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능성을 운동 재도약의 전환점으로

노동사회

새로운 가능성을 운동 재도약의 전환점으로

편집국 0 2,773 2013.05.13 11:11

지금은 또 미래를 꿈꾸는 시간,
그 동안 우리 앞에 수 많은 미래가 다녀갔어도
손을 내미는순간 어떻게 모두 과거가 되었는가
그 모든 것 가운데 하나의 미래가 남았으니
그가 전태일이 아닌가, 그가 초심이며
초심은 미래를 비추는 옛거울이 아닌가
돌아보라, 그가 잊혀진 시간은 언제나 죽은 노동의 시간이었다

아, 이제 그대들이 그리하자면 그리 되리라
만산에 꽃이 흐드러지라 하면, 그리 되리라
온갖 새들이 와서 우짖으라 하면, 그리 되리라
그러나 헐벚고 소외된 자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라 하면
가슴을 치고 울어야 할 날이 이직도 많으리라
그들에게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스스로에게는 가슴치며 울기를 행복해하자 해야 하리라

그렇다네, 이 길을 도도히 흐르는 강물 같다 하지 말자
역사라고 말하는 것도 싱거운 일이다
우리들 가슴 한가운데, 생명의 중심부에
과녁에 꽂혀 파르르 떠는 화살처럼 이 길은
피를 교환하는 우리들 육신과 한몸 같은 것
삶은 광야와도 같은 것, 저기
또 하나의 지평이 푸르게 일어서네
맨발로 달려가 그를 맞이하라/천둥이 치게 하라, 첫닭이 울게하라,
북소리 둥둥 천지를 가르게 하라 만산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하라
온갖 새들이 여기와서 우짖게 하라

  -백무산, “여기까지들 오셨구나 중에서”-


마침내 진보정치의 전진 기지를 구축하다

새 밀레니엄에의 꿈을 그려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섯해 째의 새 아침이다. 세상 모든 일이 한시도 쉼 없이 변하지만 지난 한 해의 정치변화는 그야말로 격동의 연속이었다. 그 진원지는 대통령 탄핵과 4·15 총선거이었다. 이 두 정치국면에서 낡은 세력은 오랫동안 눌러붙은 오만함과 무지를 송두리째 드러내면서, 노도와 같은 촛불시위로 표출된 국민의 분노 앞에 심각한 자멸의 위기를 경험하였다. 국민들의 높은 민주정치의식은 선거를 통해 수구 보수세력의 아성을 무너뜨리면서 그들의 횡포를 응징하고 개혁의 열망을 다시 확인하였다.

정치정세의 극적인 변화는 무엇보다 진보정당의 진출에서 두드러졌다. 민주노동당이 일거에 10명의 의원을 당선시켜 제3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진출은 외세와 민족 분단, 불의와 불평등, 독재와 권위주의를 청산하라는 민중열망의 분출이었다. 또한 그것은 참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해 속절없이 흘려온 피와 눈물과 땀의 역사이며,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이제 정치는 냉전 수구세력이 지배해오던 판에서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병존하는 형국으로 변하였다.

물 론 수구냉전 보수세력의 저항은 완강했다. 이들은 노무현정부가 추진한 개혁정치의 시행착오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반동’으로 회귀를 획책하였다. 이들에게 노무현정부의 자유주의적 개혁은 ‘빨갱이’들의 망국행위일 뿐, 오로지 노무현정부의 퇴진과 자신들의 복위만이 정치난국의 해법이었다. 여기에 경제상황의 어려움이 가세하였다. 도무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는 개혁 추진력을 공격하는데 더없이 훌륭한 조건이었다. 자본가들은 잔뜩 의구심을 갖고 투자를 기피하였고 개혁정치의 포기를 요구하였다. 개혁과 진보세력을 잠재우고 싶어하는 기득권 세력의 한결같은 염원은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로까지 발전하였다.

