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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4년 7월15일(목)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회: 김영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참여: 이주호 보건의료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
정일부 전국금속노동조합 정책실장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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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 오늘 이 자리는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의 2004년 산별교섭을 평가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올해는 매우 의미 있는 교섭의 진전이 있었는데요. 기업별 노조운동의 한계를 벗어나는 사례 조직들로서 교섭의 과정과 체계 그리고 협약 내용을 살펴보고, 성과와 과제를 정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일 것입니다.
이번 산별 협약의 의의에 대해서 얘기하기 전에 객관적인 정세와 투쟁 목표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객관적 정세와 투쟁 목표
정일부: 우선 투쟁 목표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200년 금속노조의 요구는 세 가지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손배·가압류의 금지입니다. 작년 열사투쟁의 경험을 통해 강하게 제기되었으며, 2003년 조합원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절실한 요구로 나왔습니다.
둘째는 일상적인 구조조정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습니다. 매각과 해외 공장이전 등으로 조직의 위기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산업공동화 문제의 물꼬를 터보자는 문제의식에서 구조조정시 노사합의와 산업공동화 대책마련을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한 가지 방식으로 금속산업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이주호: 병원의 주요 쟁점이자 목표는 첫 산별교섭 완전 성사와 함께 온전한 주 5일제와 의료 공공성 강화를 쟁취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세는 만만치 않았죠. 작년에 근기법이 개악되어 통과되고 공공부문의 경우 주 5일제를 법대로 적용하라는 정부의 압박이 심했습니다. 또한 병원의 경영 상태도 의료시장 개방, 내부 경쟁 격화 등으로 중소병원은 물론 대학 병원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세 인식 속에 올해 투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2004년 산별교섭에 모든 것을 올인 하기로 하고 작년 10월부터 일찍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벌써 보건의료노조가 건설된 지 7년 차이지만, 아직까지 산별교섭을 쟁취하지 못해서 올해는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고 결의를 모았죠. 금속이 산업공동화의 문제를 우려하는 것처럼 우리 병원도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를 더 이상 개별 병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과 지금처럼 돈벌이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의료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환자와 국민건강권은 물론 우리 노동의 가치도 올바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의료산업정책에 노조가 적극 개입하면서 새로운 판을 짜는, 더 큰 투쟁이 필요하다는데 다들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물론 산별교섭이 이런 문제를 푸는 키를 쥐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조성재: 두 분께서 노조의 내적 조건을 언급하셨는데, 민주노총 차원의 조율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현 정부는 작년 하반기 이후 노동운동에 대하여 원칙적 자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정부의 태도에 대한 생각도 말씀해 주십시오. 아울러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이 어떤 고려의 대상이 됐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주호: 노무현 정부의 본질상 현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본 방향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단기적 정치 상황에서 본다면, 4·15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 열린 우리당의 의회 과반수 차지로 인해 어쨌든 과거보다는 정치적 공간이 다소 열리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으로 인해 정부의 일방적 탄압이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병원의 노사관계는 '직권중재'가 핵심입니다. 작년의 경우에 처음으로 직권중재가 내려지지 않고 노사 자율교섭을 통한 타결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올해도 안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참여정부 스스로의 공약사항이기도 했거니와 2002년 CMC와 경희의료원의 장기파업을 겪으면서 직권중재를 내리고 공권력을 투입하더라도 노조가 이를 거부하고 파업을 강행했을 때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노사 자율교섭, 즉 내부의 힘 관계에 의해 싸움이 결정이 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반면 주 5일제로 인해 교섭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부는 주 5일제를 개악된 법 그대로 관철하려 할 것이고, 우리는 주 5일제 투쟁의 선도 사업장으로서 개악된 근기법을 절대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예상대로 주 5일제가 막판까지 쟁점이 되어 파업이 길어 졌습니다.
민주노총과 조율 문제는 작년부터 계속 주장했던 사항입니다. 작년 법 통과 이후 올해 임단협의 핵심쟁점이 주 5일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민주노총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 선거와 4·15 총선 등으로 내실있게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투쟁에 돌입해서는 선도투쟁사업장으로서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큰 힘이 되었죠.
정일부: 노동자들은 정권 초기를 지나자 곧바로 노무현 정부에게 특별히 기대한 것은 없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탄핵정국으로 4·15 총선 이후에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를 하였지요.
