 사무총국과 금속 사무처 동지들 중심으로 족구장을 주로 이용하고 있지만 공원의 진가를 다른 연맹 동지들에게도 소개하고 싶다. 사실 이 공원을 ‘민주노총 공원’이라 불러야 한다며 영등포구청에 민원을 넣겠다고 한 동지도 있었다.

입주한지 몇 주만에 대영빌딩에 입주한 모든 동지들이 바로 그 공원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날의 점심도시락만 무려 200여개. 마침 사법연수생들이 연수하러 온 기간과 맞물려 중마루 공원은 그야말로 성황이었다. “최고위층”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던 9층의 공무원노조부터 각 조직별로 한 명씩 소개했는데, 그 시간만 장장 1시간 가량이 걸렸다. 그런데 이구동성 같은 반응은, “인사를 했어도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였다는 게 후문이었다고 한다.

엘지 아줌마와 수위 아저씨의 스피커방송

가끔 우리 사무처와 민주노총 사무처가 족구를 붙을 때도 있는데, 밖에 나온 민주노총 사무처 여성동지들이 많을 때는 아주 어이없는 팀 구성이 되기도 한다.
“어이 강아무개는 박아무개 대신이야.”
“조아무개는 임아무개 대신이야.”
무슨 소리냐 하면 민주노총 사무처 여성동지들과 부부 인연을 맺은 금속 사무처 남성동지들이 무려 다섯 쌍이나 되기 때문에 부인 대신 금속 남성 동지들이 민주노총 사무처 편에 선 것이다. 형식상 민주노총 대 금속연맹이지만, 사실 내용을 따지면 금속 대 금속이기도 하다. “금속이 제일이야”

어느 날 대영빌딩에서 30년 이상 빌딩을 지켰다는 경비원 아저씨가 건물 앞에서 집회를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를 향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다. 이런 얘기는 아쉽지 않게 들어오던 터지만 왜 그런지 꼭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매번 마찬가지다. “왜요? 뭐가 그런데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하는 말, “아니 민주노총 여성들 금속이 다 데려갔잖아? 그러니까 금속이 최고지.” 다들 푸하하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들처럼 대영빌딩에 질긴 인연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엘지아주머니’다. LG그룹에 다니던 아들이 해고되고 난 후 해결과정에서 전해투와 앙금이 생긴 이 분은 대영빌딩 앞에서 민주노총을 상대로 농성 중이다. 대영빌딩을 온통 엘지 관련 플랜카드로 덮어놨다. 점심때마다 건물 앞에서 민주노총에 하소연하며 마이크로 외쳐서 나중엔 엘지 아주머니 소리에 점심시간인줄 알기도 했다.

또 스피커 소리를 새삼스레 듣게 되는 것은 경비원 아저씨 때문이다. “에어컨을 트니 창문을 닫아달라”, “주차장에 차를 빼달라”는 소리다. 지난 번 건물에선 아저씨가 와서 조용히 이야기하고 갔는데, 대영빌딩은 다르다. 아무래도 조용한 게 낫지.

이웃사촌 덕에 정보는 나누고 시간은 아끼고

민주노총과 여러 연맹이 함께 있다는 게 아직까지 실제 큰 힘을 발휘한 적은 없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층별로 다른 연맹들이 있지만 업무 때문이거나 사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남의 사무실에 갈 일이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서로서로 이웃 연맹들에게 원하는 게 무언가 있지 않을까?

사무금융 최규석 사무처장은 “이렇게 각 산별 조직들이 다 민주노총으로 모여야 한다”며 “그래야 연대도 잘 되고 의견도 잘 모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의 사태에 경찰의 침탈이 있을 때 총연맹 등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찾은 장점은 다른 데 있다. 우선 가장 좋은 점은 주변 식당의 장단점을 모조리 알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노총 사무총국이 다년간 다진 ‘입맛’으로 인해, ○○식당은 뭐가 특기고 ○○식당은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었고, ○○식당은 매일 반찬이 바뀐다는 것부터 해서 칼국수가 맛있는 집, 짜장면이 맛있는 집까지 사전지식을 풍부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기름기가 쏙 빠진 최고의 보신탕 집과 진짜 생태찌개가 나오는 집 같은 먹거리 정보뿐만 아니라 퀵 서비스가 빠르게 오는 사무실 등 사무정보까지 완전 정보 창고다.

뭐니뭐니 해도 사람 정보가 최고지만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아마 술자리가 최고의 정보제공소이겠지만, 술을 마다하는 사람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사적인 자리가 아니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정보 교류에 상당한 이점이 있다. 진영옥 전교조 여성위원장은 “전교조는 아무래도 공무원노조와 연대단위이기 때문에 정보 교류도 빠르고 만나기도 쉽다”고 말했다.

이웃사촌이 되고 보니 사실 시간 절약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이런 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민주노총 회의 주관자들이다. 아무래도 한 건물이 있다보면 엘리베이터 한 번 타거나 계단 오르내리면 되니깐 회의 참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새로운 사무실을 꾸미면서 책상 사이에 칸막이가 생긴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민주노총 사무총국이 처음 그렇게 하더니 몇몇 연맹들도 칸막이를 쳤다. 업무 효율성을 따지면 칸막이가 집중도를 높이는데 좋겠지만, 노조사무실을 일반 회사 사무실처럼 만드는 것을 “도저히 용납 못 한다”는 금속 사무처 일부 동지들의 강력한 제기로 우리는 아직까지 책상 사이 칸막이가 없다.

‘민주노조 운동호’, 한 배를 탄 운명들   

이 건물로 오는 데는 각기 속사정이 있겠지만 금속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으로 이사오는 게 사무실 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느냐 아니냐, 민주노총과 함께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등의 주장이 오가며 ‘오느냐 마느냐’를 둘러싸고 몇 차례 회의도 있었다.
 
결국 ‘이사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사무실 공간활용부터 이사까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세심한 준비를 했다. 한정된 사무공간을 둘러싸고 각 실국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직내부의 변화도 있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금속연맹은 산별노조로 건설된 금속노조 사무처와 사무실 통합을 했다. 산별 시대를 맞이해 중앙사무처를 통합하자는 이야기도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다른 연맹 사람들과 웬만하면 엘리베이터 탈 때나 건물 앞을 오고갈 때 서로서로 많이 만날 것도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가끔 커피 마시러 올라오거나 혹은 내려와서 이야기를 걸지 않는 한, 쉽게 마주쳐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물론 아예 안 만난다는 것은 아니다. ‘식당 정보원’이 같기 때문에 점심 시간에 같은 식당에서 혹은 저녁에 같은 술집에서 만나게 되는 건 필연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대영빌딩과 함께 있는 한 그건 운명이다. 우리의 ‘운명’은 민주노총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거대한 배를 같이 탔다는데 있다. 지금 같은 건물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처럼, 각 연맹과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이라는 같은 공간 속에서 올곧게 길을 갈 수 있도록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을 것 같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