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산별교섭 왜 이리 더딜까

노동사회

병원 산별교섭 왜 이리 더딜까

admin 0 3,361 2013.05.12 07:01

산별노조 건설 6년만에 첫 산별중앙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의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다. 금속노조의 산별교섭과 함께 산별 대세의 양대 축이었던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병원 사측으로부터 산별교섭에 임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내고, 높은 열의는 아니지만 사측의 긍정적 태도로 인해 올해 산별교섭에서 적잖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4월21일 열린 보건의료노조 제5차 산별교섭에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 사측 대표가 참석하지 않자, 노조는 교섭을 전면 중단하고 교섭에 불참하는 병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눈치보기와 떠넘기기로 일관

사립대병원은 교섭방식을 문제삼으며, 교섭단 구성을 진전시키고 있지 못하다. 사립대병원은 지난 3월31일 열린 2차 산별교섭에서 “사립대병원만의 특성별 교섭을 전제로 14개 병원이 병원협회에 교섭권을 위임했고, 병원협회도 이러한 전제하에 상임이사회에서 위임교섭을 결정한 것”이라며 “산별중앙교섭 형태로 교섭이 진행되면 원점에서 재논의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3년 노사간 ‘합의’에 따라 산별교섭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고 있다는 사립대병원 사측에게 산별중앙교섭은 합의를 거부하기 위한 빌미가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병원 관계자는 “물론 산별교섭이란 흐름은 거부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도 특성별 교섭을 우선 진행하여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산별을 연착륙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노조의 중앙교섭 요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불만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참석하고 있는 병원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경고 아닌 경고도 하였다.

산별조직과 교섭에 대한 여전한 부정적 인식도 발견되었는데 ‘파업’에 대한 부분이 그것이었다. 기업별 교섭의 파업은 그래도 병원 하나의 파업이었다면, 지금처럼 교섭 거부를 한 병원을 대상으로 보건의료노조의 여러 지역 노조가 와서 투쟁을 벌인다면 산별교섭에 대한 거부감이 더하게 될 것이며, 사실상 이 부분이 사측이 우려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투쟁이 사측의 교섭 파행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사측의 우려는 병원 스스로 제기했다는 평가를 피해가기 어려울 듯하다.

사립대병원이 그나마 산별교섭 참여에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반면, 서울대학병원을 비롯한 아홉 개 국립대병원의 경우 상견례부터 참여를 하지 않으며 ‘무대뽀’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의 정성원 복지과장은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산별교섭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서울대병원이 불참하는 이유는 보건의료노조의 5대 요구사항 중 ‘근로조건 저하없는 주5일제’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서울대학병원이 주5일제를 실시하게 될 경우, 매년 155억원의 적자가 발생하여 결국 경영난에 빠지고 병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고 정 과장은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개정된 법에 맞춰 주40시간제를 실시할 경우, 주5일제가 아닌 주6일제를 실시하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산별교섭이 아닌 지부교섭을 통해서 보건의료노조의 주5일제를 막고, 만일의 경우 주5일제를 실시한다면 임금 삭감과 맞바꾸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했다. 서울대를 제외한 국립대학병원들은 해바라기처럼 서울대학병원을 바라보며 관망하고 있다. 

이처럼 규모가 큰 병원들의 불참으로 인해 산별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중소병원과 의료원 등은 “허송세월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교섭의 파행을 보면서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대학병원을 압박하는 분위기도 다른 병원 사용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병원협회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

사립대병원의 교섭권을 위임받으면서, 병원들의 사용자단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던 병원협회는 다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병원협회 성익제 사무총장은 기자의 취재 요청에 대해 “지금은 산별교섭 관련해 할 말이 없다”며 취재를 거절하였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산별교섭에 응한다고 했지, 산별중앙교섭에 응한다고 하지는 않았다”며 산별중앙교섭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중앙교섭 요구에 대해서도 교섭을 시작하면서 알았다며 사전에 노사간 조율이 없던 일방적인 요구임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국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병원협회의 주장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하기로 한 병원은 참석을 해야 하지만, 그 병원들마저도 참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록 병원협회가 있다고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사용자단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병원협회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구조적인 한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병협의 태도에 대해서는 일부 병원 사측도 “산별교섭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사립대병원이 산별교섭에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대응하려는 것에 비해 “우려되는 점을 지적”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을 취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병원협회의 ‘맨파워’만을 놓고 볼 때 과연 산별교섭에 제대로 대처할지도 의문이란 의견도 있다.

물론 병원협회가 다양한 병원들을 회원으로 하는 입장에서 사립대병원만의 교섭을 위임받아 중앙교섭에 나갈 경우, 다른 유형의 병원 회원사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일부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는 병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노력은 ‘병원협회’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