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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4년 7월12일(월)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발제: 이창휘 ILO 동아시아팀 노사관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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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휘: 발제자
제 발표는 체계를 띤 분석적인 글이 아니라, 동아시아 노사관계에 대한 업무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동아시아 전체의 지역통합과정으로, 특히 중국의 도전이 노동에 미친 영향입니다. 두 번째로 중국,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를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별 노사관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바탕으로 저도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과 토론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들을 던져 볼까 합니다.
최근 한국의 언론들도 중국의 경제 성장을 다루면서, 이것이 한국의 산업과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말레이시아의 사례입니다. 말레이시아의 페낭 전자공업단지는 중국경제가 성장하자, 다국적기업이 한꺼번에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노동시장은 주변국의 노동기준으로도 작용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칩니다. 중국의 노동조건은 역내 차원에서 밑바닥(social floor)의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개인적으로 큰 관심입니다.
자유무역, 중국 그리고 노동권의 문제
국제 섬유·의복 산업 무역을 수출쿼터를 통해 규제해오던 다자간섬유협정(MFA)이 2004년 말 종료되고 2005년부터는 WTO 협정에 의해서 자유무역으로 이행됩니다. 이에 따라, 외화 수입의 절반을 섬유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 등 섬유와 의복산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대량의 일자리 상실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국가에 다국적 기업이 투자한 이유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부여받은 쿼터를 채우기 위해서인데, 자유무역화 된다면, 중국으로 대거 이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쌍무무역협정의 문제입니다. 미국은 다자간기구인 WTO를 통해 무역과 노동을 연계하려했던 '블루라운드'가 실패로 돌아간 뒤, '쌍무무역협정'을 통한 무역-노동 연계 전략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미국 하원을 통과한 법에 따르면, 미국이 쌍무간 무역협정을 맺을 경우 반드시 노동권과 관련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사례가 바로 '미국-캄보디아의 무역협정'입니다.
미국은 근로조건의 개선(ILO 8대 협약의 비준 준수와 국내 노동법의 준수)을 대미 수출 쿼터 증가와 연동하는 '적극적 조치(positive sanction)' 전략을 취했습니다. 다급한 캄보디아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이 협약의 준수 사항을 모니터링할 기구로 여러 논란 끝에 ILO가 선택되어 지금껏 감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캄보디아는 아동노동착취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 '나이키(Nike)'나 '갭(Gap)'같은 빅 브랜드가 계약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협정 이후 현재는 이 같은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국제정치적 논쟁을 생략하고서 ILO의 3년간의 모니터링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이 쌍무간 협정은 일자리 창출과 산업 발전에 긍정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긍정적인 결과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4년 말 MFA가 종료되면서 캄보디아에 투자한 기업이 중국으로 이동할 경우, 지금까지 성장한 '노동권'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노동권을 상대적으로 보장하는 캄보디아의 노력이 중국으로의 공장 이전 움직임을 과연 이겨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들어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섬유·의복산업 사용자들, 미국 정부와 노동조합, 그리고 옥스팜을 비롯한 국제 시민단체(NGO) 사이에 '사회적 친화력을 가진 생산성 향상'이란 전략을 선전함으로써 캄보디아의 공장을 유지하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경제성장은 중위선진국 뿐만 아니라 개도국에도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략이 구사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의 발전과 노동
2005년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이 발효되면, 아세안( ASEAN)) 영내 국가 사이의 무관세, 즉 자유무역이 실현됩니다. 물론 자동차에 대한 유예조항이나 후진국에 대한 유예조항이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아세안의 무관세 체제의 출범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002년에 중국이 아세안과 2010년까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로 했고, 한일 자유무역협정,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ASEAN-plus-Three(한중일)의 자유무역협정 등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동아시아가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로 흘러가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 속에는 현재 '노동'에 대한 논의가 거의 공백의 상태입니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논란은 있습니다만, 유럽연합헌장(EU Chater)을 비롯한 사회적 장치들이 지역 차원에서 존재합니다. 남미나 남아프리카 지역에도 유사한 사회적 장치들이 존재합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ATUC(ASEN Trade Union Confederation, 아세안노동조합연맹)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아세안 사무국의 공식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세안 국가들은 극히 최근까지도 일본 다국적기업 주도의 지역적 분업체제 하에 놓여 있었지만 여기서 렝고(RENGO,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역할 또한 극히 미미합니다.
