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현시기 노동운동의 기후 위기 대응, 진단과 처방

노동포럼

[좌담] 현시기 노동운동의 기후 위기 대응, 진단과 처방 <처방>

() 1,518 01.24 09:00

[좌담] 현시기 노동운동의 기후 위기 대응, 진단과 처방

 - <처방> -




○ 일시: 2023년 10월 18일 오전 10시

○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

○ 참여: 나병호 금속노련 정책국장,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국장,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기획실장(가나다 순) 

○ 사회: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 전 지구적 과제가 된 기후 위기 대응 상황을 한국 산별단위 노동조합에서는 어떠하게 진단하고 어떤 대응 전략을 고민하고 있을까? 한국노총 소속 금속노련과 전력연맹,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 간부들이 모여 진지하게 나눈 성찰과 모색의 논의 결과를 두 차례에 나눠서 게재합니다. <처방> 논의 이전에 진행된 <진단> 논의는 다음 링크로 들어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http://klsi.org/bbs/board.php?bo_table=B02&wr_id=198


 



임단협을 통한 노조의 기후 위기 대응


이주환: 이제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의 실천에 대해서 논의할 차례가 왔습니다. 최근 5년 사이에 정책 대응이나 교육활동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노동조합의 기후 위기 대응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직별로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우선 임단협이나 정책참가 측면에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나병호 국장님부터 시작해주시죠.


