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허리'가 노조 건강의 비결

노동사회

튼튼한 '허리'가 노조 건강의 비결

admin 0 4,200 2013.05.12 07:49

오비맥주노동조합의 전신은 카스맥주노동조합이다. ‘카스’는 ‘진로&쿠어스’에서 생산하는 맥주이름으로 현재도 생산되고 있다. 1997년 회사가 경영난으로 화의에 들어갔고 1999년 오비맥주에 합병되게 되었다. 카스맥주노동조합은 그렇듯 지난한 인수합병 과정 중에 설립되었고 1999년 7월16일 설립되자마자 고용안정투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노조 설립 후 4개월 후인 11월15일에 파업을 벌여 고용승계, 임금승계, 인원승계 등 고용안정을 쟁취하며 오비맥주노동조합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현재는 영업직과 청원공장의 876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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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2월25일에 있었던 오비맥주노동조합의 정기대의원대회   - 출처:오비맥주노동조합 ]

민주적 의사결정은 노동조합의 힘

egchoi_01.gif노동조합에서 흔하게 하는 말 중에 “회의로 시작하고 회의로 끝난다”는 게 있다. 보통은 결론 없이 의견충돌만 계속되는 상황을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노동조합이 회의와 토론이라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노동조합에는 강력한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토론하고 합일하는 민주성도 필요하다. 때문에 노동조합에서는 그 많은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닐까?

충북 청원에 있는 오비맥주노동조합은 남들 부럽지 않는 회의건수를 자랑한다. 매달 진행되는 대의원회의, 분기마다 있는 노사협의회 준비회의, 운영위원회, 국장단회의, 쟁의대책위원회 회의. 거기다 비정규특별위원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도 있다. 조합원 876명에 5년 된 노동조합치고는 정말 회의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대의원들이 참석해야 하는 정기 대의원회의가 한 달에 한번 있다. 현장에서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늘 부딪치기 때문에 회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응책을 논하는 자리이다. 집행부에서는 그 달의 활동과 운영위원회의 회의결과, 일상사업을 공지한다. 더불어 정세보고와 상급단체 동향까지 공유한다. 최소한 한 달에 한번 대의원 교육 및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활동은 회의록을 통해 공개가 된다.

노사협의회가 있기 한 달 전부터는 회의가 한 주에 한번으로 늘어난다. 대의원들은 미리 현장에 공지를 하고 1주일 정도 안건수렴 기간을 둔다. 첫 번째 대의원회의에서는 대의원들이 모아온 안건을 정리해서 구역별로 나눈다. 구역별로 분류된 안건은 다시 대의원들이 가지고 내려가 현장토론을 거친다. 현장토론을 통해 안건의 순위를 정하고, 구역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두 번째 대의원회의이다. 회의 결과를 가지고 마지막 현장토론을 하고 이렇게 확정된 안건이 노사협의회에 올라간다.

각 회의마다 끝나는 대로 바로 회의록을 정리해서 사내 메일로 조합원에게 보내고 조합 홈페이지에 올린다. 참석자들의 발언까지 다 정리해서 올려놓아서 회의의 과정부터 결과까지 조합원들에게 노출이 되기 때문에 대의원들은 조심을 하게 되고, 결과 없는 회의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는 모든 회의에 그대로 적용된다.

회의는 공개하는 것이 보안

단체교섭을 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다. 두 주에 한번씩 하는 국장단 회의에서 기초 안건을 내놓는다. 이 국장단 회의에는 대의원이 한명 참석한다. 기초 안건은 대의원의 절반과 상무집행위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로 넘어간다. 운영위원회에서는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회의를 통해 입장을 정리한 다음 기초의결을 한다. 그 후에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최종 의결하고, 확대간부회의에서 요구안을 확정짓게 된다. 또 회사와의 교섭에서도 상집 간부 3명과 대의원 1명이 교섭위원으로 참석한다. 이 모든 과정 또한 회의록을 통해 다 공개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회의록이 공개된다면 회사에서도 알텐데 걱정이 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장경연 사무국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은 모든 소스를 공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노조에서 보안을 유지해야 할 것은 0.1% 정도밖에 없는 것 같아요. 회의록을 공개하면 현장에서도 갈등이 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장은 곤혹스러움, 갈등, 피해가 있더라도 조합활동에 대해 다 열어놔야 조직이 강화되고 보위되는 거라도 생각합니다. 회사 쪽이야 어차피 일상적으로 노무관리 하잖아요. 닫아 둔다고 모르지도 않습니다.”

