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우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은 삼성중공업 노동자 협의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하반기부터 고용기간 만료 등을 이유로 하청노동자 대량실업과 같은 고용대란이 올 수 있고, 정부는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하청노동자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기간에 수천 명의 인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해양프로젝트의 특수성과 조선자본의 노동 유연화 정책에 기인한다.
기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고, 바다 건너 일본 외신도 관심을 보였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단기간에 화두로 떠올랐고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화젯거리가 되었다.
노동조합은 사내하청 노동자 고용위기에 대한 이슈화와 이로 인한 정부의 발빠른 대응(?)으로 고용위기지역 선정 등 조선산업에 하청노동자들을 위한 제도가 어느 정도 정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순진한 착각인지 정부는 마치 높은 인건비로 인해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고, 경영진들의 부실경영으로 인한 손실을 두고는 ‘조선산업은 사양산업으로 일본이 조선업을 접은 것처럼 한국도 조선산업을 접어야 하는 시기’라며 연일 언론을 통해 호들갑을 떨고 있다. 또한 조선산업 귀족 노동자들의 이기심이 조선산업을 말아먹은 것으로 호도되고, 너도나도 조선소 통폐합, 동종업종 합병 등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만이 살길인 양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태이다.
과연 정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조선산업은 사양산업이고 현재 위기인가? 그리고 그 대책은 하루라도 빨리 사람을 자르고 설비를 축소하는 것이며, 하나둘씩 조선소 문을 닫는 구조조정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노동조합의 판단은 한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노동조합은 지금의 조선산업을 위기라 칭하는 것에 굳이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조선산업의 위기를 “조선산업의 대규모적자 → 높은 인건비로 인한 경쟁력 하락 → 수주부진 → 일감부족, 고용위기 → 조선업에 대한 미래전망 불투명 → 인력감축, 설비축소, 조선소 통폐합 등 강력한 구조조정”식으로 진단하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단순히 하나의 원인에 의한 것이거나, 하나의 대안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양프로젝트 인도에 따른 사내하청 노동자의 대량실업문제, △수주부진, 조선시장의 불황에 대한 문제, △경영진의 부실경영으로 인한 경영위기 문제를 별도로 고민해서 각각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첫째, 해양프로젝트 인도에 따른 사내하청 노동자의 실업문제는 조선산업 불황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단기간에 많은 인원을 투입해야 하는 해양프로젝트의 특성과 조선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기인한다.
자본이 해양프로젝트 공사에 정규직을 투입하지 않고 언제든 자를 수 있는 단기계약직, 물량팀을 투입하다 보니 해양프로젝트가 인도되는 시점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이러한 해양프로젝트가 과거와 달리 몇 십 기가 동시에 인도되는 탓에 대량실업 사태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법이 정한 제도를 활용해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기업은 기업대로 숙련공 등을 중심으로 재계약을 하는 등 실업자 수를 줄일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수주부진, 조선 시황 불황으로 인한 문제는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조선 시황이 불황이고 올해부터 수주가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은 해양 환경규제 강화로 인해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즉 수주부진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2017년 말까지는 과거와 같은 발주가 있지 않겠지만, 2017년 하반기부터 신조선에 대한 수주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수주산업의 특성상 조선 3사의 일감은 수주가 회복되는 2017년까지는 확보되어 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도크(dock·선박건조대) 폐쇄니, 인력감축이니, 설비축소니 호들갑을 떨며 구조조정을 단행해 과거 일본의 조선산업 구조조정 결과로 한국이 혜택을 봤던 것처럼 중국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수준을 유지하며 2018년 경기회복 시점에 조선 강국의 위상을 더 높이는 것이 맞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정부의 경우 정부차원의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선박금융지원, 국가차원의 R&D를 지원하며, 기업은 과당경쟁을 피하고 사내하청 중심의 현 생산시스템을 재점검하며 숙련노동자 확보를 위한 정규직 확대정책을 강화해 나가는 한편, 노동조합은 노동시간 단축 등 조선산업 존속을 위한 활동에 동참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조선산업의 대규모 적자 문제는 오롯이 경영진들의 그릇된 판단과 이를 부추긴 정부의 잘못으로 보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오늘날 조선산업의 대규모 적자는 거의 전부 해양프로젝트 건조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이다. 해양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 적자는 왜 일어났을까? 그 원인은 경영진들의 실적 부풀리기 등 부실경영과 국내 조선사 간 과당경쟁, 정부의 자원외교 결과에 따른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조건식 수주’와 조선산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일 것이다. 자동차산업에 비교하면 온전히 우리 힘만으로 그랜저를 만들 실력도 안 되면서 정부의 부추김, 실적 쌓기 욕심에 마티즈 값만 주면 그랜저를 만들어 준다며 일단 수주했지만, 결국 능력이 안 되는 탓에 건조과정에서(설계오류, 재작업 등) 벤츠 값이 들어가면서 발생한 손실이라는 이야기이다.
해양프로젝트 사업은 조선산업의 미래비전을 위해서라도 분명히 필요한 사업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수년 전부터 해양프로젝트 설계기술 확보와 R&D 투자를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노동조합의 주장은 외면한 채 부실경영의 책임을 고통분담이라는 명목 하에 노동자에게 덮어씌우고, 경영자나 채권단은 면죄부를 받으려고 한다. 이것이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이 아닌가싶어 우려스럽다.
따라서 조선산업의 대규모 적자와 관련해 정부는 경영진을 처벌하고 재산을 환수하며, 채권단은 조선산업을 정상화 할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하고, 투명경영을 위한 노동자의 경영감시가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업은 대주주의 경우 사재를 출연해서라도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책임경영과 투명경영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사항의 모든 전제는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의 참여로, 협의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
“이미 엎어진 물을 어쩌겠나? 고통을 분담해야지...너희도 많은 혜택을 봤잖아!! 정상화를 위해 임금, 복지 등 많은 것을 양보해야지”라는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주문과 여론형성, 정부의 일방통행식 구조조정 해법에 노동조합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러한 움직임은 단호히 거부하고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반면 조선산업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노동자가 동의할 수 있는 바람직한 조선산업 정상화를 위한 고민에는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노동조합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위기의 조선산업!!
수십만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목숨이 그릇된 자본과 정부의 판단으로 수장될 것인가? 과거 쌍용자동차와 같은 피눈물을 노동자에게 또다시 전가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해법을 찾을 것인가? 불통의 아이콘인 정부가 소통에 나서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