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가로막는 노조혐오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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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가로막는 노조혐오 담론

신원철 2,321 2023.03.13 09:00

[연구소의 창]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가로막는 노조혐오 담론



작성: 신원철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 개혁과 노조의 부패 척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부패 척결을 구실로 노동조합이 회계장부를 제출하도록 압박한다. 노동조합에 ‘비리 조직’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이러한 시도는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윤미향 의원을 기소했던 검찰의 조치를 떠올리게 한다. 노조혐오/반노동조합 정서를 부추기고 노동조합 때리기에 앞장서는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부정하는 사상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할 정도다. 


노조혐오에 기반한 노동개혁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노동부는 이른바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운영하여 노사의 불법·부당행위에 관한 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노동부 홈페이지에서 신고 대상을 알리는 화면에는 ‘노동조합 운영 및 회계 투명성’이 맨 위에 등장하고, 이어서 ‘노동조합의 불법·부당행위’ 유형들이 소개되어 있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나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 등도 신고 대상으로 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노조 부패 척결을 내건 이상 노동조합이 1순위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혁신’, ‘자유’, ‘공정’ ‘유연성’ 등과 같은 가치 지향적인 단어들을 나열하고, 또 ‘노사법치’와 ‘건폭’ 같은 신조어까지 만들어서 노조 혐오 담론을 이어가고 있다. 그 주장의 논리적인 일관성이나 사실적인 근거가 취약하더라도, 노동조합을 공격과 낙인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만은 변함이 없다.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을 혐오하고 탄압해온 기득권 집단과 보수 세력으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고, 그것이 지금 이른바 노동개혁을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보인다. 

대통령과 정부는 기존 노동조합에 대해서 ‘기득권’, ‘귀족노조’의 딱지를 붙이고, 이들이 청년과 노동시장 내 취약계층을 착취하고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주범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2월 21일 국무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가 정상화돼야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돼 올라가고 우리나라 자본시장도 발전하며 수많은 일자리도 생겨날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사고방식이 이렇다면 2008년 금융위기나 그 이후 이어진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또한 노조가 만들어낸 노동시장 경직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등장할 것 같다. 

이 같은 자세로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이중구조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다. 2월 27일 발표된 「조선업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도 마찬가지다. 이 합의문은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에 조선업계의 사용자 측이 호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정부로서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조선산업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대표들과 고용노동부장관, 울산시장 등이 참여한 이 행사에 조선산업 노동자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만약 정부 주장대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주범이 조선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라면,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또한 조선산업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피해자인 하청노동자들이 문제해결 과정에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조선산업의 이중구조는 원청사의 이중적 차별적 고용 전략에서 그 주요 원인을 찾아야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선산업 원하청 노사 4자가 모두 참여하여 지속적인 협의와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이번 상생 협약 체결과 같이 노동자가 빠진 행동은 그저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누가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 실천해 왔는가 돌아보길


윤 대통령과 정부는 기존의 노동조합을 기득권/부패 세력으로 낙인찍고, 이들이 청년/MZ세대/노동약자/취약계층을 착취하는 ‘노·노 간 착취구조 타파’가 시급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노사정 대화와 교섭을 통해서 새로운 노동시장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노동조합에 대한 사법권 행사를 통해서 노조를 공격하는 것 자체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MZ세대/노동약자/취약계층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노조 활동을 할 권리를 누가 옹호하고 누가 억압해 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대통령과 정부가 사용하는 노동개혁이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과 개혁 방향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왜곡시키는, 도수가 맞지 않은 색안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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