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2일 야당연합의 대통령 탄핵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두 달여 동안 탄핵, 총선, 헌재의 기각결정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의회쿠데타', 또는 '수구세력에 의한 헌정유린'이라는 '법치'의 규정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한국 민주주의를 둘러싼 사회적 힘관계와 그 내용적 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의 민주화에 대한 주류적 분석은 절차적 정당성과 제도적·문화적 조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들 주류 민주화론자들은 정치적 제도화와 자유권적 시민권의 확장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민주화의 이행과 공고화는 하나의 연속적인 정치과정임을, 즉 공고화기의 문제점이 이행기의 결과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이행기의 주역=시민사회', '공고화의 주역=정치사회'라는 단절적 사고를 통해 대중의 정치참여와 '자기결정권'의 행사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민주주의의 본질적 문제를 도외시해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탄핵사태는 87년 이후 전개되어온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 즉 절차적 민주주의와 제도적 측면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저항과 타협에 의한 민주화 이행
87년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이른바 '협약에 의한 민주화'였다. 물론 '6·29선언'이 6월항쟁이라는 국민적 저항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독재정권타도'라는 국민적 요구를 '직선제'라는 우물 안에 가두어 버린 보수야당, 그리고 중간계급 중심의 재야세력이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능성을 스스로 단절시켜 버렸다는 점에서 '제한적이고 보수적인 협약'이었다. 타협의 결과 '직선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 조건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구지배세력의 온존과 보수야당의 타협의 결과는 87년 11월 노동법 개악을 통해 얼마 안 가서 그 실상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88년 제13대 총선의 결과로 형성된 여소야대 정국은 '광주청문회'로 상징되는 쿠데타 세력의 심판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제도정치 세력간의 타협으로 귀결되었고, 그 결과는 89년 '공안정국'이라는 민주화의 역풍으로 마무리되었다. 게다가 제13대 총선은 한국의 정치민주화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강고한 지역주의 틀을 형성한 불명예스러운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로 한국정치사에 기록되었다는 점 역시 6월항쟁에서 표출된 국민적 저항과 민주화에 대한 기대를 퇴색시킨 '87년의 한 단면'이었다.
정당민주주의 가로막는 지역주의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 문제는 모든 정치적 의제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과도 같은 것이었고, 조금 완화되기는 했지만 이번 17대 총선 역시 지역주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못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 문제는 곧 한국의 정당체제와도 직결된 문제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체제는 역설적이게도 지역의 보스를 정점으로 수직적으로 구성된 '권위주의적' 보수정당들 간의 경쟁체제였다. 그리고 이들 보수정당들은 평소에는 지역주의 문제를 '타자화'시켜내는 무서운 '내공'을 보여주다가도 자신들이 정치적 위기에 처하거나 선거때만 되면 여지없이 이를 적극 활용하는 이중전략을 취해왔다.
지역주의 정당체계는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핵심요소였다. 보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수직적 정당구조는 과거 군부파시스트에 발빠르게 대항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위로부터 형성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못한 채, 이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어 오히려 당내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
그리고 88년 13대 총선부터 '정당개혁'과 '민주화 세력의 원내진입'을 내걸고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했던 '재야입당파'들의 행보는 후자의 목표를 성취했을 지는 몰라도, 전자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수직체계에 끼어들어 기존 정당체계의 기득권 구조를 연장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당개혁'과 '민주화세력의 원내진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정당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역주의 정당체제의 극복을 포함한 정당개혁과 당내 민주주의 문제는 정치적 담론 수준에서나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15대와 16대 국회를 거치면서 시민사회진영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의회감시운동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결과, 일정한 성과를 낳기도 했다. 특히 2000년도 이후 꾸준히 성장해 온 진보정당운동의 원내진출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정당개혁과 지역주의 정당체계의 극복, 그리고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신선한 자극과 기존 보수정당들의 부패구조가 사법부에 의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정당개혁'은 이제 담론 수준이 아닌 생존의 중핵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의 '과잉대표'와 진보의 '과소대표'
