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oh4013@hanmail.net)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번 승강장 앞에는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협착 사고로 목숨을 잃은 청년노동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국화가 놓여 있다. 시민들이 써 붙인 추모 글귀들에서 비통함이 읽혔다. ‘스크린도어 틈새가 너무 좁아 보여요. 정말 많이 아팠을 거 같아요. 편히 쉬세요.’ ‘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울었니. 얼마나 외로웠니. … 미안해. 미안하다.’ ‘물질이 한 사람의 생명과 삶보다 결코 앞설 수 없다. 이 사건은 고인이 된 청년과 유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젊은 노동자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 시민들은 할 말을 잃었고, 소리 없는 추모의 외침은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끊자는 사회적 요구를 만들어냈다. 시민들의 분노가 촛불시위와 거리집회로 확대된 밑바탕에는 19세 청년노동자의 죽음에서 우리 안 또 다른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밥 한끼 챙겨먹을 시간도 없는 빡빡한 노동 강도, 140만원 안팎의 쥐꼬리 월급은 외주하청 청년노동자들의 고단한 삶 그 자체였다.
추모 열기가 분노로 바뀌자 정치권과 서울시는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쏟아놓는다. 정말 상황은 바뀔 수 있을까.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2013년부터 매년 발생한 반복적인 사회적 타살이기 때문이다. 뿌리를 건드리지 않은 표피적 대책은 사후약방문이다.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요란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 및 사회적 공론화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반복적인 참사에서 보듯 인적 요인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손쉽게 책임자를 색출하고 그에 대한 분노를 쏟아붓게 함으로써 대중들의 격한 감정을 다독여주는 효과를 거둘 수는 있다.
그러나 자칫 ‘비난의 의례 정치(ritual politics of blame)’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책임자 처벌에 그치지 않고 사고와 위험의 구조적인 원인에 눈을 돌려야 한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대형사고와 산재사망 조사 및 대응에 있어 ‘징벌주의’에서 ‘원인규명’ 위주로의 안전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첫째, 노동유연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외주화와 파견 용역노동자의 양산은 역대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경영효율화 정책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의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민간과 경합하거나 민간이 효율적으로 수행 가능한 기능은 폐지·축소 또는 민간 위탁하도록 했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통행료 징수·단순 유지보수·안전순찰 업무를,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소방기능·청원경찰·항공등화 업무를 각각 민간에 위탁하도록 했다. 서울지하철공사에도 외주화는 정부 정책으로 강요되었다. 2008년 서울메트로는 1만284명이던 정원을 유사기능 통폐합, 점검주기 조정, 아웃소싱과 민간 위탁 등의 이유로 9150명으로 줄였다.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전동차 경정비 등이 외주화되었다. 공공부문의 핵심 업무들이 경비 절감을 명분으로 민간부문으로 떠넘겨진 것이다. 정부는 지금도 외주화를 공공부문 경영효율화의 주요 평가지표로 활용한다.
둘째, 기업살인법 제정이다. 구의역 사건은 위험안전 업무의 외주화가 가져온 참사이며,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기업 살인이다. 산재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4년부터 지난해까지 8만90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매일 5명씩 산재로 숨지고 240명씩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다. 최근에는 하청노동자의 산재사망률이 40%를 넘어섰다. 대기업들은 외주화를 통해 산재 위험의 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법적 책임에서 비켜나 있다. 원청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을 하고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에게 외주화하는 현상이 고착된 결과이다.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원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영국과 호주는 2007년과 2003년에 기업살인법을 도입했다. 과거에도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었지만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사고 책임이 있는 원청 사업주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은 산재 사망자가 10만명당 0.6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적다. 또 위험작업에 대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 직접고용이 되더라도 안전하게 일할 수 없다면 백약이 무효이다.
구의역 참사와 남양주 지하철공사장 사건은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와 자본의 이윤극대화, 정부의 무능한 안전관리시스템은 한국을 산재왕국으로 만들었다. 노동자의 잘려진 손 무덤 위에 쌓은 경제성장의 바벨탑은 용인돼선 안된다. 이것이야말로 숨 돌릴 틈 없는 작업 속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한 젊은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죽음의 행진을 멈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이 칼럼은 6월 10일자 경향신문(세상읽기)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