“대의원이 어용인데, 집행부만 민주인 노조 있습니까?”

이렇듯 오비맥주노동조합에서는 대의원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전임자들이 현장순회 할 때는 반드시 대의원들이 동행을 한다. 조합원들의 질문에는 대의원들이 대답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현장은 담당 대의원이 책임진다는 기본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에서는 새로운 활동을 두 가지 시작하고 있다. 하나는 비정규직 특별위원회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다. 비정규직 특위는 비정규직에 관심 있는 현장 조합원을 포함해서 4명이 2주에 한번씩 모여 학습, 토론하고 현장 파악에 나서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상급단체 교육에 참석하고 학습내용을 전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영업직에서 산업안전에 대해 많은 홍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특위 활동결과를 가지고 단체교섭의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보통 노동조합에서 대의원들은 ‘허리’라고 한다. 대의원의 활동이 정지하면 노동조합이 마비된다고들 한다. 그러므로 대의원들이 활발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역할과 공간, 책임과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이런 것들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의원을 ‘거수기’, ‘반대를 위한 반대파’라고 비난만 한다면 악순환이 되풀이 될 뿐이다.

오비맥주노동조합에서 대의원들은 “현장의 전임자”라고 불린다. 대의원들에게는 그에 맞는 권한과 역할이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현장의 허리를 든든하게 하고, 조합원과 노조 상층부와의 간극을 메어주어 힘차게 뛸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다.

“저는 어용과 민주의 구분은 대의원을 어떻게 보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전임자들은 대의원들이 사업에 관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대의원들은 대의원대회만 열심히 해라, 회의참가는 우리가 하겠다, 이러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회사에서 대의원들에게 작업을 하겠죠. 대의원들이 어용인데, 집행부만 민주인 노조가 있습니까? 이미 다 어용인 겁니다. 대의원들의 활동을 위해서 회의단위, 의사결정단위, 집행단위까지 다 대의원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대의원들은 당연히 현장에서 직선으로 뽑혔으니 집행부를 견제하려 하지요. 그러니 더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견제가 가능하지 않겠어요? 상집과 대의원은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균형을 이루는 두 축이라고 생각해요. 한 쪽이라도 무너지면 균형이 깨집니다. 우리 노조에선 대의원들이 욕을 제일 많이 먹습니다. 조합원들의 기대가 크죠. 그래서 한번 대의원하면 진짜 열심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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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맥주노동조합은 지난 7월15일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도중 조별토론 중인 조합원들   - 출처:오비맥주노동조합 ]

사무관리직과 영업직, 기능직 모두 노조식구

오비맥주노동조합에는 대의원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 외에도 또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사무, 관리, 기능, 영업직이 모두 한 노조 소속이란 것이다. 제조업 공장에서 사무와 관리직은 기능직의 업무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일을 수행하는데 이런 노조 구성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오비맥주노동조합에서는 부장들도 팀장이 아닌 이상은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이고 같이 파업을 하는 동지이기도 하다.

“사무관리직과 기능직 사이에는 갈등이 해묵게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 공장에서도 극복과정 중이지요. 이런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지시하고 관리하는 계급적 문제라고도 하고, 업무적 형태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결국 갈등은 있는 거지요. 시간이 해소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사무관리직이 기능직에게 애정을 가져야하고, 조합도 소식지 등을 통해 노력해야 합니다. 극복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모두 죽습니다. 만약 파업을 한다고 해도 기능직만 가지고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 노조는 파업하면 전부, 영업직까지 다 멈춰버리죠. 그게 힘이 됩니다. 지금 제조업 노조에 갈등이 있는 걸 알고 있지만 노조가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큰 힘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누며 단단해지는 중심

노동조합의 힘은 조직된 다수의 힘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발휘되는 것이다. 집행부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또는 조합원들의 의식이 뛰어나다고 해서 조합 활동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권한은 나누고, 일도 나누고, 정보도 나누는 가운데 노동조합이라는 구심점이 단단해 지는 게 아닐까? 오비맥주노동조합의 활동이 빛나 보이는 이유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