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여, 지구를 차갑게 해 다오

노동사회

노동운동이여, 지구를 차갑게 해 다오

편집국 0 4,391 2013.05.13 11:23

지난 12월26일 남아시아를 덮친 지진해일은 새삼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다시 한번 유감없이 보여줬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만 20만 명에 달하고 또 살아남은 이들 역시 삶의 터전이 쑥대밭이 됐으니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이들 대부분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신의 큰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지만, 그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건 사실이다. 오죽하면 일부 종교인들이 “이번 일은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했겠는가?

yggang_01.jpg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를 충분히 줄일 수 있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태평양의 지진해일을 미리 감지하는 ‘태평양 지진해일 경보 시스템(PTWS)’은 이미 40년 전부터 효율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이런 기술 탓에 하와이에 있는 PTWS는 이번 지진해일을 이미 하루 전에 감지했다고 한다. 물론 지진해일의 규모와 그 위험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었겠지만, 피해 국가들에게 그 내용이 제대로 전달만 됐다면 주민과 관광객은 충분히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지진해일이 도달하는 데 인도네시아 해안 지대는 최소 1시간, 스리랑카는 2시간, 남부 인도는 3~4시간, 아프리카 동부 연안의 경우는 최소 6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들은 PTWS의 경보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PTWS는 기껏해야 해당 국가의 미국 대사관을 통해 경고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자연재해조차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이 결합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최근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 발효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구 온난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지구 온난화와 교토의정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가 2005년부터 세계적으로 발효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교토의정서를 거부하기로 한 이후 사실상 발효 여부를 쥐고 있었던 러시아가 지난 11월5일 푸틴 대통령의 최종 서명으로 교토의정서를 비준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최초의 실효성 있는 공동 대응이라고 일컬어지는 교토의정서가 1997년 채택된 지 7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교토의정서는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1990년을 기준으로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5.2% 줄이도록 한 국제협약이다. 잘 아시다시피 교토의정서의 상위 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은 급속한 공업화로 인해 대량으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CO2)와 같은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그에 따른 기후 변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 시기와 규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작년에 개봉돼 논란이 됐던 헐리우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가 지구 온난화로 초래될 가장 극단적인 ‘환경 재앙 시나리오’를 보여준다면, 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들과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시나리오 대부분이 과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가장 균형 잡힌 견해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과학자들이 5년마다 기후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검토해 이를 바탕으로 내놓는 보고서일 텐데, 이 역시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 그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학자들 사이에도 지구 온난화는 인정하되, 그것이 초래할 기후 변화의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 새삼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재앙 시나리오를 열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최근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폭염, 홍수, 한파, 폭설, 가뭄과 같은 이상 기후 현상들은 지구 균형 회복을 위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기엔 과도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더구나 아열대성 어류가 한반도 인근에 출몰해 어장을 형성하는 등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의 증거들이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든지 넘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지금 지구는 계속 그 경고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더 늦게 행동하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문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온실가스를 방출하는 중요한 수단인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의 고갈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심지어 석유를 팔아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셸과 같은 초국적기업의 전문가들조차도, 세계 석유 생산량이 2010년 안에 정점에 도달한 후 그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한다. 일단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도달하게 되면 그 뒤로는 고갈돼 가는 석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그 비용이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고스란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일은 사실상 ‘석유 문명’에서 살고 있는 인류에게 기후 변화로 초래될 재앙과 맞먹는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더욱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종종 21세기의 국제 분쟁이 대부분 석유, 천연가스, 물 등을 둘러싼 ‘자원 전쟁’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하는 국제 분쟁 전문가들의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국제 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침공해 기를 쓰고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이라크의 풍부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임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만약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를 위시한 중동의 산유국들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향후 미국을 견제할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이나 인도를 통제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확보하는 셈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는 에너지 및 산업 구조를 탈피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석유 문명’ 이후를 대비하는 일이다. 유럽연합이 에너지 및 산업 구조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것도 바로 이런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다. EU는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를 축으로 하는 에너지 및 산업 구조 전환에 1980년대 후반부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1990년에 비해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8% 줄여야 하는 EU는 이미 2010년까지 에너지의 12%, 2020년까지는 20%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공급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런 계획이 성사된다면 EU는 CO2를 2010년까지 3억2000만톤이나 줄일 수 있어 자연스럽게 교토의정서 감축 목표량의 95%를 달성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EU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될까? 그런 한심한 논리는 한치 앞도 전망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와 상황이 전혀 다른 미국만을 표준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나 통한다. EU는 오히려 이런 적극적인 대응이 교토의정서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에너지 효율 기술과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에 대한 수요 증가, 국제 무역에서 환경의 중요성이 커지는 새로운 국제 경제 환경에서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예고하는 단적인 예가 셸과 같은 초국적기업이 재생가능 에너지나 수소 에너지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나서고 있는 점일 것이다. EU가 국가 차원의 생존을 모색하고 있듯이 대표적인 석유 기업들이 이미 ‘석유 시대’ 이후에도 패권을 누릴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우리나라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노심초사한 것처럼 일부 선진국과 초국적기업에 재생가능 에너지 원천 기술을 구걸하는 신세가 돼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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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교토의정서 거부를 풍자한 만화 ]

