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은 20년
2014년 울산 북구청장 선거에서 1.8%라는 근소한 차이로 재선에 석패한 윤종오는 현장으로 돌아갔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현장을 떠나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까지 약 16년간 진보정치의 길을 걸어왔던 그다. 다시 돌아가는 생산라인 앞에서 선다는 게 어색하지 않았을까?
“언제나 콘베어맨, 노동자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현장으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쉬는 시간에 같이 족구도 하는 등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편안한 기분이었습니다”라며 그는 넉살좋은 웃음을 지었다. 1998년 정치에 입문해 긴 시간 현장을 비웠지만 윤종오의 정치행적을 들여다보면 노동자에 관한 그의 애정이 변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급공사 체불임금 금지 조례를 만들고 구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퇴직자를 위한 인생이모작센터를 만들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를 위한 장학금도 신설했다. 당연한 일들이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의 견제가 심한 지방의회에서 실현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2인자는 용납하지 않는 정치세계는 냉혹했다. 어떤 일을 해왔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보다 그저 선거에서 패배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 윤종오가 몸담았던 통합진보당은 역사상 최악의 공안탄압으로 존폐가 불투명했다. 전례 없는 정당해산 심판 청구는 10만 명의 당원이 속한 정치조직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 태세였고, 이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종오는 좋지만 통합진보당은 싫다”, “다른 당에 입당하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인데”라는 말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윤종오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일부의 일을 가지고 진보정당 전체를 없애려는 일은 명백히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라며 탈당은커녕 지역위원회 위원장직까지 맡았다. 그러나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현장에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도리어 주변 사람들을 위로했지만, 오랜 공직자 생활을 마감한 데 대한 상실감이 적진 않았을 터이다.
진보정치의 길을 접고 그렇게 돌아간 현장이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을 거치며 진보정치를 시작한 그다. 다시 돌아온 현장에는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어났고, ‘함께 살자’는 요구를 내건 고공철탑농성이 이어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오랜 반노동정책은 단결의 현장을 경쟁의 장으로 바꿔 놓았다. 더군다나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헌법과 노동법마저 위반한 양대 노동지침을 내놓고 제2의 정리해고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른바 공정인사란 미명 아래 노동자를 저성과자로 낙인찍어 잘라내고, 회사가 노조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 같은 노동조건 후퇴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제도화하려는 시도였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파견직종을 확대하려는 노동법 개악까지 추진했다.
장고의 시간. “국회의원 선거는 다르다. 떨어지면 다음 지방선거에 나오기 더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 그러나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윤종오는 현장을,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진보정치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2016년 3월22일 윤종오 후보가 민주노총 영남 노동벨트 전략지역후보 합동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종오 후보 선거대책본부)
민주노총 전략후보가 되다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본선을 넘기 전 민중단일후보 경선부터 준비해야 했다. 상대는 정의당의 조승수 후보로, 구청장과 국회의원에 당 정책위 의장까지 지낸 이였다. 정책팀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스왓(SWOT) 분석 결과는 어려운 현실을 체감하게 했다. 현장 노동자 후보라는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 윤종오 후보가 조 후보보다 앞서는 것은 없었다.