나병호: 기본적으로 매년 임단투 지침을 제작하면서, 탄소중립과 관련된, 고용안정이라든가 건강권 관련된 내용을 포함해서 지침을 작성하여 배포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임단협 요구에 기후 위기와 관련한 고용안정위원회를 꾸리거나, 새로운 기술도입 시 노사 협의를 하도록 하는 것 등을 포함하라는 겁니다.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기존 임단협 지침을 참고해서 기후 위기로 인한 산업 전환 대응 지침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임금이나 복지 요구보다 뒷순위로 밀려서 해당 지침을 실천하는 단위노동조합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현장이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기후 위기와 관련된 워크숍이나 교육을 조직해서 진행하지만, 간부나 조합원 참여도가 떨어집니다. 대기업 조직이든 중소기업 조직이든 회사가 다 알아서 할 거라 여기는 경향이 강해서, 연맹 중앙에서 단위조직 간부들에게 오셔서 들으셔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오기형: 금속노조는 몇 년 전부터 ‘산업 전환 협약’이라고 하는 걸 모든 교섭 단위에서 체결하도록 지침을 내렸고 현재 상당한 수준에서 체결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협약의 내용은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만들도록 했는데, 모아서 보면, 고용안정 보장, 노동안전 문제나 노조할 권리 대응 관련 요구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어떻게 저감할 것인지를 두고 노사협의체를 만들라는 요구나 공급사슬 정보 공유 관련된 요구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양한 요구를 ‘산업 전환’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묶어서 협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방침을 추진했고 실제로 상당하게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현장에서 이 협약이 제기하는 요구를 실현할 준비가 거의 안 돼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현재 사용자들은 산업 전환 협약의 요구 중에서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 Factory Energy Management System)’과 관련된 건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요구들, 공급사슬 전후방에서 배출되는 탄소라든가 우리 회사가 얼마나 탄소를 배출하는지를 정확하게 노동조합에 공지하라거나, 이윤 중에 일부를 공장의 탄소배출을 줄이거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을 위한 재원으로 만들라거나 하는 것들은 노조든 사용자든 사업장 차원에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만들 실력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협약을 체결하더라도 후속 조치가 잘 안 이루어졌던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산별노조 중앙에서 기존의 논의를 정리해서 ‘기후 위기 대응 요구안’을 만들어서 ‘권고 요구’로 던졌어요. 그래서 여러 지역지부에서 이 요구안을 가지고 임단협을 추진할 수 있을지를 검토했는데, 대전·충북지역 등을 제외하고는 노사협상을 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협약과 관련해서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회사가 무엇을 생산하는지를 노동조합이 건드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이 이뤄지도록 하거나 혹은 생산물에 대한 개입력을 높이자는 거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협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후 문제뿐만 아니라 생산과정 전반에 관해 노조가 지식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실력이 이렇게 높은 수준에서 경영에 개입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어쨌든 계속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철: 기후 위기와 관련된 교육을 시작한 건 대략 2018년경부터인데, 실제로 구체화된 대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 시작한 건 2021년부터인 것 같아요. 이때부터 발전, 운수, 보건의료, 연금 등으로 단위를 구성해서 조직적인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녹색 단체협약 운동’을 작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공공운수노조 모범 단체협약안에 ‘공동요구안’이 있고 ‘권장요구안’이 있거든요. 공동요구안은 산하 모든 단위조직의 임단협 요구안에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거고, 권장요구안은 말 그대로 하면 좋으나 안 해도 어쩔 수 없는 그런 겁니다. 그런데 기후 위기 대응 관련 ‘녹색 조항’을, 기존에는 권장요구안이었는데, 작년부터 공동요구안으로 격상시켰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체결이 됐는지 점검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또한 연구사업도 활발히 하고 있는데요. 기후 위기 대응 활동을 해보니까 이게 원칙과 구호는 있는데 구체적인 요구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정의로운 전환’, ‘공공 중심의 전환’ 같은 구호를 외쳤고 호응도 얻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 된 거죠.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건지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돼서, 정책연구사업으로 ‘공공재생에너지공사 설립 및 운영 방안’ 등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곧 결과가 나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 등을 가지고 국회에서 싸워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위별로도 다양한 사업을 해왔습니다. 발전 단위는 고용보장 투쟁을 전개하면서 국회에서 전환법 대응 사업도 활발히 진행했고, 보건의료 단위는 앞에서 말씀드린 녹색 단체협약 운동에서 가장 성과를 많이 냈습니다. 병원에서 일회용품 정말 많이 써요. 그래서 조합원들의 기후 위기나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 매우 높습니다. 작년부터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을 비롯해 많은 단위조직에서 녹색 단체협약을 체결한 상황입니다. 한편, 교육공무직본부는 조합원들이 학생들을 직접 만나는 일을 하다 보니까,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이나 공모전 등 현장에 밀착한 사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연금 단위 같은 경우도, 지금 석탄화력에 연기금이 많이 투자돼 있는데, 앞으로는 탄소배출이 많은 사업에 연기금을 투자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발전과 연금이 공동 대응이 벌어지는 것도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추가로 말씀드리면, 공공운수노조가 목적의식적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것 중 하나가 국제연대예요. 에너지정책 같은 경우는 타 국가의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있고 해서, <에너지민주주의노동조합(TUED: Trade Unions for Energy Democracy)>이라는 에너지 공공성을 강조하는 국제네트워크에 결합해서 연대활동을 많이 펼쳐 왔습니다. 최근에는 칠레에서 있었던 에너지 재공영화 시도라든지 멕시코에서 이번에 입법된 에너지 재공영화법이라든지, 이런 내용들과 관련해서 정보를 교류했고, 또 우리나라 사례도 알리면서 국제연대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남태섭: 전력연맹은 올해 4월 12일 설립 대의원대회를 하고 출범했습니다. 연맹이 출범하게 된 배경 자체가 기후 위기에 대한 위기감, 또는 그에 대한 공동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전력연맹이 내걸고 있는 강령적인 구호는 크게 두 개예요. 하나는 ‘전력에너지 공공성 사수’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입니다. 이런 구호를 강령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건 일단은 지금 상황을 위기감을 가지고 보고 있다는 거고, 또 하나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에너지 전환에 대해서 속도 문제를 제기하진 않겠다는 걸 선포하는 겁니다. 에너지 전환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이지만, 속도 문제를 가지고 접근하기보다는 과정과 목표의 정의로움을 우리의 대응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는 거죠. 

전력연맹의 활동 계획이나 사업 배치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대단히 중요한 방침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일단 전력연맹이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게, 우리는 ‘정의로운 전환 소송’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정부가 탄소중립위원회 관련해서 법으로 보장되는 ‘절차적 정의’를 어긴 부분에 대해서 투쟁을 시작한 겁니다. 또한, ‘실질적인 정의’를 실현한다는 건 고용보장을 위한 제도를 마련한다는 건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수준에서 대화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ILO 특별결의문에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사회적인 담론이 되었는가를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이와 관련된 역할을 전력연맹이 하고자 합니다. 어찌 보면 사실 전력연맹이 겪는 문제는 기업단위 구체적인 임단협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사회적 대화와 노정 협의 방식으로 담론 활동을 해서 쟁취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큰 것 같습니다.


