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2000년대 영국 노동운동의 조직화 활동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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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돋보기] 2000년대 영국 노동운동의 조직화 활동 평가

이주환 0 3,186 2020.06.08 09:00

2000년대 영국 노동운동의 조직화 활동 평가1)

-1) 이 글은 아래 논문을 요약 번역한 것입니다.

Simms, M., Holgate, J., & Heery, E. (2013). Evaluating Union Organising in the United Kingdom. In Warsaw Forum of Economic Sociology (Vol. 4, No. 1 (7), pp. 53-76). Szkoła Główna Handlowa w Warszawie.

 

요약: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들어가며

토니 블레어(Tony Blair)가 이끈 신노동당 정부가 1990년대 중반 사업장 다수 노동자가 원할 때는 사용자가 노조를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도입한 이래, 영국노총(TUC)가 조직화아카데미를 만드는 등 영국에서 노동조합 조직화를 위한 실천과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본 논문은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여, 지난 10년간의 영국 조직화 활동을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 논문의 핵심 주장은 중요한 성공과 혁신 사례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조직화 활동의 성과를 낙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노동운동 부활의 실제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노동조합 조직화 활동에 내재한 긴장이 조직화의 효과성을 제약하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필자들은 조직화를 평가함에 있어, 첫째, 노조가 만들어지고 단체협약이 체결됐는지 그 자체만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둘째, 그러한 신규 노조의 단체교섭이 해당 부문에서 노조의 강화로 귀결되었는지, 그로 인해 전체 사회에서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강화됐는지 하는 측면에서 평가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자의 방식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사상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며, 노조가 설정한 목표를 고려하고 조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지향하는 후자의 방식을 취한다. 이를 통해 조직화 성과의 측정 지표로서, △조합원 증가 △단체협약 체결 △저대표된 노동자의 조직화 △새로운 산업의 조직화 △노동자의 자기조직화와 민주주의 등 다양한 영역을 고려하고자 한다.
 
노조 조합원 수
 
1990년대 후반 호주노총 조직화센터의 대표 마이클 크로스비(Michael Crosby)는 영국과 호주에서 조합원 쇠퇴 추세로 인해 노조의 비용 지출이 조합비 수입을 역전하는 순간을 나타낸 이른바 “무서운 그래프(scary graph)”를 제시하여 유명해졌다. 조합원 감소는 노조의 예산 부족 문제를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의 정당성과 동원력(사용자에 대한 강제력)을 약화시킨다. 일차적으로 영국노총의 조직화 활동은 이러한 인식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직화 캠페인을 통해 영국의 조합원 수는 약간 증가했다. 조직화아카데미 활동가 1명은 평균적으로 1년에 약 1천 명의 조합원을 모집했으며, 이는 그들의 임금을 충당하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그러나 개별 사업장이나 노조의 조합원 수 규모는 힘을 측정하기에 충분한 지표가 아니다. 둘째,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지난 10년간 영국 조합원 수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이는 위기의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테면, △1997년 신노동당 정부 아래서 취해진 노조근대화기금과 노조학습기금의 설치, 저임금위원회와 최저임금위원회 노조 참여 등의 친노동정책 강화라는 배경을 고려했을 때, △1997년부터 2008년 재정위기 때까지 영국 노동자 수가 상당 부분 증가했음을 고려했을 때, 이는 낙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노총의 활발한 조직화활동에도 불구하고, 노조 조합원 수는 줄지 않았지만, 조직률은 감소했다.     
 
