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 대만의 노동이사제-이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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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 대만의 노동이사제-이명규

윤효원 33 08:33

대만의 노동이사제


이명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대만의 국영기업 노동이사제는 산업 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2000년 「국영사업관리법」(國營事業管理法) 개정을 통해 제도화되었다. 지금껏 한국은 유럽식 노동이사제 모델을 주로 연구해왔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도 대만이 국영 부문을 중심으로 이 제도를 일찍 도입했다는 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대만의 노동이사제도(勞工董事制度)가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되었으며, 어떠한 성과와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지 검토하는 것은 한국형 노동이사제 설계에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대만 국영기업 노동이사제의 도입 배경, 법적 기반, 제도 운영 현황, 긍정적 효과와 한계, 민간 부문 확산 문제 등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에서 노동이사제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1. 법적 근거: 「국영사업관리법」 제35조 2항과 3항 


대만 정부는 1980~9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높아진 노동권 인식과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였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해 노사 분쟁을 줄이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산업 민주주의 실현의 목표가 명확히 제시되었고, 노조가 법인 자격으로 노동이사를 공식 선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노동자의 경영 참여 효과를 높이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었다.


가장 핵심이 되는 조항은 「국영사업관리법」 제35조 제2항 및 제3항으로, 정부 지분을 대표하는 이사진 중 최소 20%를 노동조합이 추천한 ‘노동자대표(노동이사)’로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동이사가 부적격 판단을 받을 경우, 노동조합이 새로운 인물을 추천할 수 있어, 노조가 노동이사의 임면(任免)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법 시행 이후, 각 국영기업 노동조합은 노동이사 후보 자격 요건·추천 방법·임기·해임 등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내부 규약을 마련하였다. 예컨대 중화전신공회(中華電信工會)의 규정은 노동이사 후보 자격을 노조 간부 또는 일정 경력 이상의 조합원으로 제한하고, 노동이사가 이사로서 받는 소득을 노조에 기부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노동이사가 개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하고 노조의 단결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노동부는 해마다 노동이사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노동이사의 경영 이해와 의사결정 능력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2. 노동이사 선출 및 임명 절차


1) 노조 주도의 후보 추천

대만 국영기업 노동이사제에서는 노조가 노동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절차가 핵심이다. 노동조합은 내부 선거나 대의원대회 등을 통해 조합원 중에서 후보를 선출하며, 주무기관(경제부 등)에 명단을 제출한다. 대만 회사법은 원칙적으로 이사의 선임을 주주총회에서 의결하도록 하지만, 국영기업의 경우 정부가 과반 지분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아 주주총회를 통해 정부 측(노조 측) 후보가 무난히 통과될 수 있다.


2) 정부 승인 및 임명

정부가 전액 출자한 기업(100% 국유)일 경우, 주무기관이 직접 노동조합 추천자를 노동이사로 임명한다. 부분적으로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에도 실무적으로는 정부 몫의 이사 선임 과정에서 노조 추천자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노동이사를 배치한다. 이렇듯 노동조합 추천 → 정부 승인 → 주주총회 결의라는 일련의 절차를 통해 노동이사가 공식적으로 임명된다.


3) 노동이사 해임 및 보궐

노동이사가 노조 방침에 어긋나거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될 경우, 노조는 대의원대회나 이사회 등 내부 규정에서 정한 절차를 거쳐 해임을 요구할 수 있다. 해임이 결정되면 새 인물 후보를 노조가 추천하고, 기존 임명 절차에 따라 정부가 이를 승인하며 이사회에 합류시킨다. 일부 노조는 “노조에 보고 의무 불이행, 이사 보수 미기부, 노조 방침 위반” 등을 해임 사유로 구체적으로 명시해두어 노조가 노동이사를 강력히 통제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3. 임기와 보수 체계


1) 임기

노동이사의 임기는 일반 이사와 동일하게 최대 3년이며, 재추천 및 재임명을 통해 연임이 가능하다. 각 공기업은 정관 또는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이사의 임기를 정하고, 주기마다 이사회를 개편한다. 노동이사도 이 개편 시점에 맞춰 계속 연임되거나 새로운 후보로 교체될 수 있다.


2) 보수 및 급여

노동이사는 본래 직원 급여와 더불어 이사회가 정한 이사 수당을 받는다. 대만 회사법상 이사 간 보수 차별은 불가능하므로, 노동이사의 이사 수당·성과급은 다른 이사와 동일한 기준으로 책정된다. 다만 일부 노조는 노동이사가 받는 이사 수당을 노조에 전액 기부하도록 규정하여 노동이사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회사 측도 노동이사제 운용을 위해 노동이사가 본래 직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업무를 조정해주는 사례가 많다.



4. 노동이사의 법적 지위 및 권한


1) 이사회 내 권한

노동이사는 회사법상 ‘정식 이사’로서 이사회 안건에 대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동등하게 보장받는다. 기업 예산, 인사, 보수, 정책 결정 등 거의 모든 사안에 참여하며, 특정 안건에 반대하거나 보류를 요청할 수 있다. 사실상 소수 이사이므로 표결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지만, 노동자 관점과 현장 입장을 대변하여 이사회 내 견제와 균형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 노동자 대표로서의 역할

노동이사는 노조에 정기적으로 이사회 논의 사항을 보고하고, 노조가 전달하는 현장 의견이나 요구사항을 이사회에 반영한다. 이를 통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노조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경영 정보를 얻어 사전에 노사 간 조율을 시도할 수 있게 만든다. 실무적으로 노동이사는 노조와 경영진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노사 갈등이 발생하기 전에 이사회 차원에서 협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준다.