정책참여를 통한 노조의 기후 위기 대응


이주환: 최근에 기후 위기 대응 입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산업단위 조직이 대응해야 할 것도 있고, 아니면 양대 노총의 여러 조직이 연대해서 대응해야 할 것도 있을 텐데요. 이와 관련해서 문제의식이나 공유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남태섭 사무처장님부터 시작해주시죠. 


남태섭: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된 법제도화 과정은 사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시행이 된 게 불과 몇 년이 안 됐습니다. 한편, 이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 등 합당한 절차를 거쳤냐고 하면 사실 그렇지 못하죠. 국제적으로 파리협정이 체결된 후에 우리 국회에서 특별결의하고 바로 입법이 추진됐습니다. 이렇게 절차적 정당성과 관련된 과정은 생략됐지만, 어쨌든 탄소중립 기본법의 내용을 보면 ‘정의로운 전환’을 명시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현실에 잘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속 조치로 최근에 입법이 진행되고 있는 ‘산업 전환법’은 어떤 산업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건지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 뭘 어떻게 지원할 건지가 불명확해졌습니다. 이 법 추진하면서 논의할 때는 주요 내용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담고 구체화하자는 취지가 있었는데, 현재 결과물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죠. 탄소중립 기본법보다 못하다고 봅니다. 거버넌스 측면도 기존의 ‘고용정책심의위원회’에 전문위원을 둔다는 정도로 규정하고 있어서 초기의 문제의식에서 많이 후퇴한 걸로 평가합니다. 

한편, 얼마 전 입법발의된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차라리 솔직하고 직접적입니다. 예전에 탄광 폐쇄할 때 그랬듯이,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면 보령, 태안, 당진 등 해당 지역에 정부가 지원해라, 기금도 마련하고, 이런 식이죠. 어쨌든 지금은 종합적이면서도 세부적인 법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이승철: 산업 전환법이 국회를 통과가 며칠 전입니다. 저는 이로써 ‘기본법 대응’ 단계가 마무리됐다고 봅니다. 이 국면의 결과는 산업 전환법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요컨대 산업 전환법 입법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 치열한 쟁점이 됐지만, 결국에는 법안 내용에 ‘정의로운 전환’과 ‘노사 동수(同數)’라는 단어가 완전하게 빠졌다는 점이 이 국면의 결과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기본법적 대응의 다음 단계는 ‘업종별 구체적인 입법 대안’을 내놓는 거라고 봅니다. 예컨대 발전 부문 같은 경우는 ‘공공재생에너지공사’를 어떻게 만들 건지와 관련된 제도적 대응이 이뤄져야 하겠죠. 재생에너지발전은 석탄화력발전과 완전히 다른 체제를 요구하는데, 그런 인프라 구축을 누가 무슨 재원으로 할 건지, 운영을 할 건지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다툴 시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로 세부 사항에 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기형: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산업 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는데, 애초 노조에서 주장한 취지는 지원법이 아니라 전환법이어야 한다는 거였고, 그건 노동자가 산업 전환 과정에 핵심 이해당사자로서 결합한다는 게 전제였죠. 그런데 법안의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가 의미가 모호하고 명확성이 떨어진다고 쓰면 안 된다는 주장이 <국민의 힘>에서 강하게 제기돼 결국 빠졌습니다. 남태섭 사무처장님께서 말씀하셨듯, 먼저 제정된 탄소중립 기본법에서도 사용된 용어인데 이걸 문제 삼는 건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봅니다. 

그런 한편으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게 지금 ‘미래차특별법(미래자동차 부품산업의 전환촉진 및 생태계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에요. 이건 산업 전환 과정에서 기업들을 지원하는 법안입니다. 산업 전환법은 내용을 두고 논란이 제기됐지만, 이 법안은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에 이견 없이 일사천리로 합의가 돼서 쭉쭉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업을 지원할 때는 문제가 없는데 노동자들을 지원할 때는 시비를 거는 태도, 산업 전환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많이 개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태도가 확인되는 거라고 평가합니다. 


