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직장생활” 직장갑질119가 드러낸 한국 직장폭력의 백태와 해결방안

노동사회

“슬기로운 직장생활” 직장갑질119가 드러낸 한국 직장폭력의 백태와 해결방안

정애경 0 7,341 2018.09.06 04:40
한림성심병원 장기자랑에서 대한항공까지. ‘직장 갑질’은 여전히 뜨겁다. 연일 이어지는 제보로 <직장갑질119>는 쉴 틈이 없다. 지난 6개월간 직장갑질119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1만 9,038명이 방문했고, 29만 3,737번의 대화가 오갔다. 오픈채팅을 통해 접수된 갑질 제보 8,447개. 신원이 드러나고 내용에 신빙성이 높은 이메일 제보 3,415개, 블로그·페이스북 제보 76개, 총 갑질제보는 1만 1,938개다. 하루 평균 65.9명의 제보. 직장갑질119는 지금까지 더럽고 치사해도 참았던 직장인들의 작은 숨구멍이다.1)
직장갑질119는 ‘직장 갑질’을 “권력의 우위에 있는 회사 또는 직장상사가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라 본다. 법적용어가 아니기에 해결방법 역시 천차만별이다. 임금체불과 같이 노동부 진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갑질이 있다면, 현행법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갑질도 있다. 법에 내용은 있지만 처리기관이 불명확한 갑질도 있고, 가해자를 비호하는 처리기관의 미온적 태도가 문제인 갑질도 있다.
아래 “슬기로운 직장생활”은 ‘을’이라는 가상 인물이 입사부터 퇴사까지 겪는 갑질 이야기다. 실제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로 재구성했다. 다양한 갑질을 다 담을 수는 없기에 현행 법·제도로 해결하기 어려운 갑질, 해결방안 마련이 시급한 갑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슬기로운 직장생활 1 –입사
 
‘을’씨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구직사이트에 접속한다. 사이트는 지역별, 기간별, 테마별로 검색할 수 있게 구성되어 누구든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서울을 선택해, 세부 지역과 업종, 근무기간, 근무요일을 고른다. 조금 덜 쉬더라도 돈을 벌고 싶기에 ‘1년 이상’, ‘주 6일’을 택한다. 프리미엄(광고비를 많이 낸) 채용정보를 지나 한 음식점의 채용정보를 클릭한다. 10시~23시 근무, 복리후생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이 적혀있는데 한 달 월급은 2백만 원이란다. 이상하다. 4대 보험을 복리후생이라 적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저임금 위반2)이다.
 
 
최저임금법 위반, 거짓 구인광고가 범람하지만 구직사이트는 처벌받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다수의 구직사이트는 “신문, 잡지, 그 밖의 간행물 또는 유선·무선방송이나 컴퓨터통신 등으로 구인·구직 정보 등 직업정보를 제공하는” ‘직업정보제공사업’3이다. ‘직업소개사업(구인자-구직자 직접 연결)’도 아니고, ‘근로자공급사업’도 아니니 책임을 묻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구직사이트를 통해 직장을 구하는데……. 법과 현실의 괴리감이 느껴진다.
 