외교적, 통상적 이슈가 될 자유무역의 출현에 대해서 한국노동운동과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단체, 그리고 한국 정부도 뚜렷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지금껏 남아공의 코사투, 필리핀, 혹은 브라질의 노동조합과 연대사업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큰 어망을 던져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고민이 멈춰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연합의 경험을 되돌아보더라도 1940∼50년대에는 통합의 사회적 측면들이 조약으로서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약의 형성기에 사회적 측면에 대한 '문구'가 하나 삽입되고, 그것이 자기 진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추동을 통해 결국 유럽 차원의 사회적 시스템으로 마련된 것입니다. 유럽과 비교할 때, 우리의 정부 혹은 노동조합의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지역이 국제노동기준이나 노동권과 관련해서 가장 후진적인 지역으로 남아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국제노동기준 협약 비준 숫자를 본다면 동아시아는 심지어 라틴아메리카보다 비준률이 낮습니다. 물론 비준률이 실제 적용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만, 앞서 얘기한 캄보디아 무역협정이 보여주듯이 국제법적 효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지역통합 및 쌍무간 무역자유화 흐름과 발맞추어 노동권 신장이나 국제노동기준 촉진을 위한 연대활동은 지역 차원뿐 아니라 선진국과도 협력하면서 진행돼야 합니다.
동아시아 국가의 노동정세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을 분류하면, 일본은 미시적 코포라티즘, 싱가포르는 거시적 코포라티즘의 형태를 띱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별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스트리아의 사회적 코포라티즘과 거의 유사한 형태라고 봅니다.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권위주의에 의해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독특한 성격이라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정부 관료와 재계, 노총에 주로 종사하는 인종이 뚜렷하게 차이가 납니다. 이런 인종적 관계가 섞여 있어서 정의하기 어려지만, 적어도 마히티르 총리 이후부터는 거시적 차원의 사회적 대화 메커니즘은 갖고 있지만, 유럽처럼 정교한 코포라티즘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태국은 노조조직률이 1.2%로 아시아에서 가장 낮습니다. 10개의 노총이 경합하고 있고, 사용자단체도 7∼8개에 달해 전국적 수준의 노사관계 시스템이 작동하기 힘든 나라입니다.
다음으로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와 몽고처럼 '구사회주의권 이행경제'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통치 하에서 시장경제로의 점진적 이해이라는 측면에서 유사점이 있고, 캄보디아와 몽고는 다당제 민주주의 하에서 노사관계가 전환되었다는 측면에서 유사점이 있습니다.
1) 중국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근로조건은 아시아를 넘어서 모든 나라들에서 근로조건 향상의 제약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노동체제, 노사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지역 연구의 영역에 머무는 질문이 아닌 전 지구적 문제입니다.
총공회는 노동조합인가
첫 번째로는 '총공회'는 노동조합인가의 여부입니다. 먼저 총공회의 현황을 개괄하겠습니다. 총공회 전체 조합원은 1억2천만입니다. 이 규모는 국제자유노련(ICFTU)의 전체 조합원과 맞먹습니다. 간부만 60만에 달합니다. 총공회의 역사는 다른 사회주의권의 노조와 다른 측면이 있는데, 바로 '문화대혁명'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군이 총공회 본부를 포위하고 활동을 정지시킵니다. 이유는 최근의 비정규직·정규직 문제처럼, 소위 '사회주의 노동귀족'을 대변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총공회는 사회주의 국영, 대기업의 근로자들의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반면, 비정규직이나 농촌에서 올라온 근로자들은 차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의 홍위군은 이 차별받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되었기 때문에 총공회가 비판받고 공격당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등소평이 개혁개방노선을 취하면서 시장경제 개혁의 하위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총공회를 부활시킵니다. 그런데 등소평은 1982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그때까지 보장되던 '파업권'을 삭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시장경제의 노사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한 1994년 무렵엔 중국 최초의 '노동법'이 생겼습니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법은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행정지도로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노조법'은 70년대 총공회 부활과 함께 있다가 다시 2000년 10월에 '신노조법'으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의 노조법이 전통적 사회주의에서 노조 기능인 기업활동에 대한 보조에 강조점을 두었다면, 새로운 노조법에서는 노동자 권익 보호에 대한 강조가 부분적으로 나타납니다. 94년 이후 총공회 주도로 단체교섭을 강조하기 시작하여, 2002년 말 현재는 53만개 기업에서 6천7백만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에 의해 포괄되고 있습니다. 이 단체협약의 성격이 중요한데, 최근 들어 점점 새로운 내용이 삽입되고 있지만, 제가 12개 기업의 단체협약을 살펴 본 결과, 그냥 중국의 노동법을 거의 베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규모가 방대해서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회가 단체협약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노동법을 인지시키고, 준수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새로운 양상 가운데 하나는 '지역단체협약'입니다. 이처럼 단체협약에 대한 강조가 등장한 이유는 집단적 노사분규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2년 550건이었던 것이 2001년 들어 9,850건으로 수직상승하자, 정부가 체제위협의 관점에서 대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공회가 노동조합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째가 정치적 통합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총공회의 주석(위원장)은 전임 주석까지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었습니다. 이 자리는 공산당에서 서열 3위 안의 자리입니다. 국가 운영에서 총공회의 정치적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상무위원은 아니지만 서열 20위 안인 정치국 위원인데, 그만큼 중국 정부가 정치적 통합을 통해서 노사관계를 통제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국영기업 단위의 주석은 통상 부사장급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 공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공대표대회'와 '공회'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문화대혁명 이후 등소평에 의해 만들어진 직공대표대회는 형식상 '노동자평의회(Work Council)'와 유사한 조직입니다. 한 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 년에 몇 번 만나서 원론적으로는 인사권까지 포함한 모든 결정을 하는 기구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사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포함되어 있고, 공회는 이 조직의 사무국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회주의적인 민주적 관리 시스템을 반영하는 것이죠.