나병호: 다른 분들이 앞에서 말씀해주신 것과 비슷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노동 전환을 지원하는 거였잖아요. 그런데 국회에서 논의 결과 정의로운 전환 개념도 사라지고, 노동자 참여 자체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정책심의위원회에서 고용안정 지원 등의 방안을 다루겠다고 주장하는데, 심의위원회 위원 29명 중에서 노동을 대표하는 건 양대 노총 위원 2명뿐인 상황에서 대표성 있게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또 노동자 참여를 주장한다는 건, 그냥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숙의를 할 수 있는 위원회 등의 구조를 요구한 건데, 이런 요구가 모두 반영이 안 되니 빈껍데기만 남은 법이 제정된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향후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바꿔내야 할 것 같습니다.


오기형: 이와 관련해서 첨언을 좀 하면, 이 법안을 논의할 때 고용부 장관이, 부대의견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 하여튼 회의록을 읽어보면, 노사동수로 시행령을 하겠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국면을 넘어가기 위해서 그냥 둘러댄 것인지 아닌지, 지켜보고 책임을 물을 게 있으면 그렇게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교육과 연대를 통한 노조의 기후 위기 대응 


이주환: 기후 위기 대응은 임단협이나 정책참여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연대나 조합원 의식 전환 그런 측면에서도 필요한 것 같아요. 조합원 교육활동, 시민사회 연대활동 등의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게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기형: 2023년 임단협 대응 관련해서 저희가 기후 위기 대응 요구안을 ‘권고 요구’로 던졌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금속노조의 권고 요구는 이승철 실장님이 말씀하신 공공운수노조의 ‘권장요구안’과 비슷한 겁니다. 지부나 지회에서 살펴보고 괜찮으면 채택하라고 요청을 드리는 건데, 집단교섭을 하는 10여 개 지부 중에서 오직 대전·충북지부만 이걸 받아안은 건 그만큼 조직 내부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거죠. 2021년에도 임단협을 준비하면서 기후 위기 관련 요구를 전체의 ‘통일 요구’로 가져가자는 주장을 했지만, 논의에서 ‘시기상조다, 조합원 동의나 내부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 ‘이건 임단협 요구보다는 사회적 투쟁이나 캠페인 요구로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의 반대 의견들이 계속 제기돼서 중앙교섭에서 하는 노사 공동 선언으로 조정해서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내부 합의 기반을 만드는 게 우선인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에 관해서 ‘조합원 전체 합의’를 근거로 대는 건 핑계 같거든요. 조합원 합의가 아니라 그에 앞서 ‘활동가들의 합의’, 간부들의 합의가 없어서 이렇게 되는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걸 임단협 통일 요구안으로 만들고, 이를 교육내용으로 해서 조합원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강사단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협약안이 금속노조 본조에서 나온 임단협 통일 요구안이 되면, 모든 지부·지회 간부가 그 내용을 이해하고 조합원들에게 설명해야 하거든요. 이 요구안을 대의원대회에서 다루니까요. 저절로 교육이 이뤄지는 효과가 있는 거죠. 지금처럼 정책실만 달라붙어서 하는 게 아니라 전 조직적으로 교육이 이뤄지도록 하고, 이 문제에 관한 대응에 조직의 모든 자원이 전진 배치되도록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우선인 것 같습니다. 

 

이주환: 솔직하게 이야기를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다 비슷할 것 같아요. 노동조합 내에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활동가들이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지만, 전 조직적인 과제로 다뤄지고 있지 못한 상황인 거 같은데요. 그런 부분까지 솔직하게 공유해야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나병호 국장님 말씀 듣겠습니다. 


