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과 연대의식 사이에서

노동사회

이기심과 연대의식 사이에서

편집국 0 3,490 2013.05.13 11:18

올해 초 현대자동차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와 함께 사내하청에 대한 불법파견 진정을 노동부에 제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동부는 1차로 10여개 업체가 불법도급,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다. 최근 언론의 보도를 보면 현대차의 생산라인 사내하청은 모두 다 불법파견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울산공장에서만 101개 업체 8,000여명, 아산과 전주공장을 합치면 대략 1만명이 불법적인 파견이거나 도급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현대자동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아, 대우, 쌍용 등 대규모 조립라인을 두고 있는 사업장의 사내하청은 대체로 비슷한 형편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사내도급의 불법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정규직의 문제만을 주요한 과제로 투쟁해 왔다. 비교적 노동조합운동이 잘 발달되어 있고 기업의 사회적 지위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법을 잘 지킨다는 대기업의 형편이 이 정도인데, 소규모 사업장이나 상가, 식당, 개인사무실 등 사회전반의 파견노동자 실태는 더욱 열악한 형편일 것이다.
 
8백만을 넘어섰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개선하거나 철폐시키는 일은 이제 개별사업장의 경계를 넘어섰다. 개별사업장에서 개별자본과의 투쟁도 한 축이겠지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명운을 걸고 투쟁을 전개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총연맹의 동력이 현장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기에 현장노동자들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작업이야말로 비정규직 철폐로 이어질 노동자계급 연대의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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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6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원들이 야간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 출처: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

현 대자동차는 지난 98년 정리해고의 광풍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에도 비정규직은 경비, 청소, 시설관리의 영역과 직접생산 부문에서 부분적으로 존재했다. 당시 대략 6,700여명이었던 비정규직은 이제 13,600여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98년 이전에는 생산을 지원하던 간접부문이 대다수였던 비정규직이 이제 모든 생산공정에 투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당시와는 다른 점이다.

정규직은 '현역', 비정규직은 '방위'?

이 렇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작용을 했다. 첫째, 생산량이 줄어들면 고용이 위태로워진다는 냉혹한 현실을 체험한 정규직노동자들이 언제든지 필요할 때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이 자신의 고용을 지켜주는 완충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작업조건이 까다롭고 힘든 일에 대한 기피심리가 있다. 하청 노동자는 작업장내에서 권리가 미약하고 나이도 어린 탓에 직영노동자가 시키는 일들을 거부할 수가 없다. 사실 라인에 투입될 때부터 그 직무에 담당하기로 약정되어 있다. 셋째, 위에서 언급한 조합원들의 이기적 심리에 부응하여 당장에 인기를 유지하려는 현장간부들의 안이한 자세가 있다. 이러한 심리는 끊임없이 하청투입을 고집하는 회사와 노조가 적절히 타협할 수 있는 구실이 되어왔다.

비정규직 노조가 생겨나기 이전까지 현장에서는 작업물량 조정에 따라 하청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했고 잘리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정규직은 ‘현역’, 비정규직은 ‘방위’라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잡혔다. 그리고 똑같은 권리를 갖고 대등한 업무와 관계를 주장하는 정규직 신입동료를 별로 달갑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들에 대한 동정심, 똑같은 일을 하는 똑같은 노동자 동료에 대한 연대의식도 있다. 후생복리제도가 훨씬 뒤쳐진 것이나 임금이 훨씬 낮은 것에 대해 개선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들이 언젠가는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자신의 자녀들이 장성하고 취업이 어려워지는 현실에 부딪히면서 비정규직은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정규직 노조의 대응과 비정규직 노조의 건설