참 여정부는 ‘혁신과 통합’이라는 이름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경제의 회생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그러나 경기회복은 지체되어 지지도는 떨어지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계속 추진함으로써 노동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싼 격전을 눈앞에 두고 비정규직확대관련법을 상정함으로써 동맹군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한나라당은 수구언론의 엄호를 받으면서 개혁과 진보간 연대의 균열을 틈타 4대 개혁입법을 망국의 횡포로 몰아부쳤다. 경제인들 역시 개혁싸움을 그만하고 민생경제에 주력하라고 연일 목청을 높였다. 마침내 노무현대통령의 입에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가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정치개혁은 다시 혼미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형국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처럼 지난 해 정치상황은 국민들이 역사적인 대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음에도 수구 냉전세력의 반발과 참여정부의 시행착오로 혼미를 거듭했다. 그러나 이미 수구냉전세력의 권위주의 시대는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새로운 세계와 질서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 작은 풀뿌리가 주인공이 되는 시대이며 오래 눌렸던 자들이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절차 민주주의 진전으로부터 실질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변화하는 도정에 있음을 의미하며, 그 가운데 노동운동은 변화의 중심축으로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우울한 노동상황을 헤치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가능성들

정치상황의 격류 속에서 노동운동을 둘러싼 조건은 악화될 뿐이었다. 무엇보다 전례없이 오랜 경기침체로 노동자대중의 우울증은 더욱 짙어졌다. 물가는 4%대에 육박하고 3.5%수준의 실업율의 뒷면에는 광범한 불완전 취업자들이 15%를 훨씬 넘어 존재하고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율은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데 명목임금 상승률은 전년의 절반 수준에 멈추고 실질임금도 큰폭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통계상의 지표일 뿐 현실 밑바닥 노동자의 실정은 훨씬 심각하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빈곤층 1천만 시대’의 우려가 이를 말해준다.  여기다 ‘고용없는 성장론’이나 ‘산업 공동화론’이 노동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경제특구니 기업도시법이니 FTA니 하는 것들이 잔뜩 노동자들의 기를 죽여 왔다. 피폐한 삶의 황무지로 팽개쳐진 한계선상의 노동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는 현대중공업 박일수 노동자의 분신으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하지만 자본의 음성적 불법행위는 거침이 없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불법 파견이 성행하였고 삼성은 불법 위치추적을 하는 등 불법 인권 침해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무노조 신화의 음흉함을 여실히 드러냈으며,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는 아직도 증가일로다. 노동상황 악화의 압권은 고용의 유연안정성의 확보라는 명분 아래 시도된 정부의 비정규직노동 관련 입법이었다. 어디를 봐도 노동자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은 찾아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자본과 정부는 노동운동진영을 거세게 몰아부쳤다. 그 근거는 노동쟁의의 확산이었고 요지는 고임금의 대기업 정규직노동자들의 이기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의 확산도, 노동시장의 양극화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몰았다. 정부와 정치권 역시 노동운동의 도덕성을 문제삼았다. 당초 정부는 직권중재 회부를 조건부로 유보시키거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진지한 대화를 추진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서울 지하철과 엘지 칼텍스노조의 투쟁을 계기로 다시 강경자세로 선회하였다. 외국에 나간 노무현대통령의 비판적 발언에 고무된 보수언론은 노동운동진영을 다시 한번 거세게 매도하였다. 오로지 노동자가 자제해야 하고 대기업 강성노조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 나라경제는 거덜날 수밖에 없다고 몰아갔다. 그들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강성노조의 집단이기주의 해체만이 노동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하였다.