나병호: 왜 이렇게 현장에서 관심이 없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니까, 제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2018년까지는 금속노련에서 조직 담당을 했는데, 그때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도 전혀 모르고 기후 위기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거든요. 제가 담당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 경험을 현장에 대입해보니까 조합원들이 기후 위기 영향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일자리에 직접 영향을 받는 부품사 노조 간부와 조합원 중심으로 교육이나 워크숍을 최대한 많이 잡아서 이 문제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걸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탄소 다배출 대기업 사업장들도 묶어서 정의로운 전환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반이다 보니까, ‘회사가 다 알아서 할 거야’라는 의식을 바꾸도록 최대한 많이 교육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남태섭: 시민사회 연대와 관련해서 전력연맹 처지에서는 ‘<한국전력(한전)> 적자’라는 이슈가 중요한데요. 다들 아시겠지만 한전 적자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전의 재무구조를 정상화하는 걸 정부가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한전 적자의 심각성이 이슈로 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공기업인 한전이 송배전망 확대·정비나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를 못 해요. 재무구조도 안 좋은데 투자계획 다 철회해라 이런 거죠. 그 자리에 민간투자를 하게 하자 이런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오고 있고요. 결국 ‘한전 적자 프레임’이 활성화되면 정부와 자본 처지에서는 손해 볼 게 없구나, 그냥 두면 전력산업 시장개방과 민영화를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커지겠구나,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환경운동에 계시는 분들도 의견이 나뉩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 전력산업의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건 다들 동의하는데, ‘한전의 독점 상황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어렵다. 기후 위기에 잘 대응하려면 전력산업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라는 논리로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 거죠. 우리는 ‘전력산업 전환을 민영화 방식으로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되돌릴 수 없다. 공공 주도의 재생에너지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거고요. 결국 ‘민영화에 관한 입장’을 기준으로 두고 연대가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승철: 기후 위기 대응 사업을 몇 년 해보니까 매년 일관된 평가가 두 개 나옵니다. 하나는 구호를 넘어서 구체적인 요구를 제출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정책연구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이건 결국 ‘체제 전환’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를 극복하는 체제 전환 활동을 사업장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체제 전환은 큰 틀에서 저항하는 세력들이 연대해서 추진해야 하는 거잖아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공공운수노조 내에서는 여러 단위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사실 자기 영역에만 국한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함께하거나 연결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예컨대 전국의 철로 위에 태양광 패널을 깐다면 상당 수준의 공공 재생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철도와 발전이 따로 가다 보니까 이렇게 결합해서 생각을 잘 못 합니다. 그래서 이런 단위 간 틈새를 극복하고 전체 구조를 바꿔나가는 걸 목표로 하는 연대를 만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할 텐데요. 이걸 내부적으로는 ‘공공성과 노동권의 연결 및 확대 전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구체화시키는 게 앞으로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의 핵심 과제라고 봅니다. 한편,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남태섭 사무처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시장주의적 기후 위기 대응 전략’을 주장하고 있어요. 공공성을 우선하는 처지에서는 동의할 수가 없죠. 연대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체제 전환 운동 혹은 반(反)자본주의 운동이라는 지향에 맞는 연대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정의’ 중심으로 이런 맹아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 누구와 무엇을 중심으로 연대할까


이주환: 어느 정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지금 따로 또 같이 가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두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가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어떻게 합류할 수 있겠다, 이런 부분에 관한 고민을 들려주십시오.


오기형: 기후 위기 대응 논의에서 경제성장과 상품생산을 바라보는 주장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이를테면 운동의 지향을 ‘탈(脫)성장’으로 할 건지 아니면 ‘녹색성장’이나 ‘대안적 성장’으로 할 건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보면 확대 재생산을 멈추지 않고는 기후 위기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제조업의 생산 감축’ 이슈가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이 이슈가 앞세워지면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가 깨질 것을 우려해서 뒤로 밀려 있는 거죠. 어쨌든 연대하는 세력들이 어디까지 합의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그 기반을 넓혀가면서, 결국에는 합의하기 어려운 이슈에 대해서도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철: 올해 진행된 ‘기후정의 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슈로 된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서 논쟁이 벌어졌어요. 노동운동과 급진적인 기후운동 진영에서는 ‘국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맞다. 시민들에게 요금 인상 부담을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지만, 전통적인 환경운동 진영에서는 ‘정부든 개인이든 전기를 비싸게 해야 안 쓰니까 무조건 요금을 올려야 한다’라고 주장했죠. 결국 맞붙어서 화해하지 못한 채 대회를 진행했고요. 일부 환경운동 단체들은 조직위원회에서 나갔습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앞으로 환경운동과 기후운동, 그리고 노동운동 등이 만나는 연결고리에는 ‘체제 전환’이라는 구호가 담길 수밖에 없다고 봐요. 체제 전환이라고 인식하는 바가 다르지만, 서로 조정해가면서 연대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봅니다. 


