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법’ 제정이 시급하다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지방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의 노동이사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노동이사제의 확산뿐만 아니라 제도의 표준화, 안정성 및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법 제정은 필수적이다.
지방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현황
지방 공공기관에서 노동이사제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조례에 근거한 제도는 지역별 차이를 초래하고 확산을 어렵게 한다. 2024년을 기준으로 전국 1,259개 지방 공공기관 중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곳은 82개 기관(18개 지자체)에 불과하다. 게다가 노동이사의 수조차 지역별로 상이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300명 이상 기관에 1명, 1,000명 이상 기관에 2명의 노동이사를 두지만 부산・대전・울산・전남・경남・충남 등은 300명 이상 기관에 2명, 300명 이하 기관에 1명을 둔다.
노동이사제가 조례에 근거하다 보니 제도의 안정성도 흔들린다. 2024년 5월, 서울시는 조례를 개정하여 300명 미만 기관의 노동이사를 폐지하고 300명~1000명 규모 기관의 노동이사 수도 2명에서 1명으로 축소했다.
그 결과 서울시 산하기관의 노동이사는 21개 기관 34명에서 15개 기관 20명으로 줄었다. 노동이사제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중앙공공기관 노동이사제 현황
한편 중앙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는 법률, 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공운법 역시 여러 한계를 가진다. 공운법이 적용되는 기관은 공기업(32개)과 준정부기관(55개)으로 한정된다. 327개 공공기관 가운데 240개에 이르는 기타공공기관에서는 노동이사제에서 배제되고 있다.
공운법은 노동이사를 1명으로 제한하며, 과반수 노조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이사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이사는 비상임이사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비상임이사와 달리 노동이사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 참가할 수 없는 등 차별을 받고 있다. 지방 공공기관 노동이사의 임기가 3년인 것과 달리 중앙공공기관 노동이사의 임기는 2년(1년 연장 가능)으로 더 짧다.
특히 노동이사는 중앙공공기관이든 지방 공공기관이든, 노동조합 가입이 금지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지방을 통합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법’ 제정해야
노동이사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중앙・지방 공공기관 모두에서 폭넓게 존재한다. 따라서 지방공기업법 개정이 아니라 중앙과 지방 공공기관 노동이사를 포괄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및 운영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해야 한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통합 노동이사제법을 제안하는 이유로는 몇 가지가 있다.
(1) 중앙과 지방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가 다를 이유가 없다. 유럽에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동일한 법이 적용된다.
(2) 지방공기업법을 개정하려들 경우 그 내용은 자칫 지금의 공운법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과 지방 공공기관의 노동이사가 다를 이유가 없다는 게 수렴의 근거로 제시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이사의 수는 1명으로 제한되고 임기도 2년으로 단축되는 등 노동이사의 권한이 축소될 수 있다.
(3) 통합 노동이사제법을 제안하는 또 하나의 핵심 이유는 정치적 기회의 창이 열린 지금이야말로 법 제정을 추진하기에 적기라는 사실 때문이다. 윤석열의 탄핵을 둘러싸고 사회 대개혁과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건설이 말해지고 있다. 큰 판이 열리면 그림도 크게 그려야 한다. 호랑이를 그려야 할 시점에는 호랑이를 그려야 한다. 노동이사제도 이 기회를 살려 담대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노동이사의 노동조합원 자격이 최우선 과제
현재 노동이사는 노동조합원이 될 수 없다. 지방 공공기관에서는 조례로, 중앙공공기관에서는 기획재정부 지침으로 노동이사의 노동조합 가입을 금지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을 보로 막는달까, 노동자의 헌법적 권리를 조례나 지침으로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이사는 해당 기관의 노동자로서 노동권을 제한당할 이유가 없다.
해외에서는 노동이사를 노동조합에서 배제하는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이사가 노동자 대표직(지부 대표, 현장위원, 산안대표, 사업장협의회 위원 등)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와딩톤, 제레미‧콘촌, 알린. 2020. 『유럽 노동이사제: 우선순위, 권한 및 연계』,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이사제 도입 당시(2016년 서울시)에는 고용노동부가 노동이사를 사용자로 해석했기 때문에, 노동이사가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해당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가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이는 당시 노조법 시행령(제9조 2항, ‘노조 아님 통보’)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2021년 관련 시행령이 삭제되었음에도 기획재정부는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2022.6.3.)을 통해 노동이사의 조합원 자격을 금지하고 있다. 노동이사가 노동조합 가입의 자유를 가지는 것은 노동이사제 정착의 출발점이다.
노동이사에게 조합원 자격을 허용하는 것은 노동이사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지방 공공기관에서 2016년부터, 중앙공공기관에서는 2022년부터 노동이사제가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노동이사의 정체성(”사용자인가 노동자인가“)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어떤 노동이사는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고 어떤 노동이사는 경영자로 인식한다. 직원과 임원이라는 이중적인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노동연구원이 노동이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024.9. N=108)에서는 “직원에 가깝다”라는 응답이 44%, “임원에 가깝다”라는 응답이 18%였다. 38%의 노동이사는 ‘중간’이라고 답했다. (이정희・박태주・노광표・박귀천・주미옥, 2024. 『노동이사제 운영 실태 분석 및 평가』, 한국노동연구원(미발간).
노동이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이사의 노동조합 가입은 허용해야 한다. 오랫동안 노동이사제를 연구하면서 고전적인 저작들을 발표해 온 영국의 골드와 와딩톤은 “노동이사제는 나라별로 다르지만 공통적인 전제는 노동이사가 노동자를 대표하여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Gold. M. & Waddington, J., 2019. Introduction: Board-level employee representation in Europe: State of Play, European Journal of industrial Relations, Vol. 25(3)
노동이사 선출은 과반수 노조의 추천으로
통합 노동이사제법을 제정할 때 노동이사를 어떻게 선임할지도 중요한 문제다. 노동이사의 선임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과반수 노조가 추천하는 방식(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 직원 투표)이다.
