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산업연맹은 2003년 사업평가를 통해 계급적 요구를 중심으로 산별적 실천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금속노조, 자동차분과, 조선분과 등 각 단위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실천사업을 전개하기로 한 바 있다.
[ 파업 중인 완성차노조 조합원들이 '사회공헌 기금조성'이라 쓰인 붉은 수건을 펼쳐 보이고 있다. - 출처:현대자동차노동조합 ]
임단협 과정에서 부각된 기금 요구
이에 따라 자동차분과는 '산업적 요구'로서 산업정책마련을 위한 노사공동기구설치와 산업기금마련, 연구개발 투자, 부품산업발전 등의 안을 제출하고 검토하였다. 그리고 차별철폐를 위한 '비정규직 요구'와 산업최저임금 같은 '공동 요구'도 제안되었다. 단협과 관련해서는 자본이동에 대한 공동결정, 주간 연속2교대제 등 실노동시간 단축, 임금체계개편위원회, 작업장혁신위원회와 같은 사항들이 제안되었다. 그리고 임금은 별도로 인상가이드라인을 제출하지 않고 각 단위사업장의 판단에 맡기는 안이 제출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이 검토되는 과정에서 산업 공동 요구 중 하나인 '기금요구'가 크게 부각되었다. 연구개발투자의 경우 구체적인 투자비율 등 세부적인 검토가 필요하고, '납품단가 인하(CR, Cost Reduction)' 등에서 비롯되는 원·하청 격차에 대한 해소 요구와 부품산업발전 요구는 CR의 구체적인 실태파악이 어렵다는 기술적 난점 때문에 핵심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비정규직 요구로는 정규직 통상임금의 80%로 임금을 인상하는 것 등이 제안되었다. 그렇지만 각 사별로 비정규직 관련 조건과 협약 상 차이가 많기 때문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세부안을 마련하지는 못했고 각 사별로 관련 요구를 가져가기로 했다. 산별최저임금의 경우 제안되기는 하였으나, 실제 이 요구는 법정최저임금결정에 대한 정치적 영향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었고 단위노조의 요구로 정착되지 못하였다.
단협 조항의 경우는 각 사별 구체적인 조건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요구로 통일시키기보다는 각 단위노조의 특성에 맞게 추진키로 하였다. 임단협 투쟁 계획과 관련해서는 공동교섭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시기 집중'이 중심적으로 논의되었으며 6월 중하순을 집중투쟁기로 잡았다. 그리고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렇게 요구안들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자동차분과 공동사업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기금요구'였다.
'자동차산업을 위한 노사협약'으로 정리되다
완성차 노조들이 기금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였다. 차별의 확대를 막기 위한 방안인 '사회적 임금'을 어떻게 제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시작된 고민은 2003년 대공장 고임금론 등 언론의 집중적인 '대공장 때리기'를 경험하면서 '산업기금'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부품산업의 발전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해소, 대공장 노조의 사회적 기여 강화를 통해 노조의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는 것이 그것의 목표였다.
그런데, 기금 요구는 2004년 자동차 완성차 대표자들의 논의를 거치면서 내용이 조금 바뀌었다. 산업기금보다는 그 용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자는 제안에 따라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으로 최종 확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완성차 노조들의 기자회견 이후, 이 문제는 상당한 파장을 갖는 사회적 논란으로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은 조합원과 재계 모두에게 낯선 것이었다. 결국 임단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장 대중의 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인해, 사회공헌기금은 공동 요구에서 각 단사 노사간 결정사항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자동차노사협의체'를 구성하여 산업발전 및 고용안정을 위한 사업을 논의하는 것으로 최종가닥을 잡고, 7월2일 자동차공업협회와 금속연맹이 '자동차산업을 위한 노사협약'을 맺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잇따른 노동운동 내외의 비판
'기금'에 대해 노동운동의 내외에서 다양한 각도의 비판과 논의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진행된 논의는 요구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에서 '연대기금'을 제안했으나 이는 충분히 논의되고 합의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기금은 노사간 동일액을 출연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자칫하면 '대공장 고임금론'과 '임금동결론'을 합리화 할 것이라는 우려와 논란 때문에 자동차노조들은 '순이익의 5%'를 출연하는 방식으로 방침을 확정하였다.
