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최저임금 투쟁 한 단계 진전된 대응 발판 마련

노동사회

2004 최저임금 투쟁 한 단계 진전된 대응 발판 마련

admin 0 3,975 2013.05.12 07:07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것은 1988년부터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최저임금제도가 "노동자들을 부당한 저임금으로부터 보호하고 가능한 임금의 최저수준과 필요한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최저임금 결정은 빈곤을 극복하고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필요 △국내의 보편적 임금수준 △생계비와 그 변동 △사회보장급여 △다른 사회계층의 상대적 생활수준 △경제개발의 요건, 생산성 수준, 높은 고용수준의 달성 및 유지 필요성을 포함하는 경제적 요인 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최저임금법의 기본 취지는 '낮은 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기 위해서 국가가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사용자들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hslee_01.jpg월급 641,840원의 의미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회의를 통해 한 해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으며, 올해는 지난 4월29일부터 최저임금위원회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 날 이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사전회의들이 계속되었고, 5월31일에는 노동자측과 사용자측이 각각 요구안을 제출하였다. 이후 5차례의 전원회의를 거쳐 드디어 6월25일 최저임금이 확정되었다. 전원회의는 노사 각 7명과 공익위원 8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노동자측과 사용자측이 각각 요구안을 제출하고 공익위원들에 의해서 최종 결정이 나는 방식이다.

올해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노동자측은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임금의 50%인 월급 766,140원을 요구안으로 제출하였다. 이러한 요구안의 근거는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사용자측은 월급 581,950원(전년대비 2.6% 인상)이라는, 물가인상률(3.3%)보다도 낮은 인상률을 요구안이라고 제출하였다. 사측은 6월18일에는 3%, 6월22일에는 3.8%로 각각 수정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다 마지막 회의에서 노동자측은 월급 641,840원(시급 2,840원)을, 사용자측은 624,890원(2,765원)을 최종안으로 제출하였고, 전체 투표를 통해 노동자측 요구안이 확정되었다. 전체 25명이 투표하여 노동자측 요구안이 15표를 얻었고 사용자측 요구안은 10표를 얻은 결과이다.
 
새 법정최저임금 641,840원(시급 2,840원)은 노동자측 애초 요구안의 약 84%인 액수이고 정부 추계에 따르면, 최저임금 영향률은 현행 7.3%에서 8.8%(1,245천명)로 확대된다. 부족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인상률로 타결되었다는 점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의 노동자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스런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제4차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인상범위를 7∼13%로 제시하면서 "생계비 인상률, 전체 노동자 임금인상률 전망치, 노동자 평균임금 50% 단계적 시행의 경우" 등을 근거로 들었다는 점도 진전된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하나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표]에서 최저임금 인상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동계에서 최저임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인상폭이나 영향률이 미미하나마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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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7월 2일 열린 제도개선전문위원회에서 △최저임금 기준을 전체 노동자 임금 50%이상으로 법제화 △공익위원 노사단체 추천 등을 요구했다.    - 출처: 매일노동뉴스 ]

노동운동이 나서니까 바뀌네

노동계가 최저임금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1년 6월8일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는 '비정규직을 통해 본 최저임금제 개선방안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이 토론회는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의 실태조사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토론회는 당시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열렸으며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는 토론회 외에도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등 노동계 최초로 최저임금 현실화의 필요성과 제도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그 이후 2002년에는 20여개 단체들이 모인 '최저임금연대'가 결성되었고 지금까지도 최저임금연대차원에서의 대응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민주노총이 여느 해보다 많은 힘을 실으면서 강남구 논현동 서울 세관에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는 연일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모인 집회가 계속되었다. 2001년 이전까지는 관심 갖는 사람 아무도 없이 최저임금이 결정되었고, 그 적용대상자들만 한숨을 쉬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이제 노동운동이 그 상황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여성 공익위원 참여 보장돼야

우리나라 최저임금액은 [표]에서처럼 소폭으로 상승되어 왔다. 영향률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아무런 사회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최저임금제도가 실시되고 있음에도 오히려 우리나라 임금소득 불평등도(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는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OECD 국가 중에 상위권이라고 한다. 그 동안 최저임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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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또는 중위임금 대비 비율을 그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임금결정 기준이 없이 노동자측 안과 사용자측 안을 내도록 해놓고 결국 공익위원들이 적당히 결정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도 사용자측은 두 자릿수 인상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최저임금의 결정기준과 구분) ①항에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및 노동생산성을 고려하여 정한다"고 되어 있음에도, 그 동안 공익위원들이 이 법조항의 내용을 근거로 조정안을 낸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이제 그 기준을 제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또 하나 과제는 실제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들의 대표가 공익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학력·고연령·저기능·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익위원 중에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 당사자들에게는 사회적 명분보다도 더 중요한 한 해 임금인상 투쟁이라는 절박한 이해가 걸려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공익위원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주5일시대의 최저임금제는

올해 최저임금이 결정된 이후 가장 큰 쟁점으로 남은 것이 주5일 도입시의 문제였다. 노동부는 주5일제를 도입할 경우 결정된 시급 2,840원에 209시간을 곱해서 월 593,560원이라고 발표했다가 노동계가 반발하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계는 주5일이 도입될 경우 월 환산액이 유지되어야 하며, 따라서 시급 3,070원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 월 환산액이 주5일 도입으로 오히려 줄어든다면 주5일제의 의미도 최저임금의 법 취지도 퇴색되고 말 것이라는 점에서 최저임금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원칙이 견지되기를 기대한다.

아무튼 올해 하반기에는 최저임금 제도가 합리적으로 개선되어 앞으로 최저임금법이 노동자 내부의 소득격차 완화와 사회적 빈곤의 해소라는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