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침략 전쟁과 미국 노동운동의 대응

노동사회

이라크 침략 전쟁과 미국 노동운동의 대응

admin 0 3,808 2013.05.12 06:52

2003년 2월경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 발발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들끓었던 성명 발표와 항의 시위는 이라크의 교전 상황이 예상외로 빨리 종결되면서 한풀 꺾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부시가 의기양양하게 선언한 종전 1주년을 불과 며칠 앞둔 지금 세계의 이라크 침략 전쟁 반대운동은 다른 차원에서 다시 상승하고 있다. 

물론 이 상승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격화되고 있는 이라크 현지의 군사적 충돌과 미국과 이라크인 쌍방의 희생 증가가 있다. 오히려 더욱 늘어나는 점령군의 사상자와 땅에 떨어진 사기, 하루에도 수십 수백의 이라크 민간인이 살상당하는 잔인한 현장, 외국인 인질들의 살해 위협 등이 전해지면서 이제 이라크는 1991년의 걸프전이 아니라 제2의 베트남전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모두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nuovo_01.jpg제2의 베트남전 방불케해 

하지만 국제 반전운동의 조직화가 몇 가지 계기를 통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내부 조건이 외부 조건을 통해 발현된다는 옛 명제는 여기서도 옳다. 특히 노동운동의 차원에서 중요한 계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국제 반전운동이 중심 의제가 된 이래,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 3·20 국제반전행동으로 이어지는 세계 차원의 동원이 있었다. 전쟁 반대라는 구체적 이슈가 이렇듯 시차를 둔 단계적인 국제 동원을 만들어낸 일은 처음이다. 

둘째로 전쟁 당사국, 특히 미국 안에서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반전운동과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결합이 있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참전군인들이 현지의 사정을 전하고, 이 전쟁의 무모함과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계기는 2004년 말에 있을 미국 대선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행동 프로그램들이다. 전쟁광 부시를 끌어내릴 수 있는 실제적 가능성이 제시됨에 따라 반전운동의 전략이 구체화되고 동력을 배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반전운동을 반(反)부시운동으로 국한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에 더하여, 이라크의 노동운동과 노동권에 관련된 정보가 입수되고 대응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올해 초 국제자유노련(ICFTU)의 사절단이 보내 온 보고에 따르면, 이라크의 노동자들은 후세인이 금지시켰던 공공부문의 노조를 재조직하고, 바트당이 장악했던 노조 구조를 재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희망적인 사례에도 불구하고 미군 점령당국은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에 있어 후세인의 억압체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후세인이 1987년에 포고한 노동악법이 점령당국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파업 행동에 가담하거나 이를 선동하는 이라크 노동자들까지 '전쟁포로'로 간주하여 검거하는가 하면, 국영기업을 대거 사유화하면서 노동자의 생존권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라크의 공적 자산을 미국 자본에 마음대로 넘겨주는 조처에 대한 반감도 매우 크다. 

반전운동의 큰 흐름과 노조운동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한 세계 노동운동의 입장은 제1세계와 제3세계로 확연히 대비되었다. 영국과 미국처럼 전쟁당사국이거나 이에 동의하여 파병 및 지원을 결정한 나라의 노동운동은 유엔(UN) 결의 하의 신중한 행동이라는 면피용 입장으로 일관했던데 반해,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등의 민주노조운동은 부시가 주도하는 침략전쟁에 처음부터 단호히 반대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나면서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여기서는 전쟁의 당사국인 영국과 미국의 노동운동에서는 어떠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반전운동의 물결이 온 세상에 큰 파장을 낳고 있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측면이기는 하지만 당사국 내부의 투쟁이 갖는 중요성은 그 이상의 특별한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전운동은 현재 크게 A.N.S.W.E.R(전쟁 종식과 인종주의 종식을 위한 행동)과 UPJ(평화와 정의를 위한 단결)가 대표하고 있지만, 노동운동 쪽에선 USLAW(전쟁에 반대하는 미국 노동자)가 단연 눈에 띈다. 

전쟁에 대한 미국 산별노총(AFL-CIO)의 의장 존 스위니의 태도와 USLAW의 건설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스위니는 영국노총(TUC)의 존 몽크스와 함께 부시와 블레어에게 공개서한을 보낼 정도로 이라크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의지를 보여주려 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이를 후세인의 독재를 몰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간주하면서 입을 닫아버렸다. 전쟁에 대한 노동운동의 조직적 반대는 제2인터내셔널 시절부터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지만, 이 비극은 AFL-CIO의 관료적 지도부에 의해 간단히 반복되었던 것이다. 

