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20대 대선 이후 노동운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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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20대 대선 이후 노동운동의 과제

이원보 2,916 2022.03.14 09:00

[연구소의 창] 20대 대선 이후 노동운동의 과제


작성: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야당인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의 당선. 선거의 의미나 과정에 대한 분석, 평가는 앞으로 많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주요 지표들을 대충 정리하면 투표율 77.1%에 사전투표율은 36.5%로 역대 최고, 당락 득표율은 불과 0.73%(247,077표)차이의 초박빙 등등이다. 선거과정에서의 특징들도 여러 가지다. 전반적으로는 부정・비리・도덕성 등을 둘러싼 진흙탕 공방에다 역대 최악의 혼탁한 비호감・네거티브 선거라는 혹평이 많았다. ‘민주없는 민주당’과 ‘국민없는 국민의 힘’이라는 거대 기득권 정당 간의 권력다툼 속에 제3지대나 진보세력이 압살된 선거라는 정치적 평가들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진보정당은 이리저리 나누어진 채로 득표율 3%에 미치지 못함으로써 역대 선거에서 가장 저조한 성과를 보였다. 여기에 시대적 의제가 실종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지적되었다. 수많은 공약들이 제시되었지만 표심을 끄는 데만 열심일 뿐, 실천적 내용이 부족한데다 전체 공약을 관통하는, 그래서 이 시대가 해결해야 할 긴요한 역사적 의제는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 구조개혁의 핵심이면서 오랫동안 논의돼온 ‘경제민주화’가 실종되고 사회양극화의 핵심요소인 노동의제가 소홀히 되거나 무시된데 대해 ‘노동없는 대선’, ‘노동부재의 선거’라는 지적도 많았다. 


아무튼 두 달 후면 새 정권이 공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대통령 당선인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수호’를 정치적 기본 기조로 내세웠다. 그리고 ‘국민의 뜻’에 따른 ‘국민대통합’을 강조했다. 정책방향으로는 ‘공정・상식・통합’을 선언하며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언론매체들은 새 정권의 과제로 성・지역・세대 간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여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적 책략에 의한 사회적 분열은 더 구조화되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치사의 경험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주장이다. 


이제부터 인수위원회가 출범하고 대국민 약속 이행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개혁’과 변화가 추진될 것이다. 대다수 ‘국민의 뜻’을 반영하여 나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한편에 우려의 목소리도 엄존한다. 오랜 시간 피나는 투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퇴행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대통령 당선인이 권위주의의 검찰 경력에 국민의 힘이 군부독재정권의 후예이자 보수세력의 총본산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이런 우려는 선거공약이나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발언들과 결합하여 증폭된다. 집권세력이 제시한 경제정책의 골간은 자본주도의 성장주의로 보인다. 경기회복도 일자리도 사회복지도 모두 경제성장을 전제로 가능하다는 기조다. 탈원전 백지화와 세금정책도 같은 맥락으로 약속됐다. 성장론은 다른 후보들도 비슷하다는 점에서 힘이 실려 있다. 


여기다 규제완화가 ‘혁신’으로 포장되어 경제 활성화에서부터 부동산문제 등 까지 해결의 충분조건으로 제시됐다. 노동정책의 경우 좋은 일자리 확충과 공정의 노동개혁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노동시간 유연화나 직무성과형 임금체계의 개선, 현재 전국 단일 적용의 최저임금제도의 개편 등 노동진영이 ‘퇴행적’으로 보는 제도 정책이 제시되었다. 특히 강성노조의 무단 사업장 점거와 폭력행사 등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공언함으로써 노동계를 긴장시켰다. 다만 대통령 당선자가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데, 안철수 동반자가 갖고 있는 유보적인 입장과 민주노총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선거과정에서 한때 시빗거리가 됐던 이른바 ‘적폐 청산’은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통합을 역설함으로써 희석된 것으로 보이지만, 강한 의지로 강조되고 있는 ‘부정부패 척결’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승자독식의 권력구조에서 국민통합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실현될 것인가 등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이나 사드배치론, 미중 패권싸움에서의 미국 편향, 일본과의 포괄적인 접근 등 힘에 의한 안보론이 평화와 안정을 어느 정도 담보할 것인가 또한 많은 우려와 함께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아무튼 새 정권의 향배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의 진로를 가름하는 중대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의 주장과 구상은 여러 가지 조건과 부딪치면서 많은 변화를 나타낼 것이지만 과거로의 회귀, 대자본 주도의 기득권 독점, 외세의존의 힘에 의한 국가론 등과 같은 수구적 보수로부터 벗어나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그리하여 진보진영과 공존하면서 한 시대를 책임지고 발전시키는 합리적 보수로 변신할 때만이 보수는 살아남는다고 많은 논자들은 지적한다.  


