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왜 지금 정년 연장이 필요한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성: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왜 지금 정년 연장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공공노련 노보에 칼럼 쓰기를 청탁받았다. 거절하지 않고 수용했다. 이는 “지금 조건을 봤을 때 정년 연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이러저러한 합당한 이유가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싶다는 의미일 터다. 맞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고령자들이 일할 권리를 더 많이 누려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기반이 충분하게 갖춰져 있지 못하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풀어서 이야기하겠다.
고령자의 일할 권리
우리가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이까지 일해야 할까? 그렇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저출생 고령화 추세가 가져오는 노동 공급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많이들 접했을 것이다. 국민경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의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할 텐데, 많은 기업이 현재 암묵적 표준으로 삼고 있는 ‘비장애인 청·장년 남성’의 수가 저출생으로 줄고 있고 앞으로는 더 줄어들 것이다. 국민경제의 작동이 원활해야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문화, 복지, 평화 등에서도 괜찮은 삶을 더욱 쉽게 누릴 수 있다. 국가 수준 경제가 앞으로도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성, 고령자, 장애인 등이 더 많이 취업하는 게 꼭 필요하다.
정년 연장은 특히 고령자의 취업시장 참여 활성화와 안정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루라도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취업자 고령화는 대비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 이미 들이닥친 현실이기 때문이다. 2022년 상반기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했을 때 50대 이상 취업자는 1,244만 9천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44.4%가량이다. 50대는 661만 7천 명(23.6%)이고 60대 이상은 583만 2천 명(20.8%)이다. 같은 자료에서 2013년 상반기와 비교해 50대는 92만 5천 명(1.1%포인트), 60대 이상은 249만 3천 명(7.6%포인트)이 증가했다.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도 50대 이상이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7%포인트 늘어났다. 정년 연장 등의 개선을 통해 이러한 현실 추세와 노동법제도가 적합하게 매칭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인간이 존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노동을 통해 얻는 건 소득뿐만이 아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사회적 인정, 그리고 의미 있는 타인들과의 관계도 상당 부분 일을 함으로써 성취된다. 노쇠해진다고 해서 혹은 연금 등으로 소득이 보장된다고 해서 ‘존재의 의미’와 ‘인간관계’가 불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이 노인 자살률과 빈곤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나이를 먹더라도 일을 통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의미와 인간관계를 발전시켜가도록 하는 건 사회통합과 직결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익숙하거나 잘하는 일에 오랫동안 임하도록 하는 것(정년 연장), 그리고 노쇠해진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하는 것(적합 직무 개발) 등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고 해결해가야 할 과제다.
이와 관련해서 인상 깊은 경험이 있다. 몇 년 전 ‘청소년 근로조건 지킴이’ 공공근로를 하는 은퇴자들을 면접한 적이 있다. 주거지 근처 상점을 방문해 아르바이트 하는 청소년을 만나서 근로기준법 내용을 안내하고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이들의 과업이었다. 면접조사 대상 중에서 70대 중반으로 군대 고위 장교로 전역한 분이 있었다. 넉넉한 연금 생활자였다. 이분은 자신이 만난 청소년의 근로계약서를 확인하기 위해서 프랜차이즈 본사로 직접 찾아갈 정도로 지킴이 일에 적극적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그만두면서, 사실 나는 죽었어요. …… 청소년이라는 게 우리 국가의 미래잖아요. …… 그래서 하는 거죠. 돈은 필요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국가는 나이 든 사람들이 이러한 근원적 욕구를 적합한 일을 통해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이 들어도 적절하게 일할 권리가 사회적으로 보장되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할 게 너무나도 많다. 법제도적인 정년 연장 추진은 그 첫걸음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처지에서는 정년 연장‘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조합원 이해관계 실현에만 충실한 이기적 요구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는 종합적인 활동 중 하나로서 정년 연장을 요구해야 한다. 요컨대 노동운동은 노인, 여성, 장애인 등 기업이 상정하는 암묵적인 표준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원하는 만큼 적합한 방식으로 임할 수 있도록 사회와 기업을 변화시키는 주체여야 하고, 정년 연장은 그러한 전망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적 목표 중 하나여야 한다. 노동운동은 소수자의 고용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법제도를 바꾸고, 노동과정을 체계적으로 재설계하며, 조직문화 혹은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는 활동을 벌이거나 그와 관련된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조합운동이 고려할 만한 활동 방향을 몇 가지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의 다양한 고용정책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컨대 올해 초에 「제4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2023~2027)」이 발표됐다. 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하면서 이전보다는 강화됐지만, 여전히 충분한 자원 투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과 기관에서 인사관리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감독하고 개입해야 한다. DEI는 이미 글로벌한 기준이 됐다. 노동운동이 사회권 실현에서 기업보다 뒤처져서는 안 될 것이다. 기업이 설정한 형식적 기준을 바탕으로 사회권이 실질적으로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그 연장선상에서 노동현장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소수자의 고용은 결국 조직문화, 일하는 문화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 사이의 문제다.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이다.
나이 먹고서도 일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일할 권리’가 아니라 ‘일로부터 자유’가 인권에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정도와 균형이 문제라고 답할 것이다. 일에 종속된 삶, 일에서 배제된 삶은 둘 다 존엄하지 않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일할 권리와 자유가 얼마나 균형 있게 보장되는가가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그러한 권리와 자유가 실현되도록 하는 데 책임이 있다.
※ 이 글은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의 노보 『공공노동자』 제13호(2023년 10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