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선진국이 된 한국, 뒤처진 노동인권은 왜 외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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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선진국이 된 한국, 뒤처진 노동인권은 왜 외면하는가

신재열 1,993 2023.11.20 09:00

[연구소의 창] 선진국이 된 한국, 뒤처진 노동인권은 왜 외면하는가



작성: 신재열 히로시마대학교 인간사회과학연구과 부교수

rec419@hanmail.net 



2015년 4월 일본에 유학을 온 후 약 9년여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에 전임교원으로 취업하였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때로는 기뻐하였고 때로는 분노하였다. 하지만 노동을 공부하였고 그것으로 교편을 잡고 연구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가장 기뻤던 일도 아니고 가장 분노하였던 일도 아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경험들이다.

2015년 박사과정 공부를 하러 대학교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2인 1조로 이루어지는 제초 작업이었다. 한 명의 작업자가 기계로 풀을 깎고 있고 다른 한 명의 작업자가 그물을 들고 이동하면서 풀이나 흙이 다른 곳으로 튀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겨우 제초 작업 같은 걸 ‘2인 1조’로 한다니!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이런 모습을 떠올려 볼 수가 없었다. 위험한 작업도 혼자서 하는 판에 풀을 깎는데 2인 1조라니! 혹시나 내가 본 게 특별한 것인가 하여 몇 달간 유심히 관찰하였다. 모든 제초 작업은 2인 1조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며칠 전에도 2인 1조로 이루어지는 제초 작업을 목격했다.


사소한 것부터 차이가 나는 일본과 한국의 산업안전 


산업안전과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은 일본에 범접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별다른 안전 조치 없이 하는 작업도 일본에서는 2인 1조가 기본인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열사병에 관한 규정도 매우 상세하게 정해져 있고 상당히 잘 지키는 편이다. 대규모 공사 현장에서는 건설 노동자를 위한 대형 차광막이 완비되어 있고, 그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임시 화장실도 충분히 만들어 두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한가? 공사 현장에 차광막은커녕 화장실도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매우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도 혼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당연히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제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 소식에 감정이 무뎌질 정도이다. 한편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위를 찬찬히 살펴보면 어이가 없다. 너무나 유명한 2016년 구의역 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는 물론이고, 올해 6월 23일에 발생한 오티스엘리베이터의 추락사고까지, 한결같이 2인 1조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작업임에도 단독으로 작업을 하다가 발생한 사고다. 오티스엘리베이터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측에서는 심지어 ‘2인 1조의 작업이 필요 없다’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혼자 작업하기 힘드니 도와달라’는 돌아가신 노동자의 문자 메시지가 공허하게 울리고 있을 뿐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뭐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이윤!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우리에게 돈이란 무엇이고 이윤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좇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나쁜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윤이 누군가의 피와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결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노동인권이 빠진 자유민주주의는 허상


2022년 3월 9일에 이루어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이념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인권이지 않을까?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고 이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정권에서 정작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왜일까?

최근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경영환경이 나빠져서 더 이상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뭔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법률이 제정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온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되묻고 싶다. 정말로 노동자 권리와 인권을 보장해서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었느냐고.

2022년 5월 <유엔통계국(UNSD)>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한국은 명실상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과 태도와 법률은 어떠한가? 사실 한국보다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선진국은 없다. 오히려 한국이 선진국에 걸맞지 않은 제도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제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선진국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정비할 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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