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불안정은 건강을 잠식한다

노동사회

노동의 불안정은 건강을 잠식한다

편집국 0 4,699 2013.05.17 08:54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층 가속화된 노동시장 유연화의 폭풍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거나 비정규노동자로 전락했다. 이런 경향은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되어 결국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노동자의 규모는 55.7%(여성 69.5%, 남성 45.4%)에 육박하고 있다. 또, 비정규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더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과 복지는 거의 절반수준으로 심각한 차별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인간의 건강이 개인 내부의 소인과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임을 감안한다면 열악한 작업환경, 낮은 경제적 수준에 노출되어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건강수준이 낮을 것임을 예측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비정규노동자들의 건강 실태

2004년에 ‘비정규 근로자의 건강실태 분석’이라는 보고서(조명우, 2004)가 발간되었다. 이 연구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전국 단위에서 시행한 ‘2003년 근로자 건강실태’ 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한 것으로, 고용형태에 따라 건강수준이 어떻게 다른지를 고찰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파견직과 특수 고용 형태인 도급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에 비해 사회심리적, 신체적 건강상태가 열악하여 근골격계 질환과 만성적인 피로를 포함한 전반적인 신체 증상 수준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조사한 결과 작업환경 및 조건, 소득 등의 주요 건강요인 변수들을 통제시킨 후에도 고용형태가 건강에 직접효과를 행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즉 건강문제의 해결 방안이 단순히 소득 수준의 향상이나 작업조건 혹은 환경개선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파견이나 도급 관계 자체의 존재를 문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업종 비정규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조사한 한 연구(고상백, 2004)에 의하면, 비정규노동자들이 직무스트레스(직무긴장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직무요구도, 직무자율성, 사회적지지 및 직무불안정성과 사회심리적 스트레스에서 정규직에 비해 유의하게 부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즉 직무스트레스가 높은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며, 실제 개인들의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수준도 높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심리적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한 결과 직무불안정이 설명력이 높은 변수로 채택되어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사회심리적 스트레스에 영향을 주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국민건강영양조사자료를 이용해 사회심리적 건강 수준을 연구한 다른 조사(김일호, 2003)에서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비해 사회심리적 건강 수준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표적 특수고용노동자인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권영준, 2001)에서 경기보조원의 스트레스 수준이 우리나라의 평균 직업별 스트레스 수준과 비교해보았을 때 매우 직무긴장도가 높은 군으로 평가되었으며, 피로수준, 생리관련 이상증상, 근골격계 증상 유병률 및 위장증상 호소율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공공부문 비정규노동자인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경우(정최경희, 2004) 역시 직무긴장도가 매우 높은 군이었으며, 사고발생 수준, 근골격계질환 유병률 및 피부증상 호소율이 매우 높았다. 

비정규노동자들은 임시직, 기간제고용, 파트타임, 호출근로, 특수고용, 파견근로, 용역근로, 재택근로 등 그 고용형태가 다양하고 근무하는 업종도 다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사고의 양상이나 심각도에 차이가 나고 따라서 구체적인 건강문제를 한 마디로 결론내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볼 때 비정규노동자들은 직무긴장도가 높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 심리사회적 스트레스 수준이 높으며, 근골격계 질환, 만성 피로, 사고 발생 등 신체 질환 및 사고의 위험도가 정규직에 비해 높은 경향이 있다고 평가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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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보험관련 시위모습  - 출처: 노동건강연대 ]

중첩된 문제: 영세소규모사업장·여성노동자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중 하나는 비정규노동자의 문제는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영세소규모사업장의 문제 혹은 여성노동자의 문제와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은 주로 소규모사업장에 집중해 있다. 사업체기초통계조사 자료의 1999년 규모별 종사자수를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전체 임시·일용 노동자의 약 88%가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 고용되어 있으며, 특히 10인 미만 사업장에 약 70% 가량이 집중되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 소규모사업장에서는 ‘정규직’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일이 없을 때 ‘아주머니 내일은 일이 없으니 나오시지 마세요’ 하면 아무 항변 없이 일이 있어 부를 때까지 집에서 쉬어야 한다.”거나, 알음알음으로 취업한 사업장에서는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하고 일거리가 없으면 그만두고, 또 다른 데 알아보고 가서 그냥 일하고 하는 식인 것이다.
 
소규모사업장은 자본의 영세성, 하청화로 인한 유해 작업 담당, 안전보건관리체계 부재, 법·제도적 보호장치 미비, 사업주의 무관심 및 무지, 노동자들의 낮은 조직화와 높은 이직률 등으로 인해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에 위치해있다. 매년 발표되는 산업재해 통계자료에서 소규모사업장은 항상 안전보건정책의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2003년 5인 미만 사업장의 전체 재해율은 1.58, 5~9인 사업장은 1.29로, 대규모사업장(1000인 이상 사업장 0.54, 500~999인 사업장 0.44)의 약 3배에 달했다. 사망재해 만인율도 5인 미만 사업장 3.98, 5~9인 사업장 3.04로 역시 대규모사업장에 비해 약 2배를 초과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비단 소규모사업장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불안정 노동을 하고 있는 비정규노동자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 비정규노동자의 문제는 여성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노동자의 약 70%가 비정규노동자이다.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경향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우선적이고 차별적으로 행해져 왔다. 이는 당사자인 여성노동자 개인에게는 일과 가정이라는 여성의 이중 부담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일은 일대로 기약 없이 노동강도 강화와 저임금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구성원들로부터도 경제활동이 평가절하되어 가정 내 성평등을 실현하지 못 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권승, 2003). 그러므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비정규직’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불평등 속에서 더욱더 심화된 ‘일’과 ‘가정’의 이중부담 속에 내맡겨져, 사회심리적 스트레스와 신체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jungchoi_02.jpg비정규노동자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
 
