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라고 까지 일컬어졌던 서울시의 대중교통 개편이 시민들의 심각한 저항과 반발을 삼으로써 자칫 개악으로 끝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시장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짜에 맞추어 준비가 덜 된 개편작업을 강압적으로 몰아붙인 이른 바, ‘졸속시행’에 있다. 많은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시행 전에 이러한 결과를 이미 예측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서울시에 대해 시행연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이러한 요구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놀라우면서도 그렇게 놀랍지 않은 것은, 서울시의 주요 시정과제들이 하나같이 이러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몽땅 밀어 부쳐!현재 서울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복원, 뉴타운건설, 시청앞 광장조성, 대중교통개편 등은 모두 그 추진과정에서 분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러한 사업들은 서울의 현 단계 발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고 또한 그 명분상의 목표는 바람직하고 시민의 지지를 얻을만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 집행과정에서 하나 같이 시의 관점과 방법이 일방적으로 반영됨으로써 그 결과는 당초의 명분상 목표와 현저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이는 사업추진방식이 왜곡되거나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거기에는 이명박 시장의 독특한 시정운영스타일, 이를 반영하는 그의 리더십이 핵심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 프로젝트’라 불리는 핵심과제들이 추진되는 방식들은 하나 같이 시장의 입장, 이를 동조하고 지지하는 전문가와 관료들의 관점을 일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가령 청계천복원의 경우를 살펴보면, 건설회사 CEO출신 이명박 시장의 선거공약으로 선정되면서 그 사업은 처음부터 건설사업적 성격을 띠었고, 사업화될 때는 청계천추진본부의 토목 및 건설분야의 엘리트 공무원과 관련 전문가들의 관점과 시각이 선택적으로 지배했다.
집행단계에서 환경단체나 문화단체의 비판과 저항이 있었지만 대체로 무시된 채 시장이 당초에 설정한 토목공사적 원칙과 방식으로만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정책관점과 방식의 이러한 선택성으로 인해 청계천 복원은 겉으로 환경복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내를 보면 환경을 이용해서 도심 토지이용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도모하는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일 뿐이다. 역사문화 복원이라는 명분 또한 그 수단에 불과하다.
뉴타운건설, 시청 앞 광장조성, 대중교통체계개선, 도심고층화구상도 모두 시장의 ‘개발주의’ 판단에 의해 의제로 선정되고, 시장의 의중을 잘 반영하는 특정 부서(관료)나 전문가의 주도로 사업화되고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비판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시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결과, 이 사업들은 거대한 인공하천을 건설하고, 주거지를 대규모로 재개발하며, 고비용 조경광장을 조성하고, 수익자 부담의 대중교통시설을 건설하며, 도심에 초고층고급의 주거시설을 입지시키는 등의 전형적인 개발프로젝트로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방식의 일방주의와 내용의 신개발주의
과거의 성장기 동안에는 도시개발사업들이 성장과 개발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추진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의회의 동의를 얻고 시민들의 제한된 참여를 허용하며, 환경적 측면을 고려하고 계획적 절차를 따르는 등의 반성장과 반개발주의 요소를 포함하면서 추진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과거보다 더 조직적이고 유기적인 방식으로 개발의 가치와 목표가 강조되고 구현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시민동의를 구하고 환경을 배려하는 과정들은 개발의 가치를 보다 극대화하는 절차나 수단에 불과하다. 이렇게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개발주의를 우리는 ‘신개발주의(neodevelopmentalism)’라 부를 수 있다
정책의 결정으로부터 집행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단계별로 특정한 관점과 입장이 지배적으로 채택되고 영향을 끼치는 ‘선택성’은, 달리 말하면 다른 관점과 입장들은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선택성’과 ‘배제성’은 지금까지 사업추진에서 두 가지 성향을 수반해 왔다. 하나는 추진방식이 시의 관점으로 편향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내용에서 시민사회가 선호하는 ‘보전의 가치’보다 시 관료들이 선호하는 ‘개발의 가치’를 반영하는 쪽으로 편향된다는 점이다. 전자를 ‘방식의 일방주의’라면, 후자는 ‘내용의 신개발주의’라 할 수 있다. 이 두 조건은 결국 시정운영을 책임 맡고 있는 시장의 시정운영 스타일, 즉 리더십에 의해 결정된다.
[ 이 시장의 신개발주의 리더십은 노사관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출처: 서울지하철노동조합 ]
“여우와 같은 불도저”의 낡은 속내
시장으로서 그의 리더십은 누가 뭐라 그래도, 지금까지 그의 이력을 반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개발주의 시대 대기업 건설회사를 경영했던 경험이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부분이 포함된다.
첫째는 개발주의 시대에 익힌 정서와 가치관이다. 박정희식 개발독재, 그리고 비슷한 유형의 경영독재를 가장 가까이서 배웠던 그는, 이를 자신의 경영관과 경영방식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의 시정운영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이명박식 드라이브’가 자주 지칭되고, 그의 리더십을 말할 때 ‘독선적 리더십’이란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두 번째는 건설회사의 경영자로서 획득한 경영(통치)성향이나 전문성이다. 시장이 된 후 그가 역점을 두는 사업들은 대개 건설사업적 성향을 띠고 있고, 또한 사업추진과정에서는 건설사업에서 체득했던 경험과 노하우를 적용하거나 원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한다. 대표적인 예가 청계천 복원사업이다. 환경복원, 역사복원을 말하면서, 그가 실제 접근하는 시각은 ‘뜯고 물 흘러 보내는 토목공사(건설사업)’에 관한 것이다.