금속은 작년 교섭을 준비할 때보다 2004년 교섭을 준비하는데 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노동부에서도 사전면담을 요청해 왔는데, 금속노조는 사측이 산별교섭을 피하기만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문을 강력히 했습니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작년까지 기억하기로는 금속과 보건이 나서서 산별교섭과 협약을 민주노총 차원에서 지원할 것을 주문했지만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했고요. 금속은 보건·금융 이렇게 3개 노조가 공동전선을 취하면 어떨까 하는 구상도 했었습니다. 올해 금속노조의 투쟁에 대해서 민주노총이 너무 소극적이었지 않았나 하는 제기가 많이 있습니다.
조성재: 정부는 예년과 다르게 노사분규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 산별노조의 갈등 해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는 공익이나 전문가 집단을 활용해서 노사간의 교섭을 원활하게끔 지원하려는 의도가 올 해 더 강했습니다. 정부는 산별 교섭에 대해서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산업평화의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정부의 태도를 예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대책팀이 과거처럼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아니라, 예방차원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2. 산별 교섭의 준비 과정
김영두: 얘기 잘 들었습니다. 이제는 본론으로 가서 올해 산별 교섭의 준비 과정과 평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일부: 작년 11월말까지는 열사정국으로 인해 교섭에 대해서 신경 쓸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임단투 준비위원회를 꾸려서 11월말 이후부터 교섭을 준비하고, 노사합의 사항인 노사공동실무위원회를 12월부터 가동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2월13일 대의원대회에서 요구안과 교섭 투쟁 방침 그리고 타결방침을 확정했습니다. 약 2∼3 개월이 걸렸습니다. 사측에 대해서도 12월18일 제 8차 노사실무위원회부터 교섭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사측의 불성실한 참여로 인해 실무위원회는 파행을 거듭했고 결국 2004년 2월20일이 되어서야 회의정족수가 확보되었습니다. 실무위원회는 '교섭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였는데, 여기서 사측은 "우리는 대표가 없으니까 3자 위임을 하겠다"고 하여 교섭이 어렵게 진행될 것을 예고했습니다. 첫 교섭을 시작한 3월25일부터 사용자 측은 '3자 위임'을 제기했고, 이것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노조는 3자 위임은 결코 받을 수 없었습니다. 법적 문제를 떠나서 십수년간 노사자율교섭의 원칙을 지켜 왔는데, 깰 수 없었죠. 노사간에 팽팽한 의견 대립을 유지하다가 양측이 물꼬를 틀 계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도달했습니다. 사측은 전문가의 지원이 필요하고, 마땅한 대표가 없다는 어려움에 봉착했고, 노조는 3자 위임은 받을 수 없지만, 사용자단체로 발전시킬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용자협의회 구성을 사용자 측에 제안했고, 사측이 이것을 수용함으로써 교섭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12월부터 3월까지의 기간 동안 이것을 철저히 준비했다면 훨씬 빨리 산별 교섭이 진척될 수 있었지만, 사용자 측이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여서 늦어졌습니다. 결국 사용자협의회가 구성되었지만,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범위의 문제나, 중도 이탈의 문제, 법적 인정 문제, 교섭 대표권 책임의 문제 등의 논란이 있었고, 결국 교섭 테이블에 함께 앉은 것은 4월8일 4차 교섭이었죠.
김영두: 당시 금속은 사용자단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습니까?
정일부: 법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우려해서 사용자 측에게 '확약서'를 요구했습니다. 사용자협의회가 금속노조에 제출한 확약서에는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 구성, 협의회 대표의 교섭·체결권 책임 문제, 중도이탈 방지약속, 합의사항 이행약속, 사용자단체로의 발전을 성실히 할 것이 적혀 있습니다.
노조는 이 사용자협의회는 법적 사용자단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도기적 사용자단체로 생각하는 거죠. 사측은 작년에는 단체의 규정 없이 교섭권과 체결권을 위임받아 했으나, 올해는 나름대로 지역대표자회의를 구성하고, 사무처의 인력 배치도 하면서 발전 전망을 보였습니다. 노조는 그래서 누차 법인 등록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용자 측은 의견 조율을 위해서 시일이 필요하다며 부담감을 표현했죠.