문제는 중국의 개혁과 함께 사영기업이 발전하면서 이 시스템이 계속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사영기업에서 직공대표대회를 조직할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공회는 이것을 사영기업에도 적용하기 위한 캠페인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중국에서는 '경영'층과 '노동'층의 이익의 분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 직공대표대회는 사회주의적 모델을 이상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익 분화를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란 점입니다.
'총공회가 노동조합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다른 이유는 '선거과정'의 문제입니다. 요즘엔 직접 선거를 한다고 하지만, 이것보다는 '후보자 추천권'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교섭 위원을 뽑더라도 공회가 후보자들을 선정하면 당이 최종 위원을 결정하는 시스템에서 과연 공회가 얼마나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할 수 있겠는가입니다.
중국 총공회의 성격은 기업 차원의 노사관계를 들여다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중국 기업차원의 노사관계는 '사실상 3자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기업 차원 노사분쟁 조정위원회 구성을 보면 경영대표, 근로자대표, 공회 대표의 3자 구성이며, 공회 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즉 공회가 노동자집단의 대표라기보다는 경영자측과 노동자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중국 총공회는 노사분규가 급상승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놓고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당 지침 아래 시장경제 이행의 사회적 안전판 구실을 해야 함과 동시에 근로자의 이해대변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체협약의 촉진 등을 위한 노력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이익대변자로서 역할 강화를 위한 일정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노조가 처하고 있는 정치적 환경, 그리고 노조 내부의 민주주의의 문제 등으로 인해 한계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월마트 사례입니다. 월마트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대단히 악명이 높은데, 중국에 들어와서도 '무노조 원칙'을 주장하면서 총공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겁니다. 이것이 알려지면서 민족주의적인 감정까지 덧붙어 총공회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월마트에 대해 화가 나있는 상태입니다. 총공회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ILO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하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총공회는 이처럼 개혁개방 이후 맞이하게 된 새로운 문화충격들에 대해 어떻게 적응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성찰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
중국 노사관계에 있어서 최근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노사정 기구의 건설입니다. 2001년 8월 전국차원의 '노사관계삼방회의'가 건설되었고, 현재 성(省)단위에서 노사정기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는 시 차원까지 건설을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가하는 것은 노동부, 공회, 기업가연합회이고 다뤄지는 의제들은 단체협상 촉진, 노사관계 안정 그리고 해고 등 노동시장 관련 안건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익히 짐작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참여주체들의 대표성입니다. 특히, 사측의 경우가 문제가 됩니다. 노사관계삼방회의에 참여하는 '기업가연합회'가 만들어진 원래 목적은 국영기업 개혁, 즉 이전까지 계획경제 하에서 관리되던 것들을 분권화하는 과정에서 완충작용을 하는 가교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노사관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업가연합회는 지금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사영기업이라던가 합자회사하고도 전혀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합니다. 기업가연합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퇴직관료들입니다.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용자단체의 대표라고 앉아있는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총공회도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파트너를 찾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우리나라의 상공회의소와 비슷한 성격의 '공상연'이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이는 예전 중국 항일투쟁의 통일전선체였던 '정치협상회의'에서 민족자본가들의 대표조직으로 참여했던 조직입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경제 하에서 유명무실하게 이름만 남아있던 것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사영경제가 커지니까 이들의 대변자, 로비그룹으로 급성장을 했습니다. 때문에 이 단체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노사정대화가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공회가 직접 나서서 이 단체들을 노사정대화로 끌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급격하게 중국사회가 변화하면서 총공회도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고 나름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공식 시스템 밖의 움직임