경선을 본선같이 치러야 한다는 결심으로 전략을 짜내 봤지만, 결국 현장 노동자들의 선택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경선 룰을 정하면서 상호 간의 입장차도 컸다. 조 후보 측은 처음부터 100% 여론조사 경선방식을 제안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만으로 경선을 치러봐야 본선경쟁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경선은 노동중심 진보정치의 새 틀을 짜야 하는 큰 방향에 부합하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최소 50% 이상은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측의 입장이었다. 기차 철로 같은 평행선을 달리는 협상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창원 성산은 노동자 총투표로 정의당의 노회찬 후보가 민중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울산도 창원과 같은 방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협상은 잘 풀리지 않았고 여전히 서로 간의 입장차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조 후보 측이 북구 소재 사업장 전 조합원 100% 모바일 투표라는 극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북구 소재 민주노총 조합원 약 3만 명을 대상으로 모바일투표가 진행됐다. 윤종오 후보는 매일 같이 새벽 5시30분부터 출근인사를 시작으로 조합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핵심 슬로건은 ‘노동자 국회의원’이었다. 노동법 개악을 온 몸으로 막을 노동자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오랜 시간 현장을 떠나 있었던 이력을 두고 차가운 반응도 감지됐다. 그러나 윤 후보가 진보정치를 해 오며 쌓아온 신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이 지났고 경선이 치러졌다. 결과는 윤종오 후보의 승리. 조승수 후보는 즉각 결과에 승복했고 공동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민중단일후보로 결정되었지만, 넘어야할 산이 하나 더 남았다. 야권단일화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상헌 울산시당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였다. 지지도나 인지도 측면에서 윤종오 후보가 앞서 있었지만 지역 토박이인 이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더구나 앞선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는 11%를 넘는 표를 획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단일화에 응하지 않는다면 본선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특히 통합진보당 출신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를 더불어민주당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은 쉽게 풀렸다. 알려진 대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울산을 방문해 이상헌 후보를 설득했고, 새누리당 일당독점을 막기 위한 이 후보의 결단으로 자연스레 야권단일화가 이뤄졌다.
저열한 색깔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단일화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본선이 시작됐다. 상대방인 새누리당의 윤두환 후보는 선거 초기부터 색깔론과 이념공세를 퍼부었다. 종북이니 위장출마니 등의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했고, 윤두환 후보는 심지어 태극기를 들고 다니며 마치 윤종오 후보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인 것처럼 선전하고 다녔다.
선거 중반에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까지 가세해 윤종오 후보를 공격했다.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들의 색깔론도 연일 계속됐다. TV조선은 과거 선거관리위원회가 다른 불법선거운동 현장을 덮친 자료화면을 마치 윤종오 후보의 사례인 것처럼 편집하는 왜곡보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선본 내부는 다양한 대응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전체적인 기조는 상대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부분은 정면으로 대처한다는 입장이었다. 윤종오 후보가 특수전사령부 출신이고, 군대 시절에 입은 상처로 보훈대상자가 됐다는 사실도 적극적으로 알렸다. 6.25참전유공자회 등 회원들로 구성된 안보서포터즈도 꾸려졌다.
결정적으로 색깔론이 전세를 역전하기에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향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노동개악으로 일자리를 위협하고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 정책들이 노동자와 가족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재벌대기업들은 법인세 인하 등 온갖 특혜로 국가예산의 두 배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쌓은 반면, 1,2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는 정권이 주장하는 경제살리기가 더 이상 국민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분위기가 고조되던 선거 중반에 예상치 못한 복병이 터졌다. 공안검찰이 윤종오 후보가 대표로 있던 마을공동체 ‘동행’을 유사선거사무소로 규정하고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이다. 문을 연지 1년이 넘은 동행은 텃밭사업과 마을카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다. 인근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사무원들이 잠깐씩 쉬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규모 전화방을 설치해 계획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그런 유사선거사무소는 아니다.
이는 명백한 정치탄압이자 표적수사로 밖에 볼 수 없다. 압수수색이 있던 날은 지역 MBC와 UBC 방송국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지역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된 언론사 여론조사 발표였다. 결과는 14% 이상의 압도적인 차이로 윤종오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저녁 8시 여론조사 결과가 방송되기 전인 이날 오전에 지역 정가에서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역 정가에 결과가 전해진지 불과 3시간 만에 압수수색이 단행됐고, 저녁뉴스에는 여론조사 결과와 압수수색 장면이 나란히 보도됐다. 누가 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표적수사가 아닌가?
