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sjeco@hanmail.net
2015년도 어김없이 우리 산하의 봄은 찬란하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여전히 고통과 불안, 갈등과 억압이 교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온 노동의 영역에서 우리 사회의 왜곡은 참으로 심각하다. 더욱이 이러한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그리고 바로잡을 수 있는 노동운동의 후퇴가 아프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 기아차 노조는 안녕한가?
우리나라에서 초기업별 노조에 속한 조합원수 비율이 50%를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교섭은 기업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대표 노조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 기아차 노조는 안녕한가?
국내 재벌들의 국제화는 실패한 김우중의 ‘세계경영’이 아니더라도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이제는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의 80% 이상이 해외공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대 재벌인 현대차그룹의 경우 삼성이나 엘지전자 등에 비해 해외생산이 본격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속도는 선발자들을 추월하고도 남는다. 그 결과 이미 3년 전부터 현대차의 해외생산량이 국내 생산량을 넘어섰으며, 금년도에는 기아차도 해외생산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기아차 멕시코 공장도 준공될 예정이다.
이에 대한 국내 노조들의 대응은 해외생산 확대로 인해 국내 고용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 방어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런 내용으로 단체협약도 체결되어 있고, 실제로 아직 완성차 노조들의 힘이 세기 때문에 자본은 적어도 국내공장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꼼수는 적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자동차공장 못지않은 해외공장의 성과
그러나 지난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자동차산업에서 해외생산이 꾸준히 증가한 결과 이제는 양질전화(量質轉化), 즉 양의 변화가 누적되면서 질적인 변화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것은 국내공장의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과 고비용 체질, 그리고 불안정한 노사관계 등의 문제점이 해외공장들과 한 눈에 비교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현대차 울산 1, 2, 3, 4, 5공장과 기아차 화성 1, 2 공장 등은 베이징 1, 2, 3공장, 그리고 인도, 터키, 체코, 슬로바키아, 미국 알라바마와 조지아, 러시아, 브라질 등 현대기아차 전 세계 30개 공장 중 하나의 지위를 차지할 뿐이다. 그리고 공장별 생산성과 품질, 비용과 가동률 등은 실시간으로 비교되고 있다.
해외공장은 넓은 부지에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고, 모델의 복잡성도 국내공장에 비해 덜하며, 국내공장에서 실험된 여러 생산기술과 기법을 가져가기 때문에 해외공장의 성과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필자를 포함하여 해외공장을 방문한 여러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설비나 기계 등의 하드웨어뿐 아니라 공장운영시스템과 노동의욕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해외공장의 성과가 결코 국내공장에 비해 못하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대차와 같이 로봇과 IT 기술 중심으로 생산방식을 구성할 경우 국내외 공장의 숙련도 차이는 그 중요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말 국내 일자리와 부가가치 창출 측면에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듣기에 이미 완성차 노조 간부들 중 매우 많은 수가(아마도 수백 명은 될 것이다) 해외공장을 방문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체감적으로 해외공장의 성과가 국내공장보다 더 좋고, 작업장 내 분위기도 훨씬 안정되면서도 타이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해외공장에서 3교대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짧고, 그 대신 그 시간 동안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잔업수당에 목매다는 경우는 해외공장에서는 흔하지 않다.
왜 도요타는 국내공장 생산성이 더 높은가?
여기서 생산성과 관련하여 HPV(Hour Per Vehicle, 자동차 1대 생산에 필요한 작업시간) 등 여러 지표가 공정한가,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노사가 공감할 수 있는 지표를 발굴하고 국내공장이 뒤쳐진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 설비가 낙후돼서 그런 것인지, 작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 라인에서 동시에 생산되는 모델수가 많아서, 즉 혼류의 정도가 높아서 그런 것인지, 해외공장들에서 노조의 힘이 약해서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지난 10여 년간 자동차와 전자의 해외공장들을 다수 방문조사해온 필자의 감으로는 어떤 지표를 사용하더라도 국내공장의 생산성은 해외공장에 미치지 못한다.
