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파업했냐는 듯 한미은행은 일상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적어도 겉보기는 그렇다. 점포에서 손님을 맞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파업 때 보였던 격앙된 모습은 어디서도 발견하기 어렵다. 파업 동안 빠져나간 돈이야 저금리 시대에 이자 조금 더 붙여주면 금방 돌아올 것이다. 은행이 곧 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던 언론도 조용해졌다.
그러나 “올 노사관계의 분수령이었다”는 노동부 관계자의 말답게, 몇몇 이들에게는 여전히 한미은행 파업은 무거운 짐, 혹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18일에 걸친 은행권 최장기 파업이어서만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노사관계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 총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는 한미은행 조합원들 - 출처: 매일노동뉴스 ]
21년만 첫 파업이 은행권 최장기 기록
일각에서는 “(20년 동안 파업 한 번 안 했던) 한미은행이 파업했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 금융계에서는 이 말에 일정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사실 조흥, 서울, 우리은행 등과 달리 한미, 신한, 하나은행 등은 ‘사측과 친한’ 노조로 분류돼 왔다. 그런 노조가 창사 21년만의 첫 파업에서 18일이라는 은행권 최장기 기록을 세워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파업 돌입 당시의 동력은 ‘금융주권 수호’니 ‘상장폐지 철회’니 하는 거창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차별철폐’가 큰 동력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성차별 요소가 있어 폐지된 ‘여(女)행원제도’가 은행권에서는 하나, 한미은행에만 사무직군제로 모습을 달리해 남아 있었다. 특정 직군에 속했다는 이유로 어떤 직원들, 특히 여성들은 평생 대리 이상 승진을 못하고 임금 인상에서도 차별을 받다 보니 내부적으로 불만이 위험수위에 달했던 것이다.
파업 참가 인원을 평균 2,300명으로 잡았을 때, 이들 중 거의 50%에 달하는 1,000여명의 직원(남자 100명, 여자 900명)은 이러한 직군제 차별 때문에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파업의 주된 동력으로 삼은 노조 지도부로서는 ‘직군제 철폐’야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얻어내야 할 사안이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파업 초기 협상의 애로사항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씨티은행 한국지점과의 차별 문제도 이번 한미은행 파업의 주된 동력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고용안정과 보로금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씨티은행 한국지점 노사는 합병 이후에도 직원들의 연고지, 전공, 경력 등을 고려해 직무를 배치한다는데 합의했는데, 이에 대해 한미은행 직원들이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며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또, 아직도 진원지를 파악할 수 없는, ‘3년치 보로금’ 문제도 파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씨티은행 한국지점 직원들이 3년치 보로금을 약속 받았다는 소문이 한미은행에 퍼진 것이다. 그러나, 씨티은행 한국지점 노조는 “우리가 오히려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어찌됐건 보로금 문제는 결국 노조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면서 협상 틀을 짜는 데만 일주일이 걸리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벌거벗은 노조, 똥고집 씨티그룹
파업 돌입할 때는 아무도 18일 장기파업이 될지 몰랐다. 그만큼 한미은행 노조는 씨티그룹에 대한 사전 인식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씨티그룹은 노사관계에 있어 한국에서 악명이 높았다. 1988년 설립된 씨티은행 한국지점 노조는 △사측의 일방적 직권중재 요청(91년), △노조도 모르는 사측의 쟁의발생신고(92년, 파업 30일), △불법용역직원 80여명 채용,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압력 행사(93년, 파업 57일), △노조원 진급누락, 차별적 상여금 지급(94년), △교섭해태, 쟁의 장기화 유도, 150여명 불법 대체근로(95년, 파업 96일) 등의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이러한 씨티그룹의 노조무력화 전략에 따라 씨티은행 한국지점 노조원 숫자는 한 때 100여명까지 내려갔다. 현재는 2,100여명 직원(정규직 850명) 중 330~340명의 노조원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노조, 한미은행 노조원들은 이런 사실들을 파업 기간 중에야 파악했다. 그만큼 준비가 부족한 파업이었다.