비록 2003년 봄 "평화를 지지하는 노동자(Labor for Peace)"라는 제목으로 열린 디트로이트 집회 이후 AFL-CIO의 집행위원회가 UN 재가 없는 이라크 침략전쟁을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무슨 알맹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AFL-CIO의 지도부는 대중적 반전운동의 성장을 알면서도, 그것이 노동자의 권리와 민주적 권리에 대한 불만과 결합되어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고 민주당과의 전통적인 연합을 흔들어 놓을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USLAW가 만들어졌다. 2003년 2월 각 산업과 업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200여개 노조와 550명 이상의 노조 지도자들이 USLAW의 창립 선언에 서명했는데, 여기에는 교원노조(AFT), 서비스부문 노조(SEIU), 전력산업 노조(UE)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 운동에 적극적인 조직의 성격을 보건데 자동차노조(UAW)와 트럭운송노조(Teamsters)의 민주파가 주도하는 AFL-CIO 개혁운동과 함께 갈 것임을 예상케 한다.

nuovo_02.jpg전쟁은 기본적 인권을 위협

영국 TUC도 전쟁이 발발하자 반전운동과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이는 급진적 노동운동 진영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의 반전운동을 널리 대표하는 SWTC(전쟁반대연합)는 그 구성에서 노동운동을 이미 폭넓게 결합시키고 있다. SWTC는 2001년 9월에 런던에서 2천여명이 참가한 대중집회에서 창설되었다. 대표구호는 "전쟁 중단, 인종주의 공격 반대, 시민권리의 보호" 등이다. 

이 조직의 운영위원회에는 왕년의 노동당 좌파 지도자 토니 벤이 의장으로, 『뉴레프트리뷰』의 편집인 타리크 알리가 부의장 중 한 명으로 있는 것을 비롯하여, 주로 사회단체와 각종 좌파정당 대표들이 모여있다. 노조로는 통신노조, 교원노조, 언론노조, 탄광노조, 공공부문 노조, 철도항만 노조, 일반통합노조(GMB), 영국일반노조(UNISON) 등이 "전쟁에 반대하는 영국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이름을 걸고 있다. 

노동운동이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USLAW는 이라크 침략전쟁은 미국내의 노동 민중들, 특히 소수자들, 여성과 연관성이 깊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라크 침략전쟁 자체와 전쟁에 대한 위협이 노동권, 시민권, 이주민의 권리 등 기본 인권을 공격하는 배경이 되고 이것이 '애국법(patriot act)' 같은 억압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의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보더라도 미국 노동운동 다수는 전쟁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도 미국의 개입을 지지했었다. 이를 생각한다면 전쟁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부터 노동진영에서 반전운동이 조직화된 것은 고무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USLAW가 펼치는 반전운동은 미국 노동운동의 상황과 입장을 반영하는 주제들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 "전쟁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라, 전쟁도발자를 거꾸러뜨리자"라는 캠페인, 둘째 퇴역군인 조합원들이 중심이 된, '이라크 참전군인 귀향' 캠페인, 셋째 '이라크 점령 종식과 이라크인의 노동권 보장' 캠페인이 그것이다. 

부시 당락 영향 줄 수 있어

AFL-CIO가 이라크 침략 전쟁 반대 입장을 회피했지만, 적어도 지역 수준에서는 독립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고, 이에 따라 기층 노동운동 수준에서의 반전운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먼저 50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워싱턴주 중앙노동자위원회가 발표한 전쟁을 중단하고 사회지출을 확충하는 내용의 부시와 의회에 대한 공개결의가 기폭제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교원연합도 부시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며, 그 대신 부족한 교육 지출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 지난 가을에는 성적소수자 조합원을 대표하는 AFL-CIO의 '떳떳한 노동(Pride at Work)' 집행위원회도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에 반대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아직 AFL-CIO의 공식 조직에서 전쟁 반대의 입장이 큰 것은 아니지만 점점 증가하고 있다. 

기층 평조합원과 노조 간부들의 독립적 조직들이 지역마다 건설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전쟁에 반대하는 뉴욕시 노동자(NYCLAW), 평화와 정의를 위한 디트로이트 노동자(DLPJ) 등 여러 지역 노동자 반전조직들이 활동하고 있고, 업종별 노조의 각 지역 지부들도 독창적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노동운동은 1천3백만 조합원을 조직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만큼 반전평화운동에도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오는 11월에 공화당을 패배시킬 수 있는 유의미한 투표를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중조직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그러하다. 때문에 반전운동 조직들의 올해 시간표도 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사를 중심으로 짜여있다. 하지만, 노조운동 내의 반전투쟁의 전개는 비단 부시의 당락을 가를 뿐만 아니라, 미국 노조 지도부의 개혁과 기층 운동의 강화발전의 과정이 되리라는 점에서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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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과 여름 미국의 반전행동 프로그램

4월 24일 : 필라델피아, 무미아 아부-자말 석방 대행진
4월 25일 : 여성 행진에 A.N.S.W.E.R 반전 대표단 참여
5월 1일 : 이라크 점령 반대 전국 동시 행동
6월 30일 : 소위 이라크 '주권이양'에 즈음한 전국 동시 집회
7월 25일 : 보스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항의 행동
8월 26일 : 이라크에 대한 독립 국제법정 개최
8월 29일 : 뉴욕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항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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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