비판은 노동운동 주변에서도 제기되었다. 광범한 불안정 노동층을 황량한 대지에 팽개친 채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전투적 조합주의로 치닫는 노동운동은 왕자병에 걸린 썩은 노동운동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하였고, 산별노조의 건설을 외치면서 소외된 하층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근로조건 개선을 우선시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멸망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탄채 졸고 있는 노동운동일 뿐”이라고 거칠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노동운동에 대한 우려와 애정에서 표출된 이들 충고는 수구 보수언론들에 의해 노동운동 내부에 엄청난 위기의식과 분란의 회오리라도 일어난 것처럼 덧칠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조건 속에서 노동운동의 1년은 그야 말로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노동조합은 상반기 임단투를 진행하면서 4·15총선거에 온 힘을 쏟았다. 진보정당은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발원된 수구세력에 대한 국민일반의 반감과 낡은 정치에 대한 혐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 등이 교차하면서 지역패권주의와 양당대결구도의 음모를 헤치고 약진을 거듭하였다. 그 결과가 민주노동당의 10석 확보와 제3당으로의 진출이었다. 장구한 세월 열망해왔던 일하는자의 정치세력화의 한 방도를 실현시킨 것으로 노동자 대중의 의식과 노동운동의 발전에 비추어서는 더 없이 값진 역사적 성과이었다. 한편에 녹색사민당의 참패와 한국노총의 위기가 노출되었지만 한국노총의 자기 반성을 통한 내부 개혁의 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총선에서의 성취감은 현대 중공업 박일수 노동자의 분신으로 인한 충격과 자괴감을 뛰어넘어, 운동 발전의 기대와 가능성으로 연결되면서 임단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임 단투는 임금 11%대의 인상과 노동조건 저하없는 주5일제, 고용안정, 사회공헌기금, 비정규직의 철폐, 사회공공성 확대를 주요 요구로 시작되었다. 경기침체로 인한 위축감과 정치진출에 의한 자신감 사이에서 진행된 임단투는 치열한 공방 속에 진행되면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모습들을 나타냈다. 첫째로 노동조합이 연대의 원칙을 요구에서 제시하였다는 점이었다. 비정규직의 철폐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사회공헌기금 역시 소박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소외된 노동자들을 지원하여 일으켜 세우기 위한 기초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사회공공성 확대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사회개혁 요구는 투쟁의 정당성을 확실히 해주는 중요한 요소이었다.

둘째, 노동조합운동은 산업별 통일투쟁에 의한 산별교섭의 기본틀을 마련하고 산별협약을 쟁취하였다. 보건의료노조는 사상 최초의 산별파업과 산별교섭을 통해 산별협약을 체결하였고 금속산업노조와 금융산업노조 역시 작년에 이어 진일보한 산별 통일협약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산별건설운동에 대한 일부 비판을 잠재우고 내용을 갖춘 산별교섭의 정착을 통한 산별시대의 본격적인 전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 밖에 전국의 지하철노조 들이 궤도연대를 구성하여 연대투쟁을 벌이고 전국플랜트건설노조들이 협의회를 결성하여 포항, 여수, 전남 동부에서 공동파업을 전개하였다.

셋째, 사업장 단위의 투쟁 가운데 금호 타이어 노조는 비정규직노동자와 연대하여 불법파견노동자 27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전형을 창출해냈다. 또 코오롱, 금강, 풀무원 등에서 구조조정과 관련한 투쟁들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코오롱의 경우 나중에 다시 문제가 되기는 하였지만 한사람의 희생도 없는 파업투쟁을 통해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저지해내기도 하였다. 다만 엘지 칼텍스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도 대량징계의 깊은 상처와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라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노동자 투쟁은 하반기 제도개선투쟁으로 발전하였다. 그 투쟁은 공무원노조의 노동기본권 완전보장, 비정규직 노동자관련법 입법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FTA반대투쟁,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 진출 반대 등으로 이어졌다. 공무원노조의 파업은 당초의 열기와는 달리 정부의 강한 대응과 대량징계의 칼날 앞에 힘을 잃고 위축되었다. 이에 반해 비정규직 관련법 반대투쟁은 근래에 보기 드문 열기를 나타냈다. 민주노총은 광범한 교육과 선전 홍보를 통해 현장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비정규연대회의를 출범시킴으로써 투쟁의 전선을 넓혔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타워크레인 고공농성과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을 통해 절박성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한국노총이 비정규법안 철회를 요구하여 25일간 천막농성을 벌인 것도 새로운 양상으로 주목되었다. 총파업투쟁은 비정규노동관련법안이 국회에서 상정이 보류됨으로써 노동자의 잠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 밖에 배전분할문제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중단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고, 화물과 철도, 택시의 제도정책 개선과제는 교섭을 통해 해결됨으로써 노정간 정면대결의 위기를 넘기고 마무리되었다.

