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 노무현 노동정책의 시금석

노동사회

전력산업 민영화, 노무현 노동정책의 시금석

admin 0 4,373 2013.05.11 12:23

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효율성 제고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공기업 민영화를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한 12개 공기업 가운데 8개는 이미 민영화가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2002년 발전산업노조는 발전소 매각 방침 철회를 주장하며 38일 동안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4월2일 '노정 합의'로 파업은 중단되었고, 그 결과 정부는 발전소 매각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공언했으며, 발전노조 지도부 구속·수배, 노조간부 및 현장 활동가 해임,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가처분 결정에 따른 급여가압류, 복귀서·서약서·감사 등 회사측의 탄압이 진행되었다.

아직도 민영화를 둘러싼 갈등은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얼마 전 산업자원부는 남동발전 매각 입찰을 계획대로 진행할 것을 발표했고, 회사측은 조합원에 대한 4차 징계를 강행했으며, 발전노조는 남동발전 매각을 반대하며, 경영권 매각시점이 파업돌입 시점이 될 것이라는 각오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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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발전산업노조원들의 집회 장면    ▷ 출처: 공공연맹 ]

전력산업 민영화 재검토해야

한 국전력 민영화의 시발점이 될 남동발전 매각입찰 문제는 정권 교체기로 접어들면서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해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6개 업체를 대상으로 1월22일 입찰서류를 마감하고 이어 27일 1차 입찰에서 유력 투자자 3∼4곳을 선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남동발전 실사를 하도록 한 뒤 2차 입찰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세부계획을 발표했다.

그 러나 이는 노무현 당선자가 밝혀온 '망 network 산업의 민영화 정책을 재검토하고, 사회적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의사와는 달리 계획대로 매각을 진행한다는 것이어서 각계에서는 노무현 당선자의 정책 방향의 추이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수 차례에 걸쳐 필수공공서비스사업의 민영화 정책이 민간 독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과, 충분한 사전 논의와 대책 없이 구조개편이 추진될 경우 자칫 공공서비스 공급의 안정성 유지와 사회적 형평성 보장을 훼손해 공공서비스 악화와 소비자 부담의 가중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 왔다. 따라서 인수위원회는 발전소 매각에 대한 공식 입장 표명하지 않은 채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발전산업노조는 '노무현 당선자는 자신의 공약과 정면 배치되게 졸속으로 강행되는 남동발전의 매각과 배전 부문 분할 정책에 당장 제동을 걸어야 하며, 또한 대통령 인수위원회 역시 차기 대통령의 정책과 배치되는 현 정부의 정책이 유보되어야 함을 공식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노무현 당선자 측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발 전산업노조는 노무현 당선자가 후보시절 기간산업 민영화에 대해 사회적 재논의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에 주목하는 한편,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를 위해 철도·가스·발전·전력노조 등이 참여하는 제2기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여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독점 대신 민간독점?

현 재의 민영화 정책은 정부 주도의 국가산업정책이라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민간에게 이전하여 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 소유의 주식을 매각하여 재정 수입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 어느 정권보다 강력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민영화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고 한전의 경영이 부실하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노조측에서는 민영화의 기본 방향을 신자유주의와 국제금융 자본에 대한 국민경제의 굴복으로 이해한다. 결국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란 국제자본과 재벌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입안된 정책이며 해외금융자본의 요구에 의해 한국 경제를 재편하는 정책으로 이해된다. 결국 공공부문 민영화가 일시적으로 정부 재정에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이는 일회적인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공공부문의 업무가 민간독점자본의 이윤추구 수단으로 전락하여 필수공공서비스 질의 저하나 요금인상을 초래하며, 결국 저소득층의 부담을 높여 사회적 형평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측은 민영화 추진에 있어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민영화가 초래할 감원과 임금·복지 후퇴, 노동강도의 심화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민영화 원칙은 찬성, 방법은 재논의'

발 전노조는 2002년 38일간의 투쟁 과정과 이후의 탄압 속에서 조직의 피로도는 증가되어 있지만, 정부가 민영화를 강행할 경우 정면충돌을 피하진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판단 속에서 △ 공투본 중심의 투쟁조직화, △ 발전노조 내부의 투쟁 조직화, △ 여론 형성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호동 발전노조 위원장은 "노무현 당선자가 선거 기간에 민영화 재논의에 대한 기대감을 갖도록 했지만, 우리는 배신을 수없이 당해왔다"면서 문제는 남동발전 매각의 저지 여부이며, 재논의 발언에 큰 기대를 갖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무현 당선자가 김대중 정부의 민영화 정책과는 많은 차이점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무현 당선자의 입장이 민영화 반대는 아니다는 점이다. 그는 민영화 원칙에 찬성한다고 수 차례 밝혀왔다. 그와 김대중의 차이점은 시기와 방법을 재논의할 수 있다는 데 있을 뿐이다.

임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김대중 정부는 남동발전 매각을 계획대로 진행하려 하고 있으며, 인수위는 팔짱을 낀 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측은 파업이 끝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조합원 312명에 대해 4차 징계를 실시했다. 남동발전 매각, 4차 징계, 조합비 가압류,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보전 등 발전노조가 풀어야 할 과제는 아직도 산적해 있다.

새 정부 노사관계 방향의 시금석

정 부의 민영화 정책과 사측의 반노조 정책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발전노조의 38일 파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2002년 파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향후 투쟁을 준비하는 데 있어 전제조건이다. 작년 발전노조의 파업 투쟁은 정부의 강경 방침 고수로 노정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끝까지 투쟁'이라는 단순 전략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이 상급단체로서의 정치력과 교섭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대량해고 협박에 몰린 조합원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국면을 새롭게 타개할 만한 전술 변환이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결국 4·2 노정 합의라는 '굴복'으로 치닫고 말았다.

" 투쟁 과정에서 동력의 손실도 있었지만 조합원들이 단련된 점도 크다"는 게 발전노조의 판단이다. 성과는 계승하고 한계는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올해 투쟁을 준비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민영화 저지라는 큰 목표 속에서 투쟁과 교섭 전술을 적절하게 구사한다는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로의 교체기에 여론 형성 작업 등 틈새 공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어내야 한다"고 이호동 위원장은 밝혔다.

지난 12월24일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발전노조 남동본부에서 이루어진 본부장 불신임 투표에서 남동 조합원들은 불신임에 80%의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임박한 매각과 구조조정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안을 보여준 것이자, 투쟁을 회피하는 지도부에 대한 반대 선언이었다. 발전노조 조합원들의 투쟁 의지가 드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2002년 투쟁의 한계를 넘어서 전진하는 한해가 될 수 있을지 발전노조의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동발전 매각과 공기업 민영화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