“[월급제] 택배 배송사원 모집(차량 지원 / 월 350만 원 이상 가능).”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택배기사 채용정보다. 한진택배 배송기사로 일하고 싶었던 A씨는 구직사이트를 보고 회사를 찾아갔다. 노동자를 채용하는 줄 알았지만 지입차 모집이었다. 회사는 탑차를 사야 한다고 했다. 시세보다 비싸게 차를 사서 하루에 15시간씩 일했지만, 40여 일만에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게 됐다. 대리점에서는 계약을 해지하려면 2개월 전에 통보해야 하고, 출근하지 못하면 다른 용달차를 써서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A씨가 물어내야 하는 손해배상 비용만 2,400만 원. 지입차 비용을 포함해 진 빚만 5천만 원이다.
채용갑질 제보는 꾸준히 들어온다. “면접보고, 출근날짜까지 확정했는데 출근 전날 일방적으로 채용이 취소되었다.”는 제보에서부터, “구직사이트에 나온 채용정보만 믿고 지원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강요한다. 사인을 해야 하느냐.”는 제보까지 천태만상이다. 구인업체가 돈 줄인 ‘구직사이트’는 ‘직업안정법’의 틈새에서 구직자들을 희롱한다. 한 달 벌이가 급하기에 새 직장을 찾겠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여력은 없다. 채용정보와 전혀 다른 근무조건을 제시하는 인사담당자 앞에서 웃으며 겨자 먹듯 출근날짜를 확정 짓는다. ‘인터넷 구직사이트’는 직장 갑질의 입구다.
 
슬기로운 직장생활 2 –조현민 갑질
 
입사 후 몇 달이 지났다. 상사는 툭하면 욕하고, 눈에 보이는 물건을 집어던진다. 조현민은 대한항공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옆에 있었다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끔찍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용기를 낸다. 증거를 모으기 위해 휴대전화 녹음 어플을 켜 놓고, 첩보작전을 하듯 상사 옆에 붙어있었다. 끔찍했던 하루, 다행히 상사의 욕설과 물건이 날아가 부딪히는 소리를 녹음할 수 있었다. 이제 너는 끝났어.
노동부를 찾아갔으나 답변은 허탈했다. “진정해봤자 처벌하기 어렵다.” 노동법에는 상사의 폭언이나 준폭행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제8조).”라고 되어있지만, 폭행의 주체는 사용자다. 노동부는 사용자라 볼 수 없는 상사의 폭언은 노동법상 규율이 어렵고, 결국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경찰서를 찾아가라는 이야기다. 아직 직장을 더 다녀야 하기에, 경찰서는 퇴사 후에나 찾아가기로 했다.
 
직장갑질119가 문을 연 2017년 11월1일부터 2018년 4월까지 들어온 폭행 관련 제보는 200여 건.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는 42건이다 이메일 제보를 폭행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일반폭행 57.2%, 특수폭행 9.5%, 준폭행은 33.3%이다. 가해자에 따라 분류하면 대리, 팀장 등 상사인 경우 66.6%(28건), 사장과 임원에게 폭행을 당한 경우는 21.4%(9건)이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폭행은 권력과 지위라는 우월성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폐되기도 쉽고, 일상적・반복적인 경우도 많기에 개인 사이에 발생하는 폭행과는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폭언’이나 ‘준폭행’은 노동법으로 다룰 수 없다. 넓은 의미의 폭행을 다룰 수 있고, 회사내 처리절차를 규정하는 ‘조현민 방지법’이 필요하다.
 
슬기로운 직장생활 3 –CCTV 감시
 
첩보작전 실패의 상처가 아물 즈음,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CCTV. 사장은 도난방지를 목적으로 설치된 CCTV로 직원을 감시하고 있었다. 사장은 집에서 CCTV 어플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때로는 전화를 걸어 “앉아 있지 말라.”고 지시하고, CCTV로 출퇴근을 확인하기도 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 제1항 에 따르면 사용자는 공개된 장소에서 노동감시의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할 수 없다. 도난 방지의 목적으로는 설치할 수 있으나 그것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법까지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노동부도 다른 소리 못하겠지.
CCTV를 문제제기 하기 위해 노동부를 찾아갔더니 노동부는 관련법(개인정보보호법)은 다루지 않는다며, 개인정보침해센터로 떠넘겼다. 개인정보침해센터를 찾아가니 사업체와 관련된 신고는 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가니 ‘민간기업’은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란다. 아. 이제는 지친다.
 