단체협약 적용
 
노동조합은 조직화 활동을 통해 첫째,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 둘째, 산업 또는 업종 수준에서 단체교섭 체결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을 추구한다. 지난 10년간 교섭권 승인 제도의 개선에도 사업장 수준에서 단체협약의 체결은 기대만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지난 10년간 소위 “조직화로의 전환”에도 단체교섭의 패턴에서 변화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갈(Gall 2007)이 추정 따르면, 사업장 수준에서 연간 신규 노조의 교섭권 승인(recognition) 규모는, 신노동당 정부의 노동법 개혁의 영향 아래 있던 1999년부터 2001년 사이(365건, 585건, 625건) 급격히 증가하여 정점을 찍고, 이후 계속 감소하여 2005년 131건을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존 노조의 교섭권 취소 건수는 2000년 이래 10건 미만으로, 일단 절대적 수준에서 단체협약 적용률은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법적인 단체교섭권 승인 신청의 절반에서 4분의 3가량은 제조업, 운수업, 통신업 등이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이 강한 산업들이다. 
노조가 없는 산업에서 조직화 시도는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렇듯 이미 조직된 부문을 중심으로 조직화 캠페인을 진행하여 단체협약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다. 나아가 레러(Lerner)는 산업 내 다수를 조직하는 것이 노조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이 ‘바람직한 전략’이라 주장하기도 했다(Crosby 2005). 그러나 크로스비(Crosby 2005)는 이에 대해, ‘(조직률 증대를 통한)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과 ‘(노조투표 유권자 확보를 통한) 자신의 조직에 대한 통제권’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요컨대 조직화, 단체교섭, 노조민주주의 간에는 복합적이고 각축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한편, 체결된 단체교섭의 내용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보면, 최근 영국 노조의 단체협약은 임금, 노동시간, 휴일, 훈련 등 핵심 이슈들만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평등한 기회, 연금, 훈련 등 확장적인 이슈들은 잘 다루지 않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이는 ‘조직화’와 ‘단체교섭’의 분리 징후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으므로 주목을 요한다.  
 
저대표된 노동자집단과 산업부문을 조직화하기
 
노조에 의해 저대표되는 노동자들은 산업, 성별, 인종 등에 걸쳐 다양한 맥락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실제로 영국 노조가 조직화 목표로 선정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이주노동자’밖에 없었다. 이는 유럽통합의 강화로 인한 노동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사업들로는 영국일반노동조합(GMB)의 이주노동자지부 설치, 영국 최대 규모 노조인 유나이트(Unite)의 “청소부에게 정의를” 캠페인,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 사용자에 제공되는 <Union learn> 프로젝트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의 성과는 낙관적이기보다는 비관적이다.
지난 10년간 조직화 시도는 이미 노조가 존재하는 부문에서 주로 이뤄졌다. 상당수 노조 정책담당자들은 이러한 “공고화(consolidation)” 또는 “촘촘한 확대(close expansion)”가, 사용자 저항 대응의 문제, 조합원 간 유사성의 문제 등을 고려하면, 비용편익 측면에서 최대화를 이룰 있다면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의 효과성이나 효율성과는 별개로, 영국의 조직률은 1999년 36%에서 2012년 32%로 완만하게 감소했다. 한편, 공고화 또는 촘촘한 확대 전략과는 결이 다른 예외적인 실천들도 다음과 같이 존재했다. 
① 유나이트(Unite)의 일반노조 전략: 저가항공업, 백색고기 가공업 등 노동권 보장과 노조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특정 업종을 선정한 후, 해당 부문을 주도하는 대기업 사용자에게 압력을 가하고, 중소기업 사용자들에게 협약 인정을 확산시키기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② 상대적으로 부유한 소규모노조의 사례 ⑴(철강노조연맹 ISTC):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과거 철강공장에서 일했으나 이제는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과거 ISTC의 조합원이었던]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사는 지역공동체를 조직화 대상으로 선정하여 사업을 진행했다. ISTC는 2004년 몇몇 소규모노조를 통합하여 이름 자체를 Community로 변경하고 상기 전략에 따라 사업을 추진했으나, 2010년 이러한 활동이 노조 부흥에 대한 이바지했는가에 대한 논의 끝에 활동을 중단했다.
 
③ 상대적으로 부유한 소규모노조의 사례 ⑵( 제지·출판·미디어노조 GPMU) GPMU도 ISTC와 유사한 전략을 추진했다. 예컨대 이들은 소규모 인쇄업체들이 있는 산업단지 전체를 조직화 대상으로 하는 등, 업종을 넘어서 조직화 활동을 추진했다. 이 사업의 결과 교섭권 승인을 획득하지 못했음에도 GPMU에 조합원들이 지속해서 가입하는 등 ISTC보다는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조합원 성장세는 미미했다. GPMU는 2004년 Amicus(이후 Unite)와 합병했다.  
 