김영두: 올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을 예상하면서 지적된 부분은 사용자들이 피해의식이 강해서 2004년 산별교섭에 매우 부정적일 것이라는 것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작년 금속노조의 교섭 과정에서 사용자대표였던 발레오만도 박원용 상무의 사업장에 대한 두 차례의 강한 투쟁은 지나치지 않았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정일부: 그 부분은 오해가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금속노조가 사용자 대표의 사업장을 의도적으로 공격한 적은 없습니다.
발레오만도가 파업을 더 많이 하긴 했지만 그 원인은 다른 데 있습니다. 금속노조는 개별 기업의 서로 다른 단체협약 기간을 정리하여 3월말로 통합을 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작년까지 많은 사업장에서 3월말로 합의를 하였는데, 발레오만도는 합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속 전체 일정보다 발레오만도의 교섭이 먼저 시작되었고 따라서 발레오만도는 금속노조 전체 일정에 따른 파업일수보다 총량에서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주호: 작년까지 96개 병원이 단협상에 산별교섭 참가를 합의한 성과를 바탕으로 산별교섭의 여건 조성을 위해 노사대토론회를 두 차례 진행했고, 준비팀을 꾸려 노사간에 계속 접촉을 가졌습니다. 사이사이에 특성별 노사 간담회도 진행했죠.
조직 내부적으로는 '산별요구-산별교섭-산별조정신청-산별총투표- 산별총파업'을 일찍이 투쟁 기조로 확정하면서 수차례 조합원 간담회를 통해 7만원 투쟁기금을 결의, 20억원을 모으면서 조합원 사이에서 점차 분위기가 잡혀갔죠. 이것이 높은 투표율과 파업 참가로 연결되었습니다. 총투표의 경우 올해가 처음이었는데요. 전체 121개 지부가 모두 참여하는 투표에서 90%에 육박하는 참여율에 80%에 가까운 찬성율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총파업에 참가한 인원이 1만명인데, 교대근무사업장이라는 점과 필수 부서에 최소인력을 배치 한 것을 감안하면 약 2만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요구의 집중이 잘 이루어지면서 산별교섭으로 4만의 힘과 관심을 모으는데 성공했습니다. 올해는 지부 요구를 최소화하면서 산별 5대 요구를 확정했고, 쟁의조정신청 시에는 이것마저도 조정신청에서 제외하는 결단을 내릴 만큼 5대 요구 쟁취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과거에는 주요 교섭 요구는 지부교섭에서 다루고, 이념적이거나 당위적인 것을 가지고 산별교섭을 진행했죠. 그래서 보건의료노조 전체 차원의 산별교섭이 되기보다는 본조 간부 중심의 산별교섭이 되었고, 지부는 지부 차원의 교섭에 힘을 집중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이중구조를 올해 확 바꾼 것이죠
진행결과를 보면, 3월17일부터 상견례를 시작했는데, 예년에 비해 1∼2달 빨리 시작한 것입니다. 초기 산별교섭의 명칭, 교섭방식, 교섭단 구성, 산별교섭 원칙합의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죠. 교섭방식 관련해서는 우리 조직의 반을 차지하는 사립대 병원이 특성별 교섭을 제기하고 나와 쟁점이 되었죠. 사립대 병원은 올해 교섭을 병원협회에 위임하고, 병원협회는 사립대병원만의 특성별 교섭을 고집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곧바로 산별중앙교섭이 어려우니 과정으로서 특성별 집단교섭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특성별 교섭을 할 경우 산별중앙교섭이 다시 몇 년간 미루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그냥 밀어붙였습니다.
교섭단 구성방식도 쟁점이었죠. 여섯 개의 특성별 병원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 대표단을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 거죠. 사실 초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결국 투쟁과정에서 자연스레 정리되었습니다. 교섭단 구성이 계속 지지부진하다가 파업 이틀 전에 6개 특성별 대표 20명이 모두 참석하는 대표단이 꾸려졌고, 파업 이후에는 교섭이 난항을 겪자 대표교섭단 9인, 다시 축조교섭단 7인이 구성되었고, 막판엔 3인의 실무교섭단까지 꾸려졌습니다. 사측 교섭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곧 산별교섭이 구체화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올해 14일간의 파업을 통해 몇 단계를 뛰어넘어 산별교섭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김영두: 병원 요구안을 보면 매우 광범위해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측도 특성별로 묶여 있어 서로 조정을 하지도 못한 것으로 압니다. 결과적으로 지부 교섭의 범위를 상당히 좁힌 건데, 사전에 내부의 이견은 없었습니까?