2018년 3월23일까지 들어온 이메일 중 CCTV와 관련된 갑질제보는 총37건이었다. 사업주들은 표면적으로는 ‘화재예방’이나 ‘도난방지’를 위해 CCTV를 설치했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직원들의 근태를 감시하고, 근무자세를 감시하는 등의 ‘노동감시’형 23건(62.2%), 단순한 감시수준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징계하는 근거로 CCTV 사례를 제시한다는 ‘징계’형 6건(10.8%)이었다. 또한 회사의 부조리한 관행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협박하기 위해 CCTV를 악용하는 사례도 6건(10.8%)이나 되었다. 사용주는 주휴수당을 청구하거나 휴게시간 미부여를 항의하는 노동자에게 “CCTV를 돌려 트집을 잡아 징계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 문제는 직장 내 CCTV와 관련한 분쟁을 처리하는 기관이 없다는 점이다. ‘을’씨처럼 문제제기 하기 위해 용기를 내도 ‘뺑뺑이’만 돈다.
 
슬기로운 직장생활 4 –노동부 진정
 
직장을 그만둔 선배를 만났다. 이제까지 당한 것이 억울해서 노동부 진정을 넣겠다고 했다. 이제까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휴게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았으니 진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너희도 좀 편해지지 않겠냐.”고 말하는 선배가 참 고마웠다.
며칠이 지났을까. 사장이 매장으로 뛰어 들어온다. 직원들을 다 불러놓고, 부랴부랴 사인을 시킨다. ‘근로계약서’였다. 일하면서 1시간 이상을 쉬어본 적이 없는데 휴게시간은 2시간이란다. 급여도, 근무시간도 실제 일하던 것과 달랐다. 심지어 근로계약서 작성일자를 오늘이 아니라 입사일로 적으라 한다.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까라면 까야지.
다시 선배를 만났다. 노동부에 진정을 넣어 못 받은 임금 일부를 받았다고 한다. 선배가 따로 따져본 것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근로감독관에게 하루에 1시간도 채 못 쉬었다고 말하고, 못 받은 임금이 얼마라고 보여줘도 돌아오는 답은 “일 크게 만들지 말자.”다. 사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에 벌금을 물었을 뿐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벌금액은 20만 원. 근로기준법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이라고 적혀있지만 원래 그 정도로 끝난다고 했다.
 

 

무엇보다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행태다. 지난 6개월간 근로감독관에 대한 갑질 제보는 100여 건이 들어왔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최저임금 신고센터에 신고하거나 근로감독을 청원한 직장인의 정보를 회사에 넘겨주는 사례였다. 지난 1월 직장갑질119가 고용노동부를 만나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명단을 정리해 넘겼는데, 그 자료가 통째로 회사로 들어갔다는 제보도 있었다.
한 직장인은 상사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첨부한 음성파일로 녹취록을 만들어 고소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은 진단서가 없다는 이유로 “상처라도 있어야죠. 이건 대화일 뿐이야.”, “멱살 잡는 거 폭행 아니에요.”라며 노골적으로 가해자 편을 들었다. 그는 “마치 가해자와 대화하는 듯 했고 그래서 포기하라는 것인지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토로했다.
사전에 근로감독을 회사에 통보해 회사가 불법을 은폐할 시간을 벌어주는 근로감독관도 있었다. 한 직장인은 “노동감사(근로감독)를 나온다고 일주일 전에 알려준 탓에, 미리 저쪽 사장과 사모가 짜고서 임금을 가짜로 맞춘 계약서와, 직원 간에 말을 맞추라고 사전에 모의했다.”라고 제보했다. 이쯤 되면 고용노동부는 ‘직장 갑질 활성화’의 공범이다.
 