왜 새삼 생산성 타령인가? 그것은 노동강도 강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믿고 있기에는 환경은 너무 많이 변했고, 그 명제가 꼭 타당한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200여년 역사에서 생산성 향상은 자본에 이로웠을 뿐 아니라 소득증가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에도 확실한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였지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진보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생산성 지표에 따라 이루어지는 투자 결정이다. 환율변동의 위험성, 무역마찰의 가능성, 현지소비자에 대한 접근성 등 때문에 해외공장이 중요해져 왔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국내공장에 투자할 경우 얻게 될 이득이 무엇인가이다. 도요타의 경우 낡은 설비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공장들의 생산성이 해외공장들에 비해 높은 편인데, 그것은 숙련 수준이 높고, 부단한 개선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서 국내공장이 해외공장 생산방식의 고향이 되기 때문이다.
완성차 노조, 국제화와 국내 일자리의 공생 전략 마련·실천해야
국내외 공장을 비교하면서 노조를 겁박하는 데 왜 동조하는가? 이제는 자본의 겁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국내공장의 위상 추락과 그로 인한 국내 일자리의 위협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양질전화이다. 해외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을 때는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이제는 코앞의 현실이다. 고용안정은 힘으로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국내 파업의 위력을 약화시킬 무기를 자본이 갖게 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국내 노동운동의 힘 있는 근거지, 완성차공장 노조들의 파워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미 조합원들과 간부들의 고령화로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힘이 남아 있을 때 완성차공장 노조들이 국제화와 국내 일자리의 공생 전략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구체적인 전략, 전술이 무엇이 될지는 필자도 모른다. 그렇지만 첫째, 경기 후퇴 시에 국내공장의 생산과 국내 고용을 우선한다는 조항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국내 생산방식과 노사관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서 국내공장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도요타 뿐 아니라 노조가 매우 높은 수준의 경영참가권을 갖고 있는 폴크스바겐의 경우도 그러하다. 폴크스바겐은 노조와의 협의를 통하여 오히려 국제화에 더 열성적으로 나선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오늘날 폴크스바겐을 세계 톱3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중국 사업의 성공을 비롯한 해외공장들의 확장이다. 브라질, 중국 등으로 일찌감치 해외진출을 한 결과 폴크스바겐의 해외생산 비중은 현대차그룹보다 더 높으나, 독일 내 고용 문제에 대한 걱정은 적은 편이다. 독일 금속노조와 폴크스바겐 종업원평의회는 국내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자본과 타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시켜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외로 나가느냐, 나가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국내외 공장의 균형과 공동발전을 이룰 것인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공장들의 생산성과 품질 수준이 높아야 한다. 독일 자동차산업이 세계 최고의 시간당 임금을 기록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이유는 노동운동도 숙련에 관심을 갖고, 바로 그것을 무기로 국내공장의 위상과 가치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국내 노조들의 숙련에 대한 관심은 임금 및 복지에 대한 관심의 1/100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실리에 몰두하기보다 노동운동 이념 다시 돌아봐야
둘째, 해외공장들, 특히 개도국들의 노동의 무권리 혹은 노동강도 강화가 국내공장들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 국제 연대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기업별 노조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상급단체에 힘과 인력, 재정 등 자원을 실어주어야 한다. 금속노조나 민주노총도 현대, 기아차 지부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국제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인건비가 싸고 노조의 권리가 약한 지역으로 몰리는 자본의 투자를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선진국 노조들로부터 받은 국제 연대의 자원을 이제는 한국 노조들이 해외에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이 모든 국제적 감각과 정책 개발, 국제연대 사업을 위해서 노동운동의 이념을 다시 돌아보고, 구체적·현실적 대안들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조합원들이 원하는 실리 찾아주기에 몰두하는 노동운동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것은 리더십이 없는 대중추수주의에 다름 아니다. 자본의 국제화는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는데, 노동운동의 이념은 아직도 20~3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과거의 이념 논쟁이 노조 정책과 연관된 것이었다면 현재는 이념의 깃발은 낡아빠지고, 선거 전의 계파 간 이합집산과 선거연합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제시할 자 누구인가? 바로 그 세력이 미래 노동운동의 선도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