셋째는 개발독재시대 군대식 경영을 특징으로 하던 재벌회사의 한 조직을 책임 맡으면서 익힌 경영방식 혹은 추진방식이다. 이는 엘리트 지도자가 앞서 이끌고 구성원들은 그의 지휘 하에 일사분란하게 일을 하면서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명박 시장은 시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는 하나, 실제 시정운영에서 그의 ‘확실한 판단과 결단력’을 믿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나 요구들을 대체로 ‘쓸모 없는 것’으로 무시하거나 소홀히 대응한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 결단을 하면 ‘그저 앞으로만 나간다’는 사업의 추진력을 그의 리더십이 갖는 미덕으로 내세우고 있다.
요약한다면, 그의 리더십은 정치적인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더 존중하고, 절차의 형식주의 보다 목표달성의 효율성 혹은 성과주의를 더 우선하며, 대중적 합의보다 엘리트적 선도성을 더 선호함으로써, 민주적인 성향보다 독선적(자기도취적) 성향이 더 두드러진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리더십의 특성은 시장으로 그가 시정을 운영하는 데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는 시정을 기본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는 공무원들의 느긋한 태도, 비경쟁적인 사고, 비효율적인 업무추진방식을 바꾸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이러한 시정운영 스타일은 한마디로 ‘효율성’을 최우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이 관료조직과 결합될 때는 관료적 효율성이 되며, 이는 정부가 설정한 목표달성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정책결정과 추진방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가시화된다.
실제 그는 시정운영에 관료적 효율성 원리를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청계천 복원과정에서 보이듯이, 시장과 시가 결정해서 추진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 최적의 방법과 절차가 강구되어야 하기 때문에 추진과정에서 제기되는 복원의 탈관료적 관점, 즉 시민사회의 요구나 주장들은 기본적으로 사업추진에 발목을 잡는(즉 추진의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는 핵심과제들의 추진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목격되는 현상이다.
그의 시정운영 성향은 종종 ‘시정의 탈정치화’로도 불려진다. 하지만, 냉철하게 보면, 그 스타일은 다분히 계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기업경영자 출신이면서 동시에 보수당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이고, 특히 대권을 꿈꾸는 야심 찬 정치인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탈정치적인 시정운영은 겉으로 주장되는 것과 달리,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이 그에게 부쳐준 별명, ‘여우와 같은 불도저’는 바로 정치적 계산이란 발톱을 숨기고 시정을 저돌적으로 추진하는 그의 리더십과 시정운영의 스타일 특징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더 큰 장기 비용으로 남는 단기 편익
그렇다면, 이명박 시장의 리더십과 그의 시정운영 스타일은 현재의 서울시 발전 단계에서 볼 때 유의하고 적합한 것인가? 이명박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핵심과제들은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동의와 지지도가 결코 낮은 것들이 아니다. 또한 급격한 성장기를 거친 서울이 한 단계 높이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제로서 특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정과제들은 과거 성장기와는 달리, 복잡하고 다원적인 사안의 성격, 내부구성, 이해관계 등을 고려하여, 기본적으로 과거와 다른 기본가치를 전제로 해야 한다. 따라서 시정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나 관점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조정하면서 이를 정책으로 반영해낸다면 그렇지 않을 때 보다 훨씬 값진 시정의 목표를 구현할 수 있지만, 이명박 시장의 독선적, 시민배제적, 실용주의적 리더십은 이러한 시정운영의 조건과 부합하지 않다.
그렇지만 다원성, 민주적 합의, 시민사회 가치 등을 배제한 채 얻어지는 시정의 능률성과 성과는 한 쪽으로 편향된 가치요소로만 구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빈 요소들은 언젠가는 비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가령 환경, 역사복원의 요소들이 불완전하게 다루어진 채, 무늬로만 물이 흐르는 하천이 복원되면, 일정한 시점이 지나(특히 시장이 바뀌거나 관리비용이 누적되는 경우) 다시 뜯어고치는 등의 비용을 발생하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성, 다원성, 시민적 가치를 배제하고 효율성, 획일성, 관료적 가치를 일방적으로 투입시켜 생산된 시정은 단기적인 편익을 초과하는 장기적 비용을 더 과도하게 발생시키는 편익-비용구조, 즉 ‘단기편익-장기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청계천복원과 같이 서울의 공간구조 개편에 크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정과제들을 임기이내에 할 수 있는 사업목표와 실현방식으로만 추진한다면, 그러한 방식에 의해 실현되지 못한 장기적 편익들은 결국 장기적인 비용으로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남길 후유증을 생각하라
역대 서울시장 중에서 1966~1970년에 재직했던 김현옥 시장이 바로 이와 비슷한 리더십과 시정운영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당시 ‘불도저’로 불러졌던 김현옥 시장은, 공병대 장교 출신답게 서울을 온통 토목공사 현장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서울의 모습은 크게 쇄신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막무가내 개발’은 서울의 도시발전에 많은 후유증과 주름살만 남겼다. 최근 서울시는 김현옥 시장이 남긴 후유증을 치우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복원사업’도 바로 그와 비슷한 성향의 리더십을 가진 시장이 남긴 후유증을 치우는 일에 해당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추진하는 각종 개발사업들이 일정한 시점 뒤에 가면, 다른 후임 시장이 이를 치우는 일을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