무엇보다 20대 대선은 노동진영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의 문제가 소외되거나 주변문제로 밀려나는 정치현실을 노동자들은 목도했다. 새 지배권력의 기본 성격이나 공약, 주장 또한 노동운동이 당면해야 할 새로운 환경과 조건을 말해주고 있다. 냉혹한 자기 성찰과 철저한 상황 진단이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조건에 맞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요구된다. 


하지만 경계는 하되 지나치게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는 그리 쉽사리 파괴되거나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절반은 촛불항쟁의 갈망을 외면한 현 집권세력의 거듭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거부했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이 과거와 같은 억압적인 권위주의체제나 국민의 의지를 무시한 오만한 정치를 방관하지 않을 만큼 성숙되어 있다는 증좌이다. 정세는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촛불항쟁의 기억이 멀지 않다. 집권세력의 주변부에서 기득권화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앞장섰던 사회운동 시민운동이 건재한다. 의회의 현실정치에서는 아직 여소야대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제 노동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의 맹독이 아직도 건재하고 여전히 반노동, 반평화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민주화를 지향했던, 그래서 수구 보수세력의 재등장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세력들도 저마다 대안을 마련할 것이다. 노동은 이 시대의 핵심 의제인 사회 양극화문제의 한 중심에 있다. 노동운동은 권위주의 독재시대의 엄혹한 탄압을 겪었다. 외환위기시대의 참담한 패배와 후퇴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 자유주의 개혁정권시대의 혼란과 시련도 경험했다. 촛불항쟁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을 약속 받았지만 그 성과는 대부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이제라고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의 공세가 새로울 것은 없다. 신자유주의의 위세가 진행 중이고 국가권력과 자본의 본질이나 지배행태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들의 지배 전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직면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미 많은 과제들과 함께 새로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제출되고 있다. 5인미만 사업장의 근기법 적용, 특고 플랫폼 노동자의 기본권 인정, 차별금지법 제정,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단체협약 적용 확대, 정의로운 산업전환 등이 그 예들이다. 그 뿐 아니라 노동자 계급 내부의 분단 분절현상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 대기업과 중소 영세기업, 국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특고노동자와 플랫폼노동자, 사무관리직과 생산직, 세대 간 차이와 모순 등 광범하게 존재하며 자본운동에 따라 앞으로 수많은 과제들이 제기될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나 기후위기와 같은 자연환경, 노동환경의 변화가 이미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상식적 얘기이지만 답은 분명하다. 오늘날 노동운동과 노동문제가 무시되는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해야 한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현장의 문제들이나 제도 정책적인 과제에 대해 즉자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한편에 중장기적인 운동 전략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요체는 노동자 계급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 시대의 직면한 기본명제인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 성평등 문제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다양한 고용형태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그 조직을 강화하는 것, 정확한 투쟁 전략과 전술을 확립하는 것, 과학적인 이론과 실천에 바탕을 둔 운동 이념을 정립하여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제시하는 것, 노동전선의 연대와 통합을 통한 통일전선의 구축,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진전시켜 진보정치의 권력을 확보하는 것 등이 힘의 원천임은 오랜 노동운동의 역사가 가르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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