(2016년 4월1일 현대차지부와 윤종오 후보가 정책협약을 맺고 있다. ⓒ윤종오 후보 선거대책본부)
흔들림 없는 노동자 지지
해묵은 색깔론과 정치탄압, 표적수사에도 노동자들의 지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도리어 위기감과 긴장감이 노동자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지지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번엔 반드시 윤종오를 찍겠다”, “새누리당 만은 꼭 이겨 달라”, “국회로 가서 우리 일자리를 지켜 달라”는 요구들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선거운동원들의 유세 현장에는 민주노총 정치실천단이 함께 했다. 노동개악 저지를 구호로 내걸고 새누리당의 흑색비방선전에 적극 맞섰다. 그동안 여러 선거에서 노동계는 계파에 따라 후보를 놓고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달리 지지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울산 북구 선거만큼은 계파를 떠나 모두가 한 목소리로 윤종오를 지지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과 반노동정책이 노동자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 것으로, 어떤 외압과 이념공세도 그 기세를 꺾지 못했다.
노동자 윤종오가 내건 공약 역시 선거철에만 난무한 공약(空約)이 아니었다. 쉬운해고금지법은 새누리당의 노동법 개악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정리해고 요건마저도 더욱 강화해 해고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특별법 역시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할수록 치러야할 비용을 높게 만들어 사용자가 비정규직 채용을 그만두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선거 막판에 몰려오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내건 ‘쉬운해고 금지’ 같은 진정성 없는 구호와는 차원이 다른 약속들이다.
(윤종오 후보가 박유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과 함께 선거유세를 벌이고 있다. ⓒ윤종오 후보 선거대책본부)
선거는 윤종오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요인은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노동개악을 무리하게 추진해 온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민심이다. 특히 노동자도시 북구는 반새누리당 여론이 최고조에 달했다. 오죽하면 김무성 전 대표가 바로 옆 선거구인 동구를 방문하면서도 10여분 거리의 북구는 찾지 않았을까. 둘째, 민중후보단일화를 통한 노동자들의 표심이 하나로 뭉친 결과였다. 직접 선출한 노동자 후보를 국회로 보내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선거였다. 마지막은 윤종오 개인의 진심이다. 노동자가 진보정치를 해오면서 보여준 신뢰와 실무능력, 추진력이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총선은 끝났다. 윤종오는 당선인 신분으로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찾았다. 옥중에서도 서신을 통해 윤종오 지지를 호소했던 그다. 같은 노동자로서 윤 당선인의 감회는 남달랐을 터이다.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고 평범한 시민을 물대포로 쏴 생사의 기로에 서게 한 정부에 온몸으로 맞서 투쟁한 한상균 위원장. 지금도 수십, 수백만의 한상균이 전국 곳곳에서 홀로 투쟁하고 있을지 모른다.
윤 당선인이 한 위원장 면회 후 찾은 곳은 민주노총 중집회의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상무위원회였다. 윤 당선인은 울산 동구 김종훈 당선인과 함께 이곳에서 진보대통합을 호소했다. 제대로 된 노동중심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지 않고서는 노동자, 농민, 평범한 시민들을 대변할 진보정치가 실현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윤 당선인 본인도 강조해 왔듯 20대 국회에서 노동입법과 함께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소야대의 결과가 말해 주듯이 시민들은 더 이상 새누리당의 독정(獨政)을 참지 않았다.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거는 기대가 큰 만큼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에 부응해야 한다. 노동개악을 막고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분열된 진보정치를 노동중심의 대통합당으로 모아내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쳐야 할 것이다.
4년,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이다. 노동자답게, 진보정치답게 소신과 원칙을 잃지 않고 오로지 노동자와 시민만을 보고 달려간다면 힘없는 무소속에 대한 염려도, 종북이라는 주홍글씨도 사라질 것이다. 금번 울산 북구의 선거는 지역에만 국한된 선거가 아니다. 노동자가 힘을 모으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선거이며, 불가능은 더 이상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희망의 선거다. 오늘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4년 후 더 큰 열매를 맺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