지역주의 정당체계의 문제가 단순히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구의 정당체제가 여러 가지 균열구조 위에 성립된 체계였다면 한국의 정당체계는 지역주의가 다른 균열들, 즉 계급과 계층, 여성, 장애인·성적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른 균열과 모순을 잠식해 버린 체계였다. 이 같은 정당체계는 정치적 보수화를 한층 더 심화시켰고, 민주주의의 다양한 의제들을 사회적으로 수렴하지 못하는 '정치의 빈곤' 상태를 가중시킨 요인 중 하나로 작동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대의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대표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보수정당의 '과잉대표성'과 진보정당의 '과소대표성'의 문제다. 시민사회의 계급과 계층의 역관계가 이념과 정책의 차이에 따라 투영되는 것이 정당과 같은 정치사회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동안 냉전반공주의와 지역주의라는 보수독점적 구조속에서 이념과 정책의 대결을 사실상 원천봉쇄 당했던 것이다. 또한 이같은 현실은 '민주화' 이후 경쟁의 제도화가 절차적·형식적 측면에서는 보장된 권리인지는 몰라도, 실제적인 기회의 균등으로 제도화되지 못함으로써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불어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도와 형식의 절차성만으로 우리의 민주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정당명부비례대표제'란 제도의 도입과 진보정치 세력이 정치 지형에서 일정한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기존 정당체계의 변화가능성에 희망을 보여준 이번 17대 총선을 하나의 전환점-'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17대 총선에 대한 의미부여가 가능성으로부터 그 역사성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이후 지속적으로 진보정치 진영이 보혁구도를 한국정치의 중심축으로 확장해 낼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좌표 없는 개혁에 목메는 국회
지역주의 정당체계로 인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민주화' 이후에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있었다. 의회란 입법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 그리고 예·결산이라는 교과서적 기능이외에 사회적 갈등을 수렴-입법활동을 넘어서는 갈등의 조정-하는, 말 그대로 '대의'의 역할을 위임받은 대의기구이다. 하지만 이들 보수정당들의 갈등과 정쟁의 구조속에서 국회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의사수렴의 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정쟁을 사회화 하고, 갈등을 확산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가장 큰 화두는 '개혁'이었다. '정치개혁', '국회개혁'은 선거라는 정기적인 정치행사에 단골메뉴였다. 국회에서는 이를 '정치개혁특별위원회'라는 형태로 의제화했으나, 정치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 속에서 개점휴업 상태를 지속하다가, 언제나 임기말에 가서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절충하는 선에서 국민의 개혁요구를 봉합하는데 급급했다. 정당법, 국회법, 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등 이른바 정치관계법의 졸속 개정이 그 좋은 예인데, 그나마 16대 국회에서는 정당개혁에 대한 여론과 함께 상당부분 제도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 즉 국회내 입법과정 및 절차의 공개성과 정치자금법에 있어 상당 부분 진전된 개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개혁'이 갖는 '진정성'과 '좌표'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6대 국회에서 보수정당들은 '정당개혁=원내정당=지구당폐지=돈 안드는 선거'라는 묘한 정치개혁논리를 폈다. 정당민주주의의 토대를 '진성당원'과 '상향식 공천'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당원에 기초한 정당운영의 골간조직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미국식 원내정당이 대안모델임을 천명하고 있는데, 미국의 양대 정당이 선거를 치르는데, 수억 달러의 돈잔치를 벌인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개혁'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개혁도 개혁인 것이다.
[ 탄핵철회 촛불집회에 참석한 '넥타이 부대' - 출처: 오마이뉴스 ]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운동
지금까지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민주주의가 정체되어왔던 측면을 제도와 구조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민주화 이행과 공고화는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써 그 절차적·제도적 요소의 유무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내용적 구성이 서로를 규정할 때 하나의 완결적 구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는 대중의 참여와 실질적 권리의 보장, 그리고 자기결정성이 담보될 때 그 가치를 획득한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평가하는데 있어 '대중운동'으로서 민주주의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가를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들 들어 신자유주의라는 벌판에 내버려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핵폐기장 백지화를 성사시킨 부안 주민들의 지난했던 싸움, 호주제 폐지운동, 전쟁반대와 파병철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반전평화운동 등은 삶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위임된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되찾고자 하는 자기결정권의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광화문을 뒤덮었던 촛불 행진도 '탄핵반대'와 '헌정유지'에 가두어 버릴 수 없는, 대중들의 '자기권리찾기' 운동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와 '운동'의 변증법
87년 이후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은 '민주화 이후의 역설'에 의해 규정되었다. 즉 보수독점의 지역주의 정당체제와 이로 인한 대표성의 왜곡, 그리고 경계지어진 제도화의 지속이 그 주요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제도적 구조 속에서도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운동은 지속적으로 그 경계를 허무는 흐름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도'와 '운동'이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투쟁의 과정을 겪으면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불러오는 운동과 제도'의 정치는 우리의 민주화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데 뿌리깊은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