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한국 다국적기업

노동사회

멕시코의 한국 다국적기업

admin 0 3,938 2013.05.07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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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쎄 린드스트룀(Lasse Lindstrom)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정치학자로 오는 9월부터 10월까지 한달 동안 한국노동사회연구소(KLSI)에서 초빙연구원으로 있을 예정이다. 린드스트룀 박사는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받았으며, 멕시코와 한국의 자동차 노동자 및 교사의 유연화 및 비공식화(informalization)에 대한 대응을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은 2000년도에 그가 멕시코에서 수행한 현장 조사 보고서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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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인가? 변호사? 사람? 아니면 10월 6일?"하고 내가 묻자, "나는 그 모든 것이다"라고 호세 페냐플로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우리는 마클로비오 호야스의 문화 및 행정의 중심인 아쿠아스칼리엔테스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이곳은 여러 가지 일들로 분주히 돌아가고 있다. 전화 벨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도움을 청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거나 또는 잡담을 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보인다. 바깥 현관 쪽에서는 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마클로비오 호야스, 이곳은 바자 캘리포니아주 당국에게는 아주 골칫거리이다.

우리는 미국-멕시코 국경에 위치한,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세계화 및 국제화의 영향에 대항한 대중 저항의 한복판인 여기 티주아나(Tijuana)에 있다. 우리는 한국의 다국적 기업 현대의 계열사 한영 사옥 바로 앞에 앉아 있다. 

나는 한영에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하는 활동가들 중 몇 사람인 아르테미오 수나, 호르텐시아 헤르난데즈, 그리고 조세 페냐플로와 말을 나누고 있다. 기업의 경영진, 지역의 어용 노조연맹(CROC), 그리고 주 당국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들은 다국적인 이해관계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한영의 확장 계획에 반대하여 싸우고 있는, 마클로비오 호야스의 "자치 공화국" 정부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그 계획에는 넓이 20헥타에 약 2,000가구가 살고 있는 마클로비오 호야스를 파괴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권을 위해,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훔쳐 쓸 수밖에 없는 수도와 전기를 주 정부가 공급하도록 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노동변호사인 조세 페냐플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하나의 전쟁이다. 그것도 수많은 전선을 가진 전쟁이다.

한영 투쟁의 이야기는 승리한 이야기다. 그러나 슬픈 이야기다. 어용 노조인 Mexico Moderno가 단체협약이라고 일컫는 "노예" 계약에 종속되어 노동자들이 어떻게 착취 받아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10월 6일 민주노조를 조직하기 위해서 싸웠다. 강력한 저항에 맞서 결국 그들은 법정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마침내 노동조합 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한영의 "피투성이 테일러리즘"

lasse_01.jpg한국의 다국적기업인 현대 계열사인 한영은 멕시코에 진출한 대부분의 한국계 다국적 기업처럼 극도로 억압적인 노사관계를 강요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회사인 레이멕스Leymex, 대원Daewoon, 코멕스Cormex는 CROC의 어용 노조인 Mexico Moderno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그것이 정하고 있는 노동 조건은 끔찍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30분 점심시간에 하루 10시간 노동을 한 주에 6일씩 해야 한다. 일을 배워야 하는 신참 용접공들은 "한국어"로 쓰여진 교본을 들고 공부해야 한다! 실수라도 하면 반장들이 구타하기 일쑤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옷을 다 입은 채로 서 있는 체벌에 처해질 수도 있다. 다른 "인기 있는" 처벌은 남은 근무시간 동안 동전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손가락이나 손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산업 재해는 일상적이다. 티주아나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인 자이메 코타에 따르면, 1996∼97년 동안 레이멕스에서만 다섯 명의 노동자가 한쪽 손을 잃고, 22명은 손가락 또는 손의 일부를 잃었다.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기계에서 보호 장치들을 제거하였다. 기계가 속도를 장악하고 있다!

주당 임금은 500∼600페소, 미화로 50∼60달러에 불과하다. 매일 드는 통근버스비 또는 택시비가 최소한 20페소에 달하는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국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지구적 자본주의의 제단에 바친 제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들이 한영과 다른 한국계 초국적 기업들에만 해당하는가? 그들은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공장들의 노동조건을 수출한 것일 뿐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계 그리고 대만계 초국적 기업들이 억압적인 경영 관행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기는 하지만, 멕시코의 마낄라도라 지역은 세계화의 어두운 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먼 귀로 듣고 먼 눈으로 보기

멕시코의 페소화 위기와 동아시아 위기는 힘의 균형이 자본 쪽으로 더 기울도록 하는데 일조하였다. 위기와 그에 뒤이은 개혁 프로그램으로 인해 국민국가가 자본에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국가는 축적 조건을 안전하게 확보하는데 필요하다. 그 중 하나는 인건비를 가능한 한 바닥으로 낮추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노동을 길들이고 장악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예를 들어 실질임금 인상과 단체행동을 교환하였던 사회적 합의체제는 이제 허물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 그것은 모두 포기되기도 하였다. 국가들은 재정 위기로 말미암아 더 이상 합의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국민국가들이 경매에 참여하여 가능한 한 낮은 가격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가들 간의 이렇게 치열해지는 경쟁은 노동권의 침해,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인권의 침해에 대해서조차 먼 귀와 먼 눈을 갖도록 강요하고 있다. 경제 부문은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권리 이행을 면제받고 있다. 멕시코의 소위 마낄라도라 지역과 중남미의 다른 지역들이 바로 그런 곳들이다. 