중국에서 공식시스템 밖의 움직임 중에는 대표적인 것으로 '노동상담소'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국 각지에 약 33개의 노동상담소가 대학 등지에서 비정부기구로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의식'을 가지고서,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법률구조 사업이라든지, 기업과 중재를 해준다든지 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가 만나본 여기 사람들을 봤을 때, 우리나라 1970년대 노동상담소들의 경우처럼 상담을 통해서 노조를 조직하거나 민주화하는 목적까지 갖고 활동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노동상담소가 영역을 확장하지 못 하는 이유는 제 나름의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우선 허구적이긴 합니다만, '노동자가 국가의 주인(master of the state)이다'라고 하는 이데올로기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공회가 어느 곳에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뭔가를 어떻게 새롭게 조직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민주노조운동을 하는 분들이 "노총은 노조가 아니다"라고 얘길 했을 때는 '노조는 어떤 것이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한다'는 것에 대해서 현재의 현실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가치지향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중국사람들에게는 노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총공회였기 때문에 '노조는 다른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마인드 자체가 잘 형성되어 있질 않다는 생각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이 문화혁명의 효과입니다. 문화혁명이 지식인들을 억압했던 경험은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 커다란 선을 그어 버렸습니다. 지식인들이 시혜적으로 개별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조직화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관심이 없다는 것이죠.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노동상담소가 개별적 구조사업에 머물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만든 노동상담소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그곳은 앞서 말씀드린 곳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더군요. 그리고 광동성 일부에는 '지하노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할 공식 시스템 밖의 움직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캠페인'에 대한 관심이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매우 높아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중국 내부에도 노사관계를 정통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회라고 하는 벽에 부딪혀서 진전을 못 하니까 이 사람들이 관심을 돌린 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망망대해의 종이배' 같은 아주 작은 예이긴 합니다만, 복건성에 있는 갭(Gap)사의 하청공장에서 처음으로 '노조자유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이는 어떤 외부적인 압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갭'이라고 하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기업윤리강령(code of conduct)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다른 곳으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고민의 맥락 속에서 지식인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관찰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려있는 주장입니다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정치적 자유화'의 진전이 있을 때 노사관계 내에 존재하는 긴장이 터져 나오면서 새로운 제도적인 양식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서 홍콩이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중국 대륙과 관계를 맺고있다는 것이 저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조금 방향을 바꾸기는 했습니다만 도시산업선교회 등 홍콩에 있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남중국에 가서 조직화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한 홍콩과 남중국의 상호침투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홍콩이 조그만 나라고 중국에 복속 되어있다고 관심 밖에 제쳐둬서는 안될 겁니다. 한국에서 국제연대, 특히 중국과의 관계 문제를 고민할 때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2) 베트남
사실 3, 4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베트남은 중국과 거의 궤적을 같이 해왔습니다. 베트남의 1986년 도이모이 정책, 즉 경제개혁개방은 중국보다 7, 8년 정도 늦었지만 사회적인 부분에 있어서 개혁개방은 중국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국이 최초로 노동법을 채택한 것과 베트남이 노동법을 채택한 날짜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해, 같은 날에 발효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제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베트남의 것이 훨씬 더 '리버럴'한 측면이 있습니다. '네오리버럴'이라는 의미에서의 리버럴이 아니라 '관용적이다', 뭐 그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리버럴'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장치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이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앞으로 베트남이 중국과 다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높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는 첫 번째 이유는 베트남의 노동법이 상대적으로 강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고, 파업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굉장히 제약이 많은 파업권이긴 하지만, 중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노조들이 파업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규정되지 않은 것은 금지된 것이다'라고 하는 법적 원리를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파업권이 법안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큰 것입니다. 실제 중국 총공회 간부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파업에 관한 것은 일절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트남 총동맹 간부들은 파업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굉장히 고민이 많습니다.
