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조직화란 무엇인가? 노사관계 밖에서 제도적 보호를 못 받고 있는 취약조건의 노동자들까지 조직적으로 포괄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자신의 경계를 확대하고자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다양한 활동이다. 조직화의 활성화는 동원력과 영향력, 그리고 정당성에서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오늘날 노동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상당수 노동조합들이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명제다. 왜 그럴까? 나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조직화를 위해 필요한 사명감이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옛 습관을 무심결에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빗대서 말하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지워내야 한다. 주제넘게 두어 가지 훈수를 둔다.
첫째,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 가까운” 관계도 사랑이다.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고 배제하면 안 된다. 두 사람 사이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배타적 몰입만이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를 성숙하게 수용할 수 있다. 조직화도 마찬가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 폭발적 조직화 경험이라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기업별노조의 건설과 단체협약의 체결’을 조직화의 일반적 원형으로서 우리 노동운동의 집단적 기억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는 ‘강한 조직화 모형’의 한 가지 형태일 뿐이다. 이를테면 ‘기업’이라는 특정한 국지적 영역에, ‘단체협약’이라는 노동법을 상회하는 강력한 보호 규범의 적용을 실현한 것이다. 노동시장의 분절 및 양극화, 생산구조의 수직계열화와 세계화, 그리고 사용자의 전략적 대응이 훨씬 강화된 오늘날, 이는 일부에서만 실현 가능하며 효과를 발휘하는 상대적으로 낡은 조직화 모형이 됐다. 지불능력이 약하고 노동자 숙련을 별로 필요치 않는, 그러므로 조직화를 더욱 필요로 하는 중소영세기업 상황에서는 특히 더 어렵다.
조직화 영역은, 기업만이 아니라, 지역과 산업 등 보다 포괄적인 범위로 규정될 수 있다. 또한 노동권의 보호는 강제력을 가진 경성규범(hard law)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간 자율적 합의나 지방자치단체의 개선 의지 등에 기초한 연성규범(soft law)을 통해서도 추진될 수 있다. 나아가 노동조합 조직의 경계 확대는 ‘조합원 수의 직접적 증가 정도’뿐만 아니라, 그 노동조합이 주도한 ‘노동 보호 규범의 사회적 확산 정도’를 통해서도 측정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노동조합 조직화의 경계는 보다 포괄적이고 유연하게 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산업 차원의 발암물질 사용 규제를 위한 노사합의, 혹은 무료노동 규제를 위한 지역사회 노정합의, 노조가 주도적으로 요구하여 추진된 지방자치단체 노동권보호단체 설립 등은 조직화 활동의 성과가 아닌가? 조합원 수의 증가로 이어지지 못했더라도, 이러한 연성규범의 정립이 노사관계 밖 노동자들에게까지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조직화의 성과로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약한 조직화 모형’까지도 사업계획에 수용할 수 있을 때, 우리 노동운동의 활동이 보다 풍부하고 창의적으로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 시절의 “낭만적 사랑”에 목숨 걸면 안 된다. 사랑은 밥 먹여 주지 않는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방해자와 방관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의 일부로 존재한다. 연인관계가 성숙하려면 그 관계들에 함께 지혜롭게 부딪쳐 가야 한다. 조직화도 마찬가지다. 조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추진하는 노동운동 활동가와 조직화 대상 노동자 사이 ‘끈끈한 신뢰와 교감의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는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이 아니다. 활동가와 노동자가 만들어낸 내밀한 관계는 그 자체로는 매우 취약한 것이다. 이는 외부의 노동운동조직,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사용자(단체) 등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효과적으로 조응했을 때만 안정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사업장을 조직적으로 장악하는 데 성공한 신규 노동조합이 ‘생산시설 이전 위협’ 같은 탈장소적인 사용자 공세에 쉽게 무너지는 경우를 본다. 조직력이 실효를 발휘하는 공간적 범위는 생각보다 협소하다.
노동조합은 ‘중간조직(intermediary organizations)’이다. 즉, 노동조합 조직은 조합원, 사용자, 정부, 시민단체 등 다양한 행위자들과 관계구조를 형성하며, 이러한 관계망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다원적 권력자원들을 기초로 움직인다. 때문에 노동조합 조직화 성과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단결에 기초한 조직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의 전략적 공세를 무력화할 수 있도록 생산과정에 대한 지배력과 경영상황에 대한 정보력을 확보해야 하고, ‘정부’의 정책담론에 대응하고 ‘시민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필요하다. 요컨대, 조직화를 위해 필요한 역량에 대해 보다 다원적이고 정교한 인식이 필요하다. 정보의 체계적 수집, 지방자치단체의 제도적 지원, 시민사회단체와 호혜적 연대 없이, 조직력만으로 산업단지 중소기업 조직화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역량들, 특히 정보력은 조직력과 적용 범위와 효과에 있어 대체 가능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조직화 역량을 육성하기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을 조직 내에 집중적으로 구축할 때, 우리 노동운동은 보다 실질적인 조직화 성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도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을 훈수랍시고 떠들었을 것이다. 직접 경험이 많은 사람보다는 어설프게 주어들은 게 많은 사람이 상황 모르고 쉽게 이야기하는 법이다. 무례했거나 지루했다면 양해 구한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해서 하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정의와 평등에 대한 열망과 같은 ‘인류애’가 가슴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지 않다면, 노동조합 조직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장미 대선”이 확정됐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장미 꽃잎 흩날릴 5월 9일, 4천만의 유권자들이 정치권력 교체에 나설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시킨 촛불의 영롱함을 간직한 유권자들은 정의롭고 평등한 미래를 논의하는 공론장을 형성하고 활성화시킬 것이다. 그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질, “위대한 사랑꾼”으로서 노동조합 조직화 활동가들의 분투가 건승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