(2) 직원 투표로 후보를 선출해 임원추천위원회에 추천하는 방식이다.
중앙공공기관에서는 법에 따라 과반수 노조 추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지방 공공기관에서는 대부분 직원 투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노동이사의 선출방식을 통일한다면 어느 방식이 바람직할까.
어떤 방식을 택하든 논란은 불가피하다. 중앙공공기관의 노동이사는 과반수 노조의 추천을 선호하는 반면(73.2%), 지방 공공기관의 노동이사는 85.1%가 직원 투표를 선호한다(이정희 외, 2024).
직원투표방식은 비노조원이나 소수 노조 조합원을 포함한 전체 직원에 대한 노동이사의 대표성을 강조한다. 노동이사가 노동조합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반면 과반수 노조 추천방식은 노동이사제를 노동자가 아닌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활동으로 본다. 또한 경영진에 대한 노동이사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노동이사는 과반수 노조의 추천으로 선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만 노조의 민주적인 절차를 보장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조합원 투표 등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노동이사와 노동조합 간 협력적인 관계 설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이사 사이에는 긴장 관계나 경쟁 관계가 아니라 역할을 달리하면서도 상호 지원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결국 개인일 수밖에 없는 노동이사의 활동에서 노동조합의 지원은 결정적이다. 노동이사의 힘은 노동이사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조직적 지원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체계 반영해야
유럽에서는 다수의 나라가 직원이 직접 노동이사를 선출하는 방식을 택한다. 독일은 물론 프랑스, 덴마크, 그리스, 아일랜드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반면 노조가 임명하는 경우는 스페인이나 스웨덴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도 과반수 노조에 의한 노동이사 추천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체계가 유럽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업별 노조체계를 갖고 있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는 과반수 노조가 단체교섭에서 ‘교섭대표 노동조합’의 권한을 가지며, 노사협의회의 구성에서도 근로자 위원을 선임한다.
이는 과반수 노조를 중심으로 기업 내부의 노사관계 질서를 잡아가는 방식이다. 노동이사제가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의 하나라면, 과반수 노조가 노동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
다만 노동이사 후보를 복수(2배수)로 추천하도록 한 규정은 삭제하고 단수추천으로 바꿔야 한다. 노동이사를 복수(2배수)로 추천할 경우 기획재정부장관(공기업)이나 주무기관의 장(준정부기관) 혹은 지자체장(지방 공공기관)이 특정 후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그런 사례가 있었다.
노동이사 규모의 확대와 권한의 보장
표준화된 노동이사제법을 제정할 때 노동이사의 규모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중앙공공기관에서는 노동이사를 일률적으로 1명만을 선임하지만 지방 공공기관에서는 기관의 규모에 따라 1~2명을 선임하고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노동이사의 수를 조정하더라도 노동이사의 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노동이사 비율(1/3)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노동이사를 복수로 선임할 경우 그 가운데 1명을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로 선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노동이사는 원칙적으로 다른 비상임이사와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현재 노동이사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위원이 될 수 없다거나 선임 비상임이사 및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이는 노동이사에 대한 명백한 차별로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노동이사의 신분적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노동이사는 해당 기관의 직원으로 근로시간과 업무수행에서 상사의 지시를 받는다. 이로 인해 노동이사는 다른 비상임이사와 달리 노동이사로서 활동이 제한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노동이사와 직원 업무 사이의 노동시간 배분, △노동이사를 위한 사무공간 제공, △활동시간의 보장과 활동비의 지급, △부서 배치 및 인사・근무평가 기준 마련, △교육훈련 기회 확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의안 부의권과 감사요청권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도 논의의 대상이다.
노동이사의 활동을 보장하는 조치는 표준화된 제도로 공식화해야 하며 경영자가 개입할 여지를 없애야 한다. 통합 노동이사제법이 경영자에 대한 노동이사의 독립성과 권한을 규정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노동이사제, 노사관계의 큰 틀에서 바라봐야
노동이사제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제도화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노동이사제를 바꿔야 한다면 정치적 환경변화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중앙・지방 공공기관을 포괄하는 통합 노동이사제법을 제정하여 △노동이사의 조합원 자격, △과반수 노조의 추천과 내부의 민주적 절차, △노동이사 규모의 확대, △노동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과 지방 공공기관의 노동이사들이 내부 의견을 모으고, 노동조합(양대 노총 공공기관 노동조합 공대위)과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노동조합이 노동이사제의 병풍 역할을 맡아야 한다.
노동이사제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의 큰 틀 속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산업별 교섭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노사협의회를 강화해 산업별 단체교섭-노사협의회-노동이사제라는 ‘황금 삼각형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이정희 외, 2024).
공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을 개편하는 일과 함께 ‘지방공기업 운영위원회’의 설치와 ‘지방출자・출연기관 운영심의위원회‘의 정상화가 포함된다(박태주 외, 2022).
통합 노동이사제법의 제정은 단일법의 제정에 그칠 일이 아니라 공공기관 노사관계와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큰 그림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경제민주주의와 이해당사자주의를 확립하고 일터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진지에 해당한다.
※ 이글은 2025년 3월 11일, 전국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공노이협)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함께 개최한 「“지방공기업법 개정”을 통한 한국형 노동이사제 활성화를 위한 공동포럼」에서 발표한 글이다. 일부는 수정했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