자동차노조들이 이를 공식적으로 제안하자마자 재계로부터 반대의사들이 나타났다. 순이익금의 분배는 교섭의 대상이 아니며 주주들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는 주장과 기금은 기업의 부담만 늘리며 또한 자동차노조들의 공동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산별로 가는 계기만 만들어 줄뿐이라는 낡고 고루한 거부의사들이 나타난 것이다. 한편, 반론이라기보다는 '제안'에 가까운 주장도 있었다. 대공장들의 기금설립의 요구가 보다 설득력을 가지려면, 대공장 노조들이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내놓는다든지, 우선 뭔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노동운동 내부로부터의 비판은 시기적으로 가장 늦게 제기되었다. 기금요구가 공론화 되기 전, 요구안 확정과정에서는 이렇다할 반대가 없었는데 뒤늦게 노동운동 내의 일부에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노동운동 내부의 기금 반대 주장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겠다.
정규직의 임금양보?
이 쟁점과 관련된 기금 비판의 핵심은, 비정규직을 위하여 대공장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해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단협이 거의 종결되는 현재의 시점에서 봤을 때, 대공장들이 임금을 양보했다는 어떠한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
차라리 그러한 주장의 대척점에서 날아온 비판을 더 곱씹어 보아야 한다. 즉, 대공장들이 '자기주머니 챙기기'만 한다는 사회적 비판이 워낙 무성하다 보니 이를 무마하기 위한 전술로 '사회기금'을 제기했고 결국 기금은 대공장의 자기 주머니 챙기기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주장 말이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 한편에서는 '임금양보의 빌미'라고 보고 반대편에서는 '임금인상의 수단'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그러나 기금문제에서 임금인상 여부를 중심에 놓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지엽적인 시각이다. 특히 '임금양보는 절대 안 된다'는 기준에 근거하여 기금을 우려하는 주장은 오히려 대공장의 임금인상에 집착하는 '경제적 실리주의' 혹은 '조합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 내부 계층화 책임 은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만든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인데, 정규직 대공장 노조가 비정규직을 위해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결국 그 책임의 근원을 은폐하고 노동자가 책임지는 꼴이라는 비판도 있다.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2003년 기준으로 현대차의 1조7천억, 기아차의 7천억, 쌍용차의 3천6백억, 현대모비스의 5천5백억의 순이익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노동운동의 상식이자 특히 전통적 좌파의 견해를 그대로 따른다면 이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의 노동에서 나온 것이다. 대공장 노동자들의 경우 회사의 지불능력만큼 분배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그리고 중소영세부품업체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서 보자면 완성차 대공장의 이윤은 실제로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수탈한 결과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순이익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옳은가? 주주와 회사의 재투자, 그리고 대공장 노동자의 성과급으로 나누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아니,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더 합당한 것 아닌가? 이것은 분배 정의의 문제이고 수탈에 대한 응분의 조치다. 힘있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주주와 사측과 나눠먹기에 참여하기보다 '수탈한 것을 돌려 주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리켜 정규직의 '온정주의적 시혜적 사고방식'이라고 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는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스스로를 좌파로 자처하는 일부의 주장이다. 수탈에 대하여 분배의 정의를 주장하는 것을 부정한다면 도대체 '자칭 좌파'들은 무엇 때문에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것인지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일관된 주장을 하려면 오히려 대공장 노동조합이 기금을 보다 강력하게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탈에 대항하여 사회적 평등을 위해 '부유세'를 요구하듯이 더 강력한 정치적 요구로 발전시키자고 해야 마땅하다.
한편, 완성차 노조들은 기금조성에 노사가 동일액을 출연하는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노총의 방침과 금속연맹의 대의원대회에 제출된 연대기금안이 이런 방식이었다. 이러한 거부감에 대해서도 냉정히 고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뭔가?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은 노동자를 잘 나가는 산업과 그렇지 않은 부문의 산업적 차이, 대공장과 중소사업장의 기업규모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 차이를 더 벌려서 노동자 내부를 계층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노동자계급의 동질성을 해체시키려 한다.
