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호혜평등의 정치를 위하여

노동사회

민주주의와 호혜평등의 정치를 위하여

admin 0 3,413 2013.05.11 12:29

ytjung_01_1.jpg
[ 2월 13일 노무현 당선자와 한국노총 지도부가 만났다.  ▷ 출처:오마이뉴스 ]

1. 정치개혁 - 새정부의 최우선 과제

정 치가 변해야 한다는데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하나도 없으리라 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민주주의와 남북협력 그리고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정치제도가 개선되었으나 현실에서의 관행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정당은 여전히 권위주의와 지역감정, 부정부패와 탈법적인 관행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수시로 대립과 갈등을 드러내고 있고 미국과의 종속적인 관계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영역에 한정된 것으로 인식되었던 연고주의나 뇌물(돈)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은 사회의 구석구석으로 확산되었다.

정치가 변해야 하는 이유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동아일보가 지난 2001년 12월에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공정한 집단은 정치인(78.6%), 고위관료(6.1%), 세무공무원(3.1%), 경찰(2.5%), 의사와 병원(2.0%), 검사와 검찰(1.7%), 언론(1.6%), 기업경영인(1.5%)의 순이었으며 정치인이 가장 불공정한 집단으로 지목되었다.
 
같 은 조사에 의하면, 국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5% 안팎에 지나지 않았으며, 기존 정당에 호감을 가진 유권자는 40% 정도에 그쳤다.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50∼60%가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한국개발연구원의 '국민경제의식조사'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 매매, 거래, 고용계약 등 경제활동에 있어서 연고와 경쟁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한 응답자는 IMF 위기 이전인 1996년의 57%에서 IMF 경제신탁통치를 거치면서 46%로 낮아졌다. 대신 연고가 더 중요시되는 것 같다는 응답자는 50%에 육박했다. IMF 체제 이후 경제활동의 기초질서에 별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불공정해졌다는 응답자는 87%로 거의 모든 국민이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데는 돈버는 것 이외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IMF와 외세의 탓이 크다. 하지만 변화된 국내외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나 자기 정당의 권력획득이나 부의 축적을 위해 비정치권의 불공정성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부추기고 확산시킨 정치권의 무책임과 비리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러면, 현재의 우리 정치 제도와 관행 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이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도 국내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지면관계상 국내정치만을 다뤄보고자 한다.

2. 정치개혁의 목표와 과제

이 상적인 정치제도라면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공동체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원칙이 보장되어야 하고,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생산조직과 여가생활이 시민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민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영역은 물론 직장과 시민사회 등 비정치적 영역에서도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절차적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대

민 주주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의 결정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함으로써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정책의 정당성과 집행과정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국민들이 직접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제도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를 두고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이들로 하여금 공동체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게 하는 간접민주주의, 보다 정확하게는 선거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의 의사가 고르게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각종 정치제도가 치밀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제도,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전동벨트 역할을 하는 정당의 구조와 운영방식,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 행정부(대통령)간의 권한배분과 상호견제방식, 이 모두가 국민의 의사를 고르게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소선거구제(대통령의 경우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함)와 상대적 최다수제로 선출되기 때문에 전체 국민의 2/3 이상이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대표를 선출하지 못하는 꼴이 되고 있다. 게다가 후보자 결정이 정당 그것도 중앙당의 지도부에 의해 비민주적이고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후보자들 중에서 지지할 사람을 선택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국회와 대통령이 상호 견제하여 균형을 이루도록 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 최고지도자와 그 측근에 의해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에 의해 대다수 국민의 의사가 무시되기 일쑤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배분도 여전히 중앙정부에 치우쳐 있어 지방의 특수한 이해관계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동시에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훈련할 기회도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의 의사가 정책에 고르게 반영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행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를 개선하고, 행정부(특히 대통령)와 국회가 효과적으로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며, 중앙정부의 권한과 자원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양함으로써 절차적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이르기까지 정치의 전과정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정당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개별 선출직 공직자들이 자신의 양심과 정책적 입장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하고, 그러한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하는 당내 후보선정과정의 민주화와 개방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보수 양당이 대변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대표할 진보정당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선거제도, 즉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국회의원선거에도 도입되어야 하고, 비례대표의 비중이 최소한 전체 의석 중 1/3은 되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대폭 도입