이주호: 올해 우리 산별요구는 정세의 특수성을 반영한 절묘한 세팅이었습니다. 정세의 핵심인 주 5일제 관련 요구와 산별교섭의 취지에 맞는 산업별 의제를 결합한 요구를 내걸었습니다. 이 요구의 중요성이 워낙 많이 교육되고 토론되어서 평소 몇 쪽씩 되던 지부요구안을 대폭 줄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산별 5대 요구에 집중할 수 있었죠. 이번 산별요구를 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문구로 요구를 했는데 그만큼 관심이 구체적이었죠.
병원의 이번 산별교섭 결과는 현재 우리 노동운동 발전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해도에 따라 예상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하구요.
이번 산별합의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조직과 한번 비교할 필요도 있죠. 금융노조의 경우 기존의 현장 임단협을 하나로 묶는 통일단협의 방식으로 합의안을 만들었고, 금속은 지부-지회 교섭에서 임단협을 다루고 산별중앙교섭에서는 사회적 주요쟁점이나 운동적 요구를 뽑아서 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보건은 산별교섭의 취지를 살리는 산업별 의제를 요구해야 된다는 판단 하에 의료 공공성, 최저임금제, 노동연대기금, 산별기본협약을 한 축으로 하고, 현장요구로 온전한 주 5일제, 인력 충원, 비정규직 문제 등을 결합시켰습니다. 이번 보건 교섭은 집중된 핵심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산별교섭으로 현장의 힘과 관심을 모을 수 있었고, 다른 한편 사용자들도 결국 막다른 길목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산별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5대 산별요구는 절대 지부교섭에서 다룰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시작했죠.
정일부: 금속의 산별협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금속은 병원처럼 단일 업종이 아닐 뿐더러, 임금격차도 2∼3배 차이가 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만일 업종간의 차이를 염두해 두지 않고 요구안을 만든다면 그 충격이 클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 바깥에서 포위하는 방식 즉 협약의 형식, 유효기간 등을 조정·통일하는 가운데 규약상의 기구인 단체협약위원회에서 전체 사업장단협 조항들 중에서 많은 사업장이 합의해놓은 사항을 산별협약으로 만드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또한 조합원의 직접적 이해와는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전체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조직 내부적으로 중앙교섭 요구는 최소로 하자는 입장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구의 실현은 의지와는 별도로 내부 조직력이 좌우하는 문제인데, 요구가 많을 경우 어떻게 다 따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합원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7개 정도의 중심요구를 갖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계급적 요구'를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과 조직력을 진단하면서 가자는 의견이 하나로 모아져, 앞에서 얘기한 3대 요구로 정리된 것입니다.
이주호: 이번에 처음으로 산별교섭과 산별합의를 하고 나서 고민되는 지점은 이런 겁니다. 하반기에는 올해 산별합의에 대한 현장 평가를 토대로 제대로 된 산별중앙협약의 체계와 내용을 만들고, 기존의 현장 단협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합니다. 그래서 종합적인 산별협약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산별교섭 시대가 도래하므로 이제는 지부 차원의 현장협약은 근로조건과 복지후생처럼 지불 능력의 차이에 따른 요구만 남기고, 나머지는 산별중앙협약으로 다 올려놓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조성재: 양 노조가 나름의 자기 역사성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공통점을 찾으면 단위 사업장만의 힘으로는 이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다만, 조직적 차이라면 보건의 경우 규모간 차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조율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금속의 경우는 현대차를 비롯해 대기업이 산하조직에서 빠져 있어 상대적으로 쉬웠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면에서 금속도 여전히 보건노조와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다양한 내부 구성, 보건의 경우에는 특성별, 금속의 경우에는 업종별이 될 텐데, 이 다양성을 어떻게 내용적으로 조정하고 통합할 것인가도 과제입니다.
3. 협약 내용 평가
김영두: 이제는 협약 내용에 대해서 평가해 보도록 하죠. 올 교섭의 빛나는 성과는 협약 내용에 있는 것 같은데.
이주호: 보건은 먼저 산별교섭의 틀을 온전히 확보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고, 산별 5대 요구를 교섭대상에 올렸다는 것과 성과가 121개 병원 전체를 상대로 단일합의안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작년에 비해 격세지감의 도약입니다. 합의 내용도 물론 의미가 크죠. 협약 내용은 8쪽 총 10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크게는 두 축이죠. 온전한 주 5일제 도입과 산업별 의제 합의입니다.