'노동자'라는 군대내부에서 한편은 군량미도 많고 대우도 나은 편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군량미도 없고 대우도 나쁜 상황이다. 그래서 적군은 아군의 진지에 대놓고 선무방송을 하면서 이간질을 하고 있다. 그러면 이 군사들이 적군과 싸워서 이길까? 말도 안 된다. 스스로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군사들이 하나로 뭉쳐서 적군과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식량을 같이 나눠서 통일단결 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현재 노동운동은 바로 이런 지형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대공장 노동자들의 연대를 위한 노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강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비판하는 것은 과연 노동운동을 발전시키자는 것인가? 아니면 발전하지 못하게 물귀신처럼 물고늘어지는 것인가?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다.
비정규직 조직화의 장애?
'기금을 모아서 준다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류의 비판은 대답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기금조성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순진무구한 것을 넘어서 무지한 것이다. 기금요구를 내건 그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공장 노조들이 기금을 모아서 내놓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면피할 것이다.' 이 또한 일고의 가치도 없다. 완성차 대공장들 치고 기금요구만 내놓고 비정규직 문제를 방기하는 집행부가 어디 있나? 완성차 모두 비정규직에 대한 별도요구들을 제출하고 있다. 기금 조성은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전부가 아니며 부분적 노력일 뿐이다. 오히려 대공장 노동조합이 연대를 실천하고 훈련하는 하나의 방안일 뿐인 것이다.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공장 노조들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면 별도로 논의를 해야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규직 노조의 태도는 단계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무관심이다. 심하게는 무관심을 넘어서 정규직의 '고용안전판'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구조조정을 경험한 후 상시적 고용불안의 심리가 똬리를 틀면서 노동자들 사이 상당히 깊숙하게 자리잡았다. 두 번째의 단계는 광주의 '캐리어 사태'가 보여준 것처럼 비정규직이 조직적으로 행동했을 때 적대적 모습을 보이는 단계이다. 정규직 노조에 대한 징계가 뒤따른 캐리어 사건은 하나의 교훈이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점점 더 크게 이슈화됨에 따라 정규직 노조들은 이제 비정규직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 번째 단계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관련 요구를 내걸고 '대리교섭'을 하는 현재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도 문제가 있다. 정규직 노조의 대리교섭이 비정규직 노조의 역할을 제한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주적 단결을 통해 요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조에 기대는 심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는 일부 하청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시켜 내지만, 또한 제한된 '계급상승(?)'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적인 정규직화 기회를 노리는 기회주의적 심리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더 심각하게는 '정규직 노조에 의해 관리되는 비정규직'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렇게 현재의 방식도 문제가 있다면 새로운 접근 방법은 무엇인가? 경험들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발전 단계를 열어야 할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금요구는 새로운 접근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개별노사간의 교섭을 통한 임금인상과 달리 비정규직 임금차별을 통한 수탈에 대해 산업 또는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인상 투쟁이 사회적 차원에서 아래로부터 기준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라고 한다면, 기금요구는 수탈의 결과물을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문제다.
'산업발전'은 자본의 논리?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은 '산업발전'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산업 노사협의체의 역할과 관련해서도 산업발전과 고용창출을 그 중요한 사업방향으로 합의하였다. 이를 두고 노동조합이 산업발전을 논하는 것은 자본의 발전논리, 즉 성장논리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경제(산업 또는 기업)가 살아야 국민(노동자)이 산다'는 익숙한 문구는 바로 사용자들이 늘 주장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구조조정을 경험한 노동자들에게는 단순한 '이데올기적 조작'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경험을 통한 학습효과로 인해 매우 깊이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주장을 단순히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 문구는 이중적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경제가 어려우면 노동자의 살림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조작의 측면도 있다. 객관적 경제지표가 나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분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이데올로기적 측면만 보고 "그것은 자본의 논리다"라고 주장한다면 '자본=경제 살리는 집단, 노동조합=경제 망치는 집단'이라는 등식의 함정에 빠지고 수세적으로 분배만을 주장하는 한계를 빠져 나올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사고법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노동자야말로 산업발전, 경제발전이라는 화두를 자신의 이슈로 뺏어 와야 한다. 물론 이때에 산업발전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차이를 잊어선 안 된다. 산업발전을 추구하는 자본의 목적이 이윤이라면 노동자의 목적은 고용과 복지다. 자본의 산업발전 방법이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감축과 저임금 노동자 양산이라면 노동의 방식은 노동의 질 향상, 노동시간단축, 고용의 확대이다. 노동자가 단순히 분배만을 주장하는 수준에서는 결코 공세적 입장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산업발전에 대해 노동자들이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대안세력으로서 주도권을 발휘해야 한다.자동차산업 노사협의체의 의미와 과제
기금 요구는 앞에서 이야기한 비판과 논란 속에서 그 본래의 요구대로 관철되지 않았다. 사회공헌기금은 각 사의 논의에 맡겨지고, 산업발전기금은 자동차산업의 노사협의체를 구성하여 산업발전 및 고용창출을 위한 사업을 하기로 하고 그 예산은 자동차공업협회가 책임지도록 하였다. 사측도 기금조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데 따르는 부담이 있었고 노조 또한 기금요구가 아직 조합원으로부터 절박한 것으로 제기되지 않는 상황을 반영하여 현실적 방안을 찾은 결과다.