선거민주주의 하에서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국민의 대표가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후에는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거나 부정부패를 저지르더라도 다음 선거 때까지 이들을 심판할 방도가 없다. 특히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부정부패나 탈법행위가 법에 의해 엄중하게 다스려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선거민주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설령, 국민의 대표가 법을 어기지 않고 무능하지도 않다 하더라도 정보 부족이나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국민의 의사를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국민의 이해관계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의제민주주의 또는 선거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투표제, 주민발안제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대폭 도입해야 한다. 이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면, 국가 과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민토론회나 청문회를 빈번하게 개최해야 할 것이다.

ytjung_02_0.jpg
[ 2월 13일 민주노총을 방문한 노 당선자에게 유덕상 위원장직무대행이 인사를 하고 있다.  ▷ 출처:민주노총 ]

시장과 기업의 민주화와 사회복지제도 확충

민 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서구 사회가 그렇듯이 아무리 완벽한 민주주의제도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치영역에 한정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정도로 크다면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모든 구성원들에게 정치과정 또는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똑같이 부여한다하더라도 특정 구성원이나 집단의 요구가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은 국가기구와 정당과 같은 정치조직과 선거제도와 국회제도를 비롯한 정치제도가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구성되고 운영된다하더라도 기업이나 시장 또는 가족, 학교 등 다른 사회조직과 제도, 특히 생산수단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기업(자본가계급)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상충되는 원칙이나 원리에 따라 구성·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구조적인 빈부격차를 야기하여 빈곤층으로부터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에 필요한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앗아간다.

정치영 역 바깥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비민주적 방식에 의한 의사결정과 자원의 불균등분배는 특정 사회집단을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소외시키고, 그 결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원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시민사회를 비롯한 비정치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는 비민주적 제도와 관행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작업장의 자본주의적 지배-피지배관계를 극복하고 소득의 불평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시장과 기업에 대한 민주적 규제를 강화함은 물론 작업장 민주화를 추진하고 사회복지제도를 대폭 확충해야할 것이다.

왜곡된 유교주의의 퇴출

정 치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제약하는 요소로 자본주의적 지배-피지배관계 이외에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교주의가 있다. 유교주의는 조선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였으나 지금은 비공식적인 관행으로 남아 우리의 일상활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실현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집단이나 조직은 왜곡된 유교주의라고 할 수 있는 연고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권위주의에 근거하여 형성·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유교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형성되고 운영되는 집단이나 조직들은 한정된 권력과 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연고나 돈을 매개로 다른 조직이나 집단과 연대와 협력을 하고 있다. 자기 조직이나 집단에 속하지 않거나 또는 협력관계를 맺지 않은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의사결정과 인사 그리고 자원배분에서 철저히 배제해 왔으며, 상대방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무조건 반대하는 등 대립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공동체적인 합의라고 할 수 있는 법이나 도덕은 자신에게 유리할 경우에는 존중하지만, 불리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무시해 왔다. 정당의 조직과 운영도 이러한 관행 또는 비공식적 제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회와 행정부(대통령)의 의사결정도 그랬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망국적인 지역감정, 제왕적 대통령, 대립과 졸속으로 운영되는 국회, 정치부패, 광범한 탈법행위, 여성차별적 관행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유교주의는 연고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여성차별주의, 나아가 부패와 탈법을 만연시켜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대를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제도적 개선도 필수적이지만, 유교주의적 관행을 극복하는 과제도 병행되어야할 것이다. 이것은 지역감정에 근거한 지역갈등과 부패척결 그리고 권위주의적 정당구조를 극복하는 선결 조건이 될 것이다. 유교주의적 관행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 확립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은 다시 사법기관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할 것이다.

3. 여론조성으로 반개혁적 정치인과 정당을 압력

지 금까지 살펴본 정치개혁의 목표와 구체적인 대안적 제도 가운데 노무현 정부가 직접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대를 위한 제도 도입과 법치주의 확립과 사회복지제도의 확충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도 추진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새정부는 야당이 국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분할정부(divided government)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론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이를 무기로 반개혁적인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압박을 가하는 수밖에 없다. 새정부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탓인지 시민단체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여론에 의존한 방식은 자칫 '포퓰리즘'이라는 비난과 동시에 시민단체의 입지를 오히려 약화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전략은 보다 치밀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방법으로 TV 등 대중매체를 정책토론회나 청문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새정부가 추진할 수도 없는 과제는 결국 진보적 정치단체와 시민단체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