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야간근무, ‘새벽’과 ‘배송’이 달라붙을 때
<‘새벽배송 플랫폼 노동 국회토론회> 현장에서
이다혜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
로켓, 반짝, 새벽, 번개와 같은 단어와 ‘배송’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달라붙지 말았어야 했다. 배송이라는 노동 언어가 속도 혹은 특정 시간을 상징하는 언어(로켓, 반짝, 새벽, 번개)와 달라붙는 순간 인간의 존엄이 삭제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처음 새벽배송 서비스를 착안한 누군가는 ‘새벽’이라는 단어와 ‘배송’이라는 단어가 달라 붙으며 노동자의 삶을 이토록 위태롭게 만들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2015년 컬리(구. 마켓컬리)는 온라인 마켓 최초로 새벽배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전날 주문한 신선한 식재료를 다음날 새벽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는 바쁜 현대인들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당시 마켓컬리였던 컬리의 성장을 견인했다.
쿠팡은 2014년부터 익일까지 배송을 완료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를 운영했으나 새벽배송 서비스까지는 도입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 ‘로켓프레시’라는, 컬리와 마찬가지로 전날 밤까지 주문하면 익일 새벽에 바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새벽배송 서비스를 도입한다.
새벽배송의 마법 뒤에는 사람이 있다
장보는 풍경이 바뀌었다. 주말에 일주일 간 필요한 식재료를 마트에서 미리 구비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달걀이 떨어졌다. 전날 밤 잠들기 전 손가락으로 주문 버튼만 누르면 된다. 다음날 새벽 문 앞에 달걀이 도착해 있을 것이다. 아침에 먹을 사과가 없다. 걱정할 필요 없다. 쿠팡에서 주문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럼 아침 7시 전 문 앞 프레시백에 사과가 담겨 있을 것이다. 마치 마법처럼. 해리포터의 마법세계가 따로 없다. 주문을 외우면 달걀과 사과가 우리집 문 앞에 마법처럼 ‘뿅’하고 나타난다. 아씨-오, 사과. 아씨-오, 달걀. (아씨오는 해리포터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물체를 소환하거나 불러올 때 사용하는 마법이다.)
해리포터 세계와 현실 세계의 차이점이라면 해리포터 세계에서 주문은 마법의 주문이라 마법의 힘이 물건을 가져다준다면, 현실 세계의 주문은 쇼핑 주문이라 마법의 힘이 아니라 사람이 노동하여 물건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밤 9시 주문이 들어가면 물류센터에서는 정신없이 물건을 싣고 나르는 사람들이 있다.
물건을 프레시백에 담는 노동자가 있으며, 관할구역에 물건을 정해진 시간에 배송하기 위해 밤새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며, 프레시백을 수거하고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비자는 앱에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주문 버튼을 누르면 마법처럼 새벽에 문앞 프레시백에 물건이 나타나는 마법같은 순간을 마주한다. 그 마법은 부리기위해 밤새 수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잠들지 못한 채 밤샘노동을 하며 수명을 갉아먹고 있다.
로켓배송의 ‘연료’가 되어 타버린 이들
지난 1월 17일 <새벽배송 플랫폼 노동 국회토론회 : 1021명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사회권 실태조사>라는 긴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모르고 싶었던, 은폐된 마법의 주문 속에서 소리 없이 시들어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중앙대학교 불안정노동 및 사회정책 연구실 고태은 연구원의 발표로 토론회가 시작됐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밤은 누가 만들었나? ‘보이지 않는 새벽배송 노동자들’을 주제로 토론회의 전체적인 주제를 아우르는 발표를 진행한 고태은 연구원은 쿠팡이 말하는 물류 혁신의 이면에 “로켓배송의 ‘연료’가 되어 타버린 노동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새벽배송이 이루어지려면 주문 마감시간인 자정에서 배송 마감시간인 오전 7시까지 약 7시간 동안 물류 출고부터 배송까지 모든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야간 과로노동이 되살아났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2020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쿠팡 사망 노동자는 20여 명에 달하며,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야간과 새벽 시간 물류를 나르고, 포장하고, 배송하는 노동자다. 왜 이들의 노동은 죽음에 가까운 노동일 수밖에 없는가.
죽음에 닿아 있는 노동
이들의 노동은 왜 죽음에 닿아있는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의 발표를 통해 이들의 노동은 태생적으로 건강불평등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누구의 몸이 혁신의 대가를 치르는가: 새벽배송 노동자의 수면, 자살, 교통사고, 사회적 고립’이라는 제목으로 새벽배송 플랫폼 노동자의 건강권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밤을 지새워 노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 생체리듬을 파괴하는 교대제 근무를 납과 같은 등급인 유력한 발암물질 2A(Probable Carcinogens)로 분류했다. 야간 불빛에 노출된 채 노동하는 일은 인간 세포의 생체시계를 무너뜨리고 호르몬을 교란시켜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동아시아, 2023).