병원에서 주5일제 도입의 주요 목표는 주40시간이 아닌 주5일제를 시행하는 것, 여성사업장의 자존심으로 생리휴가를 지키면서 근로조건의 저하를 막는 것, 10%이상의 인력충원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습니다. 이 기준으로 협약내용을 보면, '주5일제'란 단어 하나를 협약에 넣는데 일주일 이상의 파업이 필요했고, 7월부터 즉각 시행을 요구했지만 정부나 사용자가 주5일제 준비가 전혀 안되어 부득이 환자 불편을 고려해서 과도기를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건의료노조에서 생리휴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년이면 열두 개입니다. 이것을 인력으로 환산한다면 사용자에게는 엄청난 비용으로 다가옵니다. 사용자들은 이것의 임금인상 효과가 총액대비 2.2% 정도라고 주장하면서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그래서 파업 14일째까지 타결이 안 되었습니다. 주5일제가 사회적 일자리를 나누는 의미라고 할 때 보건에서는 지부교섭에서 10% 이상 충원을 합의를 하면서 전체적으로 2,000여명∼3,000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진통 끝에 만들어진 주5일제안은 바로 '사회연대적 노동시간 단축안'이라 자부합니다.
산업별 의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한 문제이기에 사용자가 얼마나 받을지 미지수였습니다. 결국 사용자가 모든 것을 수용한 것은 파업투쟁의 진정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산업별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산별교섭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종합적으로 이번 협약 결과를 봤을 때, 과연 중소병원이나 조직력이 어려운 지부들이 기업별교섭으로 혼자 싸웠을 때 이런 합의가 가능 했겠는가 되물어봅니다. 121개 지부 4만이 하나되어 만든 이번 산별협약은 이후 보건의료노조가 지향하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으로 나아가는 유력한 무기이자 발판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정일부: 금속의 경우, 타결내용도 중요하지만 교섭과정에 더 중요성을 두었습니다. 산별교섭을 진행하면서 항상 밑바탕에 깔려 있던 문제의식은 산별교섭이 실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였습니다. 우리 자신의 교섭체계나 협약내용도 중요하지만, 사용자단체가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지 예를 들어 '경총'식 사용자단체로 갈지 아니면 순수민간 사용자단체로 갈지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003년, 2004년 중앙교섭에 이어 2005년에도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여 중앙교섭을 하기로 하고 합의되어 있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이제 정착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사측의 3자위임 과정에서 경총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 나섰다는 점은 어떻든 경총이 비공식적이나마 개입한 것인데요. 그래서 중앙교섭 2년 만에 노사간 나올 수 있는 대책들은 다 나왔고, 이제 전면전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올해 만일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교섭이 실패했다면 산별교섭이 무력화되거나 다른 교섭형태로 후퇴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올 교섭에 구성된 '사용자협의회'의 성격에 대한 문젠데 노조는 아직 이 단체의 방향에 대해 의혹을 갖고 있고 사용자들도 명실상부한 사용자단체이기 보다는 이후의 방향을 잡기 위한 매개고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올해 산별교섭의 의미는 이렇고요. 구체적인 협약내용을 좀 더 얘기하겠습니다. 손배·가압류의 경우 금지냐 남용방지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노조의 요구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손배·가압류 금지는 사업장 단협이나 철도의 경우처럼 여타 사업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음으로, 최저임금제는 금속과 보건의 산별 최저임금제 요구의 결과로 법정최저임금을 최소한이나마 현실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산별최저임금과 산업공동화 대책마련에 대해 노사간 합의함으로써, 아직은 미흡하지만 기존의 경제적 이해 중심의 임단협에서 벗어나는 물꼬를 텄다는 데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주호: 산별교섭이 타결된 후, 노조 없는 병원에서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병협에 전화를 걸어 병협이 나서서 합의해 준 것에 대해 불만을 쏟아 붓고, 노조없는 병원도 합의사항을 지켜야 되는지 질문들을 하더라고 합니다. 이번 합의가 법적으로 강제되지는 않지만, 상징적 의미와 사회적 파급효과가 그만큼 큰 것이죠. 또한, 중소병원을 비롯해 조직이 어려운 지부의 경우 산별교섭이 기준점임을 제시하면서 지부교섭을 수월하게 풀 수 있게 된 것도 큰 성과죠. 마지막으로 '직권중재'가 유명무실해 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올 협약에 노사간의 자율교섭을 통한 타결 원칙을 합의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 직권중재가 없었죠. 물론 법이 폐지되어야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법이 있다손 치더라도 유명무실해질 것입니다.
