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손해배상·가압류의 원인과 대안

노동사회

급증하는 손해배상·가압류의 원인과 대안

admin 0 4,503 2013.05.11 12:42

최근 민주노총의 집계에 따르면,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들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 총액이 50개 사업장, 2천222억9천 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른바 불법파업을 이유로 조합비, 노조간부와 조합원의 임금, 퇴직금, 개인재산에 위와 같은 천문학적 액수의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하여 김대중 정부와 공안당국은 '전투적 노동운동이 문제다. 노조가 법을 지키지 않고 불법파업을 하는 것이 문제다.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결과다'는 식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 원인과는 동떨어진 매우 단세포적인 현실인식이다. 이런 현실 인식의 밑바탕에는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깔려 있다. 따라서 이 시각으로부터는 불법을 저질렀으니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대책 아닌 대책이 나오게 된다.

매우 역동적인 쟁의행위시기에 조합원에게까지 무분별한 가압류를 받아들여주고 있는 법원의 다수 역시 이러한 시각을 근저에 깔고 있을 것이다.

그럼 지난 김대중 정부 5년 간 구속된 노동자 수가 892명(2003년 1월2일 기준 집계)에 이르고 위와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가 행해지는 원인은 뭘까.

정부와 사법부의 단세포적인 현실인식

헌 법에서는 노동 3권을 보장한다고 되어있지만 현재의 법률과 법원의 해석태도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실질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합법적인 파업을 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파업(심지어 공무원은 노조결성 자체가)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불법파업이 되면 자동으로 가압류와 손해배상, 해고를 비롯한 징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이 뒤따른다. 불법파업이 될 수밖에 없는 법제도적 현실이 근본 원인이다.

병원이나 지하철을 비롯한 필수공익사업장은 직권중재제도로 인하여 파업권을 포함한 일체의 쟁의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공무원은 어떤가. 노동조합 설립 자체가 불법이니 다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의 정당성은 주체, 목적, 절차, 수단과 방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 판례의 태도인데, 판례가 인정하는 쟁의행위의 목적은 매우 협소하고 법률과 판례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 난 2월26일 대법원은 1998년 조폐공사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애초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여 업무방해죄 부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 실시 여부는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를 반대하는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또 '단체협약에 구조조정시 노동조합과 합의한다는 조항 역시…협의의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다'면서 유죄를 인정했다(대법원 2002. 2. 26. 선고 99도5380 판결).

결국 파업을 하면 불법이 되고 설사 단체협약에 합의 조항을 두더라도 실효성이 없는 협의 정도의 의미만 가진다고 함으로써 정리해고, 민영화를 비롯한 구조조정 문제에 노동자들이 관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이 미 앞서 대법원은(대법원 2001. 11. 27. 선고 99도4779판결) "쟁의행위의 목적에 관하여 보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하여 하는 이른바 정리해고의 실시는 사용자의 경영상의 조치라고 할 것이므로, 정리해고에 관한 노동조합의 요구내용이 사용자는 정리해고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취지라면 이는 사용자의 경영권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 되어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단체교섭사항이 될 수 없는 사항을 달성하려는 쟁의행위는 그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회사에 대하여 정리해고 자체를 전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주된 주장으로 내세우며 벌인 파업임을 알 수 있으므로 위 각 쟁의행위는 그 목적에 관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항소심인 춘천지방법원에서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을 깨고 불법파업이라며 유죄를 인정하였다.

발전산업노조, 철도노조, 한국통신노조의 민영화 관련 파업 역시 직권중재제도도 문제지만 민영화는 아무리 노동조건에 중대한 변경을 가져오더라도 고도의 경영권에 관한 사항이므로 쟁의행위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이처럼 노동조합이 파업을 포함한 어떤 방식으로든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사안조차 모두 쟁의행위의 목적이 되지 못하고 불법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를 궁지로 모는 법제도

요즘 비정규직 기본권 보장법 제정, 경제자유구역법 철폐,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법과 관련 법령의 개정이나 제정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많이 쟁점이 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주장을 내걸고 파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와 같은 '산업적 정치파업'에 대하여 우리 법원은 여기에 대하여도 '사용자의 처분권한에 속하지 않는 사항'이라며 불법으로 단죄한다.

또 검찰과 노동부는 노동위원회에서 "교섭을 더 해 보라,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다"는 식의 행정지도가 내려지면 조정전치주의라는 절차적 요건을 지키지 않았다며 불법파업 운운하고 있다. 판례는 노동조합 내부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불과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엄격히 해석한다. 절대적인 다수가 결의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정을 살피지 않고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전 체 노동자의 53%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은 어떤가.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조설립이 되어도 판례가 노동자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절차를 거친 쟁의행위일지라도 법원으로 갈 경우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들의 불공정한 담합내지 집단행동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가 노조를 부정하고 단체협약을 위반해도 처벌되지 않는다. 재능교사노조가 회사를 단체협약위반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서울지검은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고, 노동조합도 아니므로 단체협약으로 볼 수 없어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과연 여기에 합법적인 단체행동권이 있는가.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한다해도 원청회사가 하청회사와 도급계약을 해지하면 노조는 쉽게 와해된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노동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회사가 하청 노동자와 직접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므로 노동법의 책임이 없다면서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이런 논리 역시 법원의 판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게다가 계약해지는 해고가 아니어서 다툴 수가 없는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과연 실질적인 노동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사용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법과 판례를 이용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부정할 수 있다. 이때 노동자들은 그대로 당하거나 손해배상청구나 가압류, 형사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강도 높은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재능교사노조, 건설운송노조, 대한항공 면세점지부 등이 대체로 이와 같은 이유로 가압류, 손해배상 사업장 명단에 올라 있는 것이다.