5. 노동조합과의 관계


1) 노조 가입 필수

실제로 노동이사가 되려면 해당 기업 노조의 조합원 자격이 필수적이다. 후보 자격을 노조 간부 또는 대의원 출신으로 제한하는 경우도 흔하다. 따라서 노동이사는 노조 활동에 깊이 관여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며, 이사회에서 노조의 입장과 방침을 대변할 것을 기대받는다.


 2) 협의와 정보 공유

대만의 여러 노조들은 노동이사에게 이사회 회의 후 보고 의무를 부과하고, 중대한 안건이 있을 경우 노조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한다. 또한 노조에서 ‘노동이사 자문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이사에게 전문 정보를 제공하거나, 회사 재무 분석을 돕기도 한다. 이렇게 노동이사와 노조의 긴밀한 협조는 노사 대립을 줄이고 협력적 관계를 강화하는 자양분이 된다.



6. 노동부의 노동이사 교육 프로그램


노동부는 정기적으로 ‘노동이사 전문 역량 강화 교육’, ‘노동교육 연수회’ 등을 개최하여, 노동이사와 노조 간부에게 경제·산업 전략, 회사 지배구조, 이사의 책임, 재무감독, ESG(탄소중립 등) 같은 주제를 교육한다. 예컨대, 2024년에는 대만전력공사의 임구 발전소 방문을 통해 고효율·저탄소 공정과 에너지 절약 분야를 실지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경영 참여 및 감독 영역에서 노동이사들이 보다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교육은 노동이사가 경영·회계·기술 등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된다. 



7. 노동이사제도의 운영 현황과 평가


 1) 도입 사례

 2022년 현재 국영기업중 38개 기업에 70여명의 노동이사가 있다. 대만전력공사(Taipower), 대만석유공사(CPC), 중화전신(中華電信), 대만철도공사(臺鐵) 등 대만의 대표적 공기업들이 법 규정에 따라 이사회의 1/5 이상을 노동조합 추천 인사로 충원하고 있다. 민영화된 중화우정(中華郵政), 중국강철(中鋼), 대만비료(台肥) 등도 일정 비율의 정부 지분이 남아 있을 경우 노동이사를 두도록 회사 설립 규정이나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민간기업으로 노동이사제를 확대하려는 논의가 지속되어 왔으나 실질적 확산은 제한적이다. 2019년 EVA항공(長榮航空) 승무원 파업 시 노조가 "노동자 이사의 이사회 참여"를 공식 요구사항에 포함시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으나 민간부문에서는 노동이사제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2) 긍정적 효과

대만에서는 노동자가 경영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노사 간 대등한 대화가 가능해지며, 파업 같은 극단적 갈등 상황을 사전에 조율할 수 있다 점, 노동이사는 현장 사정을 잘 알고 있어, 불합리한 경영 관행이나 인력 과부족 문제를 이사회에 신속히 제기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 현장 직원들이 직접 이사회에 의견을 전달할 창구가 생기므로, 직원의 사기 및 소속감 향상에 기여하는 효과를 강조한다. 


 3) 한계와 문제점

그러나 노동이사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되는데, 첫째 법적 지위·권한의 모호성이다. 회사법 체계에서 전통적으로 이사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노동이사의 이중적 지위(노조 대표이자 이사)와 충돌 가능성이 존재한다. 둘째, 독립이사·감사위원회와의 중복 우려이다 이미 경영 감시·감독 기능을 담당하는 제도가 있는 상태에서 노동이사의 역할이 중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셋째, 민간 부문으로 확산에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2015년 증권거래법 개정안이 상장 기업들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가 보여주듯, 사용자 측의 거부감과 제도 도입 비용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 민간 확산이 쉽지 않다.



8. 결론: 아시아적 맥락에서 노동이사제도에 접근할 필요성 


대만 국영기업의 노동이사제는 노조 추천 후보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형태로, 노사 간 정보 비대칭과 갈등을 완화하고 노동 현장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영 부문에서 일정 성과를 나타낸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 부문으로 제도가 확산되는 데에는 기존 지배구조와의 충돌, 사용자 측의 반대, 회사법 체계의 한계 등 여러 장애물이 존재한다.


공기업 중심으로 우선 도입된 사례, 법적 규정 방식, 노조와의 유기적 협력 구조, 해임 및 보궐 선임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대만 사례가 한국형 노동이사제에도 유익한 교훈을 제공한다. 


나아가 한국이 유럽 모델 외에 아시아 맥락에서 참고할 대표적 선례로 대만을 참고하여, 제도 설계 시 갈등적 노사관계 문화, 공기업의 지배구조 문제 등을 보다 세밀하게 고려한다면 효과적 산업 민주주의 구현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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