조성재: 내용상에서 큰 진척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동의할 겁니다. 주5일제와 관련해서 차이점이라면, 금속은 공정개선이나 생산합리화를 통해 흡수할 여지가 있는 반면, 서비스 업종인 의료산업의 경우 흡수의 여지가 적어 사용자의 저항이 강할 수밖에 없는데도 주5일제를 관철한 것은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큰 성과일 것입니다.
협약 내용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보건의료노조는 근로시간 단축을 하면서 임금인상을 2∼5%로 책정함으로써, 교섭 상대를 고려한 부분입니다. 서구의 근로시간단축 과정을 봐도 이것은 관찰되는 부분인데요.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그 해나 아니면 적용기간동안 '협약임금 인상율'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합니다. 교섭이란 상대가 있는 것인데, 그 상대를 고려함으로써 교섭을 끝까지 끌고 간 것은 주목할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양 노조의 교섭에서 가장 큰 성과라면 역시 단위 사업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의제들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당장 구체적인 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구속력 있는 출발점을 만들었다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이제는 향후 노사정의 노력 여하에 따라 노사관계의 새로운 지형이 구축될 것이며, 노동운동은 사회적 정당성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주호: 올해 주 5일제도입에 따른 인력충원과 비용부담 때문에 임금인상률이 다소 낮았습니다. 하지만 생리휴가를 유지하고 연월차를 보상하고, 인력 충원과 비정규직을 정규직할 경우 사용자가 드는 비용은 5∼10%의 임금인상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노조가 양보한 것처럼 표현하는데 실제 큰 폭은 아니죠. 물론 병원 지불 능력에 따라 차이는 있겠죠. 이런 명분있는 양보는 이후 산별교섭을 풀어 가는데 큰 효과를 발휘하리라 봅니다.
정일부: 보건의료노조의 임금인상율과 주5일제를 둘러싼 합의과정을 바람직한 것이라고 했는데, 저희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와 사가 서로 주고받는 것을 통해 상호 발전하는 것보다는 각각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철저히 노력하는 즉, 서로의 계급적 이익을 관철하려는 대립의 과정에서 역사적인 발전이 오는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주호: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노사관계에서 기본은 대립과 투쟁을 통한 발전이겠죠.
조성재: 제가 보기에 금속의 경우 사용자는 끝까지 갈 힘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 현실은 힘 있는 사용자는 오히려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어서, 지금은 일방적으로 교섭의 주도권을 쥐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금속노조입니다.
정일부: 작년을 평가할 때, 주5일제를 너무 밀어붙여서 사용자들의 피해의식이 형성된 거 아니냐는 평가는 적절하지 못한 거 같고, 작년의 강한 투쟁으로 인해 올해 금속사용자들이 적극적 대응을 위해 경총과 접촉하는 등 사용자들간에 단결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주호: 이번의 적절한 수준에서의 산별합의도 일부 조합원은 임금이 적게 올랐다는 불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고민되는 카드였죠. 산별 합의에 89개 병원이 교섭권을 위임해서 타결되었고, 이후 지부교섭을 통해 추가로 10여개 병원이 산별협약 수용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일부 조항은 받고, 일부조항은 받지 못한다는 식의 사측 태도를 거부하면서 일괄 수용을 내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마무리 시점에서는 거의 모든 병원이 산별협약을 수용하면서 명실상부한 산별교섭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산별노조 건설 당시 한꺼번에 90%이상이 조직전환을 한 것처럼 산별교섭 또한 원년에 주요 대학병원을 포함한 전 병원이 산별교섭에 합류하게 되어 또 한번 높은 조직의 집중성을 발휘하게 되는 거죠.
조성재: 최저임금도 금속과 보건이 거세게 밀어붙이자 최저임금위원회가 최근 몇 년간에 비해 가장 높은 13%로 인상률을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교섭과 협의는 같이 가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최임위가 합리화되어 그 내부에서 최저임금 수준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제도화하는 식으로 나가야 하겠지만요. 그리고 산별 차원에서는 좀 더 세분화하여 업종별, 직무별 등으로 임금의 최저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방식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4. 산별교섭의 발전 과제
김영두: 마지막으로 향후 과제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죠.
