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코로나 블루 시대와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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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코로나 블루 시대와 노동운동

김태현 1,336 01.13 11:07

작성자: 김태현 마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센터장 


2021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제야의 종소리도 없이 조용히 넘어온데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록적 한파가 닥치면서 2021년의 출발은 우울함으로 도색됐다. 백신이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에 개발되었다지만 실제 일반 국민이 대다수가 접종하여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올해 말이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신을 대대적으로 접종 중인 미국과 영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취약계층은 더욱 가혹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여행업, 음식숙박업 등 상당수 산업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직격탄을 맞았으며,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등에게는 제도적 고용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아 정부의 재난지원금으로 어려운 삶을 이겨내야 했다. ‘비대면 시대’에 플랫폼 노동 등 디지털화된 새로운 노동 형태가 더욱 확산하고 있다. 특히 배달업은 노동자 수가 대폭 늘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혜택은 소수의 플랫폼기업에게 돌아가고 배달노동자 다수는 늘어난 업무량과 낮아진 수수료에 시달린다. 택배 분류 등 무급노동에 시달리다 2020년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노동자만도 14명에 이르렀다. 

 

2021년 벽두 한국 사회를 덮친 우울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K-방역’이며 국제적 모범이라고 칭찬받고 있는 데 반해, 수십 년째 OECD 최악의 산업재해 사망률을 기록 중인 현실은 왜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지 우울하다. 그 민낯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겪고 코로나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생명과 안전이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배웠지만, 자본의 탐욕은 이러한 가치의 실현을 집요하게 방해한다. 재계는 기업을 죽이는 법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소리 높여 외쳤고 수구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영세기업주에 적용 제외를 요청하여 그 결과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처벌 하한선이 낮아지고 5인 미만 사업주 처벌이 제외되는 등 누더기 입법으로 실효성이 의문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물법)’은 택배노동자의 분류작업 시 임금지급 조항이 삭제되었고 표준근로계약서에 사측 책임을 명문화하는 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택배기사 과로사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와중에 1월 7일 한진택배의 일용직 노동자가 대형트럭에 끼여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아가 집권당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하는데도 우물쭈물하더니 불법행위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는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앞장서서 제안하는 등 촛불정신은 후퇴하고 있다. 우울한 상황이다. 


우울을 직시하면 진실이 보인다


우울이란 보통 자신이 극복하기 힘든 실연, 실직 등의 상처에서 비롯된다. 나아가 기대가 충족되지 않고 실망으로 바뀔 때도 사람들은 우울해진다. 보통의 경우 우울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울한 상태가 지속해서 유지되면 우울증이 되고,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OECD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심각한 ‘우울증 사회’다. 일인당 GDP 3만 달러를 넘어 고소득 국가가 되었지만, 극심한 신자유주의 경쟁지상주의, 곳곳에 도사린 갑들의 횡포, 패배자의 재활을 허락하지 않는 부실한 사회안전망은 경쟁의 승자이든 패자이든 상관없이 우울을 강요해왔다. 

그러나 우울 감정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우울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만들어 준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가 자책하거나 외부 상황을 탓하면서 상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우울은 우울증이란 병으로 발전한다. 또 우울을 외면하려 술이나 다른 것에 기댈 때에도,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다시 우울은 찾아온다. 우울은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바라볼 때 우리를 상처받게 만든 것을 직면하게 만들고 우리의 기대가 현실을 오해한 것임을 깨닫게 만든다. 니체가 말했듯이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코로나 블루 시대 노동운동의 과제 


노동운동은 무엇보다도 현실을 직시하고 실사구시 해야 할 것이다. 자본가나 집권여당을 탓하고 이들을 비난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남 탓 내 탓 할 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움과 손해를 겪는 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들에 맞는 정책대안을 세우고 현실화해나가야 한다. 재난지원금, 특고․프리랜서에 대한 고용 안전망 등등의 허술한 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의 무급노동이나 장시간 과로사도 해결되어야 하고 새롭게 늘어나는 플랫폼노동 등 고용형태의 불안정화에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비정규직 등 열악한 노동대중을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른 노동조합 조직률을 보면, 2017년 촛불 이후 계속해서 노동조합 조합원 수가 증가하다가 2020년 들어서는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 노동부가 2019년 말 노동조합 조직률이 12.5%이며 양대 노총 모두 100만 명 시대를 열었다고 했지만, 이는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맞이하여 노조 조직률이 저하된 추세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지적이다. 2020년 조합원 251만 명 중에 정규직은 230만 명(조직률 19.2%)이고 비정규직은 22만 명(조직률 2.6%)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아직도 압도적으로 비정규직의 조직률이 취약하며 노조의 대표성이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오늘날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과도한 비관론이나 낙관론도 모두 취할 태도가 아니며, 장기전에 맞는 전략․전술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과도한 신자유주의나 미국 중심 지배질서가 가진 취약성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다고 지배질서가 바로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강고하며 노동운동이 가진 취약점도 분명하다. 과도하게 낙관론을 피력하며 단기 결전을 주장하는 것은 취약한 노조의 대표성이나 분절성을 생각하면 현실을 무시하는 전술이다. 장기전에 걸맞게 자신의 취약점을 보강하며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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