한편, 한미은행 노조원들은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중대한 인식 전환을 경험했다. 막연한 불안감, 씨티 한국지점에 대한 반발 등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여했던 파업이었지만, 파업 과정에서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다. 외국자본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고 노조의 결집력도 강해졌다. 파업 초기 불안해하던 모습은 일주일을 넘기면서 오히려 오기와 투지로 바뀌었고, 학습을 거치면서 단단한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아쉬운 ‘금융공공성 살리기’
‘실리’가 파업의 주동력이었지만 노조가 ‘명분’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어느 한미은행 노조 집행부의 “우리가 무슨 돈벌레도 아니고…”란 말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노조가 합의를 번복했다던 하영구 행장의 주장도 이런 측면에서는 일정 정도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파업은 ‘금융의 공공성’을 부각시키는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주류다. 국내 은행들이 외국계에 모두 넘어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했고, 독립경영이 왜 필요한지, 상장폐지는 왜 철회되어야 하는지 등도 논리나 사례제시가 부족했다. 파업은 항상 명분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비록 노조가 사회적 이슈를 내세우면 “임단협 얘기나 할 것이지”라고 씹히다가, 협상이 임단협 중심이면 “노조가 돈만 밝힌다”고 씹히는 등 이래저래 씹히는 껌 같은 운명일 지라도 말이다. 그러한 면에서, 파업 명분의 약한 설득력은 한미은행 파업을 단지 지부 차원의 요구가 의도치 않게 사회적으로 크게 번진 것으로 인식되도록 하는데 한몫 했다. 또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 요인으로 자리잡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한미노사가 그 어떤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 것도 한계지점으로 꼽힌다.
파업 전술 측면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다. 양병민 금융노조 위원장의 말처럼 노사 모두 협상에는 너무도 ‘초보’였다.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면서 몇 개의 카드를 복안으로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미은행 노조의 협상카드는 처음부터 모두 공개됐다. 이에 따라 사측이 노조의 카드, 한계를 모두 읽어버렸고, 노조는 압박 수위를 높이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없었다. 이는 총회 투표에서 일부 노조원들이 “과연 18일 동안 싸울만한 내용이었냐”며 강하게 항의하도록 만드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용득 위원장의 정치적 중재력에 크게 의존했던 것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미은행 파업은 ‘파업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외국자본에 대한 대응 선례 남겨
한미은행 파업은 국내 금융권의 외국자본에 대한 대응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전례를 남겼다. 외국자본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는 대척점이 존재한다. 한 편에서는 외자유치 활성화를 위한 공청회를 수십 차례씩 개최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외자반대 운동의 물결이 거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틀에서 외국자본의 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책임한 발상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외국자본과 공존을 모색하는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재계를 중심으로 한 ‘외국자본 유치 활성화 그룹’과 금융계 노조를 중심으로 한 ‘외국자본 반대 그룹’은 대립만이 능사인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를 상대로 제대로 된 틀을 짜도록 압력을 넣는 동반자 관계일 수 있다. 재계에게도 외국자본은 경쟁상대로서 부담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외국자본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독식 또한 견제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외국자본과 어떻게 ‘공존과 경쟁’의 관계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그 열쇠는 노사가 정부를 상대로 어떠한 룰을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노조도 ‘간접자산운용업법’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야 한다. ‘통합금융업법’이 어떻게 짜여지고 있는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외국자본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금융노조가 씨티그룹을 상대로 싸우기로 마음먹었다면 단지 혼자서 씨티은행만을 공격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한미은행의 사무직군제 문제 등을 ‘씨티그룹=여성차별 기업’이라는 이슈로 확대시켜 미국 시민단체를 상대로 호소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필요하다면 뉴욕에 직접 가서 항의방문도 가능했을 것이다.
[ 18일간의 파업 후 7월13일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는 한미은행 노사 - 출처:매일노동뉴스 ]
“한미은행 승리는 한국의 승리가 아니다”
외국자본에 대한 견제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시설을 점거하고 파업에 돌입한다고 해서 씨티그룹이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목격할 수 있었다. 오히려 노조만 약화된다면 1년 내내 파업해도 무섭지 않다는 게 씨티그룹의 본심임을 한미은행 파업에서 노조는 깨달았다. 외국자본에 대한 노조의 대응이 좀 더 고민돼야 하는 이유를 한미은행 파업이 보여주었다.
“한미의 승리가 한국의 승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외국자본들이 ‘원칙’ 운운하며 버틸 때 답답한 노동·재경부 장관은 주한미국상공회의소로 달려갈 수밖에 없음을 비꼰 어느 취재원의 말이다. 만약 내가 한미은행 노조 관계자였다면 과연 어디에다 창을 겨눠야 했던 것일까? 18일 동안 파업 현장을 지켰던 취재기자로서 끝내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