④ 공공부문 민영화로 인한 공공서비스노조(PCS) 사례: 공공부문 민영화가 지속됨에 따라 공공부문 노동자만을 조직화 대상으로 했던 PCS의 조합원 상당수가 민간부문에 속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이들은 새로운 부문 노동자들을 대표할 기회를 갖게 됐다. 

 

노동자 자기조직화와 노동조합 민주주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와 이슈를 다루는 단체행동에 참여하도록 북돋기 위해서는 ‘조합원 행동주의(membership activism)’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조직화와 관련해 핵심적인 명제로 여겨졌다. 이러한 명제에 기초한 동원 접근(Kelly 1998)은 ‘노조상급단체 유급간부’보다는 ‘노동현장 핵심노동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필자들은 이러한 입장이 일면적이며 노조 민주주의(union democracy)에 대한 논쟁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작업장 수준의 참여’가 ‘상급노동조합 대표조직 참여’와 구별되어야 하고 양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과 같은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직화 캠페인들의 양상과 결과는 매우 다양하다. 이는 ‘조합원 행동주의 활성화’와 ‘조직자원의 합리적 조정’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조직화 활동 결과로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노조주의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노동현장 행동주의와 상급단체 조정력 모두 요구된다. 한편, 양자의 상호작용은 긴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는 조직화의 역설(the paradox of organizing)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 내 전문가(간부, 조직가, 정책담당자)’ 등은 이러한 조직화의 역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며, 노조의 의사결정구조 등 ‘내부민주주의 조직구조’가 조직화의 역설 관리에 영향을 미친다. ‘작업장 활동가(workplace activists)’와 ‘노조 전문가(union professionals)’의 긴밀한 협력은 ‘노동자 자기조직화(worker self-organization)’, 즉 지속 가능한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있어 핵심 요소다.    
둘째,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노조상급단체의 중앙 집중적 조정력과, 작업장 수준에서 의사결정에 조합원들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열망 사이에서 긴장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조직화 활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조합원들의 민주적 참여를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상당수 노조 간부들과 조직가들이 조합원들이 작업장 단위 민주주의 구조 참여에 시큰둥한 것 때문에 실망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한, 노조 전문가들이 신규 노조의 작업장 활동가들에게 이러저러한 역할을 부여하려다가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보게 된다. 노조 설립 및 단체협약 체결 이전에 요구되는 것과 노조 운영이 안정화된 이후에 요구되는 역할과 기술이 상이하다는 점은 이러한 긴장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간부와 조직가는 조합원들의 참여 증대를 시도한다.
 
사회운동 노조주의
 
사회운동 노조주의(Clawson 2003)는 조직화에 대한 논쟁을 확장시키는 형식으로 제기됐다. 사회운동 노조주의와 관련된 논의는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을 노동권 개선을 위한 다른 사회정의 캠페인과 연결 지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또한, 노조가 작업장, 산업과 업종을 넘어서는 노동자의 삶에 유의미한 것이 되길 요구한다.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GPMU와 ISTC 등에서 채택했던] ‘커뮤니티 노조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긴 하지만, [또한 영국 노동운동의 전통에서는 유구한 역사적 사례들이 있지만] 최근 영국에는 이와 관련된 사례가 없다. 단체교섭 중심주의, 노동당과 노조운동의 분리, 혁명보다는 점진적 개혁 우선주의 등으로 인해 영국 노조는 폭넓은 커뮤니티 활동보다는 작업장 교섭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조직화에 대한 투자와 관심 역시 작업장 수준의 노동조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필자들은 이를 노조의 편익에 대한 [작업장 활동가들과 노조 전문가들의] 상상력(imagination)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평가한다.     
 
결론
 
지난 10여 년간의 조직화 활동의 결과가 영국 노조 부활에 미친 영향은 낙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필자들은 이에 대해 상당 부분 조직화 활동이 노동자 자기조직화 혹은 사회운동 노조주의 등 보다 포괄적이고 정치적인 목적보다는, 조합원 수 증가나 단체협약 체결 등 협소한 목표에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조합원 수는 정체했고, 단체협약은 전반적으로 후퇴했다. 필자들의 결론은, 2010년 영국 노동운동은, 그 사이 제도적 정치적으로 우호적인 환경 변화가 있었음에도, 1997년 노동운동보다 약한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전 지구적으로 자본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좀 더 장기적이고 국제적인 안목, 정치적 요령 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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