나는 유럽, 뛰는 일본, 기는 한국

앞에서 살펴본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도 우리나라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가 본격화되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사실 상황은 훨씬 더 급박하다. 한국은 1997년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었지만 교토의정서의 상위 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1992년에는 개발도상국이었기 때문에 교토의정서에서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적용받았다. 이 때문에 다행히 우리나라는 1차 공약기간인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나라에서는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공약기간(2013~17년)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 부담에 참여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정부는 2012년까지는 교토의정서에 대비한 대책을 완비하고 최대한 협상력을 동원해 2018년 이후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 부담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1997년에 1인당 CO2 배출량이 일본을 능가했고, 2001년에는 유럽의 OECD 국가들의 평균을 넘어섰다. 그리고 2003년에는 세계 9위의 CO2 배출 국가로 기록됐고, 지금 추세라면 2010년이 되기 전에 영국과 캐나다를 제치고 7위로 두 계단 상승할 게 거의 확실시된다. 현실이 이러다보니 일부 선진국들은 우리나라가 1차 공약기간에 빠진 데 대해서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의무 부담은 부여하지 못하더라도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협상력 운운하며 대책 마련에 늑장을 부리고 있으니 갑갑할 따름이다.

우리나라보다 모든 면에서 상황이 나은 일본이 교토의정서에 대비해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펴고 있는 것은 비교된다. 이미 일본은 전력, 유통, 자동차, 전기 등 대기업 35개사와 국제협력은행, 일본 정책 투자 은행이 공동으로 ‘일본 온난화 가스 기금’을 마련하고, 온실가스의 배출권을 해외에서 구입할 예정이다. 2012년까지 정해진 양의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못하는 나라는 공장 문을 닫지 않기 위해서 온실가스를 목표보다 더 감축해 여력이 있는 나라로부터 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배출권을 기금을 통해 공동으로 구입해 분배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발 빠른 대응이 있기는 하다. 바로 원자력 산업계와 그와 이해관계가 같은 일부 관료들이다. 이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원자력 발전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 확대를 중지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EU와 정반대의 길을 가려는 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핵폐기물처리장을 둘러싼 갈등으로 충분히 드러났듯이 원자력 발전은 안전 문제, 폐기물 처리 등에 쓰이는 비용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더 이상 ‘미래의 에너지’가 아님이 증명됐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협약에서도 원자력 발전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도입해야 할 대안적인 에너지 체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분주한 기업, 두 손 놓은 노동조합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이런 변화에 제일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쟁력 운운하며 정부 차원의 대응에 발목을 잡으면서도, 실제로는 환경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이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월23일 열릴 총회에서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마련하기로 하고, 업종별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담은 ‘환경 보호를 위한 산업계 자율 행동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SK, LG화학 등은 정부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고, 에너지 저감 기술을 개발하고, 배출권 거래제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뒤늦기는 했지만 교토의정서에 정부와 기업이 분주하게 서두르고 있는 것과 반대로 환경단체를 제외한 시민사회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특히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동자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가장 직접적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열거한 각 기업의 구체적 대응이 당장 현실화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그것을 비용 증가로 간주할 것이고, 그만큼 노동자에게 희생을 요구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더 심각한 것도 있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가 발효돼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 부담을 지게 되면 발전산업 구조조정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발전산업 민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노동조합을 압박할 것이다. 노동조합 입장에서 중장기적 대응 방향을 마련하지 않으면 시대 변화를 좇지 못하고 절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수많은 선배 노동자의 대열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면에서 형편이 좋지 않은 북미지역 노동운동 일각에서 ‘올바른 이행(Just Transition)’이라는 이름으로 에너지 산업계의 일자리 창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 환경친화적 에너지 체제 추구 등을 포함하는 지탱 가능한 경제(Sustainable Economy)로의 전환을 꾀하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Blue-Green Alliance)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적 난제를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생명과 평화의 시대’냐 ‘야만’이냐, 기로에 선 노동운동

앞에서는 주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지구 온난화 문제와 그 대응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다. 최근 지율 스님이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문제를 놓고 4년여에 걸쳐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은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1백일에 가까운 단식을 하며 초인적인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솔직히 많은 노동자들은 “중 하나가 ‘꼭 필요한’ 경부고속철도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 노동자의 정서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노동운동 역시 먼 산 불구경하듯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이 보이는 이런 모습이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거대한 시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2~3년 새로운 연대 활동의 목록을 쭉 살펴보면, 생명과 평화에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다. 더디지만 생명과 평화가 새 시대의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떠오르는 것 같다.” 최근 유력한 한 시민단체의 간부가 언급한 이 말에 나 역시 크게 공감했다. 앞으로는 생명과 평화를 둘러싼 지난한 싸움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지금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눈앞의 문제들에 급급한 채 생명과 평화에 관련된 문제들에 침묵한다면, 노동운동은 시대의 변화를 좇지 못한 채 자본과 국가가 던져주는 먹고 남은 쓰레기에 집착하는 개로 전락할 것이다. 결과는? 몽둥이를 든 성난 민중들은 주인뿐만 아니라 개도 가만 두지 않는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