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은 예기치 않았던 3·12 탄핵국면을 거치면서 국회를 한나라당과 자민련 중심의 냉전수구·숭미 세력의 쇠잔, 합리적 보수지향의 열린우리당의 주도권 장악, 해방공간 뒤 처음으로 ‘계급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의회진출 등의 구도로 판갈이했다. 자주·평화·통일 지향의 남북관계나 총체적 역사발전을 위해서는 냉전수구·숭미사대 세력이 완전히 퇴진되어 국회가 합리적 보수인 열린우리당과 진보적 개혁세력인 민주노동당의 양당구도로 형성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망국적인 경상도 냉전지역주의가 여력을 발휘해 한나라당이 견제세력을 형성하게 되어 개혁과 평화통일 지향에 반동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 2월2일 국회 앞, 민주노동당은 총선 이전부터 "국회에 들어가서 파병 막겠다"고 주장했다. - 출처: 참세상 ]
새로운 국회와 여전한 걸림돌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의 자주·평화·통일 지향의 전향적인 정책기조, 386과 전대협세대의 대거 등장, 젊은 유권자의 탈냉전·탈숭미주의 지향, 냉전수구·숭미사대주의 세력의 표상인 한나라당의 경상도 지역정당으로의 고립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북 유화정책 표명 등으로 인해 국회가 남북관계에 일정정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구도를 보일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나 2003년 6·15 공동선언 기념일에 기념식도 갖지 않고 골프를 즐기는 대통령, 전쟁위협을 노골화하는 미국에 대해 시종일관 자발적 노예주의로 일관하는 대미예속의 참여정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장기적 전망과 역사의식을 결여한 노 대통령의 참모진, 지난번 외교부 항명파동에서 확인되었던 외교부나 국방부의 자발적 대미 예속주의 관료세력, 민주노동당의 “연방제 통일 수용과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한·미 동맹 개폐” 주장이 “국민들의 가장 큰 우려”가 된다는 식의 4월16일 『조선일보』 논설 등과 같이 냉전수구·숭미사대주의 주류신문, 여전히 잠재력을 가진 경상도 냉전지역주의 등은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국회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입안하고 주도하기보다는 후원하거나 견제 및 통제하는 역할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국회의 변화가 획기적인 정책변화로 이어지기는 힘들다. 과거 국민의 정부 때는 냉전수구 반통일 세력이었던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어 남북관계 진전과 대미 독자적인 정책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았기 때문에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제동이 걸렸으나 새로운 국회는 이러한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참여정부 자체의 기본 정책이 얼마나 자주평화통일 지향적이냐에 달려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4·15 총선 이후의 평화·통일·자주의 각 영역별로 세분화해 당면 현안과 전망 및 장기적 과제를 살펴보겠다. 물론 이 세부 현안과 과제는 서로 겹치기 때문에 엄격히 분리될 수는 없지만 분석 목적을 위해서 분류한다.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 먹구름
평화영역에서는 북핵문제의 해결이 급박하고 긴요한 과제이다. 이 문제에서는 북한의 핵폐기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의 동시이행, 그리고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주도적 역할이 해결의 관건이다. 참여정부가 시종일관 주도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여소야대의 국회 때문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는 노 대통령의 국정기조와 역량의 문제이다. 겨우 지난 2차 6자회담에 가서야 중국과 함께 우리의 주도성을 꾀했지만 미국의 강력한 제동에 걸려 진전을 전혀 이루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월4일 밝힌 바에 의하면, 부시는 2차 6자회담 당시 미국대표단에 훈령을 내려 “부시 행정부의 선의는 바닥날 수 있으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여전히 있다는” 점을 북한대표에 통보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더 나아가 체니 부통령이 중국·일본·한국을 방문하는 시점에서 미국은 파키스탄 출신 칸 박사의 증언을 통해 북한이 이미 핵무기 3개를 확보하고 있다고 세계에 알렸다.
