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세계노동절과 코로나19: 위험의 불평등한 재분배와 당면 과제

연구소의창

[연구소의 창] 세계노동절과 코로나19: 위험의 불평등한 재분배와 당면 과제

이원보 3,569 2021.05.10 09:00

작성자: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세계노동절이 131주년을 맞았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135년 전인 1886년 5월 1일에 일어났다. 이날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항거하여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총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하루는 24시간이라네. 8시간은 잠자고 8시간은 공부하고 8시간은 일하고 싶네.” 미국 자본가들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총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법원은 노동운동가들에게 사형과 감옥형을 선고했다. 


미국 노동자들이 영웅적 투쟁을 한 이날을, 제2인터내셔널은 1889년 파리 창립대회에서 세계노동자들의 날로 정했고 1890년 5월 1일 세계적인 메이데이 행사가 열렸다. 이후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미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노동절 날짜를 비틀어 정했지만, 역사적인 의의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도 1923년 처음 시위를 벌인 이후 식민지권력에 의해 탄압을 받았으나, 해방 후 다시 부활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이 근로자의 날로 3월 10일을 강요했다가, 민주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거세게 전개된 지 한참 지나서 1994년에야 5월 1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법률상으로는 여전히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로 되어 있고 노동자들만이 노동절로 부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동절 행사가 열렸다. 민주노총은 전국 각지와 서울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고 한국노총은 사회개혁과 조합원 200만 목표 달성 등 전진을 다짐했다. 그러나 올해 노동절은 시도 때도 없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거기다가 코로나 거리두기 여부를 감시하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하는 볼썽사나운 풍경이 벌어졌다. 날씨도 날씨려니와, 코로나19의 위협이 여전히 위세를 떠는 때라서 더욱 기운 떨어지는 날이었다. 신나고 감동적인 노동절의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올해는 유난히 그렇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엄습하기 시작한 지 1년 5개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적인 유행병(pandemic)으로 선포한 지 1년하고 한 달이 지났다. 이미 경험한 일들이지만 코로나19는 개인 생활에서 나라살림, 나아가 국제관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인적 규모만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4월 말 현재 1억 5천 20만여 명이 감염되었고 31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비교적 잘 대응한다고 평가된 우리나라에서도 감염자가 12만 3천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833명에 이르렀다. 최근까지도 매일 600여 명 씩 감염자가 발생하여 국민들을 긴장 속으로 계속 몰아넣고 있다.


대개의 재해 상황에서, 나라 안에서는 못사는 노동자계급, 그 가운데서도 취약계층이, 국제적으로는 가난한 나라들의 고통이 극심하다는 것은 재난의 역사가 증언한다. 지금도 감염대책이 그러려니와, 선진국의 백신 독점으로 인한 불평등이 인류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노동자의 불안과 피해가 얼마나 심한지 많은 조사 자료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수천 명이 해고를 당했고 무급휴직의 고통을 겪었다. 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년간 실직 경험을 한 노동자는 17.2%에 이르며,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5배나 된다고 했다. 여성노동자는 남성보다 10% 이상 높았고 영세기업, 비사무직, 저임금 군 절대다수는 권고사직, 비자발적 해고, 계약기간 만료 해고에 노출되어 있으며 80% 가까이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2배 이상 높고 체감실업률은 25.1%에 달한다. 게다가 아파트관리인에 대한 냉대, 폭행, 갑질이나, 택배노동자 문제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정규직은 마냥 안전한가? 정규직은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구조조정의 위협 속에 있었고 코로나19 이후 구조조정의 불안은 훨씬 가중되어 늘상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리고 노동조건의 후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노동조합의 보호망이 놓여 있지만, 이른바 4차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신의 바람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언제 자본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취해질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또 위기국면에서 헤매어 오던 세계경제가 호전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지만 그것은 지표상의 변화일 뿐, 기본적이고 중장기적인 발전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코로나19의 원인에 대해서도 자본의 한없는 이윤 추구욕으로 인한 개발과 세계화로 인한 자연파괴,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란 데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해결방법은 아직 논의의 시작 단계에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상황변화 속에서 노동자들은 삶의 조건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 투쟁들은 경제의 저성장 시기, 경기의 침체국면이 코로나19와 겹쳐있어 대응이 쉽지 않은 조건과, 코로나19의 사회적 특성으로 인한 투쟁방식의 한계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고 절규하며 투쟁을 전개했고 산업재해와 과로사의 위협을 폭로하면서 ‘살아있는 노동’을 요구하였다. 또한 대통령이 공약한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을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민주노총의 경우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였다. 노동현장의 투쟁은 부분파업, 고공농성, 삼보일배 시위, 노숙단식농성, 장거리 도보행진, 소규모 집회 시위 등이 동원되었다. 


한편 노동조합원이 매년 20만 이상씩 늘어나고 조직률이 2019년 현재 12.5%로 올라선 것은 조직 확대의 높은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며, 노동조합의 조직적 연대나 사회적 연대를 위한 기금 조성, 산업별 단체협약의 통일성 확장 등은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변화에 상응하여 법률 제도상의 개혁도 시도되고 있다. ILO기본협약이 국회에서 비준되고 코로나 최전선에 있는 필수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률도 제정되었다.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도 환경노동위원회 의결을 마쳤다. 물론 아직은 미흡한 구석이 많다. 또 코로나19를 구실로 탄력적노동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고 특별연장근로 범위를 확대한 것이라든지, 중소기업체의 97%가 제외되거나 유예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를 배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제도 개선과제이다. 여기에 뒤로 밀리고 있는 전국민고용보험제 도입은 시급히 서둘러야 할 중대한 정책과제다.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노동현실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긴박한 문제들이면서 동시에 해결의 조건 또한 만만치 않다. 자본의 요구 또한 전례없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들은 총파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낙관적인 전망은 쉽사리 서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너무 상식적인 논리지만 결론은 쉴새 없이 변화하는 조건의 도전을 극복하며 노동자계급 스스로 힘을 키우는 데 있다. 조직을 키우고 단결력을 강하게 하며 투쟁전략과 전술을 발전시켜 작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정파적 갈등을 해소하고 진보정치의 통일을 이루는 것도 핵심적 방책의 하나이며 노동운동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것 또한 가장 긴요한 과제이다. 코로나19 사태와 기술혁신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바탕으로 한 자본축적방식의 변화는 어떤 것이며, 그에 대응하여 노동운동은 어떤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구명하여 제시하고 동의를 받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한다고 하지만 노동운동을 둘러싼 환경은 낙관을 불허한다. 노동운동에는 좋은 고비, 유리한 조건보다는 안 좋은 고비와 불리한 조건이 많은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어쩌다 좋은 계기를 맞는다 해도 자본은 온갖 계책을 동원하여 조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려놓는다. 거기다 국가권력이 가세하면 노동운동은 자칫 위기로 몰릴 수도 있다. 경제위기 극복이나 경제살리기, 경기활성화를 빙자하여 노동운동을 탄압한 예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또 촛불항쟁의 열망을 받아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내세워 분위기는 조성했지만, 중도반단(中途半斷)에 그친 문재인 정부의 정책도 노동운동 스스로 조건을 마련해야 하고 힘을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예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망령이 아직 건재하고 격동의 조짐을 보이는 한반도 정세, 그리고 열달 앞으로 다가온 권력구조 재편 등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변화 가운데서 노동운동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코로나19의 험난한 충격 속에 세계노동절을 맞은 노동자대중의 고민이 어느 때 보다 깊어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