이주호: 올해 산별교섭을 풀코스로 찐하게 경험해보니,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이 구체적 과제로 다가옵니다. 우선 왜 우리가 산별교섭을 하려고 했는지 조직 내부적인 통일작업이 선행되어야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별교섭 진행방식, 협약 준비,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의 관계, 의제 분배문제, 사측 대표단 구성 문제를 검토해야합니다. 특히 교섭비용을 줄이고 교섭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사간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투쟁 관련해서는 올해 첫 합법파업을 했습니다. 병원의 영원한 숙젠데, 파업강도를 높이면 환자 불편에 대한 여론 압박이 있고, 강도를 낮추면 사용자에 대한 압박이 안 됩니다. 과거엔 정권의 탄압저지 그 자체가 파업전술이었는데, 이제 합법 파업이라는 열린 공간에서의 전술도 고민되어야합니다. 교섭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장과의 괴리감을 좁히기 위한 방안도 고민이 필요하죠. 특히 올해 모 대학병원지부의 산별합의 무효 주장과 독자적인 파업, 10장 2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후 조직 민주주의와 산별교섭 운동이 성숙되어 나가는데 좋은 교훈과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영두: 사용자단체 구성과 관련해 올해 진전이 있는 겁니까.
이주호: 산별교섭 초기 사측 교섭단은 한마디로 당나라 군대였습니다. 10분 정회하면 3시간동안 서로 싸우다 아무런 합의 없이 나오곤 했습니다. 서로를 비난하기에 정신없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통일성이 높아지자 강고한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교섭에 임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이전과는 달리 내년 산별교섭에서는 더 공세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특히 산별기본협약에 사용자단체 구성 노력과 올해 교섭단 유지, 하반기 더 구체적인 준비까지 합의한 상태라 급진전이 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다만 사용자들이 고민하는 것은, 첫째 경총을 개입시킬 것인가의 문제, 둘째 병원협회를 통해서 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다양하고 이질적인 조직들 사이에서 어떻게 단일한 대표성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경총 개입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고, 병협 관련해서는 병협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어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정일부: 지부 지회 교섭에 대해서는, 3개월 가까이 시기별로 교섭을 열어 놓았지만 의견접근은 못하게 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전에 '중앙교섭 타결없이 지부교섭 타결없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조합원 입장에서 보면 3개월 이상을 자기 사업장의 쟁점이 아닌, 오로지 중앙교섭 3대 요구만 가지고 끌고 왔는데요. 그런데도 문제제기 하나 하지 않고 잔업거부나 부분파업 등 조합의 투쟁방침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자기 사업장과 무관한 계급적 요구에 대해 투쟁한 산별교섭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나머지 과제를 푸는데 전제가 될 것입니다.
과제를 보면, 첫째는 금속노조 조직의 확대라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사회 경제구조의 중심을 틀어쥐고 있는 재벌과의 한판 투쟁이 필요한 문제로서 전체 민주노조진영의 총체적인 대응전략 속에서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둘째는 중앙교섭과 지부교섭의 관계설정 문제, 특히 협약내용에서 임금·고용문제 그리고 기업복지를 산별복지로 전환하는 문제 등 산별협약의 완성도를 높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는 파업전술인데 노동조합의 힘의 수준이 사업장별로 차이가 많이나는 것을 어떻게 산별 차원에서 조정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사용자단체의 구성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사용자단체의 방향이 산별노조를 방해하는 식일지 민주적인 노사관계를 진전시키는 방향일지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법제도 개선의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이 문제를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발전전략의 차원에서 산별노조와 민주노총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함께 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총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성재: 산별교섭과 관련해 올해 새로운 양상 중의 하나는 사용자들의 대응입니다. 금속은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홍보전을 하였고, 보건도 공공성이 강해서 여론전을 누가 얼마나 영향력있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개별 산별노조 차원의 전술도 필요하지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의 의견을 참조하여 요구안의 작성부터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조율된 요구안'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노동운동이 저항 문화적 성격, 인정투쟁의 성격이었다면 지금은 실질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금속의 경우 산업공동화 방지를 위해 노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보건은 의료의 공공성을 위해 노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등 그야말로 '상시적인 협의체제'로 들어가지 안으면 안 되는 국면이 된 것이죠.
