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1차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포럼]
한국 노조교육의 과거와 미래
- 크리스챤 아카데미 노동교육 사례와 시사점
□ 일시: 2026년 4월 2일(목) 오후 5시
□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사직동 304-28, 한국사회과학자료원 5층)
<사 회>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토 론> 이명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 지난 4월 2일 위와 같이 진행된 2026년 제1차 노동포럼의 자료집(첨부 파일)과 청중 토론 내용('아래')을 공유합니다. 노조 교육의 전망과 과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아래(청중 토론 요약)-----------
1. 노동교육의 철학과 목적: 제도화된 노조에서 ‘해방’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청중은 과거 체제 밖에서 ‘해방’을 목적으로 했던 노동교육이, 노동조합이 이미 사회적 제도로 굳건히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위상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랑시에르의 ‘해방적 교육론’이 실현되려면 강사와 학습자 간의 지적 위계가 근본적으로 전복되어야 하며, 피교육자인 노동자가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구조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이 제시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발표자는 1980년대식의 강한 변혁 지향적 목표를 현재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당면한 더 큰 위기는 철학적 기반을 갖춘 중장기 간부 교육 자체가 실종되었다는 점임을 지적했습니다. 발표자는 극우화와 능력주의가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세대의 노동자들에게 민주주의, 성평등, 이주노동자 문제 등 다원화된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철학적 노동교육’의 복원이 시급함을 역설했습니다. 교육 내용뿐만 아니라 강사(내부 활동가) 스스로가 교육을 준비하고 합숙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운동적 실천임을 강조했습니다.
2. 교육 공간과 구조적 한계: 내부 역량 강화가 우선인가? 외부 플랫폼 구축이 우선인가?
크리스챤 아카데미처럼 거대한 외부 재정(독일 기독교 단체 지원)에 의존했던 독립적 교육 모델의 현대적 효용성에 대해서도 토론이 오갔습니다. 일부 참석자는 오늘날 산별노조와 총연맹이 거대화된 상황에서 외부 단체에 재정을 의존하거나 위탁하는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지며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짧은 집행부 임기(2~3년)로 인해 장기적인 안목의 간부 육성보다는 즉각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조합원 대중 교육에 자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 내부의 구조적 모순을 꼬집었습니다.
이에 발표자는 현재 개별 노조나 연맹 내부의 교육 체계가 지닌 파편화 현상과 내부 정치 지형에 휘둘리는 한계를 지적하며 반론을 폈습니다. 활동가들이 자기가 속한 사업장이나 연맹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조망하고 타 산별 노동자들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는 노조의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안정적인 외부 교육 플랫폼’이 여전히 유효하며 체계적 간부 양성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3. 세대교체의 위기와 중간 간부 양성 시스템의 부재
참석자 전원이 가장 깊게 공감한 대목은 ‘세대교체 위기’였습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이끌었던 1세대 활동가들의 퇴장이 임박한 반면, 현장 투쟁의 뼈아픈 경험 없이 스펙과 경쟁 만능주의 체제에서 성장한 ‘청년(MZ) 세대’가 노동조합의 새로운 주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학생운동 등 사회적 외부 인프라가 노동운동 활동가들을 지속해서 충원하는 ‘저수지’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이 생태계가 붕괴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실무와 방법론 중심의 파편화된 단기 교육만으로는 자본과 권력에 맞설 인식론적 전환을 이뤄낼 수 없으며, 노조의 중간 허리 역할을 할 핵심 간부층이 끊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진단이 공유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교육 방법론의 결핍을 넘어, 노동운동 자체의 철학적 부재에서 기인한 중대한 위기로 분석되었습니다. 청년 세대가 지닌 합리성과 비용-편익 분석의 잣대를 충족시키면서도, 이들을 진정한 노동 주체로 견인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4. 대안적 모델의 모색과 향후 과제
위기 극복을 위한 긍정적 대안과 타산지석의 사례들도 언급되었습니다. 거시적 안목에서 정치 지도자를 육성하는 스웨덴 사민당의 당내 학교나 미국 보이스카우트의 모의 정치 훈련 프로그램처럼, 한국의 노동조합 역시 국가나 거대 정당에 준하는 체계적인 리더십 양성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국내 사례로는 최근 금속노조가 큰 재정을 투입해 단양 연수원을 건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의무 간부 양성 과정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포럼의 토론은 현재 노동교육이 직면한 위기가 단순한 재정 부족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노동 주체를 길러낼 것인가’라는 근본적 철학의 문제임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과거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남긴 해방적 교육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경쟁주의에 매몰된 현재의 노조 교육 체계를 전면 재설계하고 체계적인 간부 육성에 조직적 역량을 과감히 투여해야 한다는 실천적 과제가 도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