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지구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후보를 내어 총 득표수 8,406표, 득표율 9.56%를 기록했다. 서울에서 유일한 구청장 후보였다는 점, 선거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거였다.
울산도, 창원도 아닌 서울에서 치른 선거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선거 과정에서 무수히 만났던 유권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보수정당들은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목놓아 외쳤던 '노동자 계급'은 어디서, 어떻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을 조직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선거에 참여하면서 가졌던 이런 의문들은 선거가 진행되면서,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조금씩 풀려나갔고, 아직도 그 의문을 풀어 가는 중이다. 이 글은 큰 틀에서의 분석보다 지구당의 선거운동을 토대로 우리 당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나름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 합동연설회에서 유세하는 김종철 민주노동당 용산지구당 위원장 ▷ 출처:민주노동당 ]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어렵다
우리는 선거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계급적인 입장을 명확히 견지해서 이 계급, 저 계층에게 표를 구걸하는 방식의 선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가지 실천이라도 당원들이 참가하는 선거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원칙은 유세에서, 홍보물에서, 그리고 대면 접촉에서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선거기간 중 평소보다 많은 당원들을 선거 운동에 참여시킨 것이라든가, 신입당원들이 많이 가입한 것은 성과라 하겠으나, 300명에 이르는 당원들이 한가지씩만이라도 실천하게 하는데는 실패했다. 일반 당원의 참여 부족은 용산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모든 지구당에서 공통적인 문제가 돼 버렸다. 왜 그럴까?
짧은 지구당 활동의 경험이라 부족한 분석일 테지만, 아무래도 당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의 생활 형태와 소선거구 선거제도에 기반한 지구당 운동간의 모순이 당원의 활발한 활동을 가로막은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싶다.
2002년 6월 현재 2만 6천명에 이르는 민주노동당 당원들 중에서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동자다. 노동자 당원 대부분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낮에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노조 활동에도 열성이며, 진보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저녁 늦게 집에 오면 동네주민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는, 그런 당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구당 체계는 철저히 지역중심의 소선거구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울산이나 창원처럼 직장 동료가 같은 지역구의 주민이어서 직장에서 펼치는 선거운동이 사실상 지역구의 선거운동과 다를 바 없는 경우는 몰라도, 서울과 같이 직장과 주거지가 판이하게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자 당원들이 동료 노동자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지역구 선거에서는 거의 없다.
나아가 선거운동원들 역시 노동자들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우리가 지지를 얻고자 하는 노동자들은 아침 일찍 지하철이나 버스를 향해 몰려가는데 그 많은 노동자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말은 기껏해야 "민주노동당 구청장 후보 기호 ○번 아무개입니다. 보수정치 심판하고 진보정치 이룹시다" 정도였다. 진보정치의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러한 수준의 선거운동은 애초부터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노동자들 정도에게만 '민주노동당 후보가 나왔으니 찍으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주부·상인·노인층
바쁜 출근시간 이후 긴 낮 시간 동안 우리가 지역에서 만날 수 있었던 유권자는 정확히 세 계층이었다. 소상인, 주부, 그리고 노인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보수정당들이 광범위한 조직망을 짜서 관리하는 계층이다. 일반 민중들의 정서가 그러하듯 이들도 기성정치권을 불신했다. 그래서 젊고 개혁적인 정당과 후보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막상 '민주노동당' 후보임을 말하면 금새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본과 정권에 맞선 투쟁 경험을 가진 노동자들과 달리, 언론으로부터 '진보정당은 급진적이고 노동운동은 과격하다'는 식의 논리를 들어야 했던 이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인식의 한계였다. 그리고, 그들을 주요 대상으로 해서 펼치는 선거운동은 애초부터 민주노동당으로서는 힘든 것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앞으로 이들 안에서도 진보적인 상인, 주부, 노인들을 발굴해내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소선거구제에서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계급 투표'는 나타나기 어렵다. 그런 이유에서 '계급 투표'를 가능하게 할 정당명부제의 확대 실현이 장기적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이 이뤄야 할 사활적인 과제인 것이다. 또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소선거구 지구당 운동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것,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당면한 과제다.
낮은 투표율로 승리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 지역의 투표율은 40%를 조금 넘었다. 용산은 서울 평균보다 4%가량 높았다. 이는 용산의 선거운동이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기보다는 용산의 50세 이상 노년층 비율이 서울 평균보다 4% 높은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투표율이 낮은 것은 사람들이 정치 세력에 대해 '그놈이 그놈'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낮은 투표율 아래서는 진보정치를 이룰 수 없다. 투표소에 가보면 대부분이 50대를 넘어선 장년, 노년층이다. 이는 '보수정치의 재생산'을 뜻한다.
