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여유로운 삶, 어떻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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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여유로운 삶, 어떻게 가능한가

구도희 6,964 2015.08.03 09:38
 
 
-강수돌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ksd@korea.ac.kr)
 
 한국이 세계 1~2등을 차지하는 게 여럿 있는데, 그 중 단연코 단골감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이다. 한국은 전체 취업자 기준으로 2014년에 2,163시간 일했는데,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의 2,228시간 다음으로 길게 일한다. 흥미롭게도 공식 통계(총취업자의 연간 실노동시간 평균치)상 한국은 2007년까지 세계 1위를 달렸다. 그러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더불어 멕시코에 1위 자리를 뺏기고 그 이후 지금까지 OECD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공식 통계치일 뿐, 실제 노동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다. 다만, 한편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다른 편에선 실업과 고용불안이 모두를 괴롭힌다. 그동안 노동자들 사이에 유독 과로사나 돌연사가 많았던 것도, 또 한국이 산재 왕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도 모두 다 이유가 있다.
 
 한편, 역대 정부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무역이나 경제 규모 등에서 세계 10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양질의 값싸고 부지런한 노동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성장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특히 지난 50년 동안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서양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대단한 성과라며 축배를 든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우리는 지난 50년간 무려 300배 이상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렇다고 긴장을 늦추면 우리를 뒤따르는 나라들에게 뒤처질 수 있으니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동조합이나 쟁의행위 같은 건 꿈도 꾸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노동자운동에 대한 탄압, 노조에 대한 탄압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은 물론, 이른바 민주화 이후인 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격심했다. 그러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을까. 1990년부터 최근까지 25년 동안 노동자의 쟁의행위와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546건을 담당했던 61명 주심 대법관 중에서 무려 59명이 사용자 내지 자본에 유리한 판결을 했다는 분석(경향신문, 2015. 7. 8)이 그리 놀랍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이 질문에 대해 진심으로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다. 실제로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늘 꼴찌를 맴돈다. 자살률도 세계 최고다. 10대 청소년의 경우나, 40대 직장인의 경우나, 70대 노인의 경우나 인구 10만 명 당 세계 최고의 자살률 또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는 일단 우리가 멈춰 서서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무엇 때문에 ‘빨리빨리’ 공부하고 ‘빨리빨리’ 일하는가? 과연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 <타임 푸어>라는 책을 쓴 미국의 브리짓 슐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덴마크까지 날아갔던 이유는 덴마크 남성과 여성이 다른 어느 선진국의 남자와 여자보다 많은 여가시간을 누린다는 연구결과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넉넉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그리고 결론을 말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충분한 여가를 누리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일과 사랑과 놀이를 원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데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멈추어 서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적 해법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해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체 사회는 얼마나 일을 하는 게 좋은가? 주거, 교육, 의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삶이 좀 여유로워질까?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만드는 게 인간다운 삶에 도움이 될까? 사람들의 대우는 어떻게 해야 모두 존중받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질문과 대화를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바로 이런 질문들을 오늘도 내일도 가슴에 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이런 고민을 친구나 동료들과 나눠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모임이나 토론회에 부지런히 나가야 한다. 사람과 엮이고 같이 대안을 만들어내고 같이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며 주거나 교육, 의료, 노후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사회구조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그것을 위한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 당장의 힘든 삶을 견뎌내면서도 희망적 대안의 밑그림을 공동으로 토론하고 설계하면서 그를 향해 아래로부터 뭉쳐야 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끼리 소풍도 가고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여유롭고 즐거운 미래를 꿈꾸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그런 삶의 실험과 체험을 시작해야 한다. ‘저항과 대안의 변증법’이 중요한 이유다. 한편으로는 잘못된 구조와 풍토에 끈질긴 저항을, 다른 편으로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부지런한 대안을 조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속에서 저항과 대안은 서로 상승작용을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노력’이 왕성하게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그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충실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여유로운 삶이 오겠지, 하고 바라는 것은 자기기만이 되기 쉽다.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 위해서라도 잠시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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