교대제 근무를 발암물질로 분류할 정도인데, 지속적인 야간노동은 어떨까. 발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새벽배송 노동자의 41.8%가 ‘자는 동안 자주 깸’, 65.0%가 ‘자고 일어나도 피곤함’을 경험한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모든 연령과 교육 수준을 표준화한 근로환경조사 데이터의 전체 노동자군과 비교했을 때 3.5배 이상 높은 것이다. 다시 말해, 새벽배송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에 비해 수면장애를 경험할 확률이 3.5배 이상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살사고에 대한 데이터는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설문에 응답한 새벽배송 노동자 46.8%가 우울증상을 호소하였다. 이는 연령과 교육수준을 표준화한 근로환경조사 데이터 전체 노동자군과 비교했을 때 3.2배 높은 수치였다. 또한, 2.37배 이상 높은 수치로 자살사고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폐된 종속성과 허구적 자율성
죽을 것 같으면 멈추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삶과 노동은 그렇게 단순한 선택지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이지 않는 통제의 손: 새벽배송 노동실태와 은폐된 종속성, 알고리즘 통제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주제로 새벽배송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권과 노동권을 중심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의 80% 이상이 밤 9시에서 새벽 1시부터 새벽 5시에서 8시까지 일하고 있었다. 밤 12시 사람들의 주문이 끝나면 아침 7시 집 문 앞까지 주문한 물건을 배송완료하기 위해 쉼없이 노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중 85%는 일하는 동안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고 응답했으며, 65%는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쉬지 못하는 이유로 ‘물량이 많아서’와 ‘시간의 압박’이 각각 38.79%와 27.72%로 1,2위를 차지했다. 오전 7시까지 마법을 부려야 하니 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에 94%는 지난 한달 간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고 응답했다.
왜 이들은 이토록 힘들게 일해야 했을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의 통제가 있었다. 새벽배송 일을 할 때 업무 속도 또는 물건을 치는 속도가 장치에 의해 영향을 받느냐는 질문에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83.8%에 달했다. 성과를 유지하지 않으면 일이 중지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 또한 ‘75.4%’로 2/3가 훌쩍 넘었다.
이처럼 이승윤 교수는 “작업 내용을 변경하거나 순서를 변경하는 등 자율성은 매우 부족한 반면, 비품을 구매하거나 위험 및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스스로 부담하는 등 높은 개인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허구적 자율성과 은폐된 종속성’이 가장 큰 문제임을 지적했다.
표준계약서 없이 일하는 노동자
토론회에서는 쿠팡 퀵플렉서 산재사망자인 고(故) 정슬기 씨 부친인 정금석씨,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준비위원장, 최대영 마트노조 온라인 배송지회 사무국장, 정단훈 한국노총 택배본부 여수쿠팡지회장이 현장의 실태를 생상한 목소리로 전달했다.
정금석 씨(故 정슬기 씨의 아버지)는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기업은 사람이 아닌 돈을 우선시하고 있다"며,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최대영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사무국장은 "새벽 배송 노동은 물리적 한계와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며, 특히 화장실 접근성과 휴게시간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정단훈 한국노총 택배본부 여수쿠팡지회장은 “쿠팡은 규격이나 무게 제한 없이 과도한 작업을 강요하며, 불공정 계약서를 통해 노동자를 통제하고 있다”며, 쿠팡의 정책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준비위원장은 쿠팡의 노동강도가 과로사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다며, 하루 2~3회 반복 배송과 무급 분류작업, 고용불안을 가중시키는 클렌징 제도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일하고 있음을 고발했다.
“인간이 밤에 하는 일은… 이런 직업군은 없어져야 해요.”
김승섭 교수의 연구에서 한 인터뷰이는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사람이 야간에 움직이는 일은 웬만하면 없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컬리와 쿠팡의 새벽배송 서비스가 일상으로 침투하고 신선식품이 아닌 상품들조차 새벽배송 대열에 합류했다.
반려동물의 사료, 도서, 의류를 당일 저녁 혹은 익일 새벽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밤 사이 세탁물을 수거하여 그 다음날 세탁이 완료된 상태로 집 앞에 가져다주는 비대면 세탁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컨시어지 경제’(concierge economy)에서 플랫폼 작업자들은 “숨가쁘게 경쟁하고, 엘리트와 샐러리아트 계급을 위한 맞춤형 하인”으로 존재(Guy Standing, 2015)하며 고용과 직업 안정을 보장받지 못한 채로, 여기에 건강권까지 위협받은 채로 야간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야간노동을 규제해야
나는 쿠팡과 컬리를 비롯해 새벽배송을 쓰지 않은지 1년이 넘었다. 지인들과 쿠팡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불매하면 어떻겠느냐 슬쩍 말을 건네면, 너무 편해서 안쓸 수가 없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돌아온다. “10년 전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2~3일은 기본이었어요”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말을 꾹 참는다.
길들여진 소비자는 잘못이 없다. 규제가 없는 것이 문제다. 무분별한 시장경쟁에 노동자들의 목숨이 사그라들어도 방관하는 정부가 문제다. 야간노동이 무분별하게 지속되어도, 새벽배송 경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이 문제다.
국가가 ‘새벽’과 ‘배송’이라는 단어가 달라 붙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 순간, 야간노동 경쟁을 부추긴 순간, 이를 규제하지 않은 그 결과로 무지의 소비가 노동자의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비극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