둘째로 베트남 노동총동맹이 중국총공회와 다른 점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기존체제와 통합 정도가 덜 하다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가 중국 같은 경우는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총공회의 주석이 정치국 상무위원회 소속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좀 더 느슨한 중앙위원회에 들어가 있습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공회 주석을 부사장 대우를 하는 관행은 별로 없습니다. 총동맹이 자기 발로 서야할 정치적 환경인 것이죠.
그리고 셋째로 노동시장과 관련된 차이점입니다. 요즘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7∼8% 정도 됩니다. 중국보다는 한 2% 정도가 덜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베트남도 고도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8천만 되는 인구가운데 아직까지도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제가 베트남에 있는 한국 하청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업체는 모범적으로 노사관계를 운영하는 것을 알려져 있었는데 조사를 하면서 돌아다녀 보니까 어떤 곳에서는 임금을 30%를 인상해달라고 합니다. 그만큼 경제성장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보니까 경영자들의 고민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붙잡는가 하는 것이죠. 때문에 노조도 단체협상 안으로 10% 정도를 내고 7∼8% 선에서 타결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국 같은 경우 실업자층이 두텁고, 1억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들의 압력이 워낙 강합니다. 때문에 베트남에서와 같은 노동시장적인 압력이 중국의 총공회에는 가해지지 않는 것이죠.
다음으로 경영자 조직의 차이입니다. 베트남 같은 경우 '상공회의소' 산하에 '사용자 활동국'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사영기업들까지 포괄하는 것으로서 그 대표성에서 중국의 '기업연합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리고 회원간의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최근 상공회의소 회장이 바뀌었는데, 그가 총동맹에 노사관계와 관련해 협약을 맺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감이 잘 안 오실 텐데, 사회주의권에서는 모든 것을 정부를 통해 해결하지 않고서 노사간에 뭔가 협약을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상당히 혁명적인 것입니다. 이렇듯 베트남의 노사관계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진화를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는 조금 더 관찰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차이는 남부 베트남의 경우 사실상 사회주의 경험은 1975년 베트남통일에서 1986년 '도이모이'까지 10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여기 사람들은 개방을 처음 맞이했던 중국 사람들과는 달리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고, 파업이 뭔지를 이해합니다. 그래서 변화에 더 급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죠.
3) 몽고
몽고는 '이행경제 노사관계의 제3의 길'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유럽에서 노사관계 양상을 보면,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처음에 공산당정권이 붕괴하고 다당제적 민주주의가 시행되면서 노동시장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노동조합의 기반이 붕괴되고 이러한 것이 다시 영향을 줘 여러 노동조합들이 경합하는 관계가 되면서 공통적으로 힘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동유럽에서의 이행경제 노사관계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이행모델은 아까 말씀드린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노사관계의 독립성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에 의한 것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몽고는 이 두 가지 모델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몽고는 '동유럽형 민주혁명'에 의해서 70년 사회주의 역사에 종말을 고하고 시장경제로 이행을 했습니다. 몽고 노동총동맹은 내부적인 개혁을 통해서 현재 조직률이 약 30%에 이르는 등 민주적인 노동조합으로 상당히 탈바꿈을 했습니다. 그리고 91년에 창설된 경총도 민간 기업의 51%를 회원으로 하는 등 급성장하면서 이름에 걸맞은 대표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두 조직이 91년부터 2년마다 전국적인 사회적 협약을 진행시켜 왔고, 성(省)단위의 사회적 협약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몽고는 뭔가 다른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70년 사회주의 역사 속에서 시장경제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시장경제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주의 전에도 몽고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유목민의 사회였기 때문에, '근대 경제'라고 하는 것이 소비에트 사회시스템 하에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미스매치의 문제입니다. 몽고의 노동조합은 공공부문에 기반이 있고, 몽고 경총은 민간부문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유목민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전통적 친절과 상업적 불친절'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목민인 몽고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굉장히 친절한 사람들입니다. 손님이 귀하기 때문에 누가 집에 오면 굉장히 환대를 해줍니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굳어진 서비스시스템인데, 이러한 사례는 몽고의 현주소를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토론할 몇 가지 질문들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생략을 하겠습니다. 