이는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져 부시의 대통령 재선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를 역전시킬 카드로 북핵문제를 악용해 군사적 모험을 벌이려는 선거전략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를 위한 준비단계로 미국의 실질적인 전쟁설계자 체니라는 전쟁광이 중국에다 북한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구상(PSI)’이라는 봉쇄계획을 통보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곧이어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급히 방문하고 장쩌민(江澤民)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과 만나 북한의 안보우려 해소 방안을 논의한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 주는 듯하다. 체니는 작년 12월 2차 6자회담이 열리려는 마지막 단계에서 “미국은 악의 세력과 협상하지 않으며 단지 승리할 뿐”이라고 주장해 회담을 무산시킨 장본인이다.
과연 참여정부나 열린우리당이 이러한 위기까지 대비할 정도로 정책역량을 가졌는지 의심스럽다. 이제 민주노동당과 386세대 국회의원들이 이런 문제를 쟁점화시켜 한반도 사태가 미국과 이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우리 군부와 외교부, 그리고 무력한 참여정부의 손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예방하는 역량을 발휘할 때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탄핵 상황이라 그나마 대통령도 부재한 상태에서 자발적 노예주의 부서인 외교부와 국방부가 이를 전담하게 된다면 그 위험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필자는 체니 부통령이 방한하던 날 성남공항에서 전쟁광의 방한반대를 목이 터지게 외쳤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총선결과에 고무된 민주노동당 한 당사에서 기자에게 만약 한국정치를 민주노동당이 주도했더라면 내가 굳이 성남공항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민주노동당에 기대를 표명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민주노동당이 집권하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군사안보가 아니라 평화!
이제 국방비 증액 사안을 보도록 하자. 참여정부는 자주국방이란 미명아래 이미 국방비를 17조에서 19조로 증액했고,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모든 정당이 이에 찬성했다. 남한 군사력이 대북 과잉 전쟁억지력 수준이고 노 정권의 자주국방이 미국의 동북아패권과 연동되어 동북아평화를 장기적으로 위협하는 핵심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방비 증액이 아니라 군축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군축을 화두에도 올려놓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 역시 핵심은 북미 사이의 평화협정과 남북 간의 평화선언, 더 나아가 동북아평화협력체의 추진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조심스럽게나마 평화정책 기조를 띠고 있긴 하지만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실제로 민주노동당만이 장기적 비전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정도이다.
이제까지 국방부 관할의 여러 군사 및 안보문제는 문민통제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자발적 대미예속주의에 함몰된 국방부 및 군부관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독점되어 왔다. 이제는 이러한 성역을 깨뜨리고 군사안보문제를 평화문제로 접근하도록 하고, 국가안보회의가 문민통제가 될 수 있는 구도로 변화시키고, 국회국방위가 행정부보다 대미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지를 살려 국방부를 통제하고 평화군축을 주도하는 구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평택 이전, 미군 주둔 110년 역사를 준비하는 꼴
미군기지 평택이전 역시 이전비용의 문제만 쟁점화되는 낮은 수준을 뛰어넘어, 이것이 앞으로 최소한 50년 이상 미군이 한국에 더 머물겠다는 장기적 전략 하에 추진되고 있다는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계획대로 추진되면 미군이 이 땅에 무려 110년 이상 머무는 셈이 된다. 주한미군이 머무른 지 이미 60년이나 돼, 일본 주둔 41년을 훨씬 능가하고 있는데도 한국사회는 미군기지 평택이전을 너무나 가볍게 취급하고 있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엄연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단지 민주노동당만이 이를 명확히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는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국회에서 활발히 공론화되어야 할 시점이다. 17대 국회는 ‘평택기지 이전 비용’이 아니라 ‘갈 테면 가라’ 또는 ‘가기 싫어도 가야한다’라는 정책논의를 활성화하여 주한미군 철수의 서막을 열어야 한다.
종합하면 스스로 자주적이지 못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게 자주적인 평화정책을 크게 기대하기 힘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단지 민주노동당만이 예외적으로 평화지향성이 뚜렷하지만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는데는 너무나 심대한 외적 규정력이 작용하고 있다. 다만 옛날처럼 냉전수구 세력인 한나라당에 의해 장단기적 평화정책이 출발도 하기 전에 숨통이 조여지는 구도는 극복되었다.