그렇다면, 비정규노동자들을 이렇게 건강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열악한 작업조건 및 환경, 안전보건관리체계로부터의 배제, 낮은 소득, 노동자들의 미조직화,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불안정노동’이란 비정규직 자체의 특성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작업 및 작업환경의 측면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은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유해 요인들에 직접적으로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사내하청업체나 하청을 많이 받는 소규모사업장은 대개 원청업체에서 취급하기 부담스러워 하는, 산재발생 위험이 높은 유해한 공정을 포함하게 된다. 유럽연합(EU)의 조사 자료에서도 비정규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진동, 소음, 유해 물질과 반복작업 등에 노출되는 정도가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하여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설령 그 자체로 유해물질이 노출되는 공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작업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하청을 받은 업체(혹은 파견·용역업체)에서는 일정 이상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거나 노동시간을 증가시키게 된다. 실제로 2004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4)에서도 임시직, 특수고용, 파견 및 용역노동자의 경우 대체적으로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긴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노동강도 강화와 장시간 노동시간은 근골격계 부담, 피로 및 유해물질의 축적 등을 가중시켜 질병이나 사고를 발생시키거나 악화시키게 된다. 

또한 상기 연구결과들에서 보여지듯 비정규노동자들은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며 높은 직무요구도, 낮은 직무자율성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직무긴장도가 매우 높다. 높은 직무긴장도는 신체의 스트레스반응을 초래하게 되는데 체내 불균형을 일으켜 다양한 질병이 야기되며, 특히 심혈관계, 근골격계 증상, 위장관계 증상, 일부 피부증상 및 면역기계의 이상 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  

둘째, 비정규노동자는 안전보건 위험요소 발견, 직업성 질환 및 사고의 예방, 조기 진단, 적절한 치료 및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에서 소외되어 있다. 건강진단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비정규노동자의 수검률이 떨어지는데, 이런 현상은 소규모사업장 비정규노동자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인천지역에서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50인 미만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57.4%만이, 비정규노동자들은 22.7%만이 건강검진을 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한상욱, 2001). 

일단 직업성 질환이나 사고가 발생한 후에도 비정규노동자들은 맘놓고 산재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 한다.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전국금속산업연맹 등, 2003)에서 현 직장에서 산재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들에게 처리방법을 물은 결과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는 응답이 21.9%에 불과했고, 공상처리 46.0%, 자비 부담이 26.5%로 집계되었다. 전국 1,000개 사업장에 대한 한국산업안전공단 조사결과(2001)에서도 산재를 당한 비정규노동자의 18%만이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고, 19%는 공상처리, 22%는 의료보험 처리, 41%가 개인비용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응답하여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의 장벽이 매우 두터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60.8%의 노동자가 ‘하청업체 또는 원청업체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라고 응답하여, 산재보험 처리를 기피하는 회사측으로부터 유언·무언의 압력이 존재하며, 고용불안이 심한 비정규노동자의 경우 해고의 위험 때문에 산재보험 혜택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참 앞에 이렇게 무덤덤해도 되는가!

셋째, 2004년 8월 현재 정규직 남자 월평균 임금은 233만원, 여자는 158만원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남자 월평균 133만원, 여자 87만원의 저임금을 받고 있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4). 소득은 주거의 질, 식품, 의복, 교통, 보건의료, 여가 및 육체적 활동의 기회, 육아, 유해환경에의 폭로 등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일련의 물질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러므로 한 개인 혹은 가구의 소득수준은 당사자의 건강상태나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얼마 전 국내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도 저소득층은 일부 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암에서 고소득층에 비해 발생률도 높고 암 진단 뒤 3년 이내에 숨지는 치명률도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정규노동자의 낮은 임금은 비단 직업관련성 질환 및 사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건강수준에도 그 파장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넷째, 안전보건문제에 참여해야 할 노동자들이 조직화되어 있지 못하다. 2004년 8월 현재 남성 정규직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25.9%, 여성은 20.4%인데 비해, 남성 비정규노동자의 가입률은 4.8%, 여성은 1.5%에 불과하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4). 비정규노동자의 경우 사업장에 노조가 있든 없든 모두 노조가입성향이 낮은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비정규노동자의 대부분은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거나 설혹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원천적으로 가입이 봉쇄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윤진호, 2002). 

마지막으로 이러한 원인들의 저변에는 ‘불안정’이라는 비정규노동 자체의 특성이 깔려있음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언제든 쉽게 해고시킬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인’ 비정규노동자는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용불안은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강도를 한층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며, 이에 따른 작업량·작업시간의 증가와 더불어 직무긴장도와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더욱 증폭시키게 된다. 또한 더 위험한 노동환경에 처해지더라도, 건강검진이나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적은 임금에 사는 것이 아무리 팍팍하더라도 노조를 조직하지 못하고 저항할 기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달 분신을 기도했던 한 비정규노동자는 “우리도 정규직 드나드는 정문 앞에서 데모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차별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비정규노동자들의 비참한 실정에 대해 이 사회는 지나치게 무덤덤하다. 단식과 분신이 되풀이되어도 경제가 살아야 한다며 비정규노동자의 절절한 절규가 외면당한다. 싸늘한 겨울 바람이 더욱 차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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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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