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3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의 수준이 세계에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영화가 바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이다.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들에게는 <로저와 나>로 이미 유명해진 마이클 무어지만, 실제 한국의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이다. 사실 영화보다는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는 시상소감으로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미국의 노동조합에 가서 교육을 하기도 하는, 이 열혈 선동가는 <화씨 9/11>에서는 본격적으로 영화 내내 부시의 과거와 현재를 후비며 조롱한다.
영화가 노리는 것, “멍청한 부시 꺼져라!”
지난 미국 대선 결과는 정당한 것이었을까? 9·11 참사가 일어날 줄 정말 몰랐을까? 어떻게 미국에 있던 빈 라덴 일가는 무사히 사우디아라비아로 탈출할 수 있었을까? 9·11 참사와 무슨 연관이 있길래 이라크를 공격하는 걸까? <화씨 9/11>은 이러한 질문들에 익살스럽지만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다.
미국의 플로리다 주 선거결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텍사스의 실패한 석유재벌이었던 ‘아들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아버지 부시의 후광, 사우디 왕가, 빈 라덴 일가와의 개인적 우정과 사업적 연계성까지 부시 대통령의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파헤친다.
빈 라덴 일가는 9·11테러 직후 FBI의 수색 과정도 없이 고위 정부관료 전용기를 타고 사우디로 갈 수 있도록 배려 받았다. 이는 과거 부시와의 우호적인 연계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 부시는 알 카에다가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도 무시했고, 취임 후 첫 8개월의 42%를 휴가로 보냈으며, 9·11 테러가 난 그 시간엔 보고를 받고도 어찌할 바를 몰라 시간을 날렸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선명하다. 부시는 처음부터 이라크와의 전쟁이 목적이었다는 것. 왜? 당연한 대답이지만, 석유와 돈 때문이다. 테러로 고통받는 미국인들이나 이라크 전쟁의 피해자들 모두 그냥 평범한 시민이다. 이라크에 가서 죽고 다치는 미국인들은 가난한 지역의 청년들이고, 석유와 무기판매로 돈을 버는 것은 미국의 거대 기업이며, 그들과 유착돼있는 정치인들이다.
그리고 <화씨 9/11>이 노리는 바도 분명하다. 바로 올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부시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라크 전쟁이 일으키는 참상과 거기에 얽혀있는 거짓말들보다도 ‘부시의 멍청함’이 더 두드러지게 다가오는 걸 보면 감독은 부시를 정말 싫어하는 것 같다. 이러한 측면이 영화의 객관적인 한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이클 무어의 재치와 유머, 날카로움은 이를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특히 이메일, 비디오 및 도서 대여 목록, 대화내용까지 검열하게 하는 애국법을 내용조차 읽지도 않고 통과시킨 상하원 의원들을 찾아가서 방송차량으로 법안을 읽어주는 무어 감독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정말 인상에 남는 것이었다.
파병반대에 도움됐으면
파병이 결정된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기까지 여러 난관이 있었던 듯하다. 디즈니사는 이 영화의 배급을 거절했고, 서울 최대 영화관인 메가박스에서도 이 영화의 상영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7월22일 첫 개봉일, 극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웃었고, 몇 번 울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진실이다. 부디 이 영화가 이 나라에서 반전과 파병반대의 기운을 북돋는데 일조를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