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놀랜 적이 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정반대였지만, 이문열 원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국 교실 모습과 <러브레터>의 일본 학교 교실 모습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외국 영화를 보다 보면 이렇게 우리 주변과 너무 비슷한 것 때문에 놀래기도 하지만 너무 다른 상황 때문에 가끔은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이 우연히 프랑스 영화나 독일 영화를 같은 것을 보게 될 때 받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동안 미국 영화를 봐오면서 이미 무의식적으로 영어에 익숙해진 나 같은 사람들은 다른 언어를 소화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택시>나 독일의 <굿바이 레닌> 같은 영화들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조금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이탈리아 영화 <나에게 유일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탈리어의 이질감은 영화가 선사하는 편한 웃음 속에 금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나에게 유일한>은 청소년들의 성장과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첫째 날, 내 친구의 그녀와 키스해버렸다. 둘째 날, 나의 진심은 꼬여가고 부모님은 나를 너무 모른다. 셋째 날, 사랑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다”라는 영화 마케팅 문구가 잘 표현한 것처럼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에 초점을 두고 있다.
고등학생 주인공 실비오는 발렌티나라는 여학생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실비오의 친구 마르티노의 여자친구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어떤 사람들은 영화의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상대로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주된 화두는 세계 모든 청소년들의 공통화두인 성적 호기심과 상상, 그리고 ‘첫 경험’에 관련된 것들이다.
이 영화 속 남자 친구들의 대화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대한민국 고등학생들도 했음직한 것들이다. 또한 클라우디아와 발렌티나 등 여학생의 대화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여고동창생이 주고받던 것들과 비슷하다. 그런데, <나에게 유일한>에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랑이야기하고는 조금 다른 레퍼토리가 껴든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학교점거 투쟁’을 벌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류 영화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의 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또래문화 속에서 왜곡되어진 모습만을 비추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에게 유일한> 또한 마찬가지다. 이 영화 속, 학교라는 공간에서 형성된 청소년들의 또래문화는 여성과 남성의 성(gender) 차이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지 못 하고 있다. 그리고 ‘억압적 기구로 전락한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투쟁’ 또한 어쩌면 청소년의 사랑과 성장에 대한 고민을 육체적 관계로 단순화시키기 위해 양념처럼 사용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학교점거 투쟁은 매우 흥미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점거투쟁을 둘러싸고 다양한 주제들의 논쟁을 펼친다.
학교 사유화와 획일화에 맞선 점거투쟁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문제, 혹은 주요한 고민거리로 부각시키지 않는 이야기들이 더 흥미롭다. <나에게 유일한>은 이탈리아 청소년들의 분위기와 지적관계를 볼 수 있다. 우선, 영화에서 학생들은 학교 점거투쟁에 대해 다양한 논쟁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실비오는 친구와 ‘체 게바라, 그람시, 카스트로'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 3명이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실비오 또한 이를 실천하기라도 하듯이 동료들과의 학교 점거투쟁의 논쟁과정에서 어설픈 좌파적 흉내(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다가 사민주의자로 매도된다. 사실 실비오의 주된 목적은 발렌티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 영화의 재미는 여기에서 있다. 영화는 이미 지난 시절의 시대적 조류로 치부된 논쟁들인 △전체와 부분 혹은 전위와 대중, △논리의 정당성과 설득, △사회주의 VS 사민주의 등의 대립 항들의 진실 된 고민들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로 투쟁의 이유였던 학교 사유화나 교육의 획일화에 대한 인과적 설명은 배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치문제 등의 사회문화적 코드들을 첨가해야 좀 더 괜찮아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했나보다. 실제로 영화를 풀어 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주요한 모티브인 학교 점거투쟁은 그냥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한편, 실비오의 방에는 체 게바라 사진이 걸려 있다. 그리고 학교 점거투쟁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그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으며, 체(CHE)를 의미하는 깃발을 들고 있고 불복종의 구호를 외친다. 심지어 학생들은 학교 점거이후 해방공간이라도 되는 듯, 교실에서 서구의 68혁명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다. 심지어 감독은 주인공 실비오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며 반대하는 아버지 또한 68혁명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삽입시키면서 세대적 차이까지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코드 이처럼 <나에게 유일한>에 등장하는 기표들은 그들의 가장 솔직한 구호인“진부한 일상에 저항하는 방법은 불복종 뿐이야??라는 표현일지 모른다. 때문에 어느 평론가의 지적처럼 그들의 혁명은 모조품이고, 좌파적 수다이고, 정치적 패션의 기호품일지도 모른다. 분명 영화는 학교 사유화와 학습의 획일화라는 중요한 코드를 함축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고민은 없다. 실제로 학교가 사유화된 과정인 획일적 교육에도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젠 서구의 사회가 우리들의 이런 비판적 시각의 관점을 과거의 역사적 유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다른 나라의 사회적 변화흐름을 간과하고 있다. 하여간 그럼에도 영화는 재미있다. 때문에 관객들은 청소년들의 행동들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웃고 있다.
실제로 영화 수입업자들은 <몽정기>나 <아메리칸 파이>와는 대조적이라는 평가를 하면서까지 영화 흥행에 신경을 쓴 흔적들이 보인다. 영화 <나에게 유일한>은 <리멤버 미>(2003)와 <마지막 키스>(2001)로 이탈리아 국내영화제의 상을 휩쓴 가브리엘라 무친 감독의 작품이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실비오는 그의 친동생이고, 동생 여자 친구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이런 탓에
<나에게 유일한>에서 남자 친구(♂)들의 주된 가십거리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 권상우 또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게서도 오고갈 수 있는 성적인 내용들이다. 또한 클라우디아와 발렌티나 등의 여학생(♀)들은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등장하는 배두나와 이요원 이 주고 받던 대화 방식들과 흡사하다. 우선, 실비오는 학교 점거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첫 경험(SEX)이 주된 관심사였다. 반면, 클라우디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실비오와 발렌티나가 서로 학교점거 투쟁과정 중 자료실에서 불미스런 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에 이를 확인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주류 영화에서 10대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관점은 또래문화 속에서 왜곡되어진 현상만을 비추고 있다. 가브리엘라 무친 감독 또한 청소년들의 또래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공간인 학교에서 이미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성(gender) 차이로 보지 않고 있다. 어쩌면 단지 남녀간의 차이를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육체적 문제(sexuality)로만 인정하게끔 만드는 억압적 기구(?)로 전락한 투쟁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비오를 비롯한 동료들이 학교 점거투쟁을 하면서 외치는‘학교 사유화와 교육의 획일화 그리고 불복종'의 구호 속에도 이 문제들은 녹아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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