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의 상태와 투쟁

노동사회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의 상태와 투쟁

admin 0 4,542 2013.05.12 07:19
 

book%20%284%29.jpg경희대 전기호 교수가 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들의 상태와 투쟁”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주로 조선의 농부였던 이들이 어떤 계기로 일본으로 도항했고, 거기서 주거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임금은 얼마나 차별적으로 받았으며 어떤 노무관리 하에서 노동했는지, ‘내선일체’라는 정체성 말살정책 하에서 조선인에 강요되는 ‘강제노동’은 중국인 등 다른 민족들과 비교했을 때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등을 방대한 자료와 기존연구에 대한 꼼꼼한 분석을 토대로 서술한다. 

그리고 2차 대전을 정점으로 일본에서 점차 파쇼화와 국가독점자본주의화가 진행될수록, 조선인노동자 동원정책이 ‘모집’ → ‘관 알선’ → ‘강제징용’으로 폭력적 성격이 강화됐는데, 각 시기별로 조선노동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어떤 조직을 통해서 투쟁했는지 등을 담고 있다.   

일제시대의 이주노동자, 우리주변의 이주노동자

우리 집 옛 앨범에는 해방 직후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이 한 장 있다. 그 낡은 사진은 멀리 선명하게 보이는 후지산을 뒤로하고 풍채 좋은 장정들 스물쯤이 몇 명은 웃으며, 대부분은 어색해하며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속에 어디에 조그만 한바(당시 일본의 토목노동자들 합숙소)의 ‘오야가다’까지 지내셨다는 우리 할아버지도 계시지만, 난 구분할 수 없다. 

어쨌건, 그 사진은 분명히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의 상태”를 담고 있고, 앨범을 자주 만지작거렸던 나는 그 사진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70여년의 시차와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조건을 갖고서 사진을 바라보는 내 눈은 그 속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이주노동자’로서 이들의 정체성과 이들이 짊어져야 했던 고난을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아니, 알려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매일 아침 조기를 엮듯이 줄줄이 묶인 다꼬(인부) 다섯 명에 棒頭가 한 사람씩 붙어서 끌고 갔는데, 야근자를 가끔 일광욕시키는 때가 있었다. 그 장소는 항상 정해져 있었는데, 인부가 풀을 뜯어먹어서 땅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한번은 인부가 도망치다가 붙잡혀 대기소 앞에서 린치를 당했는데 풀똥이 그대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노무관리가 가장 폭력적으로 진행되었던 1940년대 초, 어느 광산노동자의 증언이란다. 정도야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군사문화적 전통, 시민혁명과정의 결여, 임박한 전쟁, 식민화로 인한 민족 차별 등을 조건으로 하는 일본 제국주의 상황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항이 활발하던 1920년대 중반부터 30년대 중반까지, 매년 12만에서 18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 숫자를 생각하면 일본사회로 완전히 스며든 사람들, 재일 교포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제외하더라도 현재 우리 주변에는 일제시대 광산노동자로, 토목노동자로, 혹은 성노예로 징용당한 집안 어른이 있는 경우가 제법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해방 60년이 다 되가는 지금에도 친일청산법조차 통과 못 시키는 이 사회에서 이들이 겪은 고통은 오랜 세월, ‘못 배운 노인네들의 지겨운 옛날이야기’라는 딱지가 붙은 채 침묵을 강요받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 같은 젊은이들이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꼼꼼하면서도 포괄적으로 복원해 낸 이 책을 읽는 것은 ‘역사적 공백’으로 취급받았던 그들 삶의 굴곡을 현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는 단지 그 분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이주노동자’들인 이 분들의 삶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는, ‘자유대한민국’의 갈색피부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전기호 짓고, 지식산업사 냄. 1만8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