나병호: 제조업 현장에서는 생산과정에 전기의 안정적인 수급 혹은 값싼 수급 이런 것도 중요하게 제기되거든요. 현재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전 확대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그렇게 해서 전기를 싸게 쓰면 좋겠다는 노골적인 인식도 있었어요. 그런 인식에 기반한 요구를 노조에서 제기하면 당연히 기후운동 진영과는 접점을 찾기가 어렵겠죠. 그렇지만 전국 수준으로 조직된 단위가 있으니까, 이 단위에서 현장의 요구를 조정하면서 기후운동 쪽하고 접점을 찾아가면서 함께할 수 있을 것들을 해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승철: 저는 이런 부분에서 노동조합이 태도를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예컨대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해서 원자력을 대안으로 보는 쪽은 기후운동 진영에 아무도 없어요. 공공운수노조도 이러한 주장을 고수하니까 원자력발전 사업장 두 개가 탈퇴했거든요. 이런 걸 감수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장의 요구를 받아안는다는 명분으로 모호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겁니다. 연대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외치는 구호와 조직의 운영 방침을 일치시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태섭: 전력연맹은 전력산업 사업장을 모두 포괄하고, 원자력 사업장 노동조합도 가입해 있습니다. 저는 원전 문제 관련해서 시간을 두고 변화를 조율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전력연맹은 에너지 전환과 정의로운 전환을 강령 수준으로 내걸고 있는데, 2018년경에는 전력산업 노동 현장에 가서 그런 얘길 하면 미쳤다고 했어요.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이런저런 소통과 경험, 교육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동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거든요. 현 정부가 원전이 유지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헛된 꿈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으면, 원자력 사업장 노조도 지금과 다른 태도를 보였을 거라고 봅니다. 어쨌든 현실에는 아직 원자력이라는 에너지가 존재하고 그걸 만드는 노동자들이 있는 상황이니, 이를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방향으로 포괄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정리하자면 우리는 지금 어떤 체제로 갈지 모르는 그런 과도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과도기에는 미래로 가는 경로는 하나가 아니라 중첩되면서 분리된 여러 개로 만들어지는 거죠. 지금 진행되는 상호작용 패턴들이 미래의 모습을 만들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노조의 기후 위기 대응 활성화를 위한 조직혁신


이주환: 조직 내부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게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는 더더욱 새로운 거잖아요. 노조 처지에서는 시작한 지 불과 5년도 안 된 사업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직 내부에서 여기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혁신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와 관련된 경험담을 나눠주시면 서로에게 도움 될 것 같습니다. 혹은 내가 속한 산별 조직에서 기후 위기와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줬던 것들에 관해서 의견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기형: 금속노조 맥락에서 말씀드리면 기후 위기 대응을 ‘교섭 의제’로 삼는 거죠. 그게 내부 논의가 활성화되는 데 가장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현장 간부들로 교섭 의제인 기후 위기 대응을 조합원에게 교육하는 강사단을 만드는 거고요. 간부들이 노조의 요구안을 다른 조합원에게 가르치다 보면 그게 결국 자기 생각으로 재구성되는 거잖아요. 빨리 강사단을 양성해서 현장 교육을 추진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승철: 다른 분들 말씀에 동의합니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간부와 조합원에게 지금 자기가 하는 실천과 투쟁이 사실은 기후 위기 대응 투쟁이라는 걸 인식시키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민영화 싸움이라든지, 혹서기·혹한기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라든지, 인력 충원 요구라든지, 이런 모든 게 사실은 다 기후 위기와 연관되어 있는데, 정작 그걸 하는 사람 중에서 상당수는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자신이 참여하는 활동이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됐다고 인식하는 순간, 나와 같은 일을 하거나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연대의 기반을 넓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병호: 그동안 기후 위기 관련한 일자리 문제를 큰 틀에서만 이야기하다 보니까, 조합원들에게 잘 닿지 않고, 저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장님 코끼리 만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올해 하반기에는 자동차 부품사 실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게 마무리되면 그걸 바탕으로 우선은 자동차 부품사부터 시작하지만, 어쨌든 거기서부터 교육을 강화하고, 이러한 흐름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남태섭: 앞에서 하신 말씀에 다 동의하고 따로 할 얘기는 없습니다. 결국에는 교육이죠. 이게 나와 어떻게 연결된 문제인가를 얼마만큼 잘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령과 부서의 재편이 필요할까


이주환: 네 분이 공통으로 강조하신 게 교육, 그러니까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조직 내에 제대로 확산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기후 위기 대응 관련 지식과 정보, 그리고 내부 합의를 바탕으로 조직구조나 규범 등을 혁신해 가는 과정도 필요할 텐데요. 기후 위기 대응을 잘하려면 어떤 조직혁신이 필요할까요? 예컨대 강령이나 규약·규정을 바꿔야 할까요? 혹은 새로운 부서를 구축해야 할까요? 