선거 과정에서 우리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세 계층, 즉 노인·상인·주부층을 집중 공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공략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개인적인 친분관계, 상대방에 대한 거짓선전, 매수와 향응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조직도 없고, 사람도 부족한 우리 당으로서는 쫓아갈 필요도 없고, 쫓아갈 수도 없는 선거운동 방식이었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지금과 같은 정치 무관심 속에서 보수정당들이 자신의 돈과 조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주민은 모두 합쳐 30%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10∼20%의 주민들이 그나마 자발적으로 참여해 40∼50%의 투표율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선거에 적극 참여해 투표율이 지금보다 20∼30% 높아져 70%를 넘어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과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의 원칙을 바로 세우자
이렇듯 대중의 정치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리는 일은 민주노동당의 사활적 과제이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은 기성정당과는 다른 방식의 선거운동을 지향하고, 자신의 계급적 색채를 명확히 해야 하며, 그것을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한참 논의되는 진보진영의 대통령후보 예비 경선에 폭넓은 계급, 계층을 포함시키되 민중성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연 2000만원 이하의 소득자를 중심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한다든지 하는 방식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좀더 원칙적이고 계급적인 주장을 펴야 한다. '우리는 ○○주의다'고 무작정 선언하자는 게 아니라, 민중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정책이 필연적이며, 이것을 실현하는 무기는 '계급투쟁'이라는 점을 명확히 각인시키자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거의 모든 지역을 석권한 데에는 민주당의 실정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선거가 끝난 후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1997년에 권영길 후보를 찍었는데 이번에는 용산에서 후보가 둘뿐이어서 민주당을 심판하고자 한나라당을 찍었다고 했다. 생각은 진보적이지만 선거에 관심이 별로 없던 차에 멀리서 언뜻 본 포스터에서 두 명의 후보만을 본 것이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서 대단히 아쉬워하던 그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민중들을 만나면서 나는 한나라당 승리의 동인이 절대적으로 민주당의 부패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라고 만들어 준 정권이 노동자·서민을 배반한 데 대한 민중의 응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외침에 민주노동당이 답할 방법은 명확해진다. 당의 기반인 노동자·서민의 요구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용산에서도 이는 명확했다. 노동자·서민의 요구를 전면에 걸고 유세를 할 때, 지나가던 주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실제로 지역별 투표결과도 그렇게 나타났다. 이번 지방선거 정당명부 투표에서 8.1%를 득표했으니 이제 민주노동당도 TV토론에 나갈 자격이 주어졌다. 반드시 TV토론에 참여해서 우리 당의 공약, 즉 노동자·서민의 요구를 잘 선전해야 한다.
지역 조직화를 위한 매개 발굴이 중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기 힘든 서울의 지구당 조건에서 용산지구당은 선거에 들어가기 앞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가지고 상인들에게 다가갔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적어도 상인들에게 민주노동당에 대한 호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보았던 당이 자신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다른 계급·계층에 다가가고, 조직하기 위한 방안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지구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주부들에게 민주노동당이 필요한 정당이라는 것을 어떻게 피부로 느끼게 할 것인가, 주민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주한미군 철수운동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을까 등 생각은 많지만 이를 실현할 매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중앙당은 이런 매개를 발굴하는데 힘을 집중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당은 노동자, 주부, 영세상인 등 여러 계급계층 조직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짧게나마 선거를 치르면서 들었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우리 당이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글을 써보았다. 아직 지구당 운동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아서 어떤 것이 올바른 지구당 운동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서울이라는 조건은 울산이나, 창원과도 다르며, 또한 농촌지역과도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모범을 발굴해야 함은 분명하다. 또한, 이러저러한 과제를 나열하기에 앞서 그 과제를 실현할 주체를 세우는 데도 힘들어하는 지구당이 대다수다. 지구당 운동의 주체 형성 문제는 이번에 다루지 않았다. 앞으로 지구당 운동을 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8월에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다. 노동자들이 거의 투표할 수 없는 재보궐선거의 특성상 우리 당 후보들은 이번에 정당투표로 얻었던 8.1%의 득표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역풍도 거셀 것이다. 그러나, 큰 실수를 하지 않고,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