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민주노총
올해 11월11일은 민주노총이 창립된 지 20년을 알리는 역사적인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5년 11월11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노총 창립대회는 법외노조의 상태이지만 40만 명이 넘는 민주노조진영 전국중앙조직의 출범을 알리는 역사적인 날로써, 다음날은 민주노총의 깃발을 휘날리며 전국노동자대회가 개최되고 수만 명의 노동자들의 행진하였다. 민주노조진영의 총단결체로서 민주노총의 창립은 정권과 자본이 휘둘렀던 억압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이 하나의 주체적 세력으로서 자립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총의 성과
지난 20년 동안 민주노총은 우리 사회에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세력으로서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민주노총이 창립된 지 1년 후에 전개된 1996∼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정권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노동법 개정을 무효화하는 정부 수립 후 최대 규모의 위력적인 정치총파업 투쟁인 동시에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으로써 전 세계 노동운동의 희망으로 기록되었다. “하루 이상 총파업 531개 노조 40만 4,054명, 총파업 돌입 누적집계 3,422개 노조 3,87만 8,211명, 1일 평균 파업규모 163개 노조 18만 4,498명, 집회 참여 총인원 전국 주요도시 150만 명(대규모 집회 일시 30일간), 대국민 선전물 390만 부 제작‧배포.”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이 40만 명에 불과한 조건에서 이루어낸 역사적 투쟁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이후에는 주40시간제 법제화투쟁을 통해 주5일제 시대를 전면화하였다. 또한 민주노총은 합법화 이후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최저임금법개정을 통해 최저임금을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시켰다. 철도, 전력 등의 민영화 저지투쟁과 무상의료·무상교육투쟁을 통해 사회공공성 영역을 주요한 투쟁으로 전면화하기도 했다. 노동법 개정을 통해서는 법외노조였던 민주노조진영을 합법화하고 교사, 공무원노조의 단결권을 실현시켰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2000년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고 높은 지지율을 얻음으로써 노동자중심의 진보적 대중정당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현재의 초라한 모습
그러나 지금 20주년을 맞이하는 민주노총의 현실은 과거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은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낳는 개악으로써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합의라는 미명 아래 민주노총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민주노총은 총파업투쟁을 외치고 있지만 지난 3차례의 총파업투쟁은 96∼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에서 보여주었던 위력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정권은 오히려 ‘청년고용을 위한 노동개혁’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기득권층이라며 노동운동을 공략하고 있으나 민주노총은 이에 맞선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노동조합의 조직률과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노조 조직률은 점점 낮아져서 12%대로, 1987년 이전으로 회귀하였으며 비정규직의 조직률은 2%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조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부분은 조직률이 강력한 대기업, 공공부문과 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다.
임금인상은 2000년대 이후 생산성 향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상률을 실현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노동조합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대다수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청년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비정규직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세이며, OECD 국가 중 최장시간 노동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있다.
민주노총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의 분열과 왜소화로 나타나고 있다.
성년에 걸맞은 성찰과 책임을 져야
사람의 나이로 20년은 성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총은 질풍노도의 사춘기시기를 거쳐 이제는 자신을 성찰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며 이를 책임지고 실행할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 전체 노동자들이 전면적 저임금 시대에 있을 때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적 투쟁이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선도차 역할을 담당했다. 민주노총의 투쟁형태는 그 시절의 향수에 기반하고 있다. 자본이 국내에 투자를 확대하고 대기업의 고용이 확대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자본이 초국적화되고 고용이 분절되며 파편화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전투적 투쟁이 쉽게 전면화 되기에는 어렵다. 이미 노동시장의 상층을 점하고 있으며 노조를 통한 보호기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은 아웃소싱을 통해 대기업 부문의 임금인상을 비정규직에게 전가시키는 기제를 가지고 있는데다 이들 대다수가 무노조인 상태에서 전투적 투쟁의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들의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관차 역할을 하면서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의 근거지 역할을 하는 것을 전략적인 과제로 가져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4만 명이 넘는 학교비정규직의 단기간 조직화나 삼성전자 비정규직의 조직화, 케이블TV 비정규직을 조직한 희망연대노조 등 여러 가지 희망적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사례를 분석하고 가맹 산하노조들이 조직화를 전면화하도록 지도하여야 할 것이다.
총연맹은 지금까지와 다른 사업작풍을 시행해야 한다. 내부의 다양한 정파를 아우르는 통합적 지도력을 갖추고, 앞으로 중앙집행위원회나 의결기구에서는 비정규 조직화, 사회연대의 사업 실시와 그 평가를 중심으로 점검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작풍을 시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당면한 투쟁에 있어서도 자체 대오만의 위력적 총파업을 외칠 것이 아니다. 조직대중 뿐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들을 감동시키는 선전을 하였는지, 여론과 담론 프레임을 바꾸어내고 있는지, 사회적 연대나 교섭을 투쟁과 제대로 연계하고 있는지, 총파업이 아니라도 정권과 자본에 통렬한 타격을 주는 투쟁을 개발하고 있는지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쉽지 않다. 기존의 관행을 혁파하고 낡은 운동형태를 혁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년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미룰 수 없고 자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노동운동의 위기논쟁과 민주노총의 혁신논의는 무성했지만 전면적 변화와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창립20년을 맞이하여 민주노총의 혁신과 재도약을 기원한다.