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1. 과정과 결과 모두 정의로워야
지난 35년 사이 기후환경 변화와 위기에 대한 운동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부터 국제적 기후정의 운동이 출범하고 ‘지금 기후정의’(Climate Justice Now) 같은 네트워크가 구성되고 있다. 이들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선진산업국들의 역사적 책임과 지속불가능한 생산·소비 방식을 지적하면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도록 요구한다. 동시에 개발도상국들이 탄소 집약적 산업화 모델에서 벗어나도록 자원·기술 지원을 요구한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 움직임은 기후행동네트워크나 시민회의 등의 형태로 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페인, 스코틀랜드 등에서 퍼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양대노총 및 산별연맹(전교조,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사무금융 등)에서 기후위기 대응 결의문이나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사실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녹색경제로의 전환에 대한 노동운동 진영의 관심은 그 역사가 짧지만은 않다. 1987년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의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미래세대의 필요를 충족할 역량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만족하게 하는 발전’을 기치로 내세운 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의 공식 출발점이다. 그 뒤 리우 정상회의(1992) ‘의제21’ 채택, 교토의정서(1997), 요하네스버그 정상회의(2002), 코펜하겐 정상회의(2009), 파리기후변화협약(2015) 과정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논의했다. 국제사회에서 기후환경 변화의 대응은 혁신적 기술과 지속가능한 생산·소비,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고 높은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저탄소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동시에 괜찮은 노동과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작업장의 ‘정의로운 전환’을 인식하는 것이다.
2. 1992년 국제노총의 첫 공식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은 1992년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노동자들의 대의자로서 노동조합은 산업변화에 대처한 경험을 가지며, 노동환경과 그에 관련된 자연환경의 보호에 매우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사회적으로 책임성 있는 경제적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촉진하는 주요 행위자”라는 점을 제시했다. 아마도 이는 기후환경 변화와 관련해 노동조합이 국제사회에 노동문제 개입을 처음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ITUC는 2006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노동과 환경에 관한 노동조합 총회’를 열었으며, 2010년 2차 총회에서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특별한 접근이라고 선언한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은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적극적인 훈련과 기술개발 정책을 제공하며, 노조와 사용자 및 다른 이해관계자들과의 사회적 대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기후정책이 사회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의 평가·연구, 사회 보호 체계 개발과 지역경제의 다양화 계획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투자의 필요성을 포괄한다. 이는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갖는 취약성의 여러 측면, 이를테면 일자리 영향에 관련된 불확실성, 일자리 상실의 위험성, 비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위험성, 광역경제와 지역경제의 황폐화 위험성 등을 다루는 정책 제안의 패키지다.
기실 정의로운 전환의 아이디어는 미국의 선진노동자 토니 마조치가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에너지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재편 속에 노동현장과 노동자가 희생되지 않고 더 노동 친화적인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인 ‘정의로운 전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캐나다노총(CLC)은 공정함(Fairness), 재고용 또는 대체고용(Re-employment or Alternative Employment), 보상(Compensation), 지속가능한 생산(Sustainable Production), 프로그램(Program) 등을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특히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정의로운 전환’ 문구가 합의문 전문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것은 의미가 크다. 이런 이유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기후위기 대응 법안들은 ‘탄소중립 이행법’으로 제정될 것 같다. 충청남도는 2021년 2월22일 전국 지방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정의로운 전환 기금 및 운영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기후환경 변화는 장기적으로 노동자의 삶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사회에 유해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화석연료나 핵발전 및 에너지 기반 산업은 근본적인 전환 압력을 받고 있다. 과거 기후환경과 시장 상황의 변화에 놓인 일터에서 ‘반(反)기후환경적인’ 대응과 구조조정을 겪은 사례가 확인된다. 메릴 스트리프 주연의 <실크우드>(1983)와 줄리아 로버츠의 <에린 브로코비치>(2000), 두 영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3.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과 정책들
현재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즉 탄소중립은 산업과 일자리가 지속가능한 경제로 재편해야 함을 의미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최근 녹색성장과 ‘그린 일자리’ 문제, 기후환경과 미래의 노동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녹색경제는 지속가능한 일자리 정도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녹색성장’과 ‘탈성장’이라는 자본주의 전환 방향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국제노총(ICTU)은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방향으로 사회적 대화 추진, 전환기금 조성, 취약집단 지원과 좋은 일자리 투자·창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 계획 등을 제시한다. 유럽연합(EU)은 2015년부터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을 논의했고, 기금 조성과 전환 포럼, 위원회 구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확정된 유럽의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은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공식화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밝힌 2020년 그린뉴딜 계획이나 2050년 탄소중립 추진전략 및 탄소중립 위원회 출범도 이와 비슷한 사례로 보인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이 ‘공정한 전환’으로 불리거나 ‘그린 일자리’ 정도로 오남용 되거나 희석화돼 쓰이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은 지속가능하고 괜찮은 녹색 일자리를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방식을 전제로 한다. 이제 우리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 전환 계획은 추진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로워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 추진은 법제도, 정책, 산업과 지역, 사업장 수준에서 검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노·사·정은 물론 지역사회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와 플랫폼 운영이 필수적이다. 전환을 뒷받침하려면 고용안정기본법, 고용보험법, 직업능력개발법, 근로복지기본법, 노사관계발전지원법 개정을 통한 제도적 상호보완도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은 업종과 지역 차원에서 대응 조치와 이행 프로그램, 지원 관리(전환포럼, 위원회, 훈련센터 등)가 중요하다.
4. 유럽연합 전환기구와 방향 모색
향후 기후환경 변화가 미칠 일자리 영향과 녹색 일자리로의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제도적 검토 과제 또한 많다. 기술·숙련 형성, 교육훈련 휴가제 같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추진, 취약집단의 소득 지원과 사회적 보호, 괜찮은 일자리로의 전환 프로그램, 산업과 지역에서 녹색 작업장을 위한 노사 공동 프로젝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적색에서 녹색으로의 전환을 주장한 아랑 리피에츠의 <녹색 희망>(1993)에서 이런 가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제시된 바 있다. 특히 지역에서는 정의로운 전환 지원을 위한 노사 공동근로복지기금을 추진하고, 약 30조원의 대기업 사내근로복지기금 일부를 활용하는 사회연대 전략을 고민해봄직하다. 최근 유럽연합은 2027년까지 약 140조원 규모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통해 전환에 따른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년 동안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파괴적 성장이었다. 가치 있는 녹색성장을 위해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은 물론 삶의 방식과 노동생활 세계도 과감히 바꿀 필요가 있다. 주4일제와 같은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사실 정의로운 전환과 맞물려 생각해 봐야 한다. 기후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면 2019년 7월23일 그레타 툰베리의 ‘과학 사실을 근거로 함께 행동하자’는 프랑스 하원 연설을 찾아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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