협의체 구성은 산별연맹이 특정 업종의 사용자단체와 맺은 최초의 협약이다. 자동차 산업의 노사가 산업차원에서 공동의 의제를 논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측에서는 협의체 구성이 완성차 노동조합이 산업이슈를 중심으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 줌으로써 산별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노동운동의 일부에서는 산업차원의 타협체제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혹시나 자동차노조들이 금속대산별이 아닌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대평가와 폄하, 그 어떤 것도 아직은 섣부르다. 자동차산업의 노사협의체는 여전히 포괄적인 합의수준이며 세부적인 운영과 의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한 준비들은 과제로서 온전히 남아 있다.
실리주의 담합을 넘어서는 전략 필요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87년 노동운동체제는 이제 그 수명을 다했다. 국가와 재벌주도였던 경제구조는 세계화를 통해 초국적 자본에 의하여 주도된다. 국가는 과거처럼 자본운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구조 속에서 앞다퉈 자본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등 투자유치를 위한 비즈니스기구라고 할 정도이다.
노동은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계층화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경험하고나서 대공장 정규직 노조에서는 부정적 측면으로 변화한 것들도 많다. 대공장의 사측이 가진 지불능력, 조합원들의 실리추구, 적절한 실리 보장을 자신의 역할로 삼으면서 지위를 유지하는 노동조합의 경향 등 대기업 내부에서는 '돈을 통한 보상관계와 담합'이 일정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의 노사관계 안정과 단기이익을 위한 기업의 행동과 단기적 실리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의 행동의 결합은 노사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업은 이와 같은 선택이 당장의 노사관계 안정을 얻고 잔업특근의 확대 등 자발적인 노동력 동원을 실현하는 방식인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은 생산성의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노동조합 또한 실리추구를 통해 단기이익을 얻는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임금부담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의 비용절감 욕망은 강화된다. 그에 따라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기업이 싼 임금을 찾아 해외투자를 늘림으로써 정규직의 일자리를 압박하고 양보를 강요하는 장기적 효과가 발생한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차별이 확대되면서, 대공장의 이기주의에 대한 지적이 늘어가고, 결국은 노조의 고립을 가져올 것이다.
이제는 단기적 이익을 넘어서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할 때이다. 기업의 임단협이라는 시야를 넘어서 산업과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제시로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2004년 완성차 노조들의 임단협에는 여러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산업적, 사회적 이슈로서 기금요구를 제안한 것은 분명 기업내의 담합적 노사관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장으로부터 강력하게 뒷받침되지 못했다. 상당한 수준에서 임금 요구를 쟁취했으나 사회공헌기금은 보다 강력하게 관철시키지 못했고 비정규직관련 사항도 아직 불만스런 평가들을 받고 있다.
변화된 노동운동의 내외적인 조건 속에서 대공장 노조들은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차별에 맞서는 연대의 중심으로서 나설 것을 요구받고 있으며 자신의 주머니를 챙기는 단기실리 추구를 넘어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략을 열어 가는 주체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한 대답은 2004년 임단협에서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