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페이퍼 2023-03] 생계비에 대한 국제 논의 동향과 시사점

작성자: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이 글에서는 생계비에 대한 국제 논의 동향을 소개하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살펴봄. 

○ 첫째,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생계비’가 갖는 의미를 ILO가 제시하는 최저임금 결정의 주요 요소와 그것의 역사적 맥락에 바탕하여 설명함. 

 - ILO는 최저임금 결정의 핵심 영역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적절한 필요비용’과 ‘경제적 요소’ 두 영역을 제시하면서 균형적·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함. 그런데 국제적으로 최저임금 결정의 경제적 요소(특히 물가, 생산성)가 강조되면서 영역 간 균형은 이미 경제적 목표 달성에 상당히 기울어져 있어서 균형의 의미를 현재 시점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음.

 - ILO의 필라델피아 선언을 포함하여 최저임금 규약 도입과 변화 양상, 미국의 산업화 초기 생활임금 운동, 1990년대 이후 영미권 국가의 생활임금 캠페인, 그리고 유럽 선진국의 산별 단체협약 전통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비용인 생계비가 임금결정의 본질임을 드러냄.

○ 둘째, 최저임금을 생계비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는 국가 중에서 생활임금을 도입한 국가들이 있음. 생활임금의 도입 배경이자 핵심 결정기준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필요생계비’가 재조명받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 생활임금 도입 과정은 ‘생계비’가 왜 사회 의제의 대상이 되는지, 어떤 임금제도에 담을지를 구성원들이 정치적·실천적 장에서 왜 협의해야 하는지를 환기시킴. 그뿐만 아니라 생활임금이 제도화되면서 최저임금이 안고 있는 문제가 생활임금에서도 재현되는 것을 보면(대표적으로 지불능력, 보장 수준 등) 결국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필요를 충족하는 임금 설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매우 일반적 의제로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임. 

○ 생계비 산식의 의미는 가구원 수, 취업자 가구원 수와 같이 생애주기가 다양한 구성원의 삶을 실질적 가치로서 반영하여 계산한다는 의미도 있음. 가족 구성원 개인의 ‘존재 가치’를 비교적 단순하지만 가구의 재생산 비용으로 산출한다는 것임. 다극화 되어 있는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 가구의 생계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임금으로 그 유의미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생계비 바탕의 기준이 절실히 필요함.

○ 셋째, EU 및 ILO 차원에서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필요에 기반한 임금’ 산출을 위한 최근 연구들이 있음. 생활임금이든, 최저임금이든 ‘노동자의 필요기반 임금’ 산출을 위한 의미 있는 시도들임.

 - ILO의 ‘필요기반 임금’ 산출 방식은 비록 개발도상국을 시범사업 대상으로 했지만, 국가별 소비 및 소득자료를 엄밀하게 축적하고 관리한다면(EU-27개국 생활임금 산출 연구) 생계비를 국제적, 일국적, 특정 지역 안에서도 비교·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임.

○ 최저임금이 유자녀 가구의 생계비를 충족하기 어려운 양상은 국가 간 격차가 크더라도 국제적으로 공통된 우려 지점임. 사회적 임금을 결정하는데 있어 경제적 요소로는 파악할 수 없지만 생계비 기준에서는 특정 항목의 지출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음.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항목이 양육비(교육비), 주거비가 최저임금의 수준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적인 비용임을 알 수 있음. 

 - 우리나라도 최저임금이 실제로는 경제적 요소에 바탕하여 결정되며 임금수준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지자체마다 최저임금의 보완형태로 생활임금을 도입했다는 점, 생활임금에서 중요한 결정 변수가 주거비와 양육(교육)비였다는 점은 영미권 국가와 유사하다는 진단 외에도, 아동 양육과 주거보장의 사회화가 보편적일수록 시장규제 임금으로서 최저임금이 받는 압박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임.

○ ILO의 필요기반 임금 제도화나 영미권 국가와 EU 회원국들에서 시도되고 있는 가구유형별 생계비 산출 확산의 움직임은 생계비 계측이 낡은 임금 결정 기준이 아니라 놓치지 말아야 할 미래의 기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