토론 시간에 기회가 있으면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봤습니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적인 문제는 '자유무역협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지역통합에서 한국의 노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냐', 또는 '노사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양대노총이 국제연대를 추구하면서, 조금 갑갑해 보이는 동아시아의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좀 더 찾아보고 신중히 대처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동아시아에서 진보적인 축이라는 게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좀 폭을 넓혀서 호주와의 관계를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호주의 경우는 상당히 진보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층적인 사고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렝고'는 중국 노동권에 관심이 많고 일본 정부를 통해서 압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해가 맞는 경우에는 다양한 관계맺음을 하면서 역내에서 국제노동기준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 하는 고민들이 우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방식이 문제인데, 제가 현대자동차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가서 들어보니까 단체협약에 명시된 공장이전과 관련한 조항을 노사 양측 모두가 현실화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현실성 없는 조약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구의 노조들이 하는 것과 같은 노동외교를, 정부를 통해서 하든 노조와 노조의 관계를 통해서 하든, 실제 우리 기업의 진출국가에서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만드는 것이 노동자들의 이익에 장기적으로 더 확실한 방법이 아닌가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윤리강령(code of conduct)'이라고 하는 것을 강하게 밀고 나가야합니다. 유럽 같은 경우 잘 발달된 시민사회의 모니터링시스템 때문에 기업들이 꼭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기업만 하고 다른 아시아 기업, 한국기업들은 그런 것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죠.
한국 정부도 요즘은 많이 신경을 써서 작은 돈이지만 50만 달러를 ILO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돈만 내고 시혜적 차원의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과 전략을 고민하면서 활동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노사정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죠. 제 발제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종합토론
토론자: 자유무역협정의 지역적 차원의 대응에서 ATUC(아세안노동조합연맹)이 갖는 의의가 무엇이라고 보는 지 설명해 주십시오.
이창휘: 중요성이 떨어지는 조직입니다. 노조 내부에 알력이 있고 연대 수준이 매우 약할 뿐 아니라 역할도 미미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아세안(ASEAN) 국가들은 일본을 비롯한 다국적기업의 지역적 분업체제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원청 국가의 노조 역할이 중요한데, 일본의 렝고(RENGO,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역할이 미미하고, 아세안에 한중일도 참여하고 있지 않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토론자: 제가 일본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서 보충설명 하겠습니다. 보통 노동조합에게 국제적 노동외교라 함은 국제연대의 강화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일본 노조운동의 노동외교 방식은 일본의 좋은 이미지를 선전하거나, 일본의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려는 듯 빈국 노조 재정의 많은 부분을 뒷받침하는데 있습니다. 결국 ‘노동외교’에 대한 정의가 우리와 다르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창휘: 첫째 질문과 관련해서 노조가 취할 수 있는 대응은 두 가지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셔널센터의 모임인 ICFTU(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에 진보적 축을 만들고 이것으로부터 아시아 지역의 2차적 틀을 만드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산업별 차원의 국제조직들 사이의 연대 형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토론자: 한국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 노조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곧 싱가포르와는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듯한 분위기입니다.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주목되는 부분인데 한국의 사회단체들의 반대가 강합니다. 반면 일본의 렝고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대해 조건을 걸고 있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양국 노조의 이해가 다릅니다. 이럴 때 과연 우리가 렝고와 공동 대응을 해야 하는 지 한다면 무엇을 가지고 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참여자를 비롯한 노조 활동가들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창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대응은 비제도적 영역과 제도적 영역에서의 대응이 모두 존재하고 둘 다 필요합니다. 비제도적 영역에서는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논의를 접어두고 제도적 영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 자리에서 얘기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협정을 비롯한 '조약'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회적 권리와 노동적 권리를 조약에 담을 것을 요구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실제 유럽의 진화 과정을 보아도 조약에 누구의 어떤 내용을 담은 언어가 들어가느냐가 전진과 후퇴를 결정했습니다.