한 편 조직적으로는 금속연맹이 현대중공업노조를 제명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한국노총의 3개 공공연맹 통합,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의 출범, 노동자대회를 비롯한 양대 노총의 연대 확산,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노동자의 노동절 행사 개최 등이 새로운 변화로 관심을 끌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가 진전되고 전체 노동조합 조직율도 저하추세를 멈추는 등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의 위기 극복이 노동운동의 지상 명제

새 해 환경이 더 나아지리라는 전망은 그리 많지 않다. 언론에도 보도된 잿빛 경제전망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요지음처럼 변화도 많고 빠른 불확실성 시대에 전망이란 빗나가기 일수라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상황은 자못 심각해 보인다.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침체로 내수는 물론이고 수출경기마저 어려워지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임금인상은 고사하고 기업들이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아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거세게 밀어부칠 위험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다. 고용불안은 더욱 깊어지고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울 뿐이다. 여기다 제도 정책과 관련된 미결의 과제들이 시한폭탄처럼 가로놓여 있다. 비정규직 노동관련법과 노사관계 선진화계획들이 그것이다. 한일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관련산업 노동자들은 또 다시 불안의 늪으로 밀려들 것이고, 복수노조문제나 전임자임금지급문제를 둘러싼 논의도 여러 가지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모처럼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다수당의 담합과 횡포를 뛰어넘어 노동자 요구를 관철시킬 여지도 가까운 시일 안에 커질 것 같지는 않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상황변화의 전망은 노동운동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올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노동의 자제와 양보를 강요하는 이들 공세는 그 정도만 다를 뿐 사실상 늘상 있는 것이려니와 그에 대한 대응은 순전히 노동의 몫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태도 역시 노동운동의 자체 역량과 노사간의 힘의 관계로 저울질될 수밖에 없다면 이 역시 온전히 노동의 할 나름이다. 그렇다면 그 숱한 어려운 조건을 뚫고 노동운동의 전환을 마련할 계기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오늘날 노동문제의 핵심은 차별화와 빈곤화에 의한 노동의 피폐화, 황폐화에 있다. 이것이 더욱 심화 확대될 경우 노동은 위기에 빠지게 되고 종내는 노동운동의 위기로 발전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의 대명제가 바로 이 노동 위기의 극복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고 있으며, 노동운동이 노동조합원의 이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전체 노동자 대중의 관점으로 전환해 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럴 때만이 노동운동은 안팎으로부터의 지지와 신뢰 그리고 역사적 정당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소극적 방어적인 처지에서 적극적 공세의 위치로 전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투쟁도, 자신들의 이익 만을 위한 싸움꾼, 시비꾼의 투정이라는 인식을 털어내고 구성원의 흔연한 동의, 국민 여론의 흔쾌한 지지와 이해를 배경으로 당당하고 의연하며 정의로운 투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응당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노동자계급 전체의 공통요구를 사회적 의제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문제의 해결을 비롯한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방안 등이 그 예이거니와, 자신의 적극적인 대안과 대폭적인 양보를 포함한 연대임금정책과 사회개혁 요구는 임단투의 중요한 전략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경로로 이 의제들을 쟁점화하고 해결을 촉진할 수 있는 장과 기회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사회적 교섭이다. 사회적 교섭은 노동운동의 주요영역인 정책참가의 한 방편이며 노동의 피폐화를 막기 위한 제도정책 개선투쟁의 전술적 수단이다. 노동조합 스스로 투쟁의 선택이나 결단이 열려 있는 조건에서 그것은 포섭을 우려한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의 여지가 많은 장으로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구성원 대다수가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면 결단을 미루어야 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핵심 추진세력인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가야 한다. 이미 많은 기회에 산별노조의 건설, 조직운영의 개혁, 이념 및 기조의 정립, 정치세력화의 적극화 등등 혁신과제들이 제기되었지만 당면 투쟁에 매몰되어 지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로 각급조직에는 동맥경화증 또는 피로증후군이 나타나고 있고 현장조직력은 현저하게 훼손되어 활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의 공격에 쉽게 무너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 -현대중공업노조의 제명, 엘지 칼텍스노조의 파괴, 서울지하철노조의 패퇴, 사무금융연맹 내부갈등, 서울대병원지부의 산별협약 부정사례 등-은 노동조합운동의 혁신을 게을리한 침체와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전면적인 조직진단과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광범한 대중토론과 민주적 결정에 의한 철저한 실천, 충실한 일상활동을 통한 현장 조직력의 복원과 노조활동가의 양성에 의한 운동의 활력 주입 등은 오늘날 조직상태에 비추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민주노총 창립 10주년이 되는 해이자 한국노총도 모처럼 개혁의 기치 아래 새로운 출범을 기약하고 있다. 많은 조직들이 지도부를 바꾸어 힘찬 변화와 전진을 천명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모처럼 보였던 새로운 가능성을 노동운동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