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oh4013@hanmail.net)
2016년 노사관계의 기상도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경제성장률은 곤두박질치고 그 동안 감춰져왔던 부실기업들의 속살이 공론화되고 있다. 조선·해운·건설·철강·석유화학 등 5개 취약 업종의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야 할 것 없이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자 해고의 불가피성을 논의한다. 변변한 실업대책 없는 상황에서 대량해고는 사회적 위험으로 다가온다. 2009년 쌍용차 사태의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현재진행형 고통이다. 외환위기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윤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라는 낡은 기득권 보장의 구조조정 해법은 변하지 않았다.
비정규노동 및 저임금노동의 확대, 10.3%의 낮은 노조조직률, 노동계급 내 격차 심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해소 등 노동개혁 과제는 정말 절실하다. 하지만 노정 간 극한 대립 속에 노동개혁을 위한 법·제도 개선은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노동개혁을 말했지만 그 방향은 철 지난 노동유연화 논리와 판박이다. 2대 행정지침과 노동 4법이 가져올 노동의 미래상은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대뿐이다.
경제 불황이 가져올 사회적 고통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노동개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함께 살기 위해서라도 노동시간을 줄여 인력 감축을 최소화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규직의 장시간 노동은 그대로 둔 채 사내하청노동자만 잘라내는 인력감축 중심의 구조조정은 중단되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사회적 연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독일의 폭스바겐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1990년대 폭스바겐사는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노사는 일자리를 지키는 대신 주 36시간 근무를 28.8시간으로 줄였다. 노동자들의 소득은 평균 12% 줄었지만 대신 회사는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했다.
한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위험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통계에서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2위를 기록했다. OECD 국가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인 1770시간과 비교하면 354시간이 더 길다. 한국의 노동시간 통계는 과소추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무직노동자들의 부불노동은 노동시간 통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도 때문에 사무직노동자들의 시간외 근무와 휴일근무는 일부만 보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영자단체로서는 이례적인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작년 6월부터 9개월간 국내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가 그것이다. 기업의 조직건강도 진단 결과를 보면, 국내기업 77%의 조직건강은 글로벌 하위권에 해당하며, 한국 기업문화 진단에서 직장인들은 습관화된 야근을 가장 심각한 기업문화로 꼽았다. 구체적 실태를 보면, 직장인들은 주 5일 기준 평균 2.3일을 야근하고 있었고, 3일 이상 야근자 비율도 43.1%에 이르고 있다.
이뿐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퇴근 후 노동을 강제한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정보통신 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의 67%가 퇴근 이후 또는 휴일에 스마트폰이나 이메일를 통해 업무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근무시간 외 업무 메일이나 메시지를 무시할 권리’의 보장이 현실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 노동자들 전반에 깊게 뿌리 내린 장시간 노동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집중도를 떨어뜨려 각종 질병·재해를 유발하고 가족 결속력 약화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장시간 노동-저부가가치-저임금의 고리를 노동시간 단축-고부가가치-고임금의 선순환구조로 바꿔야 한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구조조정의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기 위한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 방안을 마련하고 실업대책을 확충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를 나누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국민의 휴식권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한편 내수 및 서비스산업 활성화까지 촉진하는 일석사조의 처방전이다. 인력 감축 중심의 낡은 구조조정을 방식을 폐기하고, 질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실행하자. 어렵지만 그것이 함께 사는 길이다.
*이 칼럼은 5월 9일 뉴스토마토(시론)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