토론자: 중국 총공회에 대해 국제노동운동 단체들은 두 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총공회의 미독립성과 대표성의 문제를 들어 원거리에서 지켜보자는 입장이고 둘째는 전략적 개입을 위해 총공회와 접촉하자는 입장입니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하며 만일 개입해야 한다면 그 지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략적 개입 사례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창휘: 아마도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전자 입장의 대표적인 조직은 ICFTU와 미국의 AFL-CIO를 들 수 있고 후자는 일본의 렝고가 대표적인 조직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개입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총공회의 활동은 정부로부터 극히 감시를 받아왔습니다. 총공회의 이런 고민을 이해하고 외부에서 내부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례로 총공회 하부 조직의 임원들이 단협을 효과적으로 체결하도록 개입한다든가 하는 것을 하면 성과가 있고, 저도 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칙이 있는 개입(Engagement)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토론자: 중국 총공회를 비판하더라도 실제 접촉을 안 하는 조직은 없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대화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의 노동자들과 만나겠다는 식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경유지 가운데 총공회를 포함하는 형태로 교류가 이루어집니다. 강도의 차이점이라면 소위 중국에서 불법파업으로 인해 구속자가 발생할 경우 그것을 언급하느냐 마느냐의 정도가 국가별 노조마다 다를 뿐 실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조들과 교류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ICFTU도 만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만날 경우 보고를 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토론자: 한국의 해외 진출 기업의 노사관에 대한 외국에서의 평가가 어떤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창휘: 베트남의 경우, 1995∼2000년까지 발생한 500건의 파업중에서 한국 기업이 30%를 차지해 비중이 높았습니다. 한국의 해외 진출 기업은 인적자원관리에서 매우 양극화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국과 타이완 기업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데 그 원인은 ‘병영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의 해외 진출 기업의 노사관계에서 보면 한국 기업은 개선되고 있지만 타이완의 기업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토론자: 국내 노조차원에서 한국 해외 진출 기업의 노동탄압에 대해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창휘: 대기업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일확천금을 노리고 해외에 진출한 영세기업의 경우는 노사관계적 접근으로는 개선의 여지가 적어 보입니다. 70년대 일본의 경우도 문제가 심각했지만,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면서 노사정 합의 방식으로 많은 성과를 낳았습니다.
토론자: 한국의 해외진출기업들을 보면 주로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 노조간의 연대적 차원보다는 결국 시혜적 차원에 머물고 마는 한계에 봉착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창휘: 제3자가 개입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과 대상국 그리고 제3자가 연결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형식으로도 가능하겠죠. 정부 입장에서도 해외의 대사나 영사의 업무에 대상국가에 진출한 기업의 노사관계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우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노동외교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겁니다.
토론자: 지금 노동부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노무관으로 나가 있는 곳은 중국, 일본, 베트남으로 압니다. 주요 업무가 해당 나라의 정보를 정리해서 분기별로 보고하는 겁니다. 그리고 해당 국가의 노동법을 진출 기업들에게 교육하는 것, 마지막으로 해당 국가가 한국의 노사관계 제도에 대해서 배우고자 할 경우 선전하는 것 정도입니다. 반면 해외 진출 기업의 노사관계를 적극 관심을 가지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이었습니다. 노무관이 없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특히 한계가 많을 것이라 봅니다.
토론자: 발제자도 얘기했듯이 중국의 변화는 지구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변화가 안정된 사회로 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안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인지 발제자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창휘: 딱 꼬집어서 얘기하기 어렵습니다만 베트남과 비교해 볼 때 안정성이 떨어지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노사분규를 조정을 통해서 풀어 나가지만, 중국은 앞서 얘기했지만 당과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어 갈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취약합니다. 특히 중국의 문화혁명의 경험은 사회의 응집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이처럼 사회 분열의 양상을 해결하는 고리가 바로 물질적 욕구의 해결입니다. 하지만 이 물질적 욕구간의 조절에 필요한 시스템이 미흡하고, 발달도 더뎌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연착륙 시도가 제대로 될지 아니면 경착륙이 될지는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토론자: 중국과 베트남의 임금수준을 놓고 보면, 우리에 비해 열악한 것으로 압니다. 임금조건은 그렇지만 작업장의 분위기는 어떤 지 궁금합니다. 우리의 70년대처럼 억압적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 아니면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작업장 분위기가 좋은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창휘: 베트남 상황은 잘 모르기 때문에 중국 상황만을 얘기하겠습니다. 중국 공장 특히 여성 중심의 경공업의 경우에는 우리의 70년대와 비슷하거나 더 못한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였다는 우리의 선입견이 있지만, 그 곳의 노동시장은 ‘시장전제주의’가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최근 한국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얘기가 노동조합운동 내부뿐 아니라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많이 얘기되지만, 그곳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나 노사관계를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런 목마름을 약간이나마 채우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발제자와 참석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이것으로 포럼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