오기형: 강령의 변화는 필요한 것 같아요. 강령에 들어갈 몇 줄 내용이라는 결과보다, 강령에 기후 위기 관련 내용을 추가하기 위한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토론을 조직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부서 문제는 고민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드는 생각으로는 그냥 조직 전체의 사업계획에서 목표를 정하고, 그와 관련된 세부 사항을 각 부서가 수행하는 방식이 나을 거 같습니다. 새로운 부서를 만들고 자원을 할당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이승철: 공공운수노조는 2021년에 기후 위기 대응 관련 특별위원회를 만들었어요. 특별위원회는 기동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죠. 현장에서 관심 있는 단위를 특위로 쫙 끌어들여서 하고 싶은 사업 하면서 가면 되는데, 또 한계가 딱 거기까지만 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특위 경계 바깥으로 다른 단위들로 사업을 확산하는 건 다른 문제인 거죠. 그런 한편으로, 저는 ‘기후 위기 대응’이 여러 사업 의제 중 하나인 건가부터 의문입니다. 요구와 투쟁의 대상이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하고, 나아가 체제 전환까지 고려해야 하는 거대한 문제라, 무슨 부서를 만들어서 대응하기보다는 전체 조직의 작동 원리와 문화를 기후 위기의 시대에 맞춰야 하는 게 맞는 접근 방식이라고 봅니다.     


남태섭: 전력연맹이야 그 자체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전력연맹 처지에서는 조직과 자원을 총동원해서 대응할 문제인 거죠. 별도로 뭘 한다기보다는. 


나병호: 저는 강령 변화라든가, 전담으로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이나 부서 배정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금속노련은 중앙 실무자가 10명가량밖에 안 되다 보니까 이 의제와 관련된 사업을 누가 전담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인식한다면 전담할 수 있는 사람을 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은 무엇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가


이주환: 지금까지 기후 위기로 인한 문제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 실천을 논의했습니다. 어떤 복잡한 문제는 은유법이나 비유법으로 설명하면 더 쉽게 이해되기도 하잖아요. 혹시 기후 위기라는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그렇게 표현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태섭: 어디 교육을 가면 저는 영화 ≪헤어질 결심≫ 얘기를 하거든요.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에게 탄소중립이란 ‘헤어질 결심’입니다. 석탄과 헤어져야 하는 거는 알고 있지만, 이별하는 과정이 정의롭지 못하거나 갈등이 커지면 살인이 벌어지고 그런 거거든요.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갈등하지 않고 잘 이별하는 방법과 헤어질 결심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나병호: 식상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뜨거운 물 속에 들어있는 개구리’ 같아요. 이 물이 지금 뜨거운지 안 뜨거운지 잘 모르는 개구리도 있고, 뜨거운 걸 알면서도 내가 이 안에 있을 때 동안은 100도에 안 다다를 거야, 나는 죽지 않을 거야, 라는 개구리도 있는 상황인 것 같아서. 그 물에서 뛰쳐나오든, 끓이는 걸 멈추든 그런 노력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오기형: 결국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문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 혹은 미래세대와 현세대의 연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사랑하게 될 사람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랑도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진지하게 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철: 저는 1945년 8월 14일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희 할머니 살아계실 때 해방이 어땠냐고 여쭤보니까, 8월 15일 광복 전날까지 해방될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음날 해방이 된 거예요. 일본군이 갑자기 출근 안 하고. 그런데 준비가 안 돼 있다 보니까. 미군정으로 넘어가고 전쟁을 치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복잡한 과정들을 겪었잖아요. 어쩌면 지금이 그 상황일 수 있겠다, ‘8월 14일’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체제 전환이라는 구호도 나오고 구체적인 위기도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대비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하는 시점 아닌가 싶어요. 새롭게 무언가 만들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잡은 방향대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모색하며 실천해야 혼란스럽지 않은 ‘해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환: 오늘 다양한 주제로 의미 있는 얘기들을 많이 나눴습니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아이디어가 늘어나고 지식이 전파되고 그러면서, 노동운동 전체적으로도 인식과 실천이 바뀌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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