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감독] 중대재해 사망 수사, 해외는 경찰이 주도한다-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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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 중대재해 사망 수사, 해외는 경찰이 주도한다-윤효원

윤효원 171 09.25 18:14

[근로감독] 중대재해 사망 수사, 해외는 경찰이 주도한다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중대재해 사망사건에서 한국은 여전히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1차 조사를 개시하는 행정 중심 체계에 머물러 있다. 경찰과 검찰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효과적인 거버넌스의 부재로 인한 비효율도 빈번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실효적 수사와 강력한 형사책임 추궁이 어렵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사망사건을 명백한 형사사건으로 규정하고, 경찰과 검찰이 수사의 중심에 선다. 노동행정기관은 전문성을 살려 원인 규명과 행정제재를 담당하면서 형사절차에 협력하는 보완적 역할을 맡는다.


영국 기업살인법 


영국에서 2007년 제정된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은 기업 경영진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법인 차원에서 형사책임을 묻는다. 이 법 아래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살인이나 과실치사 혐의가 배제되지 않는 동안 경찰이 ‘수사 우선권’을 행사한다. 이는 일반 살인사건과 동일하게 사망 자체를 형사사건으로 본다는 의미다.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산업보건안전법(HSWA) 위반 여부를 조사하며 경찰과 긴밀히 협력한다. 두 기관의 협력은 ‘산업재해 사망 공동 프로토콜(Work-related Deaths Protocol)’에 의해 제도화돼 있다. 형사적 책임은 경찰과 검찰이 맡되, HSE는 안전 규정 위반과 같은 전문적 사항을 규명하는 보완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영국에서는 산재사망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형사사법 체계가 작동한다는 점이 명확히 보장된다.


독일, 산재사망=과실치사


독일에서도 산재사망은 형사사건으로 분류된다. 형법 제222조는 ‘과실치사’를 규정하고 있으며,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하면 검찰이 사건을 개시한다. 독일 형사절차의 특성상 검찰은 ‘수사 지휘권’을 갖고 경찰을 지휘한다. 경찰은 현장조사를 수행하며 증거를 수집한다. 산업안전 행정기관은 별도의 조사 절차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행정적 제재를 부과한다. 그러나 사망사건 자체는 어디까지나 검경이 중심이 되는 형사절차 속에서 다뤄진다.


노르웨이, 노동범죄센터


노르웨이의 구조는 경찰과 노동행정기관의 협업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사업주는 사망이나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경찰과 노동감독청(Arbeidstilsynet)에 동시에 통보해야 한다. 경찰은 범죄 혐의 여부를 판단하고, 형사사건으로 판단되면 수사에 착수한다. 노동감독청은 원인을 밝히고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책임을 진다. 양 기관은 사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조사와 수사를 병행한다. 노르웨이는 ‘노동범죄’라는 개념을 정책적으로 채택하고, 경찰·세무청·사회보험청과 노동감독청이 함께 상주하는 노동범죄센터(A-krimsenteret)를 운영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산재사망 역시 경찰과 행정기관의 공동 대응 체계가 자리잡았다. 즉, 사망사건은 경찰이 형사사법 절차를 통해 다루고, 노동감독청은 행정적 관점에서 조사와 제재를 수행하는 이중 구조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 산재사망=형사사건 


뉴질랜드도 유사한 맥락에서 사망사건을 형사사법 절차로 연결한다. 산업안전기관인 WorkSafe는 산업보건안전법(HSWA) 위반 여부를 조사할 권한을 갖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기소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망사건에서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경찰이 형사사건 수사를 맡는다. 두 기관은 각자의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긴밀히 협력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최근 기업살인죄를 신설하는 법안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됐지만 아직 제정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따라서 현재는 WorkSafe가 규제 위반을 중심으로 조사하고, 경찰이 사망과 범죄 혐의 전반을 다루는 이원적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이처럼 영국·독일·노르웨이·뉴질랜드 등 주요국은 중대재해 사망사건을 공통적으로 형사사건으로 열어두고 경찰과 검찰이 수사의 중심에 서 있다. 노동행정기관은 독립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기보다 형사절차에 협력하는 전문기관으로서 원인 규명과 규제 위반 조사에 집중한다. 국제적 흐름은 사망사건을 형사사법의 영역으로 다루는 추세를 보여준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와 기소의 전면에 나서며, 노동행정기관은 전문성을 발휘해 협력한다. 


산재사망 수사는 형사가, 산재사망 예방은 근로감독관이 

  

약은 약사가 다루듯, 산재사망 수사는 형사가 맡아야 한다. 그리고 근로감독관은 기업 현장의 예방적 관리체계를 점검·강화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경찰·검찰과 노동행정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협력 체계를 제도화할 때, 비로소 한국의 산재사망 수사 구조도 국제 기준에 걸맞게 재설계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 2025년 9월 2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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