슬기로운 직장생활 5 –퇴사
 
상사와의 마찰이 잦아졌다. 법·제도가 내 편이 아니니 맨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이 작은 매장에 노동조합은 하늘의 별따기니 돈키호테가 되어 상사와 맞선다. 어느 날 사장 면담이 잡혔다. 이번 기회로 조금은 바뀔 수 있을까. 사장의 판정은 해고통보였다. 해고된 건 나다.
1년 이상 일을 했기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실업급여는 18개월 동안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180일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다. 거기에 ‘비자발적 이직’이어야 하는데, 해고가 자발적 이직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이놈의 회사는 퇴사하는 순간까지 발목을 잡는다. 고용센터를 찾아가니 고용보험 상실사유가 ‘자발적 이직’이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고용보험 상실사유는 회사가 입력하는데, 해고가 아닌 자발적 이직으로 입력해 놓은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직장갑질119가 받은 제보 11,938건 중 353건(2.96%)이 실업급여와 관련된 문의다. “강요로 사직서를 썼는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와 “괴롭힘으로 출근하기가 너무 끔찍한데, 회사를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가 주된 질문이다. 노동자가 이직할 경우 사업주가 해당 노동자의 피보험자격 상실신고를 한다(고용보험법 제15조 제1항). 사업주가 이직 사유까지 작성하다보니 해고시켜놓고, ‘자발적 이직’으로 기록한다. 노동자가 정정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절차는 까다롭고, 마음은 이미 지친 상태다.
자발적 이직이여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수급자격이 제한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이직사유”(박스 참조)가 있긴 하지만 그 범위가 협소하다. 회사의 괴롭힘에 못 이겨 그만두는 경우 위 사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실업급여 생사여탈권을 사장이 갖고 있다 보니 실업급여로 생색을 내는 사업주도 많다. “지금 사직하면 실업급여는 받게 해줄게.”라며 선심을 쓰고, “퇴직금 포기하면 실업급여 받을 수 있게 해줄게.” 라며 협박한다.
 
민주주의호의 방향을 일터로!
 
개별 노동자들이 직장 갑질에 맞서기는 어렵다. 법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회사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회사를 견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직종별로 모여 회사에 맞서는 것이 직장 갑질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한국 노동조합 조직률은 턱없이 낮고, 노동조합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삐딱하다.
광장을 뒤덮었던 민주주의호는 일터 앞에 멈춰있다. 적폐청산을 말하는 ‘촛불정권’의 발걸음이 유독 ‘노동’ 앞에선 더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에 청와대가 개입되었다고 밝혀지건 말건, 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은 이재용의 손을 맞잡는다. 재벌에 관대한 정부는 불법파견·전교조 합법화와 같은 현안 노동문제에선 침묵한다. 노동과 관련된 법안은 단 하나도 처리하지 않은 국회는 환경노동위원장을 자유한국당의 손에 넘겼고, ‘최저임금 만 원’은 산입범위 확대로 넝마주이가 되었다. 많이 늦었지만 더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라도 민주주의호의 노를 일터로 다잡아야 한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갑질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직장갑질 근절 긴급과제’와 우리 회사의 갑질 점수를 채점할 수 있는 ‘갑질 지표’를 준비 중이다. ‘긴급과제’와 ‘갑질지표’에는 직장갑질119에 제보되거나 언론에 보도된 사례들이 담길 것이다. ‘을씨’가 다음 직장에서는 갑질을 겪지 않기를, 또 다른 ‘을씨’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1) <직장갑질119, 6개월의 기록> 보고서, 2018년 5월 22일 발행
2) 5인 미만 사업장, 하루 11시간(휴게시간 2시간) 근무로 가정 시, 기본급: 7,530원 × 11시간 × 25일 = 2,070,750원 / 주휴수당: 7,530 × 8시간 × 4일 = 240,960원 / 총계: 231만 1,710원 (5인 이상 사업장일 경우, 22시 이후 노동에 대한 야간수당(하루 1시간), 1일 8시간 이상 노동에 대한 연장수당(하루 3시간) 등이 가산된다.)
3) 직업안정법 제2조의2 제8호

 

  • 제작년도 :
  • 통권 : 제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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