티주아나는 약 1,000개의 마낄라도라가 모여 있는 곳이다. 약 2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로 미국-멕시코 국경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는 매우 유동적인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을 기회를 잡으려고 멕시코 남부에서 티주아나로 찾아 온 이주민들이다.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남아 있게 된다. 그들은 국경을 따라서 자리잡고 있는 초국적기업들이 착취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산업예비군을 이루고 있다. 

티주아나의 상당한 지역이 전형적인 "판자촌"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클로비오 호야스도 그런 지역이다. 성인의 절반 가량이 마낄라도라에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무 조각, 널판지 또는 구할 수 있는 여타의 물건으로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이 지역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소 우중충한 가운데에도 빛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빛은 햇빛은 아니고,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하고 연대하는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빛줄기이다.

정부 당국은 이러한 상황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클로비오 호야스와 다른 자치구들은 자본이 요구하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자치체가 정부의 권위를 위협하지 않는 한, 정부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은?

20세기 초에 사회구조를 변화시켰던 멕시코 혁명은 세 개의 중심 세력에 의존하였다. 제도혁명당(PRI), 노동자조직 그리고 농민조직들은 마침내 사회 협약을 체결하였다. 노동자와 농민이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주었다면 국가는 물질적 조건의 개선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자본도 포괄하는 일련의 연대 협약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멕시코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1970년대의 세계경제 위기로 기존 협약들을 지탱하고 있었던 물질적 조건이 파괴되었다. 국가는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었다. 전국적 연합체로서 물질적 수혜의 보증인 역할을 하였던 CT와 CTM은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신뢰를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1994년의 페소 위기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고, 힘의 균형이 자본 쪽으로 기울게 하였다. 국제 금융기관의 경제 개혁 압력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예전의 코포라티즘 질서는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티주아나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혀 높지 않다. 마낄라 구역에 조직된 노동자들은 주로 CROC에 가입되어 있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들은 소규모에 불과하다. 전국노동자연맹(UNT) 또는 노동전선(FAT)과 같은 자주노조는 국경지대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티주아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멕시코를 방문하기 전, 그리고 2달의 방문기간 동안에 FAT와 접촉하려고 수많은 시도를 하였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곳에는 오직 침묵의 소리만 흐르고 있었다.

국제 연대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변경지역의 국제 연대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은 주로 FAT와 미국에너지전파기계노동조합(EU) 사이의 동맹이다. 국경 지역의 여타 주요 활동 조직은 마낄라도라의 정의를 위한 연합체(CJM)로, 주로 미국노총(AFL-CIO)과 종교단체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미국에 위치한 단체이다. 그렇지만, 아르테미오 수나가 단정하듯이, 투쟁은 주로 멕시코의 필요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 양초가 비추는 곳의 바깥쪽은 암흑으로 가득 차 있다. 전통적인 어용노조는 적어도 티주아나의 경우에는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들은 노동활동가 자이메 코타의 말에 의하면, "유령" 노조들이다. 어떤 활동도, 어떤 모임도,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마클로비오 호야스에서는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은 대중 투쟁의 중심지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연대

최근 사미르 아민이 주장한 것처럼, 한국 노동조합은 이 세계화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주고 있다. 이것은 과장도 미화도 아니다. 멕시코의 자파티스타 및 약간의 다른 운동들과 함께 그것은 하나의 건설적인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마낄라도라 지역에서 한국의 연대가 있는가? 어느 편인가 하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한국의 초국적기업들은 현대나 한영이 위치한 티주아나와 자동차부품 생산 지역뿐만 아니라 도처에 깔려 있다. 예를 들면 삼성, 대우, 엘지가 있다. 그들은 모든 곳에서 값싼 멕시코 노동자와 눈과 귀가 먼 멕시코 정부를 착취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전략적으로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노동 기준의 위반이 판을 치고 있다. 

한국의 초국적 기업들이 여기저기에 있지만, 멕시코 노동조합과 한국의 동지들 사이의 접촉은 불행히도 거의 전무한 현실이다. 한영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듯이, 자본은 점점 국제화되고 있는 반면에 노동자들의 조직은 여전히 지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생산은 지역화(regionalization)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국민국가에 의해 규정되고 보호되는 맥락 또는 조건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국가 수준에서의 투쟁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또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수준에서, 그리고 국제 수준에서 노동자의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투쟁은 기업 수준에서 국제화되어야 한다. 기업 내 수준에서는 투쟁이 국경을 뛰어 넘어서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영 투쟁은 성공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오 오수나가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면서 말하였다. 

"투쟁이 직면한 문제는 너무 고립적이라는 것이다. 국가와 초국적 자본 양쪽으로부터 공격이 들어오면 고립된 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