교섭과정의 갈등과 관련해서 보건은 예년에 비해 올해는 매우 유연했다고 봅니다.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이었던 같은데,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는 전술을 개발하는 노력이라고 여겨집니다.
다음으로 파업전술에 대한 부분인데 여전히 민주노총의 시기집중투쟁과 맞물려 산별노조의 투쟁이 잡혀 있습니다. 금속은 3개월이 넘도록 중앙교섭을 진척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사실상 교섭을 하고 타결한 기간은 그 기간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사용자들도 이제는 민주노총의 시기집중투쟁에 맞추어 산별노조의 투쟁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별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 노와 사 모두에게 지금의 파업전술은 풍부한 논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낳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협약기간인데, 이제는 우리도 다년간의 협약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과 더불어 중앙과 지역, 지회(지부)의 협약과의 기간 조정도 고려하여 사용자에게 산별교섭이 진정 교섭비용을 줄인다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이주호: 산별교섭이 기업별 교섭보다 효율적인 교섭이라는 것을 노동조합이 입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별노조가 진정한 대표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구요. 다음으로 사용자들도 노조의 파업전술 패턴을 알기 때문에 초기에는 교섭에 나오지만 안을 내오지 않습니다. 노조가 안을 내도 별 소용이 없다는 거죠. 민주노총의 파업전술에 맞추어서 사용자도 대응하는 것인데, 교섭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산별교섭과 지부교섭의 연속적 관계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노와 사 모두 산별교섭은 산별교섭이고, 현장으로 돌아가면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부교섭을 산별교섭의 보충교섭 수준으로 정착시켜서 이중교섭, 이중쟁의의 문제에 대해 노와 사가 적극 고민해야 합니다.
정일부: 파업전술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다릅니다. 노와 사의 일부에서 시기집중투쟁 때까지는 어차피 교섭이 풀리지 않을 것 아니냐는 식의 생각을 갖고 교섭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는데, 풀리면 풀리는 대로 끝내야지 그런 식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금속이 중앙교섭에 3개월이라는 기간이 걸렸는데, 사전에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미 사용자들에게 전국노사실무위원회를 갖자고 독촉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사용자들 때문에 교섭기간이 길어진 것의 주요 원인입니다. 이것을 민주노총의 시기집중투쟁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사용자의 문제점을 중요하게 지적하고 나서 노동조합의 전술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조성재: 금속은 사용자가 내부적으로 단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시기집중투쟁을 빌미로 사용자들도 벼락치기식으로 교섭을 하는 것이 편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으면 사용자 스스로 단결이 안 되기 때문이죠. 이게 지금 정착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쨌든 이것은 결코 생산적인 교섭방식은 아닌 듯 합니다.
이주호: 사용자들의 대응이 과거에는 개별적이었다면 이제는 공동 대응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원인은 위기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 경총과 병원협회도 마찬가지인데 자신들의 생존논리 때문에라도 산별교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적극 모색하고 있습니다.
조성재: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것은 지금 정부에 쌓여 있는 고용보험기금 등이 수조원에 달합니다. 노와 사가 근로자들을 위한 교육훈련과 공동복지에 사용할 돈을 이것을 활용하는 방안을 궁리해야 합니다. 지역이나 산업별 차원에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의료의 공공성 문제에서는 정부의 역할뿐만 아니라 재정도 중요한 활용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정일부: 사회적 교섭의 문제라고 보는데, 지금 정부가 이끌려고 하는 사회적 교섭이 어떤 방향인가 하는 점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이 방향이 노사정 사이에서 합의가 된다면, 그 속에서 얘기했던 사업들도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조박사께서 말씀하신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각각의 사안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이주호: 저는 올해가 노사관계발전에 있어 중요한 전환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했고, 금속, 금융, 보건 산별교섭과 함께 자동차, 궤도 등의 업종, 산업단위 대화가 모색되고 있거든요. 거기다 민주노총에서 사회적 교섭 논의를 시작하고 있죠. 저는 이런 흐름들이 서로 상승작용하면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고 있다고 봅니다. 노동운동이 지금껏 이념적으로, 구호만으로 외쳤던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특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나 사회 공공성 강화, 고용보장 문제가 산별교섭의 전진과 함께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평등과 연대의 노동운동, 그 성공의 열쇠를 바로 산별교섭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김영두: 장시간 시간을 내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