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학

노동사회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학

admin 0 3,713 2013.05.12 07:38

 

 

book_01_7.jpg꽤 오래되고 유명한 책이다. 예전부터 여러 종류의 번역본이 있었는데, 2002년 우리나라에서 새로 나온 것은 2000년 미국에서 발간된 30주년 기념판을 정식 판권계약을 해 펴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1964년 브라질 군사쿠데타 와중에 체제전복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그 후 조국에서 추방되어 7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1979년에는 노동자당(PT) 소속으로 상파울루 시의 교육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적인 고전으로 꼽히지만, 1970~80년대에 이 책은 우리나라 군사정권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결을 조장하는 금지된 볼온서적이었고, 야학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사본을 돌려서라도 봐야할 책이었다. 격렬한 갈등의 시기, 폭력적인 권력이 두려워하는 금서이자 박해받는 이들의 필독도서. 이쯤 되면 이 책의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강경한 선언조에 명확한 논리로 투쟁을 강요하는…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의 ‘불온서적’

『노동사회』의 독자 중에는 그렇게 ‘낡은 틀’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혹시라도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 사람이 있다면 이 ‘오래된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갈등과 폭력의 시대에 세상에 대한 사랑과 온화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람을 좌익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어조는 부드럽고 겸손하다. 그렇지만 억압받는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어떠한 갈등도 외면하지 않으며, 무의식 깊숙이 짓눌려있는 고통과 직면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눈에 띄는 것은 ‘불온서적’이었다는 명성에 안 어울리게도, 교장선생님 말투 같은 두루뭉실함이다. 세상을 망쳐 놓는 ‘제도교육’에 대해서 핏물 뚝뚝 떨어지는 독설과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어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읽다가는 열장도 채 읽기 전에 허탈해져서 손을 놓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의 ‘두루뭉실함’은 구체적인 것을 짓뭉쳐서 내던져진, 독자의 질문과 대화를 거부하는 딱딱한 추상이 아니다. 이는 ‘억누르는 교육’에게서 상처받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이들이 짓누르고만 싶어했던 내면의 허덕임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보편적인 울림을 갖는 목소리다.

프레이리는 중립적인 교육은 없다고 단언한다. 기존 체계의 논리에 따르도록 도구로 기능하거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세계의 변혁에 참여하는 방법을 발견하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가 요구하는 것은 어떤 편에 설 것인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억압의 실체와 세계의 주체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자발적이고 진지한 성찰이다. 『페다고지』는 프레이리가 브라질 농민과 노동자들의 문자해득 교육실천과정에 터득한 그런 비판적 성찰의 방법론이다.

30년이 넘은 책이고, 책 속의 팍팍한 현실은 요즘처럼 ‘포스트 모던’한 세상에 진부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격동의 라틴아메리카를 살아가는 젊은 프레이리가 고민했던 현실은 달라졌으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30년이라는 격차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런 분들은 『페다고지』가 출간된 후에 프레이리가 세계 각국의 돌아다니며 경험한 것과 그에 대한 성찰을 서술한『희망의 교육학』이나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한 말년의 프레이리의 저술들을 함께 읽으면 좋을 듯 하다. (파울로 프레이리 짓고, 남경태 옮기고 그린비 냄. 1만2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