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칼이 아닌 개혁의 칼을

노동사회

죽음의 칼이 아닌 개혁의 칼을

admin 0 3,436 2013.05.12 08:04

지난 2004년 5월7일 광화문 열린광장에서 서울 정오교통 소속 택시기사 조경식씨가 분신하였다. 1984년 박종만 열사이후 20년 동안 스물여덟 번째 이어진 택시노동자의 분신이었다. ‘또 다시’라는 말을 단순한 수식어가 아닌 일상어로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매년 1.4명의 택시노동자가 자신의 생명을 내던지는 현실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불구덩이에 내던지고, 얼마나 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택시와 연관된 사고로 죽어야 택시제도가 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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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0.7명이 택시사고로 죽고 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연간 47억명의 승객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회사택시의 교통사고율은 평균 36.3%로 5대중 2대 꼴로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는 개인택시 사고율 2.1%의 17.3배나 되는 수치다. 회사택시로 인한 지난 3년 간 사망자는 수는 779명으로 하루 평균 0.71명, 부상자수는 평균 45,000명 수준으로 전체 사업용 차량 중 가장 높은 사고위험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택시가 ‘1회용 자가용’ 개념으로 시민을 수송한다는 공공성을 상실한 채, 승객과 택시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도로를 질주하는 살인흉기로 전락했음을 의미한다.

개인택시에 비해 회사택시가 이렇게 높은 사고위험을 보이는 것은 사납금제와 불법경영, 그리고 요금인상 외에는 아무 정책 없이 택시제도를 방치하고 있는 정부에 그 책임이 있다. 물론 생계 탓에 기인하는 택시노동자의 잘못된 운행습관도 관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불법 질주하게 만드는 열악한 택시노동자 현실

gsgi_01.jpg택시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생활여건의 열악성은 그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전부터 더욱 악화되고 있다. 90년대 초·중반까지 1일 10시간30분 내외였던 노동시간이 이제는 11시간 30분에 달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1일 15시간이상의 노동을 강요하는 1인1차제마저 급증, 최악의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그리고 2004년 3월23일자 『한겨레21』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장시간 노동을 월 26일간 지속한 후에도 기사들은 80.6%는 월급을 1백만원도 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37세, 부양가족 3.4명의 가장인 택시노동자가 꾸려가야 할 현실을 감안할 때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보다 못한 실정이다. 더구나 2002년 하반기부터 내수침체, 신용불량자 급증 등으로 승객이 뚝 떨어져서 택시노동자의 임금은 최근 10년 사이 최악의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

결국 택시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생계가 파탄나고, 신용불량자로 몰리고 있다. 그리고 중노동을 해도 생계유지조차 힘들어진 현실 때문에 노동자들이 택시회사를 떠나고 있다. 현재 회사택시의 운전자 부족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택시회사들은 택시노동자 부족현상을 메우기 위해 오히려 기사 한명이 24시간 교대 없이 택시 한 대를 관리하는 ‘1인1차제’(보통은 1일 2교대)를 확대하고, 불법경영을 자행하고 있다. 즉, 제도개선이 아니라 노동강도 강화와 범법의 방법으로 문제를 피해가고 있어, 택시노동자들의 문제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결국 강화된 노동 강도 아래서 사납금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과 생계유지의 압박을 느끼는 택시 기사들은 승객의 안전과 노동자의 생명을 도외시한 채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다. 

요금인상 말고 대안 없는 정부

1997년 9월1일부터 택시문제의 근본원인 사납금제를 해결하고 불법경영 근절하기 위해 택시기사들이 벌어온 요금을 모두 회사에 납입하는 ‘전액관리제’를 법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이 제도 시행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택시노동자들의 임금체계를 월급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납금 납부시 일정액의 정해진 임금과 초과수입금을 합쳐 임금으로 지급됐던 기존 사납금제 하의 방식에서, 초과수입금마저 회사에 납부하고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일정한 월급을 받아갈 수 있도록 임금체계 전반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 시행 후 7년째인 현재까지, 전체 택시업계의 90%가 여전히 사납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전액관리제 시행을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명목으로 최소 두 차례에 걸쳐 20%대에 이르는 높은 요금인상이 시행했다. 물론 요금인상의 성과는 별로 없다. 이는 결국 택시업계의 문제는 단지 재정지원의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태까지 와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정부는 택시문제 해결을 위해, 아니 최소한 법이 지켜지도록 하기 위한 노력자체도 하지 않았다. 도급제, 지입제 등 불법경영은 이미 전액관리제 시행이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됐던 택시회사의 고질적인 불법행위였다. 그리고 사업주들이 7년이 넘도록 법으로 만든 전액관리제를 위반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해결책조차 모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액관리제가 시행불가능한 제도라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하기 어려운 제도라면 택시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대책이라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부가 한 일은 요금인상 외에는 전혀 없다. 이것이 택시를 자멸로 이끈 원인이다.        