장단기적 평화정착 전략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민족·민중·시민사회 세력이 주도하여 열린우리당을 견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관료 및 군부사회를 미국의 예속에서 벗어나도록 강제하는 방안일 것이다. 이전과는 달리 17대 국회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그나마 먹힐 수 있는 지평이 넓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경협 연계 동의로 스스로를 옭아맨 참여정부
다음은 통일영역을 살펴보겠다. 이 영역의 구체적 사안은 남북공조를 통한 통일기반 조성, 반통일 법인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방안, 통일 후 사회경제체제 등이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화해와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남북공조는 너무나 당위적인 일임에도 당위가 당위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 참여정부의 1년 현실이었다. 한나라당의 ‘북한퍼주기론’,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 미국과의 대북경협·북핵 연계정책 합의, 남북공조보다 한미공조의 절대적 우위성이라는 자발적 노예주의의 극치, 북미 제네바협정을 25%정도만 이행하고도 거의 100%이행한 북한을 협정위배로 몰면서 위기를 조성하는 황야의 무법자인 미국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북한 핵시설의 폐기)에 대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맹목적 숭미주의 등이 남북공조의 획기적 진전을 가로막았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과 경협을 연계시킨다는 합의를 해 줌으로써 미국의 대북장기봉쇄작전(PSI) 구상에 대해 참여정부가 자승자박으로 묶이는 모양새가 되었다.
새 국회는 미국의 압력에 행정부보다 상대적으로 자유스런 위치이기 때문에 이 핵·경협 연계론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키도록 쟁점화하는 역할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개성 공업특구나 금강산 관광특구의 활성화는 남북 간 상호연관성을 높여 남북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중심고리가 될 것이므로 통일기반 조성에 아주 중요하다. 미국은 대북한봉쇄전략(PSI)에 의거 개성공단에 지원되는 남한의 전력송전 등을 차단해 남북경협을 가로막으려 할 것이다. 이 경우 국회의 소장파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민중시민운동과 연대하여 쟁점화한다면 국민일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미국의 봉쇄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연방제’ 과도기 없이 통일이 가능할까?
통일 후 사회경제체제를 생각해 보자. 이에 대한 유연성을 갖는 것이 실질적인 통일의 관건이다. 현실적으로 남북이 각기 다른 사회경제 체제를 택하고 있는 조건에서 남한 헌법처럼 통일 후 사회경제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정시키는 것은 무력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아니면 통일정책 부재 또는 반통일로 해석돼야 한다. 일단 열린우리당은 이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통일에 대해 사려 깊은 정책을 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외면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는 통일방안으로 연방제를 수용하느냐 않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6·15 공동선언이 남쪽의 연합제와 북쪽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결합시킨 방식의 통일방안 원칙을 합의했음에도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비록 정부 수준에서 힘들다 하더라도 정당차원에서라도 이를 진척시켜야 할 테지만 민주노동당만이 소극적 안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연방제라는 ‘과도기’를 거치지 않는 통일방안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이를 명시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정당사회단체들이 무조건 연방제는 북한의 적화통일노선이라는 공안 잣대의 망령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은 이제 이러한 금기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유지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개정을, 민주노동당은 폐지를 내걸고 있다. 새로운 국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야할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국보법 폐지, 혹은 대폭적인 개정이다. 아마 이는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영역에서 열린우리당이 다른 기성 정당보다 약간은 통일 지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민주노동당이 역시 가장 통일 지향적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점을 보아 이전의 모습과는 차이를 보이겠지만 참여정부의 원초적 한계 등을 고려할 때 큰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국내 정당사회단체 대부분이 심지어 민주노동당의 일부까지도 평화와 통일을 분리해서 별개로 인식 및 대처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의 반통일적인 기본정책에 어긋나는 것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전향적인 통일정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구조적 제약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돌파구는 민족·민중·시민진영의 주도성과 민주노동당과 개혁적인 386 전대협세대들의 긴밀한 연대와 협력 속에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파병 철회는 17대국회 대미자주성의 시금석
마지막으로 자주영역을 보자. 이 영역의 구체적 사안은 이라크파병 철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한미군사동맹의 해체와 개편, 평택기지 이전 등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 관련된 것으로 이들 모두는 자주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 직결된 핵심요소이다.