2003 년 3월 현대차 아산공장의 하청노동자가 월차휴가를 요구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난도질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아산공장에서는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고 울산공장에서도 같은 해 9월 비정규직 노조가 건설되었다. 비정규직 노조의 건설을 전후하여 비정규직 동지들은 자신들의 취약한 조직기반을 대중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현장사업들을 전개했다. 노조 주체들의 공식적인 사업도 있었지만 개별 기업 단위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투쟁들도 있었다. 임금인상이나 후생복리제도의 확대, 산업보건과 관련한 요구들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작업장내에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직무 로테이션 요구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비정규노동자들의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생산라인이 정지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시각은 별로 곱지 않았다. 우리 문제가 아닌 하청의 문제 때문에 라인이 정지되는 사태를 염려했고, 그들의 요구 속에 담겨있는 자신의 권리를 양보에 대해 기분이 나빠했다. 비정규직 노조의 지도부도 이러한 현상을 매우 염려하고 경계했지만 한번 시작된 불길은 쉽사리 진정될 줄 몰랐고, 이는 이후 전개된 현대자동차 산별노조 전환 총투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정규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이후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철폐를 목표로 하는 사업계획을 수립해 왔지만 단위 사업장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현실적이지는 못했다. 민주노총은 2003년부터 비정규직의 철폐라는 슬로건과 함께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병행하는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현대차에서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공식적인 요구는 2002년 임금협약에서 맨 처음 이뤄졌다. 이어 2003년 단협부터는 보다 체계적인 논의를 거쳐 이뤄졌다. 비정규 노조와 요구안의 작성단계에서부터 논의를 했고 대의원 대회에서 요구사항으로 의결했다.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 노조건설이 준비되고 있을 때 노조의 건설 시점과 관련하여 수 차례 간담회가 있었다. 사실 정규직 노조의 입장에서 보면 비정규직 노조의 건설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업이었다. 비정규직 노조의 주체들이 노조를 건설하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을 때 정규직 노조는 충분하게 준비되지 않은 노조의 건설은 올바른 방침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공동의 요구를 내걸은 적도, 공동으로 투쟁해본 경험도 없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바탕으로 조합원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동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자노조에 직접 가입하는 단일한 노조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03년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직가입을 위한 규약개정을 결의했다. 2004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도 이 사업을 재차 결의하여 규약개정과 현대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의 통합을 위한 총회를 준비중에 있다. 비정규직 노조가 건설되지 않았을 때는 규약개정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가입하면 되었지만, 노조대 노조의 통합은 조합원 총회를 통해 2/3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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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불법파견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부를 방문한 현대자동차노조 간부들  - 출처:현대자동차노조 ]

유인물과 성명서 이상이 필요하다

사 실 비정규직 노조는 아직까지 노동조합다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개별 하청사장은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수당, 후생문제를 결정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원청인 현대차는 자신이 법적인 사용자의 지위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법의 맹점을 악용하고 있다. 이 조건에서 비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방어와 해고로부터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고, 조직은 확대되지 않고 있다. 원청인 현대자본의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탄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 불법파견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노조로서는 원칙적인 자기입장을 표명하는 수준에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계획되기 이전부터 이미 현대차는 불법파견이 확인되었고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는 대응의 수위를 높이며 전원 정규직화의 요구를 내걸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11월26일 파견법 개악저지를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사업장내 최대의 현안을 전국적으로, 대중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전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한 비정규직의 문제, 그것도 불법적으로 고요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응하는 현자노조 지도부의 대응은 안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합원들이 불법파견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일은 유인물 몇 장으로 해결될 수준의 작업이 아니다. 회사에 보내는 공문을 통한 항의와 시정요구, 그리고 대외에 알리는 성명서 이런 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항의를 대중적으로 조직하는 일이다. 사안의 중대성으로 보면 항의를 조직하는 일과 더불어 회사에 보다 구체적인 압박을 가하는 작업중단의 투쟁까지도 염두에 둬야한다. 최근 비정규직노조는 공장별로 불법파견을 알리는 집회투쟁을 전개 중에 있다. 그러나 정규직노조는 구체적인 계획도 실천도 없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지 조합원들은 답답할 뿐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된, 노동자의 미래를 위한 싸움

연 일 계속해서 떠들어대는 언론의 보도와 노조의 선전을 보면 1996~97년의 총파업에 버금가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비정규 파견법을 개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더 나아가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과 철폐까지를 기대할만했다. 나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어떤 판단을 가지고 파업투쟁의 수위를 낮추고 본격적인 투쟁을 뒤로 미뤄뒀는지 알 수 없다. 또 11월14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상임위 상정 일정과 상관없이 11월26일 무기한 총파업을 결정했는지,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탓으로 알지 못한다.

그 러나 상임위 상정과 상관없이 총파업을 하겠다는 것이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제스처였다면 대중투쟁은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게 될 것이다. 대중적인 결정은 막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협상과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한번 결정된 사항이 흔들리면 대중의 신뢰를 잃기 쉽고 사안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단위노조 지도부는 우리가 내세웠던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성과를 가진 게 없고 다시 투쟁을 일으켜야할 사안이기 때문에 시한부투쟁으로 전술을 변화시킨 이후 조합원을 이해시키고 포성이 계속되고 있다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켜 나가야한다.

그런데, 지금 현장은 마치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전혀 끝나지 않았다. 내년 2월 임시국회 처리를 위한 형식적인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가 있다. 지금 현재의 파견법만으로도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그들을 불법적으로 파견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했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은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인간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1천4백만 노동자중 비정규직이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자녀 둘 중 하나는, 어쩌면 둘 다 비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심각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정규직들도 나서야 하는, 이제야 비로소 시작될 이 싸움은 비정규직을 위한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모두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