지난 84년 박종만 열사가 분신을 한 후 매년 1명 이상의 택시노동자가 뜨거운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택시노동자의 생존권’과 ‘택시제도 개혁’을 외쳤다. 2004년 5월7일 서울 정오교통의 조경식씨가 또다시 분신을 하기까지 스물여덟 분이 참혹한 택시현실을 바꿔달라고 이 사회에 절규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택시노동자는 신용불량자로 밀려나고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죽어야 하는 더욱 가혹한 현실 속에 처해 있고, 시민들은 여전히 1,600원짜리 짐짝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6월16일에는 또 한 분의 택시노동자가 청와대 앞에서 분신하였다. 그 분의 손에는 타다만 신용불량자 통보서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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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16일 택시노동자 총궐기를 맞이하여 지방의 택시들이 서울로 들어오고 있다.   - 출처 : 민주택시연맹 ]

조경식 동지의 분신과 6월16일 총파업

민주택시연맹은 올해 초 경제불황, 사납금제 및 불법경영 등으로 택시노동자의 생계 및 고용 자체가 파탄지경에 몰리고 있다는 인식 하에, ‘택시구조 개혁’을 중심에 놓고 올해 투쟁계획을 잡았다. 이를 위해 전반기는 2006년까지 연장된 부가세 경감분 전액쟁취, 7월1일 유류세 인상 및 유류세 보조금 감축에 따른 요금인상 백지화를 중심슬로건으로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투쟁의 첫 시발로 2004년 5월7일 국세청 앞에서 ‘전국택시노동자 대정부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한 날, 조경식 동지의 분신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생존권 쟁취! 불법경영 척결! 택시제도 개혁!’을 위한 투쟁은 갑자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민주노총의 6월 집중투쟁의 도화선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연맹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과 합세하여 ‘조경식 동지 분신대책위원회’를 5월8일 구성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정부를 향해 부가세 전액지급 방안 마련, 요금인상 계획 백지화 등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대책 마련,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택시업계 구조개혁 단행, 그리고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처벌을 요구했다. 그리고 5월말까지 정부대책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돌입할 것임을 밝혔다. 5월27일 여의도에서는 5천 규모의 조합원들이 모여 투쟁의지를 다지는 한편, 6월 총파업돌입에 대한 조직적 의지를 확인했다. 또, 노동부, 건교부, 재경부와 수 차례의 교섭을 진행하여 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6월10일 건설교통부가 택시제도 개선방안을 위한 노사정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에는 우리 연맹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택시 증차 금지 등의 택시노동자들의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따라서 우리 연맹은 이를 재논의하여 수정키로 하고 다시 간담회를 갖기로 건교부와 약속하였다. 그러나 건교부는 이런 약속을 무시한 채 6월11일 언론에 마치 노사정이 그 내용을 합의한 것처럼 발표했다. 이는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언론플레이였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 연맹과의 대화창구마저 닫아버렸다.

이에 대응하여 연맹은 6월5일부터 13일까지 총파업 찬반투표를 했다. 그 결과 78.4%라는 압도적 찬성이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쪽에 사태해결을 위한 단안을 내릴 것을 더욱 강하게 촉구했다. 그러나 사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던 건교부는 여전히 더 이상 할 게 없으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보도자료를 남발하며 언론플레이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6월16일, 새벽부터 수도권과 경남지역 조합원들이 1,500대의 택시를 끌고 여의도로 집결했다. 전국에서 달려온 택시노동자들이 오후 3시 민주노총 집회에 참석하고 이후 차량으로 도로를 점거하는 등 투쟁을 위력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렇듯 사태의 추이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결국 건교부는 6월16일 우리 연맹에 노정교섭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날 5시부터 건교부 차관 등이 참석한 교섭을 진행하여, 부가세 경감분 전액지급, 법제도 개선 마련, LPG특별소비세 100%지급에 따른 요금인상 계획 철회, 불법경영 근절 단속 등 7개안을 합의하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개혁이 필요하다 

건교부와 노정교섭을 통한 합의는 결국 6월16일 전국에서 벌어진 택시노동자들의 총파업 열기가 만들어 낸 결과이다. 아울러 민주노총 및 민주노동당이 적극 결합하고 각 언론에서 택시문제의 심각성을 지속적으로 보도한 것 등이 맞물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개선 합의에도 6월16일 오후 7시10분 ‘또 다시’, 택시노동자가 청와대 앞에서 손에 신용불량자 통보서를 손에 쥐고 분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조경식 동지가 분신한지 40여일만에 발생한 이 노동자의 분신은 구조개혁 없이 미봉책으로는 택시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와있음을 뜨겁게 보여준다. 사납금제 근절과 전액관리제 강화, 불법경영과 노동착취로 지탱하는 택시업계 구조개혁 단행, 그리고 생계파탄의 노동자에 대한 생존권 보장대책 등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책을 정부가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 

정부가 불법과 착취로 지탱하는 택시업계의 현실을 방치한다는 것은 국민과 노동자의 생명이 항상 위험에 처해있는 현실을 방관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택시제도에 개혁이라는 칼을 대야 한다. ‘요금인상 외에는 대책이 없는 정부’, ‘노동자가 목숨을 건 투쟁을 해야 간신히 움직이는 정부’라는 구태를 버리지 않는 한 택시로 인해 승객과 노동자는 길거리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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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택시연맹과 건설교통부의 노정합의 내용

1. 지역별 택시총량제 도입과 관련하여, 6.10 이후 신규면허 공급을 일시 중지토록 하였으나, 지역별 5개년 계획 등에 의하여 2004년 개인택시 공급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지역에 대해서는 종전대로 공급한다. 
2. 지입, 도급 등 불법경영에 대하여는 면허취소하여 퇴출 방안을 강구하며, 단속반에는 노조가 추천하는 시민단체가 참여한다.
3. 대리운전에 관하여는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해 현재 진행중인 관계부처 협의 등을 통해 개선방안 마련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도록 한다. 
4. 유류비 운전자 부담 사례, 1인1차제, 분할매각 등에 관하여는 행정지도를 실시한다.
5. 부가가치세 경감분의 투명한 사용과 경감세액의 전액을 운전자들에게 지급을 보장하기 위해 용도 등을 조세특례제한법에 명시하는 등 제도개선을 재경부에 적극 건의한다.
6. 유류세 인상분에 관한 보조금 지원에 관하여는 조속한 관계부처 협의를 마무리하며, 보조금 전액 지원시 택시요금인상은 시행하지 않는다. 
7. 기타 제도개선 방안에 반영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실무협의를 통해 계속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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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