이라크파병 철회는 열린우리당이 얼마나 자주지향성을 보여 줄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파병철회를 공식화한 시점이고 또 많은 국민이 파병철회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행정부에 비해 미국에 상대적으로 자유스런 국회가 파병철회나 연기를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17대 국회는 자주영역에서 스스로 자발적 한계선을 긋는 꼴이 될 것이다.
‘한미군사동맹철폐’, ‘주한미군철수’를 국회 핵심쟁점으로
열린우리당은 한미동맹에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어 현재의 한미관계가 정상적이지 않음은 인정하는 듯 하다. 그러나 새로운 관계 설정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미국은 용산기지 이전을 계기로 새로운 평택기지를 앞으로 최소한 50년 이상 미군이 머물 수 있는 기지로 만들겠다 한다. 이 땅에 이미 60년 가까이 머물었으면서도 이제 철군할 생각은 하기는커녕 50년을 더 머물겠다니, 이는 최소한 110년 이상 이 땅에 외국의 군대인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지속적으로 침해될 것이고 민족자주 행보는 언제나 걸림돌을 맞을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데도 이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는 전혀 없고 단지 일부에서 이전비용 문제를 거론하고 있을 따름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의 단 기간 내 환수, 한미군사동맹의 철폐와 미군철수 등은 민족자주를 위해 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핵심요소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과거 무려 60년 가까이 대미 노예주의를 강압 받아왔고, 이 과정에서 이승만을 비롯한 한국사회 주류는 처음부터 자발적 노예주의로 일관해 왔다. 이 때문에 민족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군사동맹 철폐 등은 우리 사회의 핵심쟁점으로 전혀 등장하지 못한 채 금기의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열린우리당 중심의 17대 국회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해 전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미 이러한 금기를 깨뜨린 공약과 정책을 공식화하고 있고, 의정활동에서도 이들 성역을 인정하지 않고 쟁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의 성역 없는 의제 설정과 민족민중진영의 활발한 뒷받침이 결합하면 이제까지의 난공불락 수준이었던 자주행보에 하나의 도화선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 미군기지가 확장될 경우 가장 먼저 공여지로 변할 평택 팽성읍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깃발이 곳곳에 휘날린다. - 출처:참세상 ]
냉전찌꺼기 닦아내기가 판갈이
이제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비록 냉전수구·숭미사대주의 정당인 한나라당이 퇴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성 주류세대는 냉전과 숭미에 매몰된 채 옛날의 껍질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있다. 세계사적으로 탈냉전과 민족사적으로 통일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담지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열린우리당은 이 냉전·수구적 범주에서는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요원하다. 단지 민주노동당만이 시대적 흐름에 호흡을 같이하는 고독한 선두주자이다.
4·15총선의 괄목할 만한 판갈이에도 불구하고 17대 국회는 탈냉전과 탈미의 영역에서 아직도 허약한 어린이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국회가 자주평화통일의 거대한 역사행보를 본격화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재로선 무리다. 그러나 이제 연방제 통일방안, 주한미군 철수, 한미군사동맹 철폐, 미국의 내정간섭 배격 등과 같은 냉전성역들이 더 이상 제도권 내에서도 성역이 아니라 중요한 쟁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은 열린 것 같다. 이 주역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과 민족민중진영일 것이다.
17대 국회는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핵심쟁점을 비쟁점화로 일관해 온 한국주류의 벽을 넘어서 핵심문제를 핵심쟁점화 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이 열린 공간을 활용해 쟁점화단계에서 정책단계와 실현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몫은 민중시민사회와 국회, 정부, 더 나아가 남북공조 등 우리 사회 전체 아니 민족전체의 맡은 바 역사적 소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