설사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각종 제한 조항의 협소한 길을 통과하여 합법적인 파업에 들어갔다고 해도 사용자의 공격적 직장폐쇄, 용역깡패 투입, 노동부와 검찰 공안부의 불공정한 노사관계 개입 등으로 인하여 언제든지 불법의 멍에가 씌어질지 모르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노동문제는 공안문제?

현재 노동사건은 검찰 공안부 소관사항이다. '사회의 안전(공안)'을 지키는 검찰 공안부의 소관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한국 노사관계의 일그러진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이 사회의 안전을 저해하는 잠재적 범죄행위인가 노동조합은 범죄단체요 간부는 잠재적 범죄자들인가.

위와 같은 법률, 판례, 법집행기관의 태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파업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는 불법파업이 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므로 결국 잘못된 법률, 판례 등이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최 근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사용자들이 노조탄압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의 재정적 취약성, 조합원 개인이나 신원보증인에 대한 재산가압류를 통한 효과적인 노동통제, 나아가 노조무력화와 와해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코 순진하게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이라든지 손해를 배상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전노조가 파업을 종료하고 복귀한 이후에 가압류 해제를 미끼로 노조 탈퇴와 노조분리, 노조활동 참여 봉쇄 등이 이루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노조간부나 일반조합원에게 까지 확대되고 심지어 신원보증인에게까지 확대되면서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분리해 내고 노조간부를 비롯한 활동가들을 위축시키고자 함이 목적이다. 그리고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쟁의행위 시기에 노조의 기금이 가압류되고, 간부와 조합원 나아가 신원보증인의 개인 재산까지 가압류가 되면 어떻게 될까. 노사의 힘관계가 일시에 역전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한 일이다. 그 결과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인해 노동기본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고 나아가 인권 침해 내지 생존권의 심각한 위협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대안은 무엇인가. 이미 원인에 대한 진단에서 일정부분 그 해답이 나왔다고 생각된다.

파업권 보장해야

우선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의 취지에 따라 파업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어 놓고 불법을 행했다고 비판하면 되겠는가. 현재 대법관들의 면면을 볼 때 법원의 전향적인 법해석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방법밖에는 없으며 노동관계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먼저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협소하게 규정되어 있는 현행 노조법 제2조 5호의 노동쟁의 정의 규정이 수정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바(제2조 제4호), 그 목적을 협소하게 인정하여 노동조합의 권리 행사에 제한을 가하게 되면 그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는데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구조조정에 관련한 문제에 대해 산업적 정치파업도 가능하도록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노동쟁의 정의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또 불법파업을 양산하는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고 조정전치주의도 임의적 조정으로 개정해야 한다. 조합원 찬반투표를 비롯한 쟁의행위와 관련한 각종 장소 제한 등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단체행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53%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인정될 수 있도록 시급히 법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쟁의행위, 폭넓게 해석해야

다 음으로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가 노동기본권과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노동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손해배상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 불법행위를 하였으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일반 민사법의 논리상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론은 노동법리에 맞지 않다.

이미 노동 3권의 보장과 이에 따른 노동법은 근대 민사법의 원칙을 수정한 것이며,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노동법제 내지 노동법학의 전개 또한 각국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노동법이 개정되거나 해석이 발전되어 왔다.

그렇다면 쟁의행위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를 제한해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판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조속한 노동관계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법원의 해석에 맡기자는 논리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즉 "쟁의행위가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사용자는 쟁의행위로 인한 재산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하고 쟁의행위란 원래 노무거부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노무거부로 인한 영업손실 등은 손해배상 범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파업이 종료된 후 생산성 향상과 영업 촉진으로 복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즉 그 범위를 적극적 손해에 국한할 필요가 있다.

책임의 주체도 쟁의행위란 원래 조합원의 집단적인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고 쟁의행위 정당성 판단 자체는 법률전문가도 사후에 꼼꼼히 검토해야 될 정도로 사전 판단이 어려우므로 참가하는 개인들의 위법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에도 간부와 조합원 개인을 제외하고 단체인 노조만 책임지는 것으로 명시해야 한다.

아울러 단순히 소극적으로 노무 제공 의무를 불이행한 것이 업무방해의 구성요건인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므로 쟁의행위의 정당성 판단을 위한 일부 요소의 측면에서 정당성을 인정하기 곤란한 면이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쟁의과정에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한 이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 즉 형사책임도 "근로자는 쟁의행위가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고 집단적 노무제공거부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쟁의행위를 이유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하여 제한해야 할 것이다.

그 외 과제를 본다면 모든 사항을 세세하게 입법하기는 어려우므로 대법관 구성도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진보적인 인사들이 포함되어야 하고, 최소한 사회적 균형감각을 상실하지 않는 인사들로 채워져야 한다. 검찰 공안부 폐지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노동부도 '노동탄압부'라는 오명을 씻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혁이 필요하다. 나아가 노동법원제도의 도입과 노동쟁송 절차를 정비하여 노사관계에서 "법"의 기능이 